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인 학살 항공사진 공개''유럽 들썩
영국 등 연합군, 유태인 학살 알고도 숨겨온 정황 드러나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공군이 촬영한 유럽대륙 및 독일군의 만행을 보여주는 사진 500만장이 20일(현지시간) 인터넷에 공개될 예정이어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20일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영국 킬리대학에 있는 영국 국가문서보관소가 인터넷상에 전쟁 당시 영국공군 정찰기가 독일과 기타 다른 나라상공에서 찍은 첩보사진을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공개될 사진은 우선 500만장이나 돼 아직 알려지지 않은 전쟁의 참상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벌써부터 유럽대륙을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진 공개를 통해 전쟁 중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들이 유태인학살같은 반인륜범죄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무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 뜨거운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공개를 기획한 킬리대학의 앤런 윌리암스교수는 "사진 자료가운데는 지난 1943년과 1944년 폴란드에 있는 유태인학살수용소인 아우슈비츠 상공에서 찍은 것이 다수 포함돼 있다"며 "이 사진에는 시체소각로에서 나오는 연기와 유태인들이 점호를 받기 위해 수용소 앞마당에 줄지어 서 있는 장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윌리암스는 "지금까지 영국 측은 소련군이 아우슈비츠를 해방시킨 1944년 말과 1945년 미군과 영국군이 베르젠, 다하우같은 독일내에 있던 수용소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유태인학살에 대해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미 전쟁초기부터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윌리암스는 또 "1943년부터 1944년 사이 1년 동안 아우슈비츠에서만 유태인 43만명이 숨졌는데 연합군은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이들을 구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물론 영국이 이런 비극적인 학살사례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의견은 지금까지 수없이 제기됐다. 특히, 폴란드 망명정부의 외교관인 얀 카르스키는 "지난 1939년 영국과 미국 측에 유태인학살과 게토에 대한 정보를 넘겨줬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없어 학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 사진공개를 통해 카르스키의 주장이 사실로 입증될 경우 미국과 영국은 유태인학살을 알면서도 무시한 도덕적 비난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 사진 가운데는 지난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독일군에 의해 사살된 미군들의 시신으로 가득한 바닷가 정경과 독일이 자랑하던 신형전함 비스마르크호가 노르웨이 해안에 숨어 연합군의 폭격을 피하는 장면도 있다.
당시 비스마르크를 촬영한 영국군 정찰기 조종사인 마이클 서클링은 "노르웨이 피요르드해안 사이에 숨어있는 비스마르크를 찾기 위해 1달간이나 비무장비행기를 몰고 노르웨이에서 작전을 수행했다"며 "내가 촬영한 사진을 토대로 영국해군은 비스마르크의 최근 위치를 파악, 1주일 뒤 격침시켰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서클링이 주장하는 것처럼 전쟁에 연합군이 승리하는데 정찰사진이 중대한 역할을 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미 1943년 초 독일군의 암호체계인 '에니그마'가 해독돼 독일군의 부대이동사항같은 중요정보를 연합군이 입수할 수 있었고 다만 정찰사진을 통해 이미 확보된 정보가 정확한지 여부만을 확인했다"고 주장한다.
"사진 가운데는 1945년 6월 연합군 폭격으로 처참하게 파괴된 독일의 쾰른시의 모습도 포함돼 있어 독일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개심보다는 전쟁의 비참함을 일깨우는 취지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문서보관소 관계자들은 밝혔다.
첫댓글 독일전함명이 잘못되었습니다. 비스마르크가 아닌 2번함 텔피츠입니다. 비스마르크는 대서양에서 작전중 영국해군의 공격으로 침몰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기사에 나온대로 이 조종사는 피요르드에 숨어있던 비스마르크를 발견해 위치를 알려줬고 이것을 토대로 비스마르크의 항로를 파악해 파괴한 것이니 피요르디지역이 격침지역은 아닙니다. ㅈ베가 쓴 글이 아니다보니 부연설명을 달 수 없었습니다
여기 나온 사진 역시 CBS측이 공개사진을 구할 길이 없어 라이프에 나온 것을 수록햇답니다. 상식적으로 위치가 드러난 전함이 그대로 거기 잇을 리가 없죠? 제가 알기로 비스마르크는 도주하던 중 격침된 것으로 압니다.
비스마르크는 피요르드에 한달씩 숨은적이 없습니다. 대서양출정은41년 5월18일이고 침몰은 5월28일입니다노르웨이 해안에서의 연료재보급은 5월21일 이날 영국 정찰기에 촬영되 영국해군의 출동합니다.
다시 기사 잘 읽어보세요. 한달간 비스마르크가 숨어 있던 것이 아니고 이 조종사가 한달간 찾아다녔다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가 5월 21일날 촬영한 사진을 토대로 1주 뒤에 격침시킨 것입니다. 기사 다시 한번 보시기를 바랍니다. 내용이 많다보니 혼동이 가능합니다.
이 사람 말대로 1주일 뒤에 배를 찾아내 격침시켰다면 비스마르크가 맞습니다. 그리고 자매함 이름은 텔피츠가 아니라 독의의 해군제독 Alfred Tirpitz 의 이름을 딴 티르피츠호입니다.
아 한달간 수색햇다는 이야기군요. 함명은 예전에 아카데미 키트나 자료서적에 텔피츠라고 되어 잇어서... 독어를 잘몰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