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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나는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 그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 차 있었다.
2. 그분 위로는 스랍들이 서 있었는데, 스랍들은 저마다 날개를 여섯 가지고 있었다.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나머지 둘로는 날고 있었다.
3. 그리고 그들은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화답하였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의 영광이 가득하시다."
4. 우렁차게 부르는 이 노랫소리에 문지방의 터가 흔들리고, 성전에는 연기가 가득 찼다.
5. 나는 부르짖었다. "재앙이 나에게 닥치겠구나! 이제 나는 죽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을 만나 뵙다니!"
6. 그 때에 스랍들 가운데서 하나가, 제단에서 부집게로 집은, 타고 있는 숯을, 손에 들고 나에게 날아와서,
7. 그것을 나의 입에 대며 말하였다.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악은 사라지고, 너의 죄는 사해졌다."
8. 그 때에 나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내가 아뢰었다.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9. 그러자 주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이 백성에게 '너희가 듣기는 늘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못한다. 너희가 보기는 늘 보아라. 그러나 알지는 못한다' 하고 일러라.
10. 너는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여라. 그 귀가 막히고, 그 눈이 감기게 하여라. 그리하여 그들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또 마음으로 깨달을 수 없게 하여라. 그들이 보고 듣고 깨달았다가는 내게로 돌이켜서 고침을 받게 될까 걱정이다."
11. 그 때에 내가 여쭈었다. "주님! 언제까지 그렇게 하실 것입니까?" 그러자 주께서 대답하셨다. "성읍들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어질 때까지, 사람이 없어서 집마다 빈 집이 될 때까지, 밭마다 모두 황무지가 될 때까지,
12. 나 주가 사람들을 먼 나라로 흩어서 이 곳 땅이 온통 버려질 때까지 그렇게 하겠다.
13. 주민의 십분의 일이 그 곳에 남는다 해도, 그들도 다 불에 타 죽을 것이다. 그러나 밤나무나 상수리나무가 잘릴 때에 그루터기는 남듯이, 거룩한 씨는 남아서, 그 땅에서 그루터기가 될 것이다."(사6:
1 In the year that King Uzziah died, I saw the Lord. He was sitting on his throne, high and exalted, and his robe filled the whole Temple. 2 Around him flaming creatures were standing, each of which had six wings. Each creature covered its face with two wings, and its body with two, and used the other two for flying. 3 They were calling out to each other:
“Holy, holy, holy!
The Lord Almighty is holy!
His glory fills the world.”
4 The sound of their voices made the foundation of the Temple shake, and the Temple itself became filled with smoke.
5 I said, “There is no hope for me! I am doomed because every word that passes my lips is sinful, and I live among a people whose every word is sinful. And yet, with my own eyes I have seen the King, the Lord Almighty.”
6 Then one of the creatures flew down to me, carrying a burning coal that he had taken from the altar with a pair of tongs. 7 He touched my lips with the burning coal and said, “This has touched your lips, and now your guilt is gone, and your sins are forgiven.”
8 Then I heard the Lord say, “Whom shall I send? Who will be our messenger?”
I answered, “I will go! Send me!”
9 So he told me to go and give the people this message: “No matter how much you listen, you will not understand. No matter how much you look, you will not know what is happening.” 10 Then he said to me, “Make the minds of these people dull, their ears deaf, and their eyes blind, so that they cannot see or hear or understand. If they did, they might turn to me and be healed.”
11 I asked, “How long will it be like this, Lord?”
He answered, “Until the cities are ruined and empty—until the houses are uninhabited—until the land itself is a desolate wasteland. 12 I will send the people far away and make the whole land desolate. 13 Even if one person out of ten remains in the land, he too will be destroyed; he will be like the stump of an oak tree that has been cut down.”
(The stump represents a new beginning for God's people.)
*하나님 나라 회의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나는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 그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 차 있었다.
1 In the year that King Uzziah died, I saw the Lord. He was sitting on his throne, high and exalted, and his robe filled the whole Temple.
2. 그분 위로는 스랍들이 서 있었는데, 스랍들은 저마다 날개를 여섯 가지고 있었다.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나머지 둘로는 날고 있었다.
2 Around him flaming creatures were standing, each of which had six wings. Each creature covered its face with two wings, and its body with two, and used the other two for flying.
이사야는 생각지도 못한 일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회의를 보았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응답했습니다.
8.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8 “I will go! Send me!”
이사야에게 이런 일이 수시로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는 이런 경험을 다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교인들이 경계할 사람은 이런 경험을 수시로 하고 있다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사이비 목사들을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엄청나게 영적인 차이가 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제가 일평생 목회를 하며 목사나 평신도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만인 대제사장이라는 말을 모르시나요?
여러분이 대제사장입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모든 사람이 똑같은 죄인으로써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또 신앙의 목적은 이런 경험을 많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성경 말씀대로 살게 하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사야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칩시다.
그 때 성경과 거리가 먼 유리창 깨고 건물에 불지르라는 음성을 들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 신비한 체험이 하나님을 입증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성경의 내용을 떠나있는 썩을 목적과 폭력적 방식이 마귀를 입증하는 것입니까?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악한 내용이 마귀를 입증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런 기적을 통해서 진리를 혼돈시키는 것입니다.
9. 그 불법자가 오는 것은 사탄의 작용을 따른 것인데, 그는 온갖 능력과 표징과 거짓 이적을 행하고,
10. 또한 모든 불의한 속임수로 멸망 받을 자들을 속일 것입니다. 그것은, 멸망 받을 자들이 자기를 구원하여 줄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살후2:9,10)
기적이냐? 혹은 성경의 말씀과 같이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느냐?
당연히 우리는 사랑과 정의를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 헷갈리게 하는 기적을 거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위배하는 기적은 사탄이 주는 것입니다.
기적이 신앙의 척도가 아닙니다.
성경의 내용인 사랑과 정의의 실천이 신앙의 척도인 것입니다.
그 때 기적들은 불의한 속임수입니다.
삼층천을 수시로 다녀와도 사랑과 정의를 떠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따르게 할 때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게 했으므로 이 기적은 이사야에게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거룩하다
3. 그리고 그들은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화답하였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의 영광이 가득하시다."
3 They were calling out to each other:
“Holy, holy, holy!
The Lord Almighty is holy!
His glory fills the world.”
이사야가 목격한 하나님 나라의 내용입니다.
그 거룩하심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드러나는 데에 있습니다.
꼭 주님이 보이신 이 방식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십자가의 방식입니다.
제 땅따먹기 하기 위해서 십자가로 깃발을 만들어서 들고 뛰어다니지 말라는 것입니다.
광화문 십자군 전쟁
여의도 십자군 전쟁
예수님의 내용은 없는 예수님이 그들 손의 깃발이 되어서 나부끼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역사가 열 번 반복되어서 독재자에게 해방되었던 일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모세가 한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바로에게 전해 준 일이었습니다.
그 열 번의 기적 중에 모세가 일으킨 일일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주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로 깃발을 만들어서 들고 유리창 깨고 들어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이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 때 이 땅은 그의 영광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하나님은 부정한 것과는 함께 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거룩함과 불경함은 한 자리에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불경이 부정되는 것이 거룩입니다.
오직 거룩함이 충만한 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사탄이 가장 애용하는 것이 십자가 깃발입니다.
*터가 흔드리고
4. 우렁차게 부르는 이 노랫소리에 문지방의 터가 흔들리고, 성전에는 연기가 가득 찼다.
4 The sound of their voices made the foundation of the Temple shake, and the Temple itself became filled with smoke.
하나님은 거룩하시다는 그 노랫소리에 문지방의 터가 움직였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바울도 그 경험을 했습니다.
빌립보 감옥에 갇혀 있던 무리는 불과 몇 명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한 밤중에 찬양을 했습니다.
남들 잠든 그 곳에서 드럼을 가져다가 두들겨 대지 않았을 것입니다.
두 손을 들고 큰 소리로 통성 기도를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랬으니 이사야가 본 하나님 나라처럼 빌립보 감옥 안에 우렁찬 찬양과 기도는 없었을 것입니다.
다만 거룩했습니다.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찬미의 노래를 부르니, 죄수들이 듣고 있었다.
26. 그 때에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서, 감옥의 터전이 흔들렸다. 그리고 곧 문들이 모두 열리고, 모든 죄수의 수갑이며, 차꼬가 풀렸다.(행16:25,26)
바울의 무리의 그 거룩한 찬송이 빌립보 감옥의 터를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 거룩함이 옥문을 열었습니다.
*재앙
5. 나는 부르짖었다. "재앙이 나에게 닥치겠구나! 이제 나는 죽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을 만나 뵙다니!“
5 I said, “There is no hope for me! I am doomed because every word that passes my lips is sinful, and I live among a people whose every word is sinful. And yet, with my own eyes I have seen the King, the Lord Almighty.”
빌립보의 감옥에서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드러난 장소에서 간수는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댔습니다.
이사야가 그랬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목격했습니다.
이사야는 자신에게 재앙이 닥쳤다고 소리쳤습니다.
죽음의 위험을 고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거룩함에 비추어 자신의 죄의 현실이 너무 대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드러난 곳에서 누구나 자신의 재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시인하는 데서 신앙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입술이 부정한 사람
우리는 예배 전 강대상 앞에서 율동하며 찬송하는 인도자를 흉내 내며 따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중심을 실토하는 일은 남을 따라 할 수 없습니다.
이사야가 죽음을 경고한 죄란 입술의 부정이었습니다.
13. 주께서 말씀하신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고, 입술로는 나를 영화롭게 하지만, 그 마음으로는 나를 멀리하고 있다. 그들이 나를 경외한다는 말은, 다만, 들은 말을 흉내내는 것일 뿐이다.(사29:13)
자신의 입으로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에 자신이 속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흉내 낸 것인데.......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고백하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고백을 믿을 수 없다고 이렇게 지적하신 것입니다.
20.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의 형제나 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요일4:20)
성경은 우리들의 하나님 사랑한다는 고백이 거짓임을 형제 사랑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 흉내내는 것은 한 시간 훈련하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중심을 변화시키는 일은 어렵습니다.
내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내 중심을 읽는 일조차 어렵습니다.
그래서 자신 중심의 변화를 위해 설교를 듣고 말씀을 읽고 찬양과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부정한 백성 가운데
이사야는 죄로 자신이 죽게 생겼다고 심각한 고백을 했습니다.
자신의 그 심각한 죄를 전혀 모르고 지내 왔던 데에는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5.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5 I live among a people whose every word is sinful.
부정한 입술이 그가 살아왔던 그 사회의 자연스러운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TV를 켜도 배우들의 그 부정한 입술을 듣습니다.
직장에 가도 직장 동료들의 부정한 입술을 듣습니다.
자신도 그 말로 소통해 왔던 것입니다.
그 사회에서 그 부정한 입술이 의사소통의 수단이 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죄가 죄인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죄를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또다시 그 부정한 백성 가운데서 그 부정한 입술로 소통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나 뵙다니
그런 그가 전혀 다른 나라를 본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향해 너의 죄가 크다는 지적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다만 이사야가 하나님을 만났을 뿐입니다.
이사야가 그 하나님을 만나더니 자신의 죄를 본 것입니다.
실은 설교자는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설교를 통해 교인을 설득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는 실은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매개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설교가 사람을 설득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를 통한 하나님과의 만남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언제인가 설교에서 예화를 들다가 부부 싸움하며 찌그러진 밥통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교인이 그 밥통 예화에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입니다.
그 찌그러진 밥통 이야기가 그 사람을 변화시켰던 것입니다.
저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의 깃발이 난무해도 막상 예수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일마다 교회는 예수님 만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입에 대며
6. 그 때에 스랍들 가운데서 하나가, 제단에서 부집게로 집은, 타고 있는 숯을, 손에 들고 나에게 날아와서,
6 Then one of the creatures flew down to me, carrying a burning coal that he had taken from the altar with a pair of tongs.
그 때 천사가 날아왔습니다.
이사야가 수술대 위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렇게 누워있는 이사야의 입술에 타고 있는 숯을 댄 것입니다.
그렇게 그의 죄의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이로써 이사야에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던 것입니다.
이사야는 비로소 선지자의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초등학교 때였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분필닦이를 털어오는 일을 꼭 반장에게 시켰습니다.
반장은 그 일을 할 때마다 으쓱했습니다.
아무나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의 봉사도 이런 것입니다.
이사야는 힘든 하나님의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그 봉사를 할 때마다 발걸음이 너무나 가벼웠습니다.
자랑스러웠습니다.
28.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30.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11:28)
이사야에게 주어진 일은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들만이 감당할 수 있는 특권이었습니다.
그런 뜻에서 하나님의 일은 할수록 가볍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무거울수록 가벼운 일입니다.
*말하였다.
7. 그것을 나의 입에 대며 말하였다.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악은 사라지고, 너의 죄는 사해졌다.“
7 He touched my lips with the burning coal and said, “This has touched your lips, and now your guilt is gone, and your sins are forgiven.”
이사야의 죄를 사하기 위해 숯불을 입에 댄 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천사는 이 말을 했습니다.
7.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악은 사라지고, 너의 죄는 사해졌다.“
7 “This has touched your lips, and now your guilt is gone, and your sins are forgiven.”
온 세상이 혼돈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질서 있는 세상이 창조되었던 것입니다.
이 변화의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이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만 하셨는데 하인의 종이 나았습니다.
8. 나도 상관을 모시는 사람이고, 내 밑에도 병사들이 있어서, 내가 이 사람더러 가라고 하면 가고, 저 사람더러 오라고 하면 옵니다. 또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고 하면 합니다."
9.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기시어, 돌아서서 자기를 따라오는 무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서는, 이런 믿음을 본 적이 없다."
10. 심부름 왔던 사람들이 집에 돌아가서 보니, 종은 나아 있었다.(눅7:8-10)
말씀하시기 전과 그 후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여러분도 주일을 맞아서 교회 문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이 교회문을 나갈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문을 나서서 집을 향할 때 여러분은 한 시간 전의 내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장의자에 앉아 있는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장의자에 앉아 말씀을 듣는 일은 자신이 새사람으로 창조되는 사건입니다.
*누구를 보낼까
8. 그 때에 나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내가 아뢰었다.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8 Then I heard the Lord say, “Whom shall I send? Who will be our messenger?”
I answered, “I will go! Send me!”
이사야가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가 처음 들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8.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8 “Whom shall I send? Who will be our messenger?”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보낼 사람을 두고 고민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400년의 종살이를 하던 히브리 백성들에게 바로가 명령했습니다.
아들을 낳으면 죽이라는 것입니다.
말도 안되는 바로의 요구에 그들은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호소를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셨던 일은 그의 백성을 이끌 사람을 부르신 일이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 때 모세는 시종일관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부족한 사람을 부르셔서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가?
그리고 종말의 때에 성부께서 완전한 사람 예수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를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또 달내 교회를 위해서 여러분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대신
그 불리움을 받은 사람이 할 일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오직 하나님을 대신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종이라고 표현합니다.
종이란 가장 신분이 낮은 사람입니다.
종의 특징은 자신의 의견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하라는대로 하는 사람이 종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종이 되는 일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이해해야 하나님을 따를 수 있은 텐데 말입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경우라도 내가 의지하는 내 뜻이 하나님의 의지와 상반되기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누가 십자가를 지고 싶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두고 이 종의 역할을 당부하셨는데 사람 때문에 가장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딴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전혀 다른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제 생각과 의지를 내려놓을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뜻과 다른 하나님의 뜻이 전해지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드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예레미야는 노골적으로 하나님께 불평을 한 적이 있습니다.
7. 주님, 주께서 나를 속이셨으므로, 내가 주께 속았습니다. 주께서는 나보다 더 강하셔서 나를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들이 날마다 나를 조롱합니다.
8. 내가 입을 열어 말을 할 때마다 '폭력'을 고발하고 '파멸'을 외치니, 주의 말씀 때문에, 나는 날마다 치욕과 모욕거리가 됩니다.
9. '이제는 주님을 말하지 않겠다. 다시는 주의 이름으로 외치지 않겠다' 하고 결심하여 보지만, 그 때마다, 주의 말씀이 나의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뼛속에까지 타들어 가니, 나는 견디다 못해 그만 항복하고 맙니다.(렘20:7-9)
만사형통을 기대하는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노상 폭력과 파멸을 고발했던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죄를 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레미야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을 대신한 이사야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자신을 죽을 죄인으로 인식한 사람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죄 사함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 사람입니다.
이사야는 감사와 겸손으로 고백했을 것입니다.
8.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8 “I will go! Send me!”
*깨닫지 못한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이사야의 할 일을 주신 것입니다.
9. 그러자 주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이 백성에게 '너희가 듣기는 늘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못한다. 너희가 보기는 늘 보아라. 그러나 알지는 못한다' 하고 일러라.
9 So he told me to go and give the people this message: “No matter how much you listen, you will not understand. No matter how much you look, you will not know what is happening.”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바로 이 메시지를 백성들에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아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9. '너희가 듣기는 늘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못한다. 너희가 보기는 늘 보아라. 그러나 알지는 못한다'
9 “No matter how much you listen, you will not understand. No matter how much you look, you will not know what is happening.”
그것은 지적인 인식의 문제였습니다.
두 손을 들고 소리치며 노래하며 눈물을 흘리는 정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신앙인들에게 지적 과제가 주어졌던 것입니다.
한 번은 이스라엘 왕이 유다과 함께 전쟁에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전쟁에 참여하기 전에 선지자들을 불러서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왕궁의 선지자들은 모두 그 전쟁의 승리를 예언했습니다.
11. 그 예언자들 가운데서,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자기가 만든 철뿔들을 가지고 나와서 말하였다.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철로 만든 이 뿔을 가지고, 너 아합은 사람들을 찌르되, 그들이 모두 파멸될 때까지 그렇게 할 것이다' 하십니다."
12. 다른 예언자들도 모두 그와 같은 예언을 하면서 말하였다. "길르앗의 라못으로 진군하십시오. 승리는 임금님의 것입니다. 주께서 이미 그 성을 임금님의 손에 넘기셨습니다."(왕상7:11,12)
유대왕 여호사밧은 이스라엘 왕이 택해서 불러온 선지자들을 신뢰할 수 없었습니다.
유대왕은 이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왕에게 아부나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입니다.
그래서 옳게 말씀을 전하는 다른 선지자를 요구한 것입니다.
7. 여호사밧이 물었다. "이 밖에 우리가 물어 볼 만한 주의 예언자가 또 없습니까?"
8. 이스라엘 왕은 여호사밧에게 대답하였다. "주의 뜻을 물어 볼 사람으로서,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라고 하는 예언자가 있기는 합니다만, 나는 그를 싫어합니다. 그는 한 번도 나에게 무엇인가 길한 것을 예언한 적이 없고, 언제나 흉한 것만 예언하곤 합니다." 여호사밧이 다시 제안하였다. "임금님께서 예언자를 두고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왕상22:7,8)
진정한 선지자는 사람이 원하는 만사형통을 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이스라엘 왕이 그렇게 꺼리던 미가야가 지적했던 내용입니다.
망하는 자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은 거짓말을 하는 영입니다.
22. 그러자 그는 대답합니다. '제가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아합의 모든 예언자들의 입에 들어가서, 그들이 모두 거짓말을 하도록 시키겠습니다.' 그러자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그를 꾀어라.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다. 가서, 곧 그렇게 하여라.'
23. 그러므로 이제 보십시오. 주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여기에 있는 임금님의 예언자들의 입에 들어가게 하셨으니, 주께서는 임금님께 이미 재앙을 선언하신 것입니다."(왕상22:22,23)
미가야의 말이 목사들이 거짓말을 해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왕은 정말로 이상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듣기 싫어하는 미가야의 예언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는 변장하고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30. 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여호사밧에게 말하였다. "나는 변장을 하고 싸움터로 들어갈 터이니, 임금께서는 왕복을 그대로 입고 나가십시오." 이스라엘 왕은 변장을 하고, 싸움터로 들어갔다.(왕상22:30)
그런데 변장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 병사가 우연히 쏜 화살에 이스라엘 왕은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기술을 부려도 하나님께는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은 그런 지적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보고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듣는가?
주의할 것은 거짓말하는 목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을 제대로 할려면 그들부터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거짓 없이 말하나?
*모순의 극대화
10. 너는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여라. 그 귀가 막히고, 그 눈이 감기게 하여라. 그리하여 그들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또 마음으로 깨달을 수 없게 하여라. 그들이 보고 듣고 깨달았다가는 내게로 돌이켜서 고침을 받게 될까 걱정이다."
10 Then he said to me, “Make the minds of these people dull, their ears deaf, and their eyes blind, so that they cannot see or hear or understand. If they did, they might turn to me and be healed.”
예전에는 쌀을 가져오면 키질부터 했습니다.
키 위에서 곡식들이 하늘로 날렸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우리가 그 곡식이라고 생각을 해봅시다.
날려다가 떨어졌다가 정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키질을 통해서 쭉정이 알곡 혹은 돌멩이들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이 키질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이사야의 키질을 통해서 보고도 무시하는 자 혹은 듣고도 왜곡하는 자를 골라내셨던 것입니다.
그들을 마구 흔들어대면 그들이 제대로 듣고 보는 자들과 구별이 되었던 것입니다.
옳은 말에 예 틀린 말에는 아니요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골라내신 것입니다.
*돌이켜 고침
사람들은 모조리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통해서 돌이켜 고침을 받기 전에 구원 받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옳은 것을 예 틀린 것을 아니요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비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지랄발광을 계몽으로 해석하는 자들은 깨달음의 기회를 잃은 것입니다.
10. 그들이 보고 듣고 깨달았다가는 내게로 돌이켜서 고침을 받게 될까 걱정이다."
10 If they did, they might turn to me and be healed.”
이사야가 하는 일은 악인들은 고침을 못받도록하는 일입니다.
이사야는 그들로 더 이상 제대로 듣거나 보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땅이 온통 버려질 때까지
11. 그 때에 내가 여쭈었다. "주님! 언제까지 그렇게 하실 것입니까?" 그러자 주께서 대답하셨다. "성읍들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어질 때까지, 사람이 없어서 집마다 빈 집이 될 때까지, 밭마다 모두 황무지가 될 때까지,
11 I asked, “How long will it be like this, Lord?”
He answered, “Until the cities are ruined and empty—until the houses are uninhabited—until the land itself is a desolate wasteland.
12. 나 주가 사람들을 먼 나라로 흩어서 이 곳 땅이 온통 버려질 때까지 그렇게 하겠다.
12 I will send the people far away and make the whole land desolate.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변함없는 사랑으로 그의 백성에게 기회를 주신다면 그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까?
8. 주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가야 할 길을 내가 너에게 지시하고 가르쳐 주마. 너를 눈여겨 보며 너의 조언자가 되어 주겠다."
9. "재갈과 굴레를 씌워야만 잡아 둘 수 있는 분별없는 노새나 말처럼 되지 말아라."(시38:8,9)
그들은 마치 노새와 말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취하신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지시하시며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맞는 것을 보고도 아니라고 자꾸 하면 하나님께서는 두 번째의 방식을 취하시는 것입니다.
재갈과 굴레를 씌우는 방식입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역사란 각별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역사라는 책에서 읽어내야 합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속성 곧 그 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20. 이 세상 창조 때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롬1:20)
그래서 역사를 무시하는 사람이나 세속의 욕심으로 인해서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들은 실은 하나님을 적대하는 사람입니다.
역사를 보고 듣는 중에 맞는 것은 반드시 예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루터기
13. 주민의 십분의 일이 그 곳에 남는다 해도, 그들도 다 불에 타 죽을 것이다. 그러나 밤나무나 상수리나무가 잘릴 때에 그루터기는 남듯이, 거룩한 씨는 남아서, 그 땅에서 그루터기가 될 것이다."
13 Even if one person out of ten remains in the land, he too will be destroyed; he will be like the stump of an oak tree that has been cut down.”
(The stump represents a new beginning for God's people.)
얼마 전 미국의 LA에서 산불이 났습니다.
불에 다 타버리고 거기에 그루터기만 남아있었습니다.
TV에 비친 타버린 그루터기를 보면서 저는 끝장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사야가 소명 받았던 웃시야 왕 때는 유대가 번성했던 때였습니다.(대하26)
하나님은 그 백성의 이런 태평성대를 완전히 태워버리실 것입니다.
거기에 시커먼 그루터기만 남기실 것입니다.
바로 거기 그루터기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비웃었습니다.
창으로 찔렀습니다.
비겁하게 그 자리를 피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바로 그 남은 그루터기에서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