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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애족·살신성인의 정신’…
제20회 중봉조헌문학상 작품공모전 개최
| 오는 4월30일까지 시 5편 혹은 수필 2편 이메일 접수 5월 중 대상 1인·우수상 2인 선정…상금 및 트로피 증정 |
중봉 조헌 선생 초상화의 모습.
(사)중봉조헌선생선양회가 오는 4월30일까지 제20회 중봉조헌문학상 작품 공모를 진행한다.
이번 공모전은 중봉 조헌 선생의 애국애족 의기와 충혼, 살신성인의 정신과 교육자로서의 문학정신을 기리고자 매년 개최되는 것으로 중봉조헌선생선양회가 주최하고 김포시가 후원, 우저서원이 협찬하는 행사다.
공모 주제는 자유이나 중봉 조헌 선생을 소재로 할 때는 가산점이 부여된다.
공모 장르 및 편수는 시와 수필 2개의 분야로 각각 5편, 2편씩 이메일(kyeongrye@naver.com)로 작품을 접수하면 된다.
작품 공모 시 표지에는 ‘중봉조헌문학상 응모작품’이라고 표기해야 하며 성명과 생년월일, 주소, 전화번호 등을 첨부해야 한다.
최종 선정자는 오는 5월 중 개별 통보할 예정으로 대상 1명에게 300만원과 트로피, 우수상 2명에게는 각 100만원과 트로피가 증정된다.
공모 작품은 국내외 미발표된 순수 창작작품이어야 하며 입상 시에도 추후 발표된 작품으로 밝혀질 경우 입상이 취소된다.
응모 작품은 순수 창작 미발표 작품이어야 하며, 국내외에 이미 발표된 작품은 입상이 취소될 수 있다. 작품 주제는 자유이나 중봉 조헌 선생을 소재로 할 경우 가산점이 부여된다
응모 시 표지에 ‘중봉조헌문학상 응모작품’ 표기와 함께 성명, 주소, 전화번호를 기재해 제출해야 한다. 응모 작품은 반환하지 않으며, 입상작의 저작권은 (사)중봉조헌선생선양회가 소유한다.
기타 작품공모와 관련된 자세한 문의는 중봉조헌선생선양회(☎ 031-982-8844, 010-2234-6126)으로 문의하면 된다.
지난 수상작품 보기
[제19회 중봉조헌문학상 대상 수상작]시 부문
| 이정희, 「칠백일 번째 의병」 |
칠백일 번째 의병
이정희
다 지나간 줄 알았다
깃발도 함성도 사라진 들판에
총알이 남긴 기억만
탄흔처럼 패여 있었다
달빛은 칼끝처럼 창백했고
새떼는 불안처럼 떼 지어 날았다
바람조차 고개 숙인 벌판
칠백의 장정이
목숨을 깃대 삼아 버텼던 자리
나는 풀 한 포기 꺾지 못한다
그 풀잎 하나조차
칼날처럼 날이 서 있으며
뒤꿈치엔 산맥이 붙어 따라오고
들풀들이 길을 만들었다
묵묵히 흐르는 냇물
핏빛을 닮은 흐름으로 흙을 적신다
그 물길 속에
누가 아직 이름을 씻고 있는지
칼보다 매운 결기는
지금도 흙 속에서
의지를 키운다
우리는 칠백일 번째 의병
기억이라는 전쟁터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나
이정희 시부문 대상 당선자
당선 소감
중봉조헌문학상 대상이라는 엄청난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그늘을 단숨에 뛰어넘는 소식에 울컥! 설렘을 넘어 가슴이 두근두근 방망이질합니다.
그날 저는 칠백일 번째 이름으로 시를 썼으며 금산벌 칠백 혼들이 제게 시를 안겨주었습니다. 저는 가장 늦게 도착한 한 사람의 의병이 되어 시를 받아썼습니다.
이름 없이 묻힌 피의 역사, 그러나 절대 사라지지 않은 이름들, 그들의 숨결이 제시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기억의 페이지는 거름을 주지 않아도 충분했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저는 앞이 쓰러지면 또 다른 앞이 달려 나가던 발자국들을 또렷이 보았습니다.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피의 산맥으로 굳어가던 의연한 모습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들의 함성은 문장보다 먼저 제 심장에 와 닿았고 깃발을 흔들며 끝까지 저항하던 표정들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조헌 선생의 애국애족 살신성인 정신을 깊이 새겼습니다.
“이제 칠백일 번째 의병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 질문은 제 시의 가장 아픈 문장이 되었습니다. 이 상을 그들에게 바칩니다. 맛있고 따뜻한 시, 많이 쓰도록 하겠습니다.
시에게 날개를 달아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중봉조헌문학에 진심이신 중봉조헌선생선양회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19회 중봉조헌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시 부문
| 이숨, 「고택에 살았던 그에게」 |
고택에 살았던 그에게
이숨
고택은 남았고 동백은 몇백 년 전 색으로 찾아왔다
붉다는 건 피의 언약이어서
한그루에 수많은 방울들이 맺혀 있다
그러니 봄은 누군가의 몸이고
사월은 꿈이 붉은 한뎃잠이다
눈부신 오후 한 시
사모하는 마음으로 동백숲을 걸어간다
애틋하게 겹고
생각하듯 붉고
그리워 처연한
한때 그의 감정이다
꽃송이를 바닥에 흘리며 움켜쥐었을
심장, 무엇이 멈출 수 없는 색으로 박동하는지
누구나 한 번쯤 망연히
제 피를 바라보는 때는 있어서
자신에게서 멀어진 몸을 꽃에 입힌다
목책에 기대어 누군가 울다간 적 있었으니
나는 그 울음을 빌려 붉어져 본다
등 뒤에서 안아주는 당신의 다정한 손
이별은 없었다고
봉인이 해제된 겹겹의 꽃송이들
바닥에 필체를 펼쳐놓는다
목책을 타고 넘어온 바람이 뒹구는 오후
당신을 사모하는 동백나무들이
저편 고택을 향해 하염없이
꽃들을 밀어 보내고 있다
이숨 시 부문 우수상 당선자
당선 소감 - 나는 ‘시 광대’입니다
나는 광대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시에 빠진 ‘시 광대’입니다. 시의 동작을 살피기 위해 어떻게 시의 맥을 짚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낮이면 시로 투쟁하고 밤이면 바이런의 낭만주의학파가 되어 시인의 촉을 발동했습니다. 밤이면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있어 별과 달을 올려다보며 울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내 안의 어떤 슬픔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어 울게 하는지 몰랐습니다. 시의 길이 들어서고 그 증상은 심해졌습니다. 가슴에 열을 불태울 무엇인가 필요했습니다. 어느날 꿈처럼 시가 다가왔습니다. 시의 배에 오르면서 내 몸의 열기는 서서히 내려갔습니다. 돛을 달기 전에 온전히 파도에 제 몸을 물결에 맡기는 배처럼 그렇게 배 위에서 누워 작열하는 태양을 받아들였습니다.
시가 그랬습니다. 나와 평생 함께 살자고요.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데? 내 속의 ‘한’을 풀어주고 고통 속에 피는 꽃처럼 ‘시의 기쁨’을 주겠다고요. 계약서가 없는 투명계약서를 마음으로 쓰고 ‘시 협회’에서 발간하는 공증서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홀가분하게 시와 대면할 수 있습니다. 시는 내게 영혼을 맑게 하는 만큼 보상의 결과는 확실했습니다. 시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시의 통장 잔고가 늘어날수록 시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완전체의 시로 태어나는 날 달나라 착륙한 우주인이 깃발을 꽂으며 외친 것처럼 ‘현존재’의 사실을 세상에 알리겠습니다. 그날을 위해 시에 정진하겠습니다.
중봉 조헌 선생님께서 행하신 나라를 살리기 위해 애쓴 충직한 마음과 정신을 이어가겠습니다. 저를 이 자리에 서게 해주신 모든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 시의 안목을 인정해 주시고 당선의 기쁨을 허락하신 <중봉 조헌 문학상>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https://www.igimpo.com/news/articleView.html?idxno=88629
[제19회 중봉조헌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시 부문 - 김포신문
고택에 살았던 그에게이숨 고택은 남았고 동백은 몇백 년 전 색으로 찾아왔다 붉다는 건 피의 언약이어서 한그루에 수많은 방울들이 맺혀 있다 그러니 봄은 누군가의 몸이고 사월은 꿈이 붉은 한뎃잠이다 눈부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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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중봉조헌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수필 부문
| 안혜민, 「엄마의 미역국에는 맨드라미가 들어간다」 |
엄마의 미역국에는 맨드라미가 들어간다
안혜민
“바쁘지? 점심시간에 잠깐 문 앞에 나올 수 있어? 미역국 좀 끓였는데 갖다줄게.”
미역국을 만들고 가져다주는 수고로움을 하는 이가, 되려 공짜로 받아먹는 이에게 받을 수 있냐며 양해를 구하고 있다. 이 공정하지 못한 상황은 신기하게도 가족이라는 단어 앞에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어진다. 일 년 동안 병가를 낸 후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했고 복직을 했지만, 또 안 챙겨 먹을까 봐 또 아플까 봐 하는 엄마의 조바심은 줄어들지 않았다.
조심스레 받아 든 냄비에는 온기가 가득 남아있다. 냄비 뚜껑을 살짝 열어보니 미역국의 풍성하고 고소한 냄새가 마술램프를 빠져나온 지니처럼 허공으로 한가득 펼쳐진다.
나는 한식을 넘치도록 잘 먹고 자랐다. 종갓집 장남인 아빠의 시골집에는 명절마다 제사마다 다채로운 음식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맏며느리였던 할머니와 또 그 며느리인 우리 엄마의 바쁜 손이 있었다.
이마에 다이아몬드 표시가 있는 반들한 조기, 아기 손처럼 끝이 오그라진 고사리, 빨간 바탕에 하얀 힘줄이 대리석 무늬 같은 고깃덩이……. 수많은 재료가 할머니와 엄마를 거치면 발색이 잘 된 수채화처럼 밥상 위에 하나 가득 그려졌다. 어떨 때는 장독대 주변에 난 풀이나 꽃도 생각지 못한 식재료가 되었다. 어린 나는 새콤달콤 무친 돗나물, 밀가루를 발라 튀겨낸 깻잎 꽃, 진달래 꽃잎으로 고명을 올린 지지미를 보고 세상에는 먹을 게 참 많다며 장독 사이사이를 깡총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장독대 한편에 올망졸망 심어져 있는 맨드라미가 미역국에 들어 있는 무엇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꼬불꼬불 두껍고 풍성한 꽃잎이 입체감 있게 한 몸통에 연결된 것을 보고 혹시 이게 미역귀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엄마의 밥상에서 나는 미역국을 가장 좋아한다. 특히 미역귀의 오독오독 쫄깃한 식감과 푹 고아진 부드러운 양지머리가 어우러지는 깊고 고소한 맛을 느끼고 있으면, 어느새 한 그릇이 뚝딱 없어졌다. 엄마를 따라 시골 5일장에 가면 거의 내 키만 한 진도각을 사서, 사극에서 본 긴 칼처럼 허리춤에 들고 왔다. 언뜻 무기 같기도 한 뻐센 미역이 엄마의 손을 거치면, 세상 맛있는 국이 되곤 했다.
엄마의 손맛은 학교 교무실, 과외 강사, 피아노 학원에까지 널리 퍼져나갔다. 주변 사람들이 돈 받고 반찬 좀 팔라고 하기도 했는데 엄마는 매번 그냥 인심이라면서 찬합 가득 음식을 나누어주셨다. 반찬을 나누어 받은 어른들은 너네 엄마는 저렇게 훌륭하신데 너는 왜 그러냐며 니가 열심히 공부해야지 하는 타박이 이어졌다. 나는 엄마가 베푸는 입장이면서도 도리어 우리 아이 잘 봐달라고 웃으며 굽신거리는 모습이 점점 싫어졌다.
나는 태생이 수용적이고 잔잔한 성격이라 조용히 학창 시절을 보냈다. 아파도 안 아파도 학교에 갔고, 밤늦게까지 야자를 했으며, 독서실에 갔다가 새벽달이 시릴 때쯤 퀭한 눈을 비비며 집에 돌아왔다. 그렇게 내 학창 시절도 십대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을 때였다. 밥 먹고 얼른 독서실가라, 밥 먹고 얼른 학원가라, 밥 먹고 얼른 공부해라 라는 엄마의 말이 며칠째 이어졌다. 아니 제발 그놈의 밥 소리 좀 그만하면 안 되냐고 우리 집에 밥 못 먹어서 죽은 귀신 있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내가 그때 진짜로 듣기 싫었던 건 밥 먹으라는 말이었을까.
나는 그렇게 대학생이 되었고 졸업 후 회사원이 되었다. 나는 잦은 야근과 회식으로 지쳐갔고, 서른이 넘은 어느 날 회사를 그만두고 고시 공부를 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부모님의 반대가 필사적으로 이어졌고 나는 집을 나왔다. 그 후 내 밥상은 인스턴트 식품과 빨리 때울 수 있는 것들로 대충 채워졌다. 엄마는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밥 챙겨 먹으라고 하셨지만 나는 응 먹었어 알았어로 일관하며 통화가 길게 이어지는 것을 막았다.
그렇게 시험이 한 달 남짓 남은 어느 날, 나는 실신을 해서 병원에 실려갔고 영양실조와 대상포진이라는 병명을 듣게 되었다. 한달음에 달려온 엄마는 그 후 한 달간, 큰 냄비에 매번 다른 국을 만들어 고시원에 오셨다.
그렇게 임용 시험에 합격하고, 나에게 교사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일도 아이들도 좋아서 시작했지만, 거절을 못 해서 빚더미처럼 떠안은 업무량 때문이었을까, 더 잘하고 완벽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까. 과로했나 하며 대수롭지 않게 들렀던 병원에서 나는 암 판정을 받게 되었다.
휴직계를 내고 장기 일부를 적출하는 수술을 했다. 코로나 19가 한창인 시기여서 암 병동 전체가 밀폐되었고 면회가 금지되었다. 수술 후 일주일 만에 보는 엄마의 얼굴에는 뭐라 한 단어로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넘칠 듯 아슬아슬하게 담겨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딱 한 마디 하셨다. “고생했어. 밥먹자.”
식탁에는 미역국과 반찬들이 한상 가득 차려져 있었다. 국그릇에는 미역귀가 가득하고 부드러운 양지머리가 먹기 좋게 손으로 찢어져 미역귀 주변을 두르고 있었다. 순간 목구멍에 뜨거운 돌이 울컥 얹혔다. 핑계를 대고 좀 이따 먹겠다고 얼버무리며 문밖에 나왔다.
마당에는 알록달록 여름꽃이 한창이다. 황토집 담벼락에 울멍줄멍 고른 듯 고르지 않은 듯 줄 서 있는 맨드라미를 가만히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맨드라미 꽃잎이 조금 전 본 미역귀랑 꼭 닮았다. 그래서 어렸을 때 엄마한테 미역국에 맨드라미꽃이 들어가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장독을 넘어 다니며 상상을 펼치던 여자아이가 생각나 웃을 듯 울 듯하고 있는데 뒷마당에서 아빠가 나오신다.
“아궁이 불 때놨으니까 밥 먹고 좀 누워라.”
나는, 아픈 딸 때문에 6월에 불도 때셨냐고 말하고 싶지만, 맨드라미가 예쁘네…. 라고 엉뚱한 말을 한다.
“니 엄마가 너 퇴원하면 보라고 지난주에 꽃 잔뜩 심었어.”
수술 후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병원에 다니고 있고, 매번 피검사를 한다. 다행히 지금 내 혈액에는 암세포 대신, 엄마의 맨드라미 미역국이 만들어낸 건강한 혈장과 적혈구들만 흐르고 있다.
맨드라미의 꽃말은 시들지 않는 사랑이다. 엄마가 평생 미역국에 담은 영원한 사랑은, 꼬불꼬불 사이사이에 가득한 꽃잎처럼 내 안에 촘촘히 담겨있다.
안혜민 수필 부문 우수상 당선자
중봉조헌문학상 우수상 소감문
감정에 안테나가 있다면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는 더 큰 안테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섬세하다는 건 계절의 한 조각들조차 유난히 깊이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봄 한 떨기, 여름 한 잔, 가을 한 갈피, 겨울 한 숨결.
제 마음은, 세상이 시간을 타고 흘러가는 그 작은 변화들을 빠짐없이 받아들였고, 때로는 아주 작은 말 한 마디에도 안테나가 크게 흔들리며 상처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막강한 섬세함을 제 안의 감성으로 길들이기 시작하면서, 이를 글로 조용히 풀어내는 방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내어놓는다는 건 참 조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한때는 내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힘겨워,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서 더 깊숙이 숨으려 애썼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날들의 감정 위에 조금씩 딱지가 앉기 시작했고, 더 시간이 지나자 그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조차 흐릿해지는 어느 날이 왔습니다. 그때 문득, 생각조차 하기 싫었던 그때의 시간들을 글로 내어놓고 싶어졌습니다.
조용히 제 마음을 들여다보며 써 내려간 이 글 속의 시간들은, 돌아보면 제 인생에 가장 따뜻하게 스며든 봄 햇살 같은 순간의 모임이었습니다. 저의 조심스런 기록이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떨림이라도 건넸다면, 그 자체로 제겐 벅찬 기쁨입니다.
살아낸다는 일은 때로 길고 조용한 싸움을 하는 것 같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다들 어떻게든 행복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 마음을 읽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그리고 제 글을 끝까지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나의 마음을 타인에게 조용히 건네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수상이 앞으로도 저에게 그런 마음을 온유하게 오래도록 나누라는 뜻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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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중봉조헌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수필 부문 - 김포신문
엄마의 미역국에는 맨드라미가 들어간다안혜민“바쁘지? 점심시간에 잠깐 문 앞에 나올 수 있어? 미역국 좀 끓였는데 갖다줄게.” 미역국을 만들고 가져다주는 수고로움을 하는 이가, 되려 공짜로 받아먹는 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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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중봉조헌문학상 대상 수상작] 수필부문
| 낚시터의 장수 (중봉 조헌 선생과 나의 어머니) -민경숙 |
▲대상 수상자 민경숙
낚시터의 장수
(중봉 조헌 선생과 나의 어머니)
민 경 숙
전쟁은 살아있다. 아무리 후미진 골짜기라도 찾아온다. 쑥과 엉겅퀴와 민들레와 질경이가 한 뼘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촉수를 겨루고 있다. 허리가 뚝 잘려나가도 다시 새로운 가지를 만들어 어느새 방어 체계를 갖춘다. 아름다움과 향기조차도 소리 없는 전쟁의 일부. 온몸으로 생존을 주장한다.
평화로운 봄날 아침인데 산책길에서 우연히 만나는 전쟁의 흔적은 흥미롭다. 번듯한 기념비 하나 없는, 그냥 작은 약수터에서다. 김포시 운양동에 있는 모담산 자락에‘샘재 약수터’라는 표지판이 서 있고 중봉 조헌 선생이 근처 낚시터에서 위국충절을 달래며 낚싯대를 드리웠다는 약수터의 유래가 적혀있다. 사회개혁론자이며 문인, 의병장이었다는 기록을 보며 한 남자를 읽는다. 여러 번의 상소, 유배. 의병 모집 치열한 전투의 과정에서 그는 언제나 맨 앞에 선 용맹한 장수였다. 임진왜란 즈음이니 어림잡아도 400여 년 전의 일인데, 어떤 분이었기에 아직도 이토록 생생한 모습으로 살아 말을 건넬까.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전쟁은 엄마와 할머니의 전쟁이었다. 아버지는 무슨 큰 사업을 꿈꾸며 밖으로만 돌았는데. 낡은 고택과 밭 세 마지기가 남은 재산이었다. 별채에는 매일 화투와 기타와 바둑으로 소일하는 아버지의 사촌들이 늘 서너 명은 머물러 있었고, 집안의 어른인 할머니는 집 떠나 있는 장남의 무사안일을 주왕 신이나 고목나무 신 등에 의지하고 있었다. 엄마와 할머니 사이에는 늘 아슬아슬한 전운이 감돌았다.
개혁은 한 가정에서도 움텄다. 민생 안정과 부국강병을 목표로 사회개혁론을 제시한 중봉 선생의 큰 개혁이 있었다면 집안의 불합리한 사정을 바로잡으려는 작은 개혁이 있었다. 수많은 대소사를 간소화하기. 군식구들에게 어려워진 집안 사정을 알리고 각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도록 여러 번에 걸쳐 설득하기. 전속 당골이 맡아 하던 각종 행사 등을 없애기 등의 개혁이었다. 이 과정은 또 하나의 전쟁이었다.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할머니와 변화해야 살 수 있다는 엄마의 의견이 팽팽했다.
엄마의 마음속 큰 그림은 자식 교육이었다. ‘공부만이 자기 힘’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재산이라 했다. 특히 ‘적성에 맞는 좋은 대학 보내기’에 온 힘을 기울였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 전라도 끝자락 시골에서 적성 운운은 언감생심이었다. 엄마는 도시에 셋방을 얻어 이사를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집안에 도움을 주고 있던 친척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먹고 살기 힘든데 학교는 무슨 학교냐. 굳이 학교를 보내려거든 상고나 공고나 농고를 보내라는 현실적인 조언들이었다. 장손 며느리가 제사와 고택을 지키지 않고 엉뚱하게 자식들 교육에나 전념하는 고집 센 사람이라는 비난이 엄마에게 쏟아진 막말 화살들이었다. 엄마가 겪어냈던 세세한 모욕을 우리가 다 알 수는 없다. 쏟아지는 화살을 막고 있었던 것은 엄마 혼자였다. 엄마는 전쟁터 맨 앞에 선 지휘관이며 장수였을까.
‘온종일의 전투에 화살이 다 떨어져 더 싸울 수 없었다.’라는 기록은 눈물겹다. 중봉 조헌 선생이 치른 그 치열했던 ‘금산 전투’ 때 일이다. 8월이면 더위가 한창일 때가 아닌가. “한 번의 죽음이 있을 뿐, 부끄럼이 없게 하라!” 는 그의 마지막 외침이 남아 있다. 아무리 훌륭한 사상도 실천과 희생이 따르지 않았으면 700 의사가 죽음으로 그를 따를 수 없었으리라.
엄마의 남은 화살이 다 떨어졌다는 것을 우리는 뇌졸중과 당뇨 합병증으로 더는 몸을 쓸 수 없을 때 비로소 알았다. 엄마는 유학 중인 아들의 손주 돌보기를 쓰러지기 직전까지 해내었다. 앞에서 뒤에서 막일과 허드렛일 가리지 않고 현금 조달자로, 격려와 사랑으로 그 긴 전쟁을 치렀음을 많은 세월을 거치고서야 우리는 절절히 깨달았다. 촌구석에서 상경한 엄마의 여섯 자식 중 셋은 번듯한 대학교수가 되고 둘은 교사가 되었다.
“내 큰 딸은 대학교수요!” 어느 날 엄마의 병실에 큰 딸인 내가 들어섰을 때 들은 말이다. 대여섯 명의 할머니 청중들 앞에서 큰 소리로 말하던 엄마의 눈은 충혈 되어 있었다. 대학교수가 아닌 나는 순간 당황했다. 그 말을 하면서 좀 울었다고 옆 침대 할머니가 말해주었다. 치매를 앓고 있었던 엄마는 희망 사항을 사실처럼 말하곤 했었다. 그러게 왜 큰딸만을 희생시켰나요. 월급을 쪼개 동생들 학비 대는 일이 늘 원망스러웠지요. 돌아오는 길에 나는 중얼거렸다. 그날, 혼자서 나는 엄마와 화해했다. 엄마는 나도 그렇게 키우고 싶었을 거라고, 다만 당신의 화살이 부족하여 나에게까지 닿지 못했을 거라고.
이듬해 62세가 넘어 늦깎이로 사이버대학 문창과에 입학했다. 흩어지는 기억 중에도 잊지 못한 엄마의 간절한 큰 그림 한쪽에 나도 들어선 셈이다.
개혁은 누구나 외치고 실행할 수 있지만 진정 의로운 개혁만이 살아남는다. 단단한 꿈은 죽지 않고 풀씨처럼 흩어져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그 힘으로 세상이 돌아간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가. 패배했지만 이긴 전쟁도 있고, 이겼지만 패배한 전쟁도 있다. 중봉 선생이 치른 ‘금산 전투’도 승리로 끝나지는 않았지만, 그 장렬한 죽음들이 있었기에 최대 곡창지대인 호남과 호서지방을 지킬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살아서 환대받지 못했다. 대신 ‘칠백의총의 기념비’와 ‘동국 18현’의 한 분이 되어 큰 그림으로 남아 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사람들 마음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그의 올곧은 개혁 정신이다. 예나 지금이나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것이 최고의 개혁 아닌가.
전쟁은 살아있다. 생명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꿈틀거리며 흐른다. 우리나라도 아직 전쟁 중이다. 반도체, 자동차, 선박, 최신 휴대폰 등을 만드는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지만 고령화, 저출산, 높은 자살률, 기후 변화와 지방 소멸 등으로 위기에 있다. 정치적으로도 어지럽다. 누군가의 한 말씀이 간절하다.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변방의 낚시터에서 두 손을 턱에 고이고 한 남자가 아직도 궁리 중이다. 그는 살아있는 장수이다!
당선 소감
“왜 그렇게 힘이 없어요?” 가끔 이렇게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거의 일평생 듣던 소리입니다. 힘이 없어 보였던 이유를 속으로는 알고 있었지요. 뭔가 열심히 하고 있었고 하는 일은 잘 되기도 잘 안되기도 했지만 늘 깊은 곳으로부터 차오르는 기쁨이 부족했습니다.
40여 년 운영하던 미술학원을 접고 비로소 나의 시간을 갖게 된 2023년 늦가을, 얼결에 책을 출판했습니다. 나에게 왔다가 파문을 일으키고 사라지던 사람들에 대하여, 한 구간을 환히 밝혔던 그들의 이야기를 스넵 사진처럼 찍어 묶었습니다. 그런데 뭐하다가 해 질 녘이 다 되어 글을 쓰게 되었는지 쓸 말이 궁색했습니다. 어쩌면 라이너 쿤체의 시에 나오는 ‘뒤처진 새’였을까요? 남들과 발맞출 수 없었던. 눈앞에 닥친 일들과 좋아하는 일의 거리는 늘 멀었던.
이제 조금 가까워진 거리에서 날고 있는 새들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중봉 조헌 문학상 대상. ‘변방의 낚시터’에서 우연히 만난 귀인의 따뜻하고 힘 있는 두 손을 덥석 잡아봅니다. 남아있는 힘내서 날아가려고요. 어쭙잖은 글을 뽑아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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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중봉조헌문학상 대상 수상작] 수필부문 - 김포신문
낚시터의 장수(중봉 조헌 선생과 나의 어머니) 민 경 숙전쟁은 살아있다. 아무리 후미진 골짜기라도 찾아온다. 쑥과 엉겅퀴와 민들레와 질경이가 한 뼘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촉수를 겨루고 있다. 허리가 뚝 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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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중봉조헌문학상 우수 수상작] 수필부문
| (수필부문) 낙타- 한혜지 |
▲수필부문 우수상 당선자 한혜지
낙 타
한 혜 지
냉장고에 붙은 쪽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사하라 사막으로 떠난다. 나도 이제 편하게 살련다.’ 나는 그제야 어젯밤 평소와 달리 TV 앞에 엄마가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냥 방 안에서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나는 서둘러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은 집을 나가기 전 이상한 점은 없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엄마가 최근 들어 낙타에 집착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주 전쯤 새벽, 엄마는 불 꺼진 거실에 홀로 앉아있었다. 술에 취한 듯 TV 빛으로 환하게 보이던 엄마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엄마의 엉덩이 옆으로 맥주캔 하나가 보였다. 무릎을 가슴에 바싹 붙인 자세로 금방이고 TV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기다란 속눈썹 아래로 낙타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TV 너머 낙타의 눈에 엄마가 비쳐 보이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며칠째 똑같은 다큐만 보는 게 지겹지도 않나.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내 말을 들은 경찰들은 그게 문제가 되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떠오르는 엄마의 모습이라고는 그것뿐이었다. 더 이상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신고한 지 이주가 지나도 경찰서에서는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이대론 안 되겠어. 나는 엄마의 흔적을 찾기 위해 집 이곳저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화장실, 거실, 심지어 베란다까지 샅샅이 찾았지만 엄마가 집을 나간 이유를 말해주는 것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불박이 옷장뿐이었다. 그러나 목이 다 늘어난 내복, 구멍 난 레깅스, 노랗게 때가 탄 겉옷만이 바닥에 널부러질 뿐이었다. 집 곳곳을 찾을수록 엄마의 초라한 흔적을 하나둘 들춰내는 것만 같아 머릿속이 어지러워져 갔다. 엄마와 달리 할머니와 내 옷장에는 옷이 가득했다. 한 번 입고 만 옷도 많았다. 아빠가 세상을 떠난 이후 엄마가 자신의 옷을 사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일렁이는 속을 달래며 나는 이불까지 모두 끄집어냈다. 그런데 그때 이불 사이로 무언가 보였다. 난 서둘러 이불을 바닥으로 던졌다. 할머니의 연금 통장이었다. 떠날 계획이었던 거야…. 엄마는 끝까지 나와 할머니를 위한 흔적을 남겼다. 그래서 갑자기 그런 말을 한 건가? 너도 이제 아르바이트도 하고 다 컸네. 그 말을 하며 웃어 보이던 엄마의 표정은 어딘가 묘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한 연구원처럼 안도하는 것 같기도, 새로운 타지를 발견한 모험가처럼 설레어 보이기도 했다. 아마 그째부터 떠날 계획이었던 거겠지. 십 년 넘게 일한 가게까지 그만두었으니.
어느 날부턴가 엄마는 더 이상 일을 나가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런 엄마에게 매일 욕설을 퍼부었다. 이기적인 년, 네가 그러니 내 아들을 잡아먹지, 애비가 없으면 자식들이라도 잘 보살펴야지. 엄마는 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내 옆을 말없이 지나가는 엄마에게서는 진한 파스향이 났다. 시장에 있는 해산물집에서 엄마는 매일같이 문어를 손질했다. 문어의 찐득한 빨판이 엄마의 손에 엉겨 붙었다. 예전과 달리 엄마는 문어를 쉽게 떼어내지 못했다. 엄마의 기력을 빨아먹을 듯 문어는 엄마의 손목을 더욱 꽉 감쌌다. 엄마는 어떻게든 문어를 떼어내려 손을 마구 휘저었다. 답답한 듯 탄식을 내뱉으며 대야에 문어를 찍어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문어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포기한 듯 팔을 축 늘어뜨렸다. 엄마는 빠져나오려는 울음을 감추려는 듯 침을 삼켰다. 문득 늘 엄마를 향해 다른 친구들만큼 용돈을 달라며 울부짖던 동생이 떠올랐다. 그런 동생을 향해 쉬이 화를 내지도 모진 말을 내뱉지도 못한 채 그녀의 낙타처럼 긴 속눈썹은 위아래로 천천히 펄럭였다. 소매로 눈가를 닦는 엄마의 모습은 무거운 짐을 이고 있는 낙타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그러나 엄마는 문어 손질을 멈추지 않았다. 모든 힘을 다 쓰는 한이 있더라도 그만두지 않을 것만 같았다. 어느새 그녀의 발아래로 낙타의 그림자 드리웠다.
저녁 늦게 알바를 끝내고 집에 온 나를 반기는 것은 늘 술에 취한 엄마였다. 급하게 술병을 숨기는 엄마의 손목에 붙은 파스가 보였다. 접착면이 서로 달라붙어 꼬깃해진 파스는 이미 끝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술은 또 얼마나 마신 건지. 얼굴부터 목 끝까지 빨갛게 익어있었다. 저, 저 주정뱅이 저거. 어휴. 할머니가 엄마를 봤다면 그리 말하며 혀를 끌끌 찼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 그녀를 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자 엄마는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나도 저 낙타처럼 사하라 사막의 모래를 밟고 싶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말에 대꾸하지 않은 채 방으로 향했었다.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의 연금 통장을 움켜쥐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간다는 딱딱하고 형식적인 말만이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올 뿐이었다. 정말 엄마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누구와 친한지, 어디를 자주 가는지, 뭘 좋아하는지….
나는 홀로 식탁에 앉아 술을 들이켰을 엄마의 모습을 떠올렸다. 혀를 감싸는 알코올 쓴맛이 엄마에게는 느껴지지 않았을 것만 같았다. 엄마는 그토록 원하던 사하라 사막에 도착했을까? 나는 사막을 걷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떠올렸다. 사뿐히 걷는 엄마의 발굽 위로 구부정하게 굽어진 엄마의 등이 보였다. 볼록 튀어나온 목뼈는 낙타의 혹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느릿느릿 걸어가는 낙타의 발굽을 따라 혹은 위아래로 여유롭게 흔들렸다. 더 이상 등을 누르는 무거운 짐 따위는 없다는 듯이 말이다. 사방이 넓게 펼쳐진 사막은 앞을 막는 어떠한 것도 없었다. 낙타의 눈 너머로 오아시스가 비쳐 보였다. 더 이상 그녀를 막는 것은 없었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 위를 자유롭게 거닐었다. 더 이상 목이 타들어 가는 갈증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낙타는 오아시스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당선소감 - 한혜지
중봉조헌문학상에서 수상을 하게 되어 너무나도 영광이고 기분이 좋습니다. 오랜 수험 생활로 인해 심적으로 많이 지친 현재 다시 힘을 내 나아갈 수 있는 좋은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수차례의 실패와 낙선으로 내가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이렇게 값진 상을 받게 되어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번 백일장을 통해 중봉 조헌 선생님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를 통해 많은 지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또한 앞으로 조헌 선생님처럼 직선적인 사람으로 살아가며 제 생각을 올곧게 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https://www.igimpo.com/news/articleView.html?idxno=82923
[제18회 중봉조헌문학상 우수 수상작] 수필부문 - 김포신문
낙 타 한 혜 지냉장고에 붙은 쪽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사하라 사막으로 떠난다. 나도 이제 편하게 살련다.’ 나는 그제야 어젯밤 평소와 달리 TV 앞에 엄마가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냥 방 안에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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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중봉조헌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시부문
| (시부문) 조천일기를 펴는 밤- 김희숙 |
▲ 시부문 우수작 당선자 김희숙
(시부문) 조천일기를 펴는 밤- 김희숙
조천일기*를 펴는 밤
김희숙
사락,
책장을 넘기다 베인 검지에 그어지는 붉은 선
선을 지우며 번지는 핏물 위로
지부상소 올리던 핏발 선 눈동자가 어린다
그어진 오른쪽 손가락을
왼손으로 그러쥐고 힘을 준다
손바닥 안에서 꿈틀대는 전선처럼 깔린 핏줄
펄떡이는 혈류 사이로 시공을 건너온 당신
연행 길에 오르던 당신의 맥박도 이처럼 두근거렸을까
질정관으로 홀로 걸었던 계절을 눈으로 건넌다
한양에서 의주까지 당신의 족적을 따라 걸으며
책 귀를 접고 숨을 고른다
자신을 지우며 횃불처럼 타오른 생
직언으로 일관한 구국의 삶이
아직도 문장으로 살아 찌릿하게 손끝에 전해질 때
마침내 낯선 북경에 이르러 각주를 단다
어둠 속에서 더 밝게 보이는 별들의 밤
손을 놓고 베인 살을 들여다보면
개혁안 상소하고 정론을 펴던 당신 모습이
수많은 시간을 관통해 생생한 별로 뜬다
손가락 뻗어 서표를 꼽고 책을 덮자
머릿속을 감아 도는 당신의 발소리가
나비 되어 펄럭이고
설핏, 눈 감으면 잘라낼 수 없는 인연의 포자가
수백 년을 건너와 내 몸 가득 흐른다
*조헌이 쓴 기행 일기
당선소감 <김희숙 : 필명-김나비>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 그리고 (사)중봉조헌선생선양회관계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금산의 칠백의총을 다녀와서 초안을 잡았습니다. 그 후 보은에 있는 후율사에 거의 매주 찾아갔습니다. 후율사는 조헌선생님을 기리기 위한 사당입니다. 찾는 이가 없어서 굳게 닫혀 있는 사당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내가 지금 이 푸른 산하에 서 있는 것은 조헌선생님처럼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덕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말을 묶어 놓고 쉬었다는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그 암울했던 시대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나를 돌아보았습니다. 나라를 위해 생을 바치신 님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작가의 소명은 개인의 아픔만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시대의 아픔을 담아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칠백의총 앞에서 손을 모으던 눈발 날리던 겨울에도, 약불꽃이 피어있던 후율사에 가던 뜨겁던 여름에도, 묵묵히 내 발걸음에 맞춰 동행해준 남편에게 감사드립니다.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https://www.igimpo.com/news/articleView.html?idxno=82922
[제18회 중봉조헌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시부문 - 김포신문
(시부문) 조천일기를 펴는 밤- 김희숙 조천일기*를 펴는 밤 사락,책장을 넘기다 베인 검지에 그어지는 붉은 선선을 지우며 번지는 핏물 위로지부상소 올리던 핏발 선 눈동자가 어린다그어진 오른쪽 손가락을 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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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날갯짓은 그래비티다 - 박위훈
| 제17회 중봉조헌문학상 대상 수상작 |
나비, 날갯짓은 그래비티다
박위훈
사과를 잊었다 뻔뻔하게
사직, 다한 소용이라는 말이
당신 흉중에 나비효과를 일으킨다
요설[妖舌]로 신음하는 봄은
나비가 속독할 그래비티다
조롱 속 앵무가 회피한 것은 변명,
그러나 설마가 몰고 온 것은 폭풍이다
괜찮다고 반나마 접힌 허리를 단칼로 자르는
개똥이, 언년이, 돌쇠는
이름도 걸림돌이라는 의병이다
우화는 주저의 떨림을 털어내는 것
함께 벼랑을 타는 돌쇠, 언년이, 개똥이
그래비티 험지 어디에서 다리쉼 멈췄을까
삭은 삼베로 미투리를 엮고
허기쯤이야 주검에게 양보할 수 있다
백두대간의 늑골이 으스러질 때
사금파리가 모여 각을 맞춘다
깨진 달이 장항아리에서 다시 떠올랐다
윤사월 돌무덤은 외전外傳이다
끝내 호명되지 않는 내일을 산다
발치에 뭉개진 들꽃이
사과를 잊은 사과나무를 에우고
나는 당신을 앓는 중이다
<심사평>
박위훈의 시 <나비, 날갯짓은 그래비티다>는 역사를 소환하는 방식이 매우 새롭고 신선하다. 각각 분산된 것 같은 혹은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는 상상력은 결국 ‘이름도 걸림돌이라는 의병’에 수렴된다. 역사는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무게와 의미를 담을 수 있지만, 하나의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도 그것에 다르게 다가간다는 점에서 새롭다. 박위훈의 시는 과거를 소환하고 현재와 이어가는 방식에서 참신한 해석과 상상력을 보여줘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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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날갯짓은 그래비티다 - 박위훈 - 김포신문
나비, 날갯짓은 그래비티다 박위훈 사과를 잊었다 뻔뻔하게사직, 다한 소용이라는 말이 당신 흉중에 나비효과를 일으킨다요설[妖舌]로 신음하는 봄은나비가 속독할 그래비티다조롱 속 앵무가 회피한 것은 변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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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7회 중봉조헌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수필부문)-김춘기 |
통증을 스캔하다
김춘기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사고다. 몸이 기우뚱하더니 바위에 어깨를 부딪고 비탈로 굴러내렸다. 발아래는 낭떠러지였다. 하산길을 조심하라는 통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긴장이 풀려버린 탓이다. 하루하루 무사히 지낼 수 있음이야말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일상의 소중함은 일상을 벗어났을 때 안다.
이튿날부터 팔, 다리, 엉덩이에 시꺼먼 멍이 들었다. 쑤시고 아팠으나 관심은 아들 결혼식 쪽으로 쏠렸다. 뼈를 다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힘줄이 끊어질 수도 있음을 몰랐다. 한 달 후에 혼주석에 앉을 몸인데 팔에 깁스하는 상황을 만들었으면 어쩔뻔했나. 4월에 다친 팔이 5월 말 잔치가 끝날 때까지 낫지 않았다. 그제야 병원을 찾아 초음파를 했다. 특별한 소견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건만 통증은 여전하다.
통증은 밤에 위력을 보인다. 쑤시고 시림은 설핏 든 잠을 토막 내어 뒤척임과 신음으로 버무리다가 눈물까지 불러낸다. 이전의 편하던 잠자리가 얼마나 고마웠던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몸의 건재함이 사실은 행운을 누려온 셈이다. 자주 아프다고 호소하던 지인의 모습이 느닷없이 떠오른다. 자신의 통증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걸 습관적으로 그러는 줄 알고 공감을 보내지 못했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따라서 약해졌다. 부항을 떠서 죽은 어혈을 뽑아내야 한다는 지인의 말이 솔깃하게 들렸다. 평소 같으면 당치않다고 일축했을 말에 빠져들었다. 부항이 뭔지 모르면서 급한 마음에 내민 어깨와 등판이 시뻘겋다. 남편은 검증되지 않는 상식 이하의 행동으로 몰아붙인다. 가까운 이의 나무람은 마음에 통증 하나를 더 얹는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이 듣고 싶다. 시린 마음으로 전화기를 든다. 딸은 아프다는 내 말에 집중하지 못하고 제 아이에게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양 전화가 끊긴다. 순간 쏴-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벌판에 혼자 서 있다는 아득함에 싸인다. 섭섭함이 마음의 섬을 만든다. 넓은 바다에 오도카니 뜬 외로움이 되어 세상의 통증을 더듬어본다.
감각 있는 생물이라면 모두가 통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어제 무심코 디딘 이의 발아래에는 풀벌레의 비명이 있었고, 오늘 지나가는 바퀴에 다리를 친 길고양이는 어느 구석진 자리에서 울고 있겠다. 구급차 안에는 일터에서 손을 다친 노동자의 신음이 있을 테고, 암 병동에는 진통제를 달고도 통증을 견디지 못해 머리를 박는 환자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있다. 평화롭게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의 이면에는 통증이 공존하고 있음이다.
어찌 몸의 통증만일까. 마음의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 또한 얼마나 많겠나. 너무나 힘이 들어 누구든 붙들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죽어버릴 것과 같은 외로움과 억울함과 절박함으로 절규하는 이도 있으리라. 그 순간 한 사람만이라도 이야기를 들어주고, 토닥여 주고, 안아준다면 고통은 줄어들 것이다. 공감받지 못하는 통증, 무심한 눈길에 내쳐진 통증은 고독함이 더해지면서 부피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큰 병원을 찾은 날이다. 방사선실에서 X-레이를 찍고 MRI 촬영실로 들어갔다. 낯설은 길쭉한 전동테이블 위에 누워서 강한 자기장이 나오는 대형 튜브 모양의 스캐너 내부로 밀려들어 갔다. 스캐너는 한참 쿵쾅거리는 소음을 낸 후에 어깨통증을 스캔하기 시작한다. 최신형 기기의 신통함은 20여 분만에 통증의 근원을 알아낸다. 어깨 회전근개 파열이다. 어깨의 힘줄을 이어 붙여야 한다는 진단이 나오고 수술 일정이 잡혔다. 원래 엄살이 많은지라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 심리적 공포까지 더해지면서 생각의 가지가 뻗는다.
나는 언제 타인의 통증을 진심으로 껴안아 위로한 적이 있었던가. 늘 자신의 문제에 매몰되어 주변을 살피지 못하고 이기적으로 살아온 날들이 부끄럽다. 입장은 언제나 바뀔 수 있는데, 오늘 편하다고 해서 내일도 그럴 것이란 보장이 없는 것이 세상 아니던가. 그날도 자칫 어깨가 아닌 머리를 다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예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떨어질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우리는 한 치 앞을 모르면서 살아가고 운명은 순간적으로 갈릴 수 있음이다.
사고는 예고가 없다. 통증은 어느 날 일상으로 다가올 수 있다. 우리가 타인의 아픔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세상 모든 통증을 다 껴안을 수는 없지만 가까운 이들의 아픔에는 귀 기울여야 하리라. 아프다고 말할 때는 괴로워서 하는 호소이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몸의 통증만 아니라 마음의 통증까지 스캔할 수 있는 센서와 감성을 길러 두면 주변의 큰 위로가 될 테다. 제 몸의 통증은 누가 대신할 수 없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기는 하지만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마음을 만난다면 통증을 견디는 힘이 될 것이다.
일상이 비상非常으로 뒤틀린 후에야 옳은 말도 독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말은 하기에 따라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하지 않던가. 따뜻한 말로 약을 만들 수 있으면 최상의 말하기다. 말을 하는 데는 비용이 드는 것이 아니라 연습이 필요하다. 옳고 그름의 말이 아니라 위로와 공감의 말하기로 주변 사람들의 정서적 온도를 높일 수 있으면 족하다. 자신이 겪어봐야 남의 사정을 이해한다는 다수설처럼 이제야 타인의 아픔을 생각하게 되니 통증은 사람을 철들게 하는가 보다.
<심사평>
김춘기의 수필 <통증을 스캔하다>는 자신의 통증을 통해 타인의 통증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타자와 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하고 있다. 개인적인 경험을 일반적인 경지로 이끄는 과정에서 흔히 드러나는 비약이 적절하게 조절되어 있어 글의 생명력을 획득하고 있다고 하겠다.
https://www.igimpo.com/news/articleView.html?idxno=77374
통증을 스캔하다 - 김춘기 - 김포신문
통증을 스캔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사고다. 몸이 기우뚱하더니 바위에 어깨를 부딪고 비탈로 굴러내렸다. 발아래는 낭떠러지였다. 하산길을 조심하라는 통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긴장이 풀려버린 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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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울이 - 이규성
| 제17회 중봉조헌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시 부문) |
뒤울이
이규성
윤슬 읽는 안목은 왜가리의 전통이다
왔다 갔다 문맥 손보는 파랑波浪 지우개를 따라
가느다란 맨발 하나를 들었다 내렸다 한다
잿빛 두 날개를 점잖게 붙인 채
기다란 목을 오래도록 빼고 있다
주어를 찾는지 목적어를 찾는지
개펄 페이지에 숨은 품사들은 쉽지 않다
바다비오리가 물갈퀴를 젓는다
푸른 동심원이 팽창하다가
꽁지가 열 시를 가리킨다
새끼들 몇 마리는 자맥질하거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원을 그린다
하루를 시계처럼 도는 것들은 나무에 앉기보다
몸을 적셔 휘젓는 쪽이다
나는 요새 부쩍 부리가 자란다
오거리 점방을 닫은 후
아직 윤슬도 모르고 물갈퀴도 저을 수 없는데
몸 여기저기 깃털이 무성하다
다시 찰랑찰랑 가게를 열 수 있을지
방향을 놓친 새가 거꾸로 향방을 바꾸듯
급하면 어떤 기항지라도 좋다
내일 기류는 조금 빠른 이동성 고기압
나는 공기주머니에 바람을 잔뜩 넣고
오랜만에 활짝 돛부터 올려 출항한다
어떤 간절곶을 향해 서서히
<심사평>
이규성의 시 <뒤울이>는 신선한 이미지와 긴장감을 자아내는 비유가 절묘한 작품이다. 어떤 면에서는 아침녘 바닷가 햇살을 받아 퍼지는 익숙한 풍경을 형상화하고 있는 듯하지만, ‘뒤울이’와 ‘윤슬’ 등 우리 말 시어의 적절한 활용이 이미지를 새롭게 하고 있다. 거기에 속도감 있는 비유가 긴장감을 꾸준히 유지하게 한다는 점에서 우수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https://www.igimpo.com/news/articleView.html?idxno=77372
뒤울이 - 이규성 - 김포신문
뒤울이 이규성 윤슬 읽는 안목은 왜가리의 전통이다왔다 갔다 문맥 손보는 파랑波浪 지우개를 따라가느다란 맨발 하나를 들었다 내렸다 한다잿빛 두 날개를 점잖게 붙인 채기다란 목을 오래도록 빼고 있다주어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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