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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강해 06_가정과 결혼 06 (벧전 3:1~7)_남편과 아내의 행동지침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킵바이블, keep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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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후서 강해 06: 남편과 아내의 행동 지침
성경말씀: 벧전3:1-7
지난 주 요약: <남편의 사랑의 의미>, 1. 남편의 사랑은 희생의 사랑이다. 나의 필요를 만족시켜 주므로
좋아 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과 연약함에도 희생으로 사랑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같은 죄인들을
위해 죽기까지 자기를 내어 주신 그 사랑, 2. 남편은 아내의 구원자다. 3. 남편은 아내를 성화시키는
자다. 4. 경제적, 영적 능력으로 가정을 이끌어야 한다.
현시대의 아이러니
6,000년의 인류 역사, 지금은 결혼과 가정과 성에 대한 정보가 넘쳐난다:남자와 여자, 결혼 카운슬링
이런 것이 넘쳐나는데 결혼과 가정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망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구원이 가정과 결혼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결혼에 성공하려면 노력해야 한다. 베드로는
불신 남편을 둔 자매와 크리스천 남편들에게 실제 교훈을 주고 있다. <남편과 아내의 행동 지침>
역할 모델(Roll model)
베드로는 이교도들의 사회에서 핍박받으면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먼저 거룩히 살 것을 요청하였다
(1:14-16).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피로 된 것이다(1:18-19). 썩지 아니할 씨 곧 말씀으로
다시 태어났다(1:23). 말씀으로 성장해야 한다(2:2). 너희는 놀라운 사람들이다(2:9).
이런 사람들로서 세상에서 바르게 살아야 한다(2:12).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하나님 때문에 참으면 감사할
일이다(2:19). 여기의 대표적인 사례가 예수님이다(2:21-25).
요즘 가장 많이 유행하는 단어 중 하나가 롤 모델이다. “목사님이 저의 롤 모델이에요.”
누군가를 따라가면 그 사람 비슷하게 된다. 그래서 위인전, 영웅전을 읽고 성경을 읽는다. 요즘 사무엘기
상하, 사무엘, 사울, 다윗을 읽는다. 다 부족한 롤 모델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의 롤 모델로
예수님을 들고 있다.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신 분, 신분과 위치에 걸맞지 않게 가장 푸대접을
받았다. 전적으로 불신자들, 죄인들을 위해 이 세상에서의 삶을 사셨다.
우리가 이분을 우리의 롤 모델로 받아들이려면 먼저 구원을 받아야 한다. 구원자로 주님으로 영접한
뒤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가정의 화평을 위해 지혜를 구하고 서로를 격려해야 한다.
아내들에게 주는 권면(1-6)
1절에서 베드로는 “아내들아, 이와 같이 너희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와 같이’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 같이’를 뜻한다. 복종이 나오면 예수님의 복종을 생각해야 한다.
특히 베드로는 불신 남편과 살고 있는 자매들에게 권면하고 있다. 바울의 권면(고전7:12-13): 불신
남편이나 아내를 버리지 말라. 심지어 불신 남편에게도 복종하라고 베드로는 두 번이나 말한다(1,
5절). 남편은 가정의 머리이므로 불신자라도 아내는 창조 시 부여된 권위에 순종해야 한다.
1. 복종은 아내의 의무이다(1-2). “내 자신을 남편의 권위 아래 두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군대에서
졸병과 대장이 있다. 졸병이 훨씬 더 인간성과 지혜가 나을 수 있다. 그래도 그는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 그래야 전쟁에서 이긴다. 아내의 복종은 결코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다. 예수님도 아버지의
권위 아래 자신을 내어 놓으셨다.
2. 복종은 기회이다. 아내의 복종은 심지어 불신 남편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기회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복종하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권위에 복종하면 기회가 온다. 많은 경우 불신 남편들은
설교나 잔소리로 변화되지 않는다. 여기의 ‘말 없이’는 결코 ‘성경 말씀 없이’가 아니다. ‘아내의 말로
설득해서’가 아니라는 뜻이다. 성경 말씀을 듣게 하려면 행실이 바뀌어야 한다. 저녁에 설교 방송을
크게 틀어놓고 남편이 듣기를 기다라면 많은 경우 남편이 집을 나간다. 그러므로 남편을 변화시키려면
성품과 행실이 좋아야 한다. 논쟁으로는 안 바뀐다. 복종, 이해심, 사랑, 친절, 인내 등의 성품은
조작할 수 없다. 성령의 열매로 내부에서 나와야 한다.
a. 이것은 불신 남편, 아내, 자식, 친구들을 얻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
3. 복종은 장식이다(3-4). 3절의 단장은 원래 뜻이 cosmos 즉 질서 있게 정돈된 우주를 뜻한다.
여기서 화장품을 뜻하는 ‘코스메틱’이 나온다. 베드로는 크리스천 자매들에게 외적 치장이 아니라 - 12 -
내적 단장에 치중해 줄 것을 부탁한다. 로마 시대 여인들은 파티 등에 신경 쓰면서 외적 단장을 매우
귀중하게 여겼다. 외적 단장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외적 단장은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조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온유하고 조용한 영의 장식은 항상 존재한다(3). 하나님
보시기에 지극히 값지다.
4. 옛적의 하나님의 여인들도 그렇게 하였다(5-6). 사라의 예: 히브리서 11장에서 라합과 더불어 이름이
기록된 여인, 창12, 아브라함이 기근으로 인해 이집트에 감. 사라의 미모로 인해 아브라함이 죽게
될 가능성이 생김, “내 누이라고 해라.” 파라오에게 끌려가서 남의 아내가 될 뻔함. 남편이 자기의
의무를 못했음에도 하나님이 그를 찾아왔을 때 그를 ‘내 주’라고 부름(창18:12). 이런 여인은 어떤
놀라운 일에도 두려워하지 않는다(6).
남편들에게 주는 권면(7)
아내들에게는 6절, 남편들에게는 1절, 편파적이지 않는가? 그 당시 남자 중심의 로마 사회에서 그리스도인
이 될 때 아내가 누리는 자유는 너무 커서 문제가 생길 확률이 높았다.
남편들에게도 ‘이와 같이’라는 말이 주어진다(7). 그리스도께서 본을 보여 주신 것 같이
1. 남편들은 지식에 따라 아내와 살아야 한다. 이 땅에서 남자들은 두 가지를 공부해야 한다: 성경과
아내. 해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아내의 마음을 읽는 것은 어렵다. 이것을
원하는 것 같은데 물어보면 저것을 원한다고 한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그래서
들어주어야 한다. 결혼 전 카운슬링: 여자와 남자보고 상대방에게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적어보라고
하면 여자는 적는데 남자는 적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즉 결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결혼하는
커플이 대단히 많다. 지식이 부족하면 망하기 쉽다(호4:6). 그래서 아내를 연구해야 한다. 나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들어주어야 한다.
2. 동거해야 한다. 이 말은 같은 집에서 사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같이 생각하고 생각을 나누어야 한다.
여자는 월급이나 집이나 차와 결혼한 것이 아니다. 아내의 부탁: “봄에 꽃구경 가자. 공원에 가서
걷자.” 시간을 내서 해야 한다. 그것이 함께 거하는 것이다. 좋은 영화도 보고 책도 같이 읽고 나누고.
많은 남자들이 승진, 명예, TV, 골프와 결혼한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동거가 아니다. 아내가 직업을
갖게 되면 가정 일을 도와야 한다. 그것이 동거하는 것이다.
3. 존중해야 한다: 여기의 존중은 여왕처럼 여기라는 것이다. 특별한 사람으로 여기라. 그래서 아내가
스스로를 특별한 사람으로 여기게 하라는 것이다. 이런 존중은 아내를 이해하는 데서 나온다. 아내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때도 예의를 갖추어서 해야 한다(데이트 시절에 하듯이).
a. 더 약한 그릇이다: 대개 여자는 남자보다 육체적으로 약하다. 올림픽 게임에서도 여자 남자 따로
한다. 대개 여자들이 영적으로도 약하다. 마귀도 여자를 유혹했다. 은사주의 현장에 가 보면
여자들이 먼저 넘어간다. 원래 하나님의 창조 때부터 여자들은 그런 상태로 지어져서 남자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갈비뼈로 만들어졌다.
b.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자: 오해하면 안 된다: 각자가 각자의 믿음에 따라 구원을 받는다.
그런데 구원의 은혜 측면에서 남자가 여자보다 더 월등한 것이 없다. 즉 하나님 앞에서는 여자와
남자의 구분이 없다.
4. 그래야 남편들의 기도가 방해를 받지 않는다. 베드로는 남편과 아내가 함께 기도하는 것을 염두에
둔 채 이야기한다. 아내를 부당하게 대우하면 어떻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겠는가? 불신자들 중에서는
기도 없이도 행복한 사람들이 있다. 성도들이 같이 기도하면 얼마나 좋을까!
결론
1. 우리는 파트너인가? 경쟁자인가? 2. 서로를 돕는가? 3. 잠정적인 외적 패션을 의지하는가? 영원한
것들을 의지하는가? 4. 날이 갈 수록 더 이해하는가? 5. 상대방의 기분과 생각에 더 민감해지고
있는가? 6.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것을 보는가? 7. 우리의 결혼 생활이 서로를 풍성하게
만드는가? 가정과 결혼 시리즈 6개와 결혼 시리즈 5개를 들어보기 바란다.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라.
https://youtu.be/NjN--gtKSUQ?list=PLMMgsQcVExdkRhbIZXr8alXlUGOkRRr7C
베드로전서 강해 07_그리스도인의 옷차림 (벧전 3:1~4)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킵바이블, keepbible, 세대주의)
베드로전후서 강해 07: 그리스도인의 옷차림
성경말씀: 벧전3:1-4
벧전3:1-7 가정과 결혼 시리즈 “남편과 아내의 행동 지침”
3:1-4 설명, 교회의 팽창, 옷차림 규례 설명 필요,
목사의 책무: 하나님의 모든 계획(행20:19-20, 26-27), <그리스도인의 옷차림>, 아이들, 청년들
옷차림 규례가 있는가?
대부분 교회는 무엇을 입든, 무엇을 하든 교회만 오면 된다는 논리를 편다.
성경의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는다. 성도는 하나님께 대한 찬양을 널리 알려야 하는 존재(벧전2:9)
이런 면에서 성도의 겉모습도 대단히 중요하다. 내면만 바르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큰 오류이다.
기도, 찬양, 예배, 설교 등 모든 영적 생활은 내적/외적 요소들의 결합체이다.
공예배에서는 옷차림, 자세, 동작 하나 하나가 대단히 중요하다.
1. 모든 창조물 가운데 사람만 옷을 챙겨 입는다.
2. 성경은 옷으로 시작해서 옷을 끝을 맺는다(가죽옷, 아마포 , 고후5:1-4).
3. 옷은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수단이기도 하고 무언가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다.
4. 옷은 대화의 수단이다: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이 남잔지 여잔지, 무엇하는 사람, 출신인지 드러난다.
5. 책은 겉장으로 판단하지 못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옷으로 판단한다. 삼16:6-7, 고전14:23
6. 옷에는 위력이 있다: 경찰관, 인터뷰 복장, 군인 제복
7. 옷은 분위기에 따라 달라진다. 예배, 영화관, 직장, 운동, 그러므로 옷은 대단히 중요하다(의식주).
하나님의 백성과 예배 그리고 옷차림
성경은 세상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책이다. 이 백성은 세상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노아 당시 8명,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 히브리서 11장의 위인들, 세상에 살지만 세상과 다른 사람들
교회(에클레시아)의 의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세상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들(마16:18)
세상과 세상의 헛된 것들을 버려야 한다(롬12:2)
하나님의 백성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 천국에서도 영원토록 그분께 경배한다.
예배는 가장 존귀한 대상을 가장 존귀한 분으로 여기며 가장 존귀하게 섬기는 것, 공예배, 사예배 모두
특히 공예배에서 우리는 주님을 공경하는 태도와 목소리를 가지고 하늘의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의 영광,
위험, 은혜, 긍휼, 사랑, 아름다움, 거룩함을 드러낸다.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는가?
세상에서 찌들었다가도 공예배를 드리는 순간 우리의 영이 활기를 얻는다. 예배가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그래서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면 안 된다.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가?
1. 거룩함의 아름다움으로(시29:1-2). 거룩함이 빠지면 예배 의미가 퇴색됨.
a. 자세, 동작, 옷차림, 말, 노래, 기도, 말씀 낭독, 설교, 광고까지도 거룩해야 한다.
b. 거룩함은 곧 세상과 구분되는 것이다.
2. 가장 좋은 것을 가져온다. 말라기의 백성과 제사장들, 하나님의 기대를 무시함(말1:6-7; 12-13)
3. 희생의 정신(막12:41-44), 과부의 이 렙돈, 힘들고 불편해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한다.
신약시대의 예배
1. 과거에는 희생물을 바쳤으나 지금은 예배자가 희생물이다.
2. 입술의 찬양의 희생물을 드린다(히13:15). 영과 진리로(요4:23-24), 이것을 오용하면 안 된다.
3. 신약 시대는 성도 자체가 희생물이요, 하나님의 성전이요, 제사장이다. 더 엄중한 책무
4. 초대 교회 성도들의 기대감: 예수님이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계신다. 우리는 어떤가?
a. 토요일에 일찍 자고 헌금도 새 돈을 준비하는 등
5. 우리의 예배는 하님을 기쁘게 하고 그분이 받으시는 희생물이 되어야 한다(빌4:18).
6. 하나님은 소멸시키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공경해야 한다(히12:28-29).- 14 -
예배 복장
결혼식장에 추리닝, 운동화, 슬리퍼 신고 갈 수 없다. 최상의 옷을 입고 가야 한다. 그게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예배는 그 이상이어야 한다. 특히 여성들은 복장에 신경을 써야 한다.
성경은 남성의 복장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 하지 않지만 여성의 복장은 여러 차례 이야기한다(벧전3:3-4;
딤전2:9-10). 왜 그런가?
남자는 보는 것에 약하고 여자는 듣는 것에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특히 여자들이 남자들에
게 보는 것으로 인한 실족거리를 주지 못하게 하셨다(나체 사진 등, 마18:7).
이런 구절을 오용해서 여자는 화장하거나 장식품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을 어불성설이다.
예수님도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꾸면 주신다(희고 고운 아마포 옷, 계19:8, 엡5:27; 시45:13-14).
여기의 요점은 단정하게 차려 입는 것 이상으로 외적인 것에 가치를 두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구절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단정함, 정숙함, 얌전함(shamefacedness)이다.
이 말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신부이므로
남자의 경우 정장이면 다 해결된다. 그러면 어떤 옷이 여성에게 단정하고 정숙하고 얌전한 옷인가?
많은 근본주의 성경 신자들의 답: 신22:5, 남자는 바지, 여자는 치마, 치마가 아니면 가증함 No!
이 구절은 문맥에서 봐야 한다. 10, 11과 12절을 보면 혼방은 안 되고 또 옷에 술을 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가지고 치마를 입지 않으면 가증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이다.
최초의 옷 사건: 처음에 아담과 이브는 벌거벗고 지냈다(창2:25). 죄를 지은 후 곧바로 벌거벗은 수치를
깨닫고 앞치마를 만들어 입었다(창3:7-11). 이 앞치마는 벌거벗음을 가려주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
께서 이들을 내쫓으면서 가죽 옷을 입혀 주셨다(가죽 코트).
핵심: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려면 벌거벗음을 가려야 한다. 막5:1-15(특히 15절, 바른 정신, 옷)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명령: 친족들과 성적 접촉을 하면 안 된다(레18:6 이후). 벌거벗음을 드러내므로
특히 여자는 벌거벗음을 자기 남편에게만 드러내야 한다.
어느 정도가 벌거벗음의 기준인가? 아담과 이브의 가죽옷 길이가 어느 정도였을까?
출28:42의 제사장 규정
사47:1-3, 여인의 수치를 드러내기 위해 치마를 걷어 올리는 모습, 넓적다리까지 올리면 벌거벗은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적으로는 여자의 넓적다리가 보이는 옷은 벌거벗은 것으로 간주된다.
자매들은 무릎 이하로 내려가는 옷을 입는 것이 합당하다. 미니스커트 No(마5:28의 음욕)
대화 시 남자에게 욕망을 일으키지 않는 수준, 땅에까지 닿는 치마 불필요.
그러면 꼭 치마여야 하는가? 이런 문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본성을 사용하여 판단하게 하신다.
고전11: 남자와 여자의 머리 문제, 여자는 길게, 남자는 짧게, 본성도 남자의 긴 머리는 아니라고 한다
(14). 여자의 긴 머리는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 남자와 여자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이면 된다.
남자와 여자의 옷도 본성적으로 알 수 있다: 전 세계 모든 화장실, 말은 달라도 남자는 바지, 여자는
치마로 표기가 되어 있다. 본성을 고려할 때 여자는 치마를 입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면 꼭 치마를 입어야만 하는가? 성경의 답은 “아니다.”이다. 바지를 입어도 된다. 다만 단정하게
얌전하게 입어야 한다. 여기서 얌전함은 여성의 신체 형태를 드러내지 않은 수준이어야 한다(음욕).
그러므로 여자의 몸의 형체를 드러내지 않는 수준의 적당한 바지는 허용이 된다.
단정하다는 것은 적절하다는 것이다: 운동, 등산, 카누 등을 할 때는 여자도 운동 바지를 입어야 한다.
치마면 다 되는가? 아니다. 몸을 조이는 치마는 바지보다 못하다.
남자는 양복을 입고 여자는 치마를 입으면 영적인 사람인가? 외적 모습은 영성의 판단 기준이 아니다.
다만 내적으로 영이 단정한 사람은 외적으로도 그것이 표출된다(눅6:45).
결론
우리 교회의 옷차림 기준: 공예배에서 남자는 정장, 칼라 있는 셔츠, 여자는 무릎 이하의 치마나 바지,
다만 예배 때 섬기는 사람은 반드시 정장, 치마(주의 만찬, 찬양, 기도, 말씀 낭독, 안내 등).
우리의 말과 행실이 다른 사람들에게 실족거리를 주는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https://youtu.be/m2TNeb5Xomc?list=PLMMgsQcVExdkRhbIZXr8alXlUGOkRRr7C
베드로전서 강해 08_그리스도인의 행복 비결 (벧전 3: 8~17)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킵바이블, keepbible, 세대주의)
베드로전후서 강해 08: 그리스도인의 행복 비결
성경말씀: 벧전3:8-17
한국이든 미국이든 오순절/은사주의가 맹위를 떨친다. 핵심: 큰돈 헌금하고 교회를 위해, 목사를 위해
충성하면 현세에서 복을 받는다는 것, 과연 그럴까?
나 역시 나를 포함한 우리 교회 성도들이 하늘에서의 복뿐만 아니라 현세의 복을 충만히 받기 원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구약과 신약의 복의 내용이 현저히 다르다는 것이다.
구약은 땅의 백성, 땅의 복, 신약은 하늘의 백성, 하늘의 복
구약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과 고난을 저주로 보았다. 모세 오경 등의 말씀을 보면 그렇게 되어
있다. 다만 영의 눈이 열린 믿음의 사람들만 구약시대에 살면서도 나그네와 순례자로서 하늘의 도시를
바라보며 고통과 고난을 이겨냈다. 누구 하나 핍박과 고통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하나님은 하늘의 복을 받은 성도가 이 시간 땅의 복도 받기를 원하신다.
특히 지금처럼 순교 당하는 때가 아닌 때에는 더더욱 땅의 복도 받으면 좋다.
그래서 신약 성경에도 가끔씩 땅의 복을 누리를 비결이 나와 있다. 오늘 읽은 벧전3장이 그중 하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편적인 복을 주시며 그것을 누릴 수 있는 보편적인 방법을 알려주신다.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고는 돈/재물 등을 가지고 와서 복을 구하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과 관계를 바르게 맺는 것, 그분의 방법대로 사는 것이 복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이 비결을 잘 따르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건강하게 행복하게 장수할 수 있다.
9-11절 읽기, <그리스도인의 행복 비결>, 특히 아이들과 청년들을 위해서 이 말씀을 전한다.
교회 안에서(8)
성경대로 따르면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반드시 핍박을 받게 되어 있다(딤후3:12).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성도들은 한 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해야 한다.
한 마음: 한 믿음, 한 성경, 한 교리에서 나온다.
형제로서 사랑하고 동정하라.
성경에 비추어서 “나는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예의 바르게 행해야 한다. 말을 놓지 말라
불신자들에게(9)
세상 사람들에게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축복하라.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참으로 지키기 어려운 것이다(마5:43-48). 그렇게 하라고 권면하신다.
샘 존스 목사 집회, 노름꾼의 간증, 그리스도인 아내와 결혼. 아내의 권유에도 듣지 않음.
다른 노름꾼과 함께 11시에 노름판에서 나옴. 커피가 먹고 싶다. “내 아내가 끓여 줄 것이다.”
“어떻게 천사 같은 부인이 마귀 같은 내 친구와 삽니까?” “저는 남편을 사랑합니다. 제 남편은 이제
영원토록 지옥에서 불행하게 살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서라도 제가 행복하게 해 주어야지요.”
남편의 회개
이렇게 하면 영원한 복을 상복 받는다. 이게 복 받는 비결이다.
베드로전서의 실제적 교훈: 말이 아니라 행실로 구원시켜야 한다(3:1).
행복한 삶을 살려면(10-11)
성경에 나오는 장수의 비결: 엡6:1-3
벧전3:10-11은 일반적인 규칙을 말함, 이것은 원래 다윗의 시편(34:11-16)
삼상16장, 어린 나이에 골리앗을 죽임, “천천, 만만”, 이때부터 어려움이 생기기 시작함. 가장 가까운
사울에게서 핍박이 들어옴, 왕의 사위가 됨, 그의 딸과 아들이 다윗을 보호함,
삼상21:10-15, 사울의 추격을 받다가 블레셋 땅으로 도망감, 아기스(이름), 아베멜렉(호칭),
살아남기 위해 미친 체 하면서 경멸의 대상이 됨. 이 정도로 성도가 핍박받는 경우가 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다윗은 교훈을 주려고 이 시편을 기록하였고 베드로는 로마의 압제 하에서 고난당하는
성도들을 위해 이 시편을 인용하고 있다. 즉 다윗과 같은 심정으로 어려운 세상을 살아라.
34:11, 왕이 된 이후에 젊은이들에게 하나님 두려워하는 것을 가르치려 함. - 16 -
다윗의 삶의 특징: 주를 두려워하는 것, 베드로도 같은 마음으로 격력하고 있다.
12절, 사람은 누구나 건강하게 장수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나쁜 것이 아니다.
13-14절은 벧전 10-12와 같다.
1. 혀를 조심해야 한다(10, 약3:2, 5-12, 잠18:21). 교회에서, 사회에서의 다툼이 많은 경우
혀로 인해 생긴다. 혀의 말다툼에서 벗어나도록 기도해야 한다(시31:20). 다윗의 시
2. 교활한 것을 말하지 말라(10), 특히 목사들은 조심해야 한다. 숫자를 늘리거나 거짓 보고 No!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만을 말하리라고 다짐하라(엡4:15).
3.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라(11). 청년들이 음행/주초를 피하려고 노력해야 한다(시25:7). 나무와
못
4. 모두의 유익을 위해 화평을 구하고 따르라(11, 롬12:18). 심지어 부부의 갈등(고전7:13-15)
5. 주님의 눈은 의로운 자들을 내려다보신다(12). 여기의 의인은 의롭게 사는 자를 뜻한다. 구원받고도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자들이 있다(약4:4). 행복하게 장수하려면 의롭게 살아야 한다.
6. 이때에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12). 응답 받는 기도의 핵심: 의롭게 정직하게 부지런
하게 살아야 한다.
7. 주님은 악을 행하는 자를 대적하신다(12). 이것을 기억하고 피하라.
8. 그렇게 살면 불신자들도 우리를 해치지 않는다(13). 바울이나 다니엘 등과 같은 예외도 있지만
이것은 일반적인 법칙이다.
9. 그런데 선하고 의롭게 살다가 예수님과 천국과 지옥을 증언하며 말씀을 전하면 돌아서는 이들이
많다. 이때에도 두려워하지 말라(14). 약5:11의 위로, 히13:6, 이런 경험이 어려움을 당하는
자들에게 위로가 된다(고후1:3-5).
10. 주 하나님을 거룩하게 구분하라(15).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라. 주인 대접하라.
11. 소망의 이유를 답하기 위해 예비하라. “예수만 진리냐? 종교는 다 같지 않냐? 킹제임스 성경,
침례 등의 좁은 길을 가느냐? 너만 잘 믿느냐?” 성경대로 답하여야 한다.
a. 우리의 상태(죄와 죄들), 번민과 고민, 양심의 찔림
b. 내 힘으로 혹은 다른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
c. 우리의 문제는 우리의 창조자만 해결하신다.
d. 사람이 되어 오셨다. 복음, 단번 속죄
e. 은혜로 믿음을 통해 거저 영원히 얻는다.
f. 그래서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부활과 휴거에 있다. 예수님은 반드시 오신다.
g. 복음의 언어인 침례를 행한다.
h. 성경대로 하려고 노력한다.
i. 바로 그 하나님이 성경 말씀을 보존하신다.
12. 이 모든 대답을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해야 한다.
a. 베드로는 구원받은 이후의 선한 행위를 무엇보다 강조한다.
결론
하나님은 국가의 제도적 핍박이 없는 평화의 때에 보편적인 방법으로 모든 성도들이 땅에서도 복을 받기를
원하신다.
목사로서 나도 성도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여기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악을 멀리하라는 조건이 따라붙는다.
말조심, 행동 조심, 하나님 대접하기, 온유하게 대답 예비
이런 보편적인 법칙의 준수를 통해 땅에서의 행복이 온 성도들에게 임하기를 원한다.
https://youtu.be/Evr4mzo4pfU?list=PLMMgsQcVExdkRhbIZXr8alXlUGOkRRr7C
(14. 9. 7) 베드로전서 강해_09 (벧전 3:18~22)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킵바이블, keepbible, 세대주의)
베드로전후서 강해 09
베드로전서 3장
베드로전후서는 그리스도인의 고난을 다룬다. 특히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큰 고난이 있었다.
그리스도인의 고난
13절: 선한 것을 따르면 원래는 해할 자가 없어야 한다.
14절: 그러나 의로 인해 고난당하는 경우가 있다(마5:3, 6, 10-12). 이 경우 우리는 행복한 자다.
그들이 두렵게 하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라. 불안해하지 말라.
15절: 주 하나님을 거룩히 구별하라. 소망의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온유하게 대답하라.
16절: 선한 양심을 가지라. 딤전1:5, 19-20, 그리스도인의 양심이 작동하지 않으면 타락하여 멸망한다.
17절: 잘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일 수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
우리 성도들 킹제임스 성경, 신약 교회, 은혜 구원, 환난 전 휴거, 이것들을 외치면 고난이 온다.
바울, 구원받기 전에는 No problem, 은혜의 복음을 선포하자 죽음이 그를 따라다님. 마귀가 미워함.
그리스도의 고난
우리의 구원의 대장이신 그리스도께서도 몸소 고난을 당하셨다(히12:2).
18절: 그리스도의 단번 대신 속죄, 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한 번 고난을 당하심. 신구약성경
의 핵심, 복음의 핵심, 부활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려가시려고.
복음의 핵심: 십자가와 부활(롬10:9-10)
19-20절: 죽음부터 부활까지의 그리스도의 사역
a. 주님의 말씀(마12:38-40), b. 주님의 십자가 처형 아마도 수요일 혹은 목요일
c. 예수님의 몸은 부자의 무덤에, 영은 아버지께, 혼은 지옥에, 그러면 그분의 혼만 가시는가? 사람이
죽으면 몸은 무덤에, 영은 하나님께(전3:19-21, 여기의 영은 숨이다), 혼은 천국이나 지옥에,
이렇게 된다고 해서 죽임 이후에 영과 혼이 분리되는가? 아니다. 사람은 영과 육과 혼이 있어야
사람이다. 여기서도 천국에서도, 지옥에서도. 눅16장의 아브라함, 나사로, 부자 모두 전체적으로
인간이다(영과 육과 혼, 다만 여기의 몸은 최종의 몸이 아니라 중간 단계의 몸이다). 우리 예수님도
전체 인격체로 지하 세계에 내려가셨다.
c. 행2:23-32(시16:8-12)
d. 구약의 지하세계(넓은 의미의 지옥)는 아브라함의 품, 구렁텅이, 지옥, 타락한 천사들의 거처로
구성되어 있었다. 좁은 의미의 지옥은 불신자들이 가는 곳이고 타르타로스는 노아 당시의 타락한
천사들이 가는 곳이다(벧후2:4). 이곳은 노아 당시 타락한 영들(20절)이 있는 감옥이다.
e. 창6:1-4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사들이다(욥1:6; 2;1; 28:7). 이들은 자기들의 처음 신분을
버리고 처소를 떠나 땅에 내려와 타락하였다(유6). 거인 종족을 생산하였다.
f. 우리 주님은 성령님의 파워를 힘들어 지하 감옥으로 가셔서 그들에게 승리를 선포하셨다. 19절에서
‘선포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복음을 선포하다는 의미의 ‘유앙겔리조’가 아니라 선언하다는 의미
의 ‘케륏소’이다. 그러므로 그 영들에게 일방적으로 그리스도의 승리를 선포하신 것이다.
g. 천주교회는 이 감옥을 연옥이라 해석하고 영들에게 다시 복음이 선포되어 둘째 기회가 주어지는
것을 해석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h. 영어, 원어, 천주교의 사도신경에는 ‘He descended into hell’이 있지만 개신교 것에는 이
부분이 삭제되어 없다. 카톨릭 교회에서는 그분께서 저승에 갔다고 버젓이 신성모독을 하고 있다.
i. 개신교 사도신경: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j. 천주교 사도신경: 못 박혀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저승(고성소)에 내려가서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고성소: 착하게 산 구약의 성인들이 예수님을 기다리던 곳
k. 원래대로 번역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묻히시고 지옥에 내려가셨다”로 해야
한다. 개신교는 연옥 때문에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빼 버림. 영어에는 그대로 남아 있음.
l.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 약속하신 대로 낙원에 즉 지하세계의 지옥
부분에 내려갔다가 올라오셨음을 보여 준다.
m. 사도 바울 역시 에베소서 4장 8-10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n. 둘째 기회가 주어지는가? No!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이것 뒤에는 심판이 있나니(히9:27)
o. 연옥: 카톨릭 교리에서 연옥은 천국으로 가기에는 자격이 부족하지만 지옥으로 갈 정도의 큰
죄를 짓지 않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머무르는 곳이다. 영혼들은 연옥에서 보내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해 이승에서의 죄를 씻고 정화한다. 연옥이 정죄계(淨罪界, 깨끗함과 죄 사이의 경계)나 정화소
(淨化所, 깨끗해지는 장소)로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p. 연옥은 없다. No! No!
20절: 이 영들은 노아 시대에 불순종하던 영들이다. 모든 시대에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아니다.
a. 방주 안에서 물에 의해 구원받은 자들은 8명이다.
b. 120년 동안 노아가 의의 선포자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였으나 아무도 믿지 않음(벧후2:5).
c. 물은 모두를 멸절시켰지만 오히려 물에 의해 구원받은 자들이 있었다.
21절: “침례가 우리를 구원한다.” 맞는가? Yes and No! 성경은 앞뒤 문맥을 잘 보고 해석해야 한다.
a. 물 침례는 사람을 구원하지 못한다. 그 어떤 종교 행위도 사람을 구원하지 못한다.
b. 여기서는 그냥 침례가 아니다. 그 일과 동일한 모형(figure)인 침례이다.
c. 그러면 그 일은 무엇인가? 물에 의해 구원받은 일, 모형은 figure이다. 사과 3개, 수자로 3이라고
쓴다. 3은 사실 사과가 아니다. 사과 세 개가 진짜 사과이다. 침례는 수자 3과 같고 그 일의
실체는 죽음을 통해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노아ㅢ 물이 사람을 구원했듯이 사실 죽음이
그분을 승리하게 만들었다. 바로 이 일의 모형이 곧 침례이다.
d. 침례의 가장 큰 의미는 그분과 동일시되는 것이다. 눅12:50, 침례는 1차적으로 죽는 것이다.
묻히는 것이다, 부활하는 것이다.
e. 그래서 베드로는 침례를 가리켜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햐 응답하는 것’이라고 함. 그러므로
여기의 침례는 물 침례가 아니다. 예수님과 동일시되기 위해 반응하는 것이다.
22절: 그 결과 주님은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왕좌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시110:1) 모든 영적 존재들이
그분께 복종한다.
결론: 예수님은 고난을 당하시고 결국 영광을 얻으셨다(빌2:5-11).
성도들도 마찬가지로 의로 인해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이 영광으로 갚아 주신다.
https://youtu.be/a0WG_CHx2r0?list=PLMMgsQcVExdkRhbIZXr8alXlUGOkRRr7C
(14. 9.21) 베드로전서 강해_10 (벧전 4:1~11)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킵바이블, keepbible, 세대주의)
베드로전후서 강해 10
베드로전서 4장
성도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특히 시간 관리, 1-11)
성도가 영원에 관심을 둔다면 지금의 이 짧은 시간(육체 안의 남은 때 2절)을 바르게 쓰려고 노력해야
한다. 보상의 심판이 있다. 성화에 신경을 써야 한다. 구원이 끝이 아니다.
1절: 죄에 대해 전투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
나이아가라 폭포 이야기, 죄를 용인하면 곧바로 죄의 노에가 된다.
그래서 죄에 대해 전투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 죄에 무감각한 크리스천은 마귀의 도구
예수님이 하신 일, 죄 문제 해결, 몸소 죄의 본질을 보여 주심(여자를 보고 간음하는 것, 십일조를
하면서 판단의 공의, 긍휼, 믿음 무시), 죄와 죄들의 차이, 그리고 죄가 되셔서 죄를 완전히
정복하심, 이를 위해 고난당하심
그래서 우리의 목표는 죄를 그치는 것, 이 삶에서는 불가능하지만 목표를 삼아야 한다. 죄를 미워하는
태도, 성화(롬6:3-7)
고난이 죄 짓는 것을 막지는 않는다(파라오). (우리 안의 그리스도)로 인해 믿음으로 고난당하라.
2절: 육체 안의 남은 때(긴 때, 짧은 때), 사람들의 정욕(3절의 이방인들의 뜻) 혹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뜻을 악용하면 사람의 정욕을 채우는 일이 생긴다. 하나님의 뜻은 그분의 마음에서 나온다(시33:11).
거룩함
3절: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라. 이스라엘은 한때 노예였다(신5;15). 바울은 신성모독하는 자(딤전1;12)
이방인들이 하고자 하는 바, 이 세상(요일2:15-17)
4절: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우리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다. 가정 폭력, 붕괴, 이혼, 테러, 살인,
사기 등을 모두 가볍게 여긴다(창6:12-13). 그래서 우리가 같이 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여긴다(잠
1:8-16).
5절: 결국 이들은 희고 큰 왕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계20:11-15).
6절: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 모든 것을 회계 보고해야 하므로 , 죽어 있는 자들에게 복음이 선포되었다는
둘째 기회를 뜻하지 않는다(히9:27).
이들은 베드로 당시에 구원받고 죽어 있는 자들, 그들은 육신으로는 사람들의 판단을 받고 고난을
당했지만 영으로는 살아서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이 되었다(2,3절과 비교).
7절: 임박한 재림, 고전15:51-52의 ‘우리’, 딤후4:8
임박한 재림으로 인해 적어도 10개의 명령을 준다.
1. 정신을 차리라(7). 2. 깨어 기도하라(7). 3. 뜨겁게 사랑하라(8), 4. 대접하라(9). 5. 청지기로서
섬기라(10-11), 6. 이상히 여기지 말라(12), 7. 기뻐하라(13), 8. 부끄러워하지 말라(16),
9.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16-18), 10. 하나님께 맡기라(19).
정신을 차리라: 술 취하지 말고 신중하라. 목사의 자격(딤전3:2), 성도들(딛2;1-6), 이것이 부족하
면 이단, 사이비, 평생 속박에 빠진다(벧전5:8). 특히 재림 관련해서, 천국지옥 예언
그러면 깨어서 기도하게 될 것이다. 나라와 민족과 불신자 구원과 영적 침체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밤12시에 깨어 있으면 안 된다. 경계심을 가지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면 영과 육과 혼이 정신을 차린다.
8절: 재림을 기다리면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한다. 뜨겁게 사랑한다. 옆의 성도에게 관심을 두라.
내 아내의 사고, 임 자매 어머니 장례식, 그래서 교회가 필요하다. 용서하게 만든다.
9절: 잘 대접한다(목사). 우리 교회는 잘 대접해야 한다(방문자, 다른 교회 목사, 선교사). 히13:2
10절: 청지기로 섬겨야 한다. 청지기, 모든 사람에게 섬길 것을 주셨다(롬12:3-8; 고전12:4-11).
교회에는 여러 지체가 있다(고전12:27). 27-30 설명
모두가 잘 섬겨야 교회가 성장할 수 있다.
정동수 목사님 프로필
- 학 력 -
인하대학교 기계공학 학사(1982)
캐나다 뉴브런스윅 주립대 기계공학 석사(1984)
미국 매리랜드 주립대 기계공학 박사(1988)
미국 펜사콜라 신학대학원 석사(2001)
목사 안수(2001)
- 경 력 -
현,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1992-현재)현, 사랑침례교회 담임목사
http://www.cbck.org/html/ 사랑침례교회
http://cafe.daum.net/Jesus-bible 예수그리스도안에서(카페)
http://www.keepbible.com/ 킵바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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