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도로-부조리극의 미장센
미장센(mise-en-scène)은 연극이나 영화에서 무대나 카메라 속한 장면을 시각적으로 조직하고 배치하는 연출 행위 전반을 일컫는 말이다. 어원이 '연극'에서 나온 이 용어는 하나의 장면이 시각적으
로 기획되고 조작된 '인공무대'라는 뜻을 원천적으로 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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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풍경은 반대다. 그것은 거대한 미장센이다. 도시는 자연적 시간의 일관된 산물이 아니다. 풍경은 다른 시간과 공장에서 생산된 복잡한 기계부품처럼 파편적인 요소들로 분할되며, 개별적이고 어지러운 이미지 조각들로 조립 · 배치되어 있다. 이 풍경에서는 한 대상이 또 다른 대상을 지배하기도 하고, 하나의 오브제가 풍경 전체를 상징하는 암시적 이미지를 거느리기도 한다. 어떤 강력한 의지와 조작적 의도를 통해 풍경이 일련의 연극적 배치로 기능할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눈에 띌 만한 강력한 구조물은 도시의 연극적 성격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오브제가 될 수도 있다.
허공에 건설된 '고가도로'는 도시의 시간에 미래를 도입하고, 지상에 '천국'을 기입하기 위한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기술과 속도에 열광한 20세기 초 이탈리아 미래주의자들의 건축스케치 중에는
고가도로에 대한 것이 적지 않다. 산업화를 군사작전의 일종으로 여겼던 과거 산업화 시대의 한국의 정치공학이 이사물에 매료되었던 이유는 쉽게 짐작된다.
서울 최초의 고가도로였던 아현고가도로가 근래 완전히 철거되었다. 아직도 서울에는 80여 개의 고가도로가 있다. 근처를 지날때마다 내가 눈여겨보는 것은 그 위의 도로가 아니라 사시사철 드리운 고가 밑의 무겁고 음습한 그림자다. 이 그림자가 시간의 어둠으로 전화되면, 예전에는 여기에 노골적인 밤술집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현대시의 창시자로 불리는 보들레르의 시들에서 찬란한 파리는 술 파는 여자들의 도시이기도 했다. 한때 현대성의 상징이었으나 지금은 가장 퇴락한 것의 이미지를 갖게 된 서울의 고가도로는 도시가 부조리극의 연극적 미장센일 수도 있다는 걸 상기시키는 사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