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적 할머니의 기억은 그리 별로 좋지않다. 아니...남들과 비슷하다. 오직 손자만을 위해 사시는것 처럼 살다가신 그런.... 꼬부랑 할머니셨다.내가 아홉살인가 열살인가 돌아가신 흐릿한 기억이다. 차암 철이없었다..내게 주신 정에 비에 나는 너무나 기억이 초라하다..죄송할 따름이다..
말 그대로 등이 90도로 굽으셔서 그야말로 꼬부랑 할머니다.지팡이에 의지하신... 흔히 말하는 꼬부랑 할머니가 그런 꼬부랑 할머니가 아닐수도 있지만 내 할머니는 진짜 꼬부랑 할머니 셨다.
어느날 비가 세차게 내려 물바다가 되었을때 나를 등에 업으시고 그 굽은 허리로 목까지 차오는 그 흙탕물을 뱉으시며 길을 건너시던 어린 아이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노란 흙탕물이었는데.... 그때 내 부모는 어디서 뭘 하고 계셨을까?
지금은 도시가 되었지만 어릴적 삶의 터전은 시골이었다. 앞 몇미터 앞에는 개울이 흐르고 집 옆으로는 지금의 경부고속도로가 있었다. 좀더 들어가면 낮은 산봉우리도 있었고... 마당엔 그리 깊지 않은 우물도 있었다. 근데 여름엔 시원한 물을 먹으려면 동네 안쪽의 깊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야 했었다. 나는 어느 정도 자랄때까지 그 우물물을 들어 올릴수가 없었다.동네 아좀마 아저씨들이 손도 못대게 하셨다. 잘못하면 달려들어 간다고... 좀 더 커서 받침대를 놓고 쳐다본 기억이 있는데 정말 깊었었던 기억이 있다. 중간에 퍼런 이끼도 끼었던 그런 우물이다. 정말 시원한 우물물이었다.
확실시 기억나는 여러가지 중 한가지는 내가 꽤나 미꾸라지를 잘 잡았던 기억이다. 할머닌 어린 나를 데리고 논두렁으로 데려가셨다. 동그란 체를 들고...이 체는 고운 고물을 고를때 쓰는 물건인데 특히 콩고물 깉은것을 곱게 고를때 쓰셨던 물건인데 논두렁에서 쓰기엔 딱 맞춤이었다. 바닥 밑에 끝까지 대고 미꾸라지가 빠져 나가지 못하게 한후에 발로 약 두발짝 앞에서 세차게 저어 체쪽으로 몬다음 체를 들어 올리면 그 안에 기본 서너 마리씩은 펄쩍 거리고 있었다..자식듵 다 죽었어!!!!! 가져오신 막걸리 주전자가 절반 쯤 차면 집으로 돌아왔다.나는 이것이 정말 좋았다.. 내 유일한 놀이이자 생활의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할머닌 그 미꾸라지를 일부는 우리가 먹고 나머진 한시간도 더 걸리는 시장에 내 파셨다. 3~4일 모으면 그것도 꽤 많으 양이었는데 할머닌 그 무거운걸 어떻게 들고 가셨는지 지금도 미스테리다..정말...
근데 싫었던 기억도 있다.늦가을과 초겨울엔 정말 싫었다.물이 차서 정말 싫었고 때론 진흙속에서 그 놈들을 잡았던 기억은 정말 싫었다. 다 그런것이다.그 때나 지금이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