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촉발된 학내 분규에 이은 2019년 교육부 임시 이사체제, 2021년 9월 대법원 최종 판결 이후 추진된 학교법인 원석학원 재단 이사회 재편 등 경주 서라벌대학교는 지난 5년간 일련의 각고(刻苦)를 거쳤었다.
한편 학교법인 원석학원은 지난해 9월 재단 이사회를 현 박관이 이사장 체제로 개편했고 이후 정상화 기획팀이 가동돼 현재 어느 정도 정지작업을 마친 상태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전히 남아있는 대학 내 갈등 요소, 신입생 충원과 맞물리는 재정 문제, 같은 재단 소속인 경주대학교와의 상생 등 풀어야 할 난제가 한 둘이 아니다.
그런데 현 이사회가 정두환 전 서라벌대 학장(2005년)을 지난달 신임 총장(사진)으로 발탁했다. 이러한 정 총장의 선임에 대해 새로운 전환점을 맞아 그의 능력에 방점을 뒀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05년 학장 당시 그는 입학 정원 2천 350명을 100% 채운 바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어깨가 무겁다. 지금은 입학정원이 그 10분의 1 수준이다. 지나치게 비대해진 몸집을 줄이는 대신 `강소 대학`을 선택한 결과이긴 하지만 입학정원 충원은 대학이 해마다 봉착하는 최대 난제 중 하나다.
정 총장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인식변화를 강조한다. 입학대상을 고3으로 한정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4년제 대학 졸업생, 정년 은퇴자, 재교육이 절실한 전문직 종사자, 기업 위탁 훈련생 등 입학 대상범위를 넓히면 정원 충원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대학 재정 건전성도 그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학생들의 등록금 회계만으로 대학이 생존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한다, 때문에 당장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는 6개월~1년 단기 전문교육 코스를 개설하는 등 `전문대학`만이 가능한 과정을 스스로 개발하고 이를 적극 홍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를 위해 지자체의 적극적 역할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경주대학교와의 상생에 대해선 정 총장은 구조적 조정을 제안한다.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 흡수되는 방식이 아니라 양측을 통합ㆍ조정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울산 현대중공업이 한국조선해양지주사를 신설해 그 아래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 삼호중공업 등을 통제ㆍ조율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아직도 일부 잠재돼 있는 대학 내부 갈등요소에 대해선 `정 위치`를 당부했다. 각자의 주장과 요구를 당분간 덮어 두고 구성원들이 `답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교수는 `교수답게', 직원은 `직원답게` 학생은 `학생답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요구는 두 가지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대학이 갖춰야 할 필요충분조건보다 구성원들의 요구와 주장이 한계 법위를 벗어나는 바람에 전체 시스템 작동에 과부하가 걸렸다고 보는 측면이다. 다른 하나는 우선 대학의 극적인 회생을 위해 구성원들의 절대적인 화합과 노력을 당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달 18일 취임한 정 총장을 지난 11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나봤다.
-우리나라 대학 생태계를 어떻게 보나
"대학이 너무 많다. 4년제, 전문대, 폴리텍대, 직업전문학교 등 같은 듯 다른 대학들이 즐비하다. 게다가 기능도 이중 삼중으로 겹쳐져 있다. 예를 들어 사회복지과가 4년제 대학에도 있고 전문대에도 있다. 사회복지는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게 아니라 생활현장에서 습득해야 할 요소가 더 많다. 그런데 4년제 대학들이 너도 나도 관련학과를 개설한 상태다. 그러다보니 사회복지과에 오히려 복지를 제공해야 할 판이다. 이런 분야는 실습과 훈련을 위주로 하는 전문대에 맡겨야 한다"
-우리 교육제도에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치열한 경쟁을 통해 대학에 입학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주요 원인이다. 특히 4년제 대학의 경우 방향이 연구 위주로 나가야 하는데 주로 책상머리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다보니 4년간 비싼 등록금을 주고 학교에 다녀도 졸업 후 취업이 어렵다. 책으로만 공부했으니 현장 적응이 될 수 있겠나. 예를 들어 생산현장에 필요한 인력은 마이스터고, 실업계고 졸업생들을 채용하면 된다. 그쪽으로 진학하는 학생들은 굳이 대학진학의 필요성이 없도록 해야 한다. 지난 1970년대 산업화 당시 상ㆍ공고만 졸업해도 전원 취업됐다"
-그렇다면 전문대가 할 일은 뭔가
"대안 교육기관이다. 예를 들면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전문직종 취업을 희망하는 경우다. 이런 사람들은 다시 마이스터고나 실업계고로 갈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시 4년제 대학 관련학과에 진학할 수도 없다. 이런 인력들을 유치, 훈련시켜 취업현장으로 내 보내는 것이 전문대가 할 일이다. 지난 2005년 학장 재임 당시 거제 STX 조선과 협약을 체결하고 아예 `STX 조선가술 주문식 학과`라는 이름을 못 박았더니 180명 모집에 2천명 이상이 몰려 11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전문대는 지금도 이런 것이 가능하다. 문제는 이런 시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라벌대의 경우, 간호학과ㆍ치위생과ㆍ방사선과 등은 취업률이 100%다. 이들 학과에는 유턴(대학을 졸업한 뒤 다시 입학) 학생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특히 장례지도과는 관련 기업체들의 전문인력 요구가 빗발칠 정도다. 국내 특유의 마사과 설치도 그 중에 하나다. 박관이 이사장 주선으로 해외왕실 마사협회와 연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틈새 전략을 노려 원자력 운영, 원자력 해체 분야, 문화재 발굴 등과 연계된 학과도 개설한다는 계획이다. 경주에 소재한 한수원 본사, 경주시, 서라벌대가 관산학 체제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대학도 이에 대응할 준비가 필요한데
"학생 모집 못지않게 중요한 게 교육ㆍ훈련내용이다. 4년제 대학 흉내 내기에 골몰하면 소용없다. 지난 1980년대 잠깐 경주호텔학교에서 관련 외국어를 가르친 적이 있다. 1년 단기 양성과정인데 1천800시간 교육하더라. 그러니 졸업생들을 서로 데려 가려고 국내 유수호텔들이 학생로비 경쟁을 벌일 정도였다. 이런 식으로 하면 전문대들이 충분히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향후 학사 운영방침에 포함돼 있나
"단기코스 전공을 신규 개설하고 사관학교 개념을 도입할 계획이다. 당장 2학기부터 조선설계, 컴퓨터 코딩, 데이터 사이언스 단기과정부터 개설할 예정이다. 대학 명이 서라벌대학교인 만큼 이름에 어울리는 가치성 부여도 필요하다. `서라벌 문화역사` 교과목도 신설하겠다"
-대학 자체만의 노력으론 어렵지 않나
"산학 연계만으론 어렵다. 지자체가 지렛대 역할을 해 줘야 한다. 경주시의 경우 한수원 본사가 위치해 있다. 경주시가 사원들의 사내교육이나 단기 양성과정을 전문대에 위탁토록 하는데 일정 부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관이 주도적으로 나서면 관련 기업들이 이에 호응할 가능성이 크다"
-전문대학들이 재정 건전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학생들 등록금만 바라보고 있으면 영원히 답은 없다. 비둥록금 수익창출 방식도 포함되어야 한다. 자체 교육ㆍ훈련조건을 갖추지 못해 사내 인력을 훈련, 교육, 양성할 수 없는 기업들이 수두룩하다. 기업들의 위탁을 받아 우리가 6개월, 1년 과정을 운용하고 수업료를 회사가 부담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전문 교육인력이 필요할 텐데
"기업에서 은퇴할 예정인 전문 인력을 채용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다. 회사에서는 은퇴자 노후설계를 보장할 수 있고 대학은 전문 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 꼭 석ㆍ박사 학위를 소유해야 교수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단기 과정엔 해당분야 장인들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해당직종 은퇴 장인들이 교수란 명예직과 보수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어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재단 측의 재정투입도 필요하지 않나
"박관이 이사장은 학교 재건에 필요하다면 어떠한 투자도 감수할 준비가 돼 있다. 박 이사장은 그 정도의 재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이를 받아들이는 대학 자체의 효율성이다. 수천억을 쏟아 부은들 과실(果實)이 없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닌가"
-경주대학교와의 갈등은 어떻게 풀어 갈 건가
"양측의 주장과 요구가 서로 맞물린 부분이 많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일괄 흡수하는 방식은 갈등을 더 증폭시킬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경주-서라벌 혁신본부`같은 지주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이곳에서 서로 중복되는 분야는 한쪽으로 모으고 육성할 부분은 더 확장시키는 게 바람직하다"
지난 2017년 재단관련 학내 분규이후 2019년 교육부 임시 이사제가 학교 정상화를 위해 학교법인 원석학원 산하 경주대와 서라벌대의 학과 통폐합, 학사관련 인력 조정을 시도하자 양측은 서로 상대방에 그 책임소재를 주장하며 팽팽히 맞선 바 있다.
대담 정종식 편집국장/ 사진 김생종 영상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