나이 들수록 친구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은 나만이 아니리라..
그런 친구가 많을수록 좋다는 데..
그럼 친구의 숫자도 중요한가?..
http://www.hani.co.kr/arti/well/well_friend/981564.html
용수 스님은 친절. 솔직. 통한다는 세가지로 설명하며.. 그럴수 있는 친구라면 한명만으로도 족하다고..
그 말이 다행으로 들리는 것은 찐한 친구 한 명을 구하는 게 쉽지 않은데.. 서너 명 이상 이어야 하면 어떻게 찾느냐 말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종종 만나는 사람이 있다해도 그[에이]를 친구라고 하기엔 무언가가 빠진다.
정말 어려울 때 자기 마음을 있는 그대로.. 사정을 털어놓을 수 있는 스님이 말하는
그런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어찌 부럽지 아니 하랴.
그러니 한명이 족하다는 말은 마치 그런 친구 한명 있는 게 쉬운 줄 아나?.. 로 들린다.
친구로 여기는 자가 본인의 어려운 사정을 진솔하게 털어놓으니 처음엔 동감하며 받아주었는데..
어느새 돌아보니 자기는 친구 어려움을 듣는 처지가 되어 자기 고통은 꺼낼 수도 없다는 것을 보고 있다면..
친구 사이가 유지될 수 있을까?..
나는 그러질 못했다. 지금도 자신이 없다. 차라리 카운셀러 역할이라면 모를까..
친구란 내가 들어주는 걸 상대도 들어주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상대도 해 줄 수 있는..
뭐랄까 평등한 마음이라 할까?.. 물질적인 것보다 마음간의 평등(?)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내일모래면 고국으로 돌아가는 친구 에이를 보면서..
새삼 과연 나는 그에게 진정한 친구였는지.. 생각해 보는데..
자신이 조금은 없다.
만나면 편하고, 깊이 생각없이 말하고 행동하니 에이에게 거슬릴 때도 있었겠지만..
친구이기에 그가 받아들인 것 보다 워낙 그 친구가 착하니까 받아준게 아닌가 한다.
내가 에이를 친구로 여기는 것도.. 착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뜯긴다는 게 화가 나 함께 만나고
그러다 보니 어울리게 된 게 아닌가 한다.
만일 에이가 보통 사람이 그리하듯 기브 앤 테이크를 우선하는 관계로 나아갔더라면 친구로 여기지 않았으리라.
에이와 여행은 여러명이 함께 버지니아 스카이라인 드라이브가 있는 세난도우 공원과
매릴랜드 아나폴리스와 블루 크렙 먹으러 떠난
일박이일 여행으로 딱 한번인데..
에이 본인 말로는 그것이 미국와서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라 해 우리를 찡~ 하게 했다.
뭐 여행이라고 해서 일하지 않는 날 골라서 계획을 세워 가야만 여행은 아니니..
일하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도 있는데..
에이가 하는 일은 뉴욕 시내 곳곳을 발발히 돌아다는 거였다.
더군다나 스카이 라인 드라이브 코스에 에이는 가지도 못했다.
그는 오후 늦게 버지니아에 도착해 저녁을 먹고 노래방에만 갔다^^..
노래방은 전에도 종종 갔는데.. 아마 이때처럼 장 시간을 노래방에서 죽친 적은 없는 것 같다.
버지니아 사는 한인들이 뉴욕 사는 한인보다 엉덩이가 더 무거운가 보다.
(아니.. 버지나에 사는 다른 쪽 친구들은 그게 아니던데?..)
지금은 고인이 된 한 친구는 미국은 물론 세계가 좁다며 싸돌아다니는 직업을 갖고 있었기에
버지니아나 볼티모아에도 자기 동네처럼 훤~했지만..
내가 나서서.. 내가 정한 곳을 돌아다녔다.
도중에 워싱턴 디시에 들르려 생각했지만 시간이 허락치 않았다..
들렀더라면 에이에게 좋았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또 돌이켜보면 우리 사이는 진솔하고 친절하고 서로 통했다.
그런데 한국 정치에 대해서는 의견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그 차이가 우리 사이를 서먹하게 할만큼 크지 않았고..
그것으로 어색해 질만큼 우리는 미련하지 않았다.
언젠가 다그치듯이 한국 정치에 말을 하니.. 슬며시 그는 무시했다 ㅠㅠ ^^
내가 그것을 그에게 굳이 말한 것도..
나는 이런 사람인데.. 그런데도 계속 만날거유?.. 하는 마음도 어느 구석에 있었겠지.
아쉬운 것은 만나면 정이 더 가는 인간인데..
작년은 코19 땜에 1월인지 2월에 한번인가.. 만났을 뿐이었지.
안 그랬으면 살살 꼬셔서 적어도 일박이일 여행을 갔을 수도 있었을 터인데..
나야 찬스가 생기면 어디로든 떠나지만..
에이도 한국에 가면 찬스를 만들어 어딘가로 떠났으면 한다.
공통점이 있으면 더 많은 진한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기에..
뉴욕과 한국이 멀리 떨어진 건 맞지만
스마트 폰만 있으면 뉴욕에 함께 사는 것 보다도 더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통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먹고사는 생활에 끄달리면 내가 그렇듯이 여유가 사라진다.
여유가 사라지면 스마트 폰이 아니라 그 무엇이 있다해도 세상과 단절하고 산 속 절에 사는 것과 다를 바 없어진다.
어디에 살든 나도 그렇고.. 친구도 그렇고.. 그리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몸은 내일 떠나지만
마음은 항상 함께 있기를..()..
나의 마음에 있다는 것은 여기에 없어도.. 설사 돌아갔다 하더라도..
함꼐 마음에 살고 있는 거라고..
엄마나 아버지는 비록 무덤에 있다지만..
늘 내 마음에 있으니 두 분은 나와 함께 살고 있듯이..
인생은 아쉬움.. 그리고 반복되는 후회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