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나는 일이 설렘이지만
관광이 덧씌운 가짜의 풍경
제주에 이르지 못한 세월호
내달려온 세계에 대한 반성
철커덕 철커덕. 슬라이드 영사기 두 대가 돌아가는 동안 널따란 화면엔 여행지에서 건져올린 사진들이 떴다. 스위스의 타이오 오노라토와 니코 크렙스의 '더 그레이트 언리얼(The Great Unreal, 2005). 여행에서 '발견'한 장면들을 기록하는 두 사람이 방문한 곳은 미국이었다. 거기엔 여느 여행지와 다른 황량하고 누추한 풍경이 있다. 오래되어 보이는 숙소의 침대와 커튼, 무너져 내린 도로, 누워있는 검은 소 등 '관광지'란 이름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장소 너머에 있는 모습들이다.
제주비엔날레 전시장인 제주도립미술관은 유럽과 아시아 등지를 종횡하며 관람객들을 여행지로 이끈다. 패키지 여행, 자유 여행, 수학 여행 등 낯선 땅으로 떠나는 일이 일상화되어버렸지만 때로는 끔찍한 기억을 낳는다.
파도치는 바다 등이 펼쳐지는 홍진훤 작가의 사진 작업인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연작(2016~2017)엔 끝내 돌아오지 못한 세월호의 사람들이 있다. 아이들은 수학여행지 제주에 한발도 디디지 못한 채 저 먼 세상으로 휩쓸려갔다. 그 배에 탔던 한 무리의 아이들이 까르륵대며 다녔을 제주 관광지엔 음산한 기운이 감돈다. 그래서 "가속만을 일삼았던 세계에 대한 반성"(작가 노트)을 촉구한다.
강영민 작가는 허울좋은 이미지로 뒤덮인 관광 말고 다른 여행을 꿈꿨다. 그는 430㎞에 달하는 제주올레길을 걸었고 그 여정을 스마트폰 영상으로 담아냈다. 영상 모니터 옆엔 증거물인 듯 제주를 두발로 누빌 때 썼던 신발, 모자, 베낭, 손수건 등이 놓였다.
강 작가의 올레 여행 엿보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다. 3개의 안마 의자를 두고 그곳에 앉아 관람하도록 권한다. 작품 제목이 '암체어 트래블러(Armchair Traveler, 2017)'인 이유다. 땀에 젖은 채 제주를 누볐던 작가의 행로를 안마 의자에서 편히 구경하는 관객들을 지켜보는 데 이 작품의 방점이 찍혔다.
도립미술관 '투어리즘'은 안마 의자 업체가 협찬한 이 작품에서 멈춰야 하지 않았을까. 2층 전시실을 빠져나오는 맨 마지막 자리에 3분30초짜리 제주올레 홍보 영상을 '진지'하게 설치해놨으니 말이다. 제주 관광이 드리운 그늘을 사회예술로 들여다보겠다는 게 제주비엔날레가 내세운 취지였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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