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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찾으시는 밀알 한 사람
2014년 7월 6일 / 맥추감사절 / 예레미야 5:1, 요한복음 12:23, 딤후 2:21
렘 5:1 / [의인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주께서 말씀하신다. `너희는 예루살렘의 모든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의인을 찾아보아라! 너희는 예루살렘의 모든 광장을 둘러보면서 진실한 사람을 찾아보아라. 너희가 거기서 법대로 사는 사람이 있어서,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단 한사람이라도 찾는다면 내가 그 성읍 전체의 죄를 용서하겠다.
요 12:23 /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는 것과 같이 나는 죽어야 한다. 내가 죽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밀알 하나가 그대로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내가 죽으면 한 알의 죽은 밀알에서 많은 밀알이 맺히듯이 새 생명들을 풍성하게 거두게 될 것이다.
딤후 2:21 만일 그대가 죄를 멀리한다면 순금으로 만든 그릇, 곧 집안에서 가장 비싼 그릇이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께서 친히 가장 고귀한 목적을 위해서 그대를 사용하실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 어떤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 저는 87년에 잠시 싱가포르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싱가포르에 대한 인상이 참 좋았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깨끗하고 푸른 전원도시 그대로였습니다. 당시 서울에서 살다가 처음으로 외국 여행을 하는 저에게, 법과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싱가포르 사람들의 모습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후에 싱가포르에 대한 여러 가지를 들으면서 저는 더 충격을 받았습니다. 싱가포르는 겨우 322만 명밖에 되지 않는 동남아시아의 소국이지만, 2013년 1인당 GDP 기준 5만 달러가 넘는 유일한 동아시아 국가. 1인당 PPP는 전 세계 톱권 국가입니다. 정치적으로도 아시아 뿐 아니라 세계에서 깨끗하기로 유명합니다. 또한 마약과 도박에 대해서는 극형을 처할 정도로 단호하게 대처하는 나라로 유명합니다. 아무튼지 현재 싱가포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아시아권을 넘어 세계에서 손꼽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원래 싱가포르라는 나라가 이렇게 선진국은 아니었습니다. 1900년대 초까지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군에 점령당하였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다시 영국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그 후 1965년 8월에 분리 독립하여, 독립한지 겨우 50년밖에 되지 않는 동남아시아의 조그마한 소국이 이렇게 부강한 나라가 된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한국의 부산보다도 조금 작은 크기의 싱가포르, 호주 시드니보다도 조금 적은 인구를 가진 싱가포르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나라가 되었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싱가포르가 부강하게 된 이유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는 리콴유이라는 한사람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재원으로써, 영국의 식민통치 아래에서 국회의원으로 활동을 하다가, 1959년 싱가포르 자치령의 총리를 거쳐, 1965년 8월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에서 분리·독립함에 따라 다시 싱가포르 초대총리에 취임하였습니다. 그는 1965년부터 1990년 총리직을 사임할 때까지 25년 동안 싱가포르 전체를 완전하게 바꾸었습니다. 그는 권력이나 돈이 탐이 나서 오랫동안 나라를 다스리던 여타 시시껄렁한 장기 독재자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는 나라를 위해서 담배꽁초 하나, 휴지조각 하나라도 길거리에 버리지 말도록 하여 사회변혁을 달성했습니다. 마약 소지를 하다 붙잡히면 사형에 처한다는 극단적인 조치를 동원하여 마약은 아예 싱가포르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정치, 경제 등의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결론적으로 동남아시아의 소국인 싱가포르가 변화되고 개혁되어 선진국이 된 것은 다른 많은 이유도 있겠지만, 그 중에 가장 큰 이유는 ‘리콴유’라는 한 사람에 의해서입니다. 그러나 그를 통해서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한 사람’을 찾으셔서 그 한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섭리를 이루어 가십니다.
1. 한 사람(밀알)을 찾습니다.
본문에서도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예루살렘 성안에서 공의를 행하며,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는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한 사람을 찾으시는지, 본문의 배경을 알지 못하면 이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잠깐 동안 본문의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예레미야의 배경은 주전 7세기입니다. 북쪽의 이스라엘은 이미 120여 전에 앗수르에 멸망당했습니다. 그리고 남아있는 남쪽의 유다도 지금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바벨론이라는 나라와 애굽이라는 두 나라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국민들이 정신을 차리고 힘을 모으면 소망이라도 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예레미야 1:16을 보면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에 절하며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것 뿐 아닙니다. 예레미야 2:8을 보니, 하나님을 일을 하는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찾지 아니 했습니다. 하나님의 법인 말씀을 가르치는 레위인들은 말씀대로 살지 아니 했습니다. 관리라고 하는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하기는커녕,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죄뿐 아니라, 길가에 앉아 남자를 기다리는 아랍사람들처럼 음란한 행동을 서슴없이 저질렀습니다(렘 3:2). 백성들로부터 관리들, 선지자들, 제사장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다 부패했습니다(렘 6:13).
이렇게 나라가 엉망진창이 되어 결딴날 지경에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급하게 찾으셨습니다. 다시 한 번 1절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의 모든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의인을 찾아보아라! 너희는 예루살렘의 모든 광장을 둘러보면서 진실한 사람을 찾아보아라. 너희가 거기서 법대로 사는 사람이 있어서,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단 한사람이라도 찾는다면 내가 그 성읍 전체의 죄를 용서하겠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한 사람’을 찾으라고 말씀합니다. 예루살렘 성안에서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을 찾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안에서 진실하고 정직한 ‘한 사람’(예 : 노아, 욥, 다니엘) 을 찾으면, 예루살렘 성을 멸망시키지 아니하고, 용서하겠다고 하십니다.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려는 계획을 취소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찾으시고 그 ‘한 사람’을 통해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 모라비안 선교사 조지 스미스의 전 생애는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고자 하는 목표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삶의 중심에는 언제나 아프리카 대륙에서 존귀하게 되는 그리스도의 환상이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스미스는 오랜 준비를 마치고 아프리카행 선박에 올라탔습니다. 그의 꿈과 소명과 비전이 실현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 상륙하여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 추방당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추방될 때까지 늙은 여인 한 사람을 회개시킨 것이 그의 아프리카 선교의 열매였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로부터 추방당한 조지 스미스 선교사는 죽을 때까지 아프리카를 향하여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은 지 100년 후에, 아프리카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단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13,000명의 그리스도인들로 증가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조지 스미스 선교사 한 사람을 통하여 아프리카에서 역사를 이루어 가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평가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사과를 보실 뿐만 아니라 그 속에 숨어 있는 씨를 보시고 그 씨를 통하여 새로운 열매가 열리게 하시는 분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끝났다고 절망하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그 속에 숨겨놓은 씨를 보시고 그 씨를 자라게 하시고 열매가 열리게 하십니다. 사실 심는 자는 ‘나’이기 전에 주님이시다. 그분께서 ‘나’속에 사랑을 심으시고, 용서의 새사람을 심으시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시며,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는 자가 되게 하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먼저 우리들에게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요 12:23 /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는 것과 같이 나는 죽어야 한다. 내가 죽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밀알 하나가 그대로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내가 죽으면 한 알의 죽은 밀알에서 많은 밀알이 맺히듯이 새 생명들을 풍성하게 거두게 될 것이다.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보존하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너희가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생명을 잃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생명의 가치를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느냐?”(마 16:25-26)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2천년이 지난 오늘 우리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찾으시고, 그 ‘한 사람’을 통해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성경을 보면 이러한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합지졸 군대가 아닌, 헌신된 ‘한 사람’을 시기적절하게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부대를 일으키셔서 역사를 이끌어가지 않으시고 소수를 통해서 역사를 이끌어 가셨습니다. 그것도 선택된 한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관영한 땅을 홍수로 심판하시기 전에 노아라는 ‘한 사람’을 세우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벽을 수축하기 위해 느헤미야라는 ‘한 사람’을 세우셨습니다.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모세라는 ‘한 사람’을 세우셨습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안하무인(眼下無人)격인 골리앗에 눌려 아무 말도 못하고 염려에 쌓여 벌벌 떨고 있는 이스라엘 군대를 대표하여 군인도 아닌 소년 ‘한 사람’ 즉 하나님의 기름 부음은 받은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2. 요셉 ‘한 사람’을 통해 …
창세기 39장을 보아도 하나님께서 요셉 ‘한 사람’을 통해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원래 인간적으로 보면, 그는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어릴 때부터 형제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았습니다. 결국 그는 억울하게 형제들에 의해, 미디안 상인들에게 은 20냥에 미디안의 상인들에 의해 애굽의 바로왕의 경호실장인 보디발의 집에 몸종으로 팔려갔습니다. 나중에는 보디발의 집에서도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갇힙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요셉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어떠한 조건도 없었습니다. 요즘 말로 말해서 요셉은 실세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종의 신분이었습니다. 자유를 박탈당한 종의 신분으로 교도소까지 들어갔던 죄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가 가는 곳마다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애굽의 경호실장인 보디발이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칩니다. 보디발은 종인 요셉을 가정총무로 삼고, 자기가 먹는 음식물 외에 기타 모든 살림살이를 요셉에게 맡겼습니다. 그런데 요셉으로 하여금 자기 집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복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이 보디발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쳤습니다. 이러한 복이 누구 때문입니까? 물론 넓게 보면 하나님이 복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 때문이지만, 하나님께서 요셉을 위하여 보디발의 집에 복을 주셨기 때문에, 좁게 보면 요셉 때문에 보디발의 가정이 복을 받았습니다. 보디발은 몸종 하나 잘 둔 덕택에 엄청난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 요셉이 억울하게 교도소에 갇혔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기 39:22-23을 보겠습니다. “간수장은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들을 모두 요셉에게 맡겼다. 또한 감옥 안에서 처리해야 할 일도 모두 요셉이 맡아서 처리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일단 그렇게 맡긴 일은 간섭하지 않았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 까닭이었다. 이렇게 요셉은 어디에 있든지 그가 하는 일마다 행운이 따르도록 여호와께서 보살펴 주셨다.” 교도소장은 교도소의 모든 제반 업무를 요셉에게 일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직접 교도소를 관장할 때보다 요셉이 관장할 때 더 일이 잘 풀렸습니다.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요셉이 애굽 총리대신에 올라 정치를 잘 함으로 말미암아 애굽 국민들은 밥 굶지 아니하고 7년 흉년을 잘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세계에서 1등인 강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셉 ‘한 사람’으로 인해 70여명이나 되는 많은 식구들이 극심한 흉년을 무사히 넘길 수가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요셉은 가는 곳마다 영향을 끼쳤다는 것입니다. 그는 가족들을 살렸습니다. 이웃을 살렸습니다. 전체 공동체를 살렸습니다. 그는 주위를 살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통해서 그의 생애를 가만히 살펴보면, 이상하게도 요셉이 기적을 행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는 꿈을 꾸고, 꿈을 해몽한 것 외에는 특별히 무슨 일을 하지도 아니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셉은 이스라엘의 영적인 지도자 모세나, 용맹스러운 여호수아 장군이나, 갈멜산의 챔피언 엘리야 등의 인물들과 비교할만한 인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또 요셉이 아주 위대한 설교를 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그는 모세나 사무엘이나 다윗과 같이 성경을 기록한 일도 없습니다. 그는 대단히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매사에 하나님께 여쭈어보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앞날까지 보는 예언자가 되었고, 나랏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한 것까지 애굽 왕 바로에게 제안할 정도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종이 되었던 것입니다.
3. 평범한 ‘한 사람’을 쓰십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평범한 '한 사람'을 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면 모세의 막대기로 홍해를 가르고, 반석에서 물을 쏟게 하는 기적의 지팡이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곳,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뽑으셔서 당신의 일꾼으로 삼으십니다. 야곱과 에서 중 누구를 하나님께서 세우셨습니까? 차자(次子) 야곱입니다. 또 이새의 여덟 아들 중 누가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까? 제일 막내인 다윗입니다. 또 아모스 선지자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양치는 목동이요, 뽕나무를 배양하며 뽕따서 밥 먹고사는 농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평범한 그들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선한 역사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면 어느 누구라도 위대한 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지금으로부터 약 2,800여 년 전의 엘리야 선지자를 잘 압니다. 갈멜산상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상대하여 박살(搏殺)을 낸 영웅이요, 기도의 사람으로서 3년 6개월 동안 비를 오지도 않게 하고 다시 오게 한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엘리야를 우리와 전혀 차원이 다른 슈퍼맨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약 5:17-18 / 엘리야는 우리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비가 오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자 3년 반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18) 다시 비가 오게 해주시기를 기도하자 비가 쏟아져서 초목이 다시 푸르게 되고 들의 곡식들이 자라서 열매를 맺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우리들 보다 별 볼일 없는 길르앗에 우거하던 촌뜨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슈퍼맨 같은 능력의 사람을 쓰시지 아니하고 오히려 별 볼일 없는 저와 여러분 같은 평범한 ‘한 사람’을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에도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와 같은, 요셉과 같은 ‘한 사람’을 찾으시며, 그 ‘한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이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한 사람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4.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죄를 멀리하면) 귀하게 쓰십니다.
딤후 2:20 / 부잣집에는 금과 은으로 만든 그릇만이 아니라 나무와 진흙으로 만든 그릇도 있어서 값비싼 그릇은 손님을 접대하는 데 쓰이고 값싼 그릇은 부엌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데 쓰입니다.
위의 20절은 21절을 설명하기 위하여 예를 든 것입니다.
딤후 2:21 만일 그대가 죄를 멀리한다면 순금으로 만든 그릇, 곧 집안에서 가장 비싼 그릇이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께서 친히 가장 고귀한 목적을 위해서 그대를 사용하실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금 그릇, 은그릇, 질그릇, 나무 그릇들은 엄연히 질적(質的)인 차이가 있습니다. 금 그릇과 나무 그릇이 같을 수 없습니다. 금 그릇과 질그릇이 같을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의 요점은 이것입니다. “네가 금그릇이냐? 은그릇이냐? 질그릇이냐? 나무그릇이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네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일이다. 먼저 불의한 일에서 떠나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그런 사람은 누구든지 금 그릇처럼 귀하게 사용될 것이다.”
하나님의 기준은 세상의 기준과는 달리 자기를 깨끗하게 한 사람이 제일 귀한 그릇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잘 못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턱대고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했지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능력의 많고 적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세상적인 기준을 그대로 하나님의 일에도 적용하려고 하는 우(愚)를 범하고 있습니다.
▶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울의 준수한 외모를 보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 중에 외모로 볼 때 가장 뛰어난 남성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 그보다 잘생긴 사람이 없고 그 키도 커서 다른 사람들이 그 곁에 서면 어깨 아래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훌쩍 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는 눈과 사람의 눈은 달랐습니다. 얼마 가지 못해 사울 왕의 거침없는 행동은 하나님의 눈 밖에 벗어나기 시작했고 결국 버림받은 왕으로 삶을 마쳤습니다. 사울을 왕으로 세우는데 가장 큰 공헌을 했던 사무엘 선지자마저 사울 왕에게 실망하고 돌아섰습니다. 그런데 외모로 사람을 세웠다가 실패를 맛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은 두 번째 왕 후보를 찾아 나선 길에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이새의 아들들을 만난 자리에서 키가 큰 아들 엘리압을 보는 순간 마음이 끌려 ‘이 사람이 하나님이 정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본다.”(삼상 16:7)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집의 일곱 아들들을 차례로 다 만난 후에야 비로소 여덟째 막내 다윗을 보고 하나님의 허락을 따라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의 후보로 삼았습니다.
요셉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도 그것입니다. 요셉이 무슨 능력이나 자격을 제대로 갖춘 사람이 아닙니다. 요셉뿐입니까?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은 사람들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으시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닙니다. “능력이 한이 없으신 하나님(시편 147:5)”께서 우리의 능력이 필요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것은 우리의 성결입니다.
성결한 삶은 한꺼번에,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성결하게(to be sanctified)” 됩니다. 성결한 삶을 위해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交際)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을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성결하게’ 됩니다.
금과 은을 귀히 보고 나무와 흙을 천히 보는 것은 세상적인 기준입니다. 장로와 집사를 높고 귀하게 보고 일반교인은 낮게 보는 것은 성경과는 거리가 멉니다. 귀한 그릇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직분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쓰임 받느냐?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하느냐?” 입니다. 내가 어느 위치에 있든지 하나님이 쓰시고자 할 때 말없이 순종하는 자가 바로 귀한 일군입니다. 나를 하나님이 마음껏 쓰시도록 내어 드리는 것이 귀한 일군의 태도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일하고도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 입니다.”라는 고백을 하는 자가 진정 하나님 교회의 기둥과 같은 일군입니다.
5. 내 자신이 바로 그 ‘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그 ‘한 사람’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는 종교 개혁의 선구자 중의 한 사람으로 당시의 메리 여왕은 열심있는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여왕은 스코틀랜드의 모든 개신교 신자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여왕이 명령을 내린 날 밤, 존 낙스는 자기 서재에 들어가서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스코틀랜드를 나에게 주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저를 죽여주십시오.” 그는 죽기 살기로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 기독교인들을 그렇게 죽이려고 했던 메리 여왕이 중병으로 죽었습니다. 메리 여왕은 죽기 전에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한 사람인 존 낙스의 기도가 백만의 대군보다도 무섭다.” 결국 그때 존 낙스 한 사람의 기도가 스코틀랜드의 수많은 개신교 신자들의 목숨을 살린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의 민족의 암흑기에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도자가 없는가? 지도자를 찾지 마라. 너희들 스스로가 지도자가 되어라. 네가 하면 되지 않겠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이 교회를 살리고 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존 낙스와 같은 ‘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염려와 걱정하는 대신에 새벽 기도회에 나와 부르짖어 기도하는 ‘한 사람’이 되십시오. 교회에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이 많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교회를 살리는 그 ‘한 사람’이 되십시오. 예배 때마다 나오시고, 새벽기도회도 나오셔서 목사를 위해, 장로와 안수집사와 직원들을 위해,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섬기는 자리와 봉사의 자리에 나오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한 사람’을 찾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 만 앞세우는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을 결코 찾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앉아서 말만 앞세우며 립싱크만 하는 사람들을 대단히 싫어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감당할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비록 지금은 별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없다 할지라도, 아직은 나이가 어리다 할지라도, 지금은 학업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연세가 들어 점점 기력이 쇠하여 간다 할지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평범한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또한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오늘 날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한 사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대로 된 ‘한 사람’을 보고 공동체 전체를 살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통해 공동체를 회복시키시고, 공동체를 축복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저는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아 가정과 직장과 교회와 나라와 세계를 살리는 그 ‘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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