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어원
비육부생(髀肉復生)
髀肉復生 무료하게 허송세월하다
髀(넓적다리 비) 肉(고기 육) 復(다시 부) 生(날 생)
「넓적다리가 다시 굵어지다, 무료하게 허송세월하다」. 비슷한 말로 비육중생, 무비흥탄, 부비흥차가 있다.
후한말(後漢末). 유비(劉備)는 군사를 일으켜 여남에서 조조(曹操)와 맞붙었다가 대패, 갈 곳조차 막막했다. 이에 대해 부장 손건이 잠시 유표(劉表)에게 몸을 맡기자고 건의했다. 유표는 유비와 종친으로 형주자사로 있었다.
유비는 한동안 형주에 머물러 있었다. 어느날 유표와 유비는 술을 마시면서 세상일을 얘기하고 있었다. 갑자기 유비가 탄식을 했다.
『이전엔 말타고 싸움을 하느라고 넓적다리가 바싹 야위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할일이 없어 한가롭게 지내다보니 넓적다리에 다시 살이 오르는 군요』. 여기서 비육지탄의 고사가 생겼다.
생탄활박(生呑活剝)
生呑活剝:남의 경험을 비판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
生(날 생) 呑(삼킬 탄) 活(살 활) 剝(벗길 박)
「산 채로 삼키고 산 채로 껍질을 벗긴다」 남의 문장을 송두리째 베낀다는 뜻이다. 남의 경험을 배우면서 비판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비꼴 때 쓰인다. 활박생탄(活剝生呑)이라고도 한다.
대당신어(大唐新語)에 나온다. 당(唐)나라 고종(高宗)때 조강현(棗强縣) 현감으로 있던 장회경(張懷慶)은 글재간은 그다지 없었지만 남의 글을 베끼는 데는 「선수」였다.
이부상서 이의부(李義府)가 「누월위가선, 재운작무의, 자련회설태, 호취낙천귀 (鏤月爲歌扇 裁雲作舞衣 自憐廻雪態 好取洛川歸)」라는 시를 지었는데 장회경은 시행마다 각각 생정(生情), 출성(出性), 조경(照鏡), 내시(來時) 라는 두 글자를 앞에 붙여 『내가 지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당시 사람들은 『장회경이 왕창령(王昌齡)을 그대로 벗겨내고 곽정일(郭正一)을 통째로 삼켰다』고 비웃었다.
송양지인(宋襄之仁)
宋襄之仁:무익한 동정이나 어리석은 인정
宋(나라 송)襄(도울 양)之(어조사 지)仁(어질 인)
송(宋)나라 양공(襄公)의 어진 행동. 「쓸데없는 인정으로 나라와 몸을 망침」 또는 「무익한 동정이나 어리석은 인정」이란 뜻.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오는 이야기.
초(楚)나라에서 송나라 양공을 포로로 잡아 송나라를 공격한 일이 있었다. 여러 제후들의 도움으로 양공은 석방됐으나 초나라와의 전쟁은 피할 수 없었다. 초의 군사들이 홍수(泓水)를 건널 때의 일. 강을 먼저 건너는 편이 불리한 데도 초나라는 병력이 많은 것을 믿고 도강(渡江)을 감행했다. 이에 목이(目夷)라는 신하가 적군이 정비되기 전에 공격할 것을 주장했으나 양공은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군자(君子)는 남이 곤궁한 처지에 있을 때 괴롭히는 일을 하지 않는 법이다』라고 말하면서 초의 군사가 온전히 전열을 정비한뒤 공격했다. 결국 송나라 군사는 괴멸됐고 상처를 입은 양공은 이듬해 죽게됐다. 승부의 세계에서는 승리가 유일한 목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비굴한 승리를 쟁취한다면 그 승리는 영원하지 못하며 값어치도 없다.
룰을 지키며 선의의 경쟁을 하면 경우에 따라 손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서로 격려하며 파인플레이 정신으로 승부를 펼치는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수두상기(垂頭喪氣)
垂頭喪氣실망해서 풀이 죽다
▲ 垂(드리울 수) 頭(머리 두) 喪(잃을 상) 氣(기운 기)
「실망해서 풀이 죽다」. 기가 꺾이다. 비슷한 말로 의기소침이 있다.
신당서(新唐書) 환관열전(宦官列傳)에 나온다.
당(唐)나라 말기 소종(昭宗)때. 이무정(李茂貞)은 지방 절도사중 가장 막강했다. 그는 장안(長安. 오늘날의 서안)과 가까운 봉상(鳳翔)에 근거지를 두고 환관인 한전회(韓全誨)를 통해 조정을 막후 조종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하남성(河南省)에 있던 절도사 주전충(朱全忠)이 승상 최윤(崔胤)의 도움을 받아 정변을 일으켰다. 한전회는 황제를 협박해 이무정의 본거지인 봉상으로 함께 몸을 피했다. 주전충이 군사를 이끌고 봉상까지 밀어닥쳤다. 이무정은 성문을 닫고 버텼으나 식량이 떨어져 화의를 요청하게 됐다.
한전회는 대세가 기운 것을 알고 고개를 떨구며 풀이 죽었다. 결국 이무정은 황제를 내놓고 한전회의 목을 베어야 했다.
악관만영(惡貫滿盈)
惡貫滿盈:죄가 너무 많아 헤아릴 수 없다
▲ 惡(악할 악) 貫(꿸 관) 滿(찰 만) 盈(찰 영)
「죄가 너무 많아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줄여 관영(貫穎)이라고도 한다. 비슷한 말로 죄악만영(罪惡滿盈)이 있다. 상서(尙書) 태서(泰誓)에 나온다.
은(殷)나라 마지막 임금인 주왕(紂王)은 왕위에 오른 뒤 기자(箕子) 등 신하들의 도움을 받아 선정을 베풀었다. 그러나 미녀 달비와 사랑에 빠지면서 폭군이 됐다. 주왕은 세금을 무겁게 매기고 주지육림(酒池肉林) 속에서 놀았다. 기름을 바른 구리 기둥을 불 위에 걸치고 죄인들에게 맨발로 걷게 한 포락(怖珞)이라는 형벌을 만들어 달비를 즐겁게 했다.
이를 보다 못한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일어섰다. 그는 황하(黃河)를 건너 은나라 도읍지 조가(朝歌)를 치기 직전 군사들에게 『주왕의 죄악이 너무 많아 천벌을 내린다』고 선언했다.
양질호피(羊質虎皮)
羊質虎皮 외관은 훌륭하나 실속이 없음
▲羊(양 양) 質(바탕 질) 虎(호랑이 호) 皮(가죽 피)
속은 양인데 겉은 호랑이. 「외관은 훌륭하나 실속이 없음」을 뜻한다. 우리 속담의 「빛 좋은 개살구」와 같다. 비슷한 말로 양두구육(羊頭狗肉), 어질용문(魚質龍紋)이 있다.
한(漢)나라 양웅(揚雄)이 쓴 양자법언(揚子法言)에 나온다.
옛날 어떤 사람이 양의 몸통에 호랑이 가죽을 씌워 놓았더니 양이 마치 호랑이 같았다. 그렇지만 가죽을 덮어썼다 해서 양이 호랑이가 될 수는 없었다. 양은 호피를 썼음에도 풀을 보면 좋아하고 승냥이를 만나면 벌벌 떠는 것이었다.
남사(南史) 양간전(羊侃傳)에도 나온다.
남조 때 양간은 힘이 세 「맹호」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가 북위 황제를 알현할 때였다. 황제는 『남들이 그대를 호랑이 같다고 하지만 양질호피가 아닌지 모르겠소』라고 웃으면서 말하자 양간은 황제 앞에서 호랑이처럼 웅크린 자세를 흉내냈다.
연목구어(緣木求魚)
緣木求魚: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잡으려하다
緣(더위잡을 연) 木(나무 목) 求(구할 구) 魚(물고기 어)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잡으려 하다」는 말로 불가능함을 뜻한다.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 상편(上篇)에 나온다.
전국(戰國) 시대. 맹자가 제(齊)나라 선왕(宣王)을 만나러 갔다. 선왕이 물었다. 『옛날 춘추 시대 전쟁을 잘 했던 왕들에 대해 말씀을 좀 해보시오』.
맹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쟁을 잘 한 왕으로는 제나라 환공, 진나라 무공, 문공, 초나라 장왕, 송나라 양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전쟁을 잘 했던 왕들입니까. 전하의 뜻은 결국 다른 나라를 지배해서 그들의 공물을 받겠다는 것이 아닙니까』
맹자는 덧붙였다. 『대왕은 맛있는 음식, 따뜻한 옷이나 아름다운 여자도 마음에 들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로지 국토를 넓혀서 다른 나라를 정복하겠다는 뜻이 엿보입니다. 그러나 그같은 바람은 연목구어입니다. 연목구어 자체는 물고기를 얻지 못해도 재앙은 없지만 대왕께서 바라는 것은 반드시 재앙이 있을 겁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
愚公移山우공이 산을 옮기다
▲ 愚公(우공:노인 이름) 移(옮길 이) 山(메 산)
「우공이 산을 옮기다」 끊임없이 노력하면 큰 일도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비슷한 말로 이산도해(移山倒海)가 있다.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 나온다.
기주(冀州)의 남쪽, 하양(河陽)의 북쪽에 우공이라는 90세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의 집 앞에 태행산(太行山)과 왕옥산(王屋山)산이 버티고 있어 드나들기가 불편했다. 우공은 두 산을 없애버리기로 결심했다.
집안 식구들은 찬성이었다. 다만 그의 아내는 우공이 나이가 많은 데다 많은 돌과 흙을 어디다 버릴 것인가 하면서 미더워하지 못했다. 이때 황하 근처에 살고 있던 지수(智●)라는 사람이 비웃었다.
우공은 이렇게 말했다. 『답답하네그려. 내가 늙어서 일을 끝내지 못한다면 아들이 있고 그 뒤에 또 손자가 있지 않나』. 천제(天帝)가 이 말에 감동해 산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의기양양(意氣揚揚)
意氣揚揚: 아주 자랑스럽게 행동하는 모양
▲ 意(뜻 의) 氣(기운 기) 揚(오를 양) 揚(오를 양)
「의기양양하다. 아주 자랑스럽게 행동하는 모양」 비슷한 말은 양양득의(洋洋得意), 반대말은 의기소침(意氣銷沈)이다.
사기(史記) 관·안열전(管·晏列傳)에 나온다.
춘추(春秋)시대. 제(齊)나라의 국상인 안자(晏子)가 수레를 타고 외출했을 때였다. 안자 수레를 끄는 마부의 아내는 문틈으로 남편의 행동을 엿보았다. 남편은 재상의 마부로서 수레 위에 씌운 큰 차양을 끼고 의기양양하게 네 마리 말에 채찍질을 하면서 수레를 몰았다.
마부의 아내는 그날 저녁 남편이 돌아오자마자 느닷없이 헤어지자고 했다.『국상께서는 육척도 안 되는 몸이지만 그 분이 외출하는 모습을 보니 깊은 생각에 잠긴 듯 겸허하신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팔척의 체구로 국상의 수레를 몰면서도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뽐내니 당신 곁을 떠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전거후공(前倨後恭)
前倨後恭:처음에는 거만하다가 나중에 공손해지다
前(앞 전) 倨(거만할 거) 後(뒤 후) 恭(공손할 공)
「처음에는 거만하다가 나중에 공손해지다」전거후비(前倨後卑)라고도 한다. 사기(史記) 소진열전(蘇秦列傳)에 나온다.
전국(戰國)시대. 낙양(洛陽)사람인 소진(蘇秦)은 세객(說客)이었다. 그는 고향을 떠나 공부하는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형제들은 물론 아내도 그를 비웃었다. 집에 돌아와도 제대로 밥도 주지 않았다. 이에 속이 상한 소진은 잠자는 시간을 아끼느라 허벅다리를 송곳으로 찌르며 병법 공부를 한 끝에 여섯 나라를 합쳐 진(秦)나라를 치는 이른바 「합종책(合從策)」을 마련, 큰 성공을 거두었다.
어느날 소진이 고향인 낙양을 지나게 되자 온 가족이 성밖 30리까지 나와서 그를 맞으면서 송구스러워했다. 소진이 형수에게 "예전에는 그렇게 거만하시다가 갑자기 공손해지시니 이게 웬일입니까" 라고 말하자 형수는 "도련님의 지위가 높고 돈도 많아졌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중심성성(衆心成城)
衆心成城:여러 사람이 마음을 합치면 성을 만들 수 있다
衆(무리 중) 心(마음 심) 成(이룰 성) 城(성 성)
「여러 사람이 마음을 합치면 (견고한) 성을 만들 수 있다」 비슷한 말로 중지성성(衆志成城), 중구삭금이 있다. 국어(國語) 주어(周語)에 나온다.
(周)나라 경왕(景王)이 커다란 종을 만들려고 했다. 이에 대해 선목공(單穆公)과 관리 주구(州鳩)가 『백성들을 괴롭히고 재물을 낭비한다』며 반대했다. 그럼에도 경왕은 종을 만들도록 했다.
이듬해 큰 종이 완성되자 아부하기 좋아하는 신하들이 종소리가 듣기 좋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경왕이 주구를 불러 『모두 종소리가 듣기 좋다더군』하고 빈정댔다.
주구는 『백성들이 종을 만들고 싶어해야 종소리가 듣기 좋은 것이지 그들의 원성이 자자한데 어찌 종소리가 듣기 좋겠습니까. 민중의 마음이 합치면 그 힘은 성벽과 같고 민중의 입은 무쇠도 녹일 수 있습니다(衆心成城, 衆口삭金)』라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