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9일 일요일 맑음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버스를 타고 어제 오후에 더블린에 도착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제일 가까운 슈퍼도 제법 멀었다. UCD 대학 캠퍼스에도 잠시 들어가 보았다. 다음에 다시 둘러보기로 했다. 동네는 주택가라 조용하고 깨끗하다. 누룽지를 끓여서 식사를 했지만 뭔가 부족했다. 슈퍼(SPAR) 안에 있는 작은 빵집에서 빵과 캐밥을 사서 먹었다. 일단 시내로 나가기로 했다. 트램(LUAS) 타는 곳을 알 수 있도록 표지판이 잘 세워져 있다. 걸어가는데 남은 거리와 걸리는 시간도 기록되어 있다. 찾아가기는 쉬운데 집과 거리가 좀 멀었다. 트램은 깔끔하고 예쁘다. 제법 사람들이 많이 타고 다닌다.
더블린에는 지하철이 없고, 트램의 역할을 하는 수단이 바로 LUAS(루아스)이다. 루아스는 2004년에 개통한 경전철이다. 시티센터 주변은 주로 도보나 버스를 이용하고 약간 시티에서 벗어난 더블린외곽으로 갈 때는 루아스를 이용한다. 루아스는 크게 빨강과 초록으로 나뉘며 빨강 라인은 더블린의 동서로, 초록 라인은 남북으로 다니고 있다. 요금은 구역에 따라 책정된다. 루아스의 티켙은 일회용도 있지만 7일과 30일 권도 있다. 카드는 정류장 마다 단말기가 설치되어 있는데 요금을 내는 것은 자율에 맡긴다. 검사하는 사람이 없다. 그냥 타고 내리는 데 아무 장애가 없지만 만약에 공짜로 타다가 불시에 직원들이 루아스에 타서 검사를 해서 걸리면 현장에서 창피를 당할 뿐만 아니라 30배의 범칙금을 내야한다. 주로 감시 대상이 관광객이다. 우리는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일회용을 끊어 승차를 했다.
Windy Arbour 정류장에서 6 정거장을 가면 종점, 시내다. 전철역 종점에서 내려 그라프턴 거리를 걸어간다. 차가 다니지 않는 보행자 거리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고 거리의 예술가들이 나와 저마다 뽐내는 모습에 여행자를 즐겁게 한다. 오전이라 예술가들이 하나도 없다. 상점을 열고 판매를 준비하는 상점들이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그라프턴 거리는 영화 원스의 촬영 장소로도 유명하다. 영화의 첫 장면과 Say it to me now를 부르고 그와 그년가 만나던 장소다. 스테판 공원 앞이다. 공원 건너편에는 프랑스 유명 브랜드 상점도 있다. St Stephen's Green 세인트 스테판 그린은 영화에서 동전 든 기타 가방을 들고서 튀었던 소매치기와 글랜이 달리기 하다가 멈췄던 바로 그곳이다. 다양한 식물과 꽃, 넓은 잔디 밭, 호수, 분수, 등을 갖추고 도심 중간에 자리 잡고 있는 큰 공원이다. 정문이 꼭 개선문 같다. 공원 내에는 여러 개의 모뉴먼트가 있다. Famine Memorial, 기근이라는 제목의 기념물이 인상적이다. 머리가 없는 사람이 깡마른 사람에게 뭔가를 먹이고 있다. 아일랜드에 닥쳤던 대기근의 역사를 모티브로 한 것 같다. 19세기 말 아일랜드는 심각한 대기근으로 많은 사람이 아사했거나 전염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주식인 감자의 감자마름병도 원인이지만 가장 큰 원인은 영국인 지주들의 지나친 곡물 착취로 인하여 많은 아일랜드 인들이 굶어죽게 되었단다. 영국을 싫어하는 아일랜드 인들의 심정을 좀 알 것 같았다. 공원은 새들의 천국 같다. 호수에 모여든 각종 조류들이 주인인양 노닐고 있다. 제임스 조이스(1882~1941) 흉상도 있다. 공원길을 따라 걸어간다. 바이킹 투어 버스 정류장이 있다. 트럭을 개조해 배 모양을 만들고 노란색으로 치장한 투어버스다. 특이하게 투어 객들은 바이킹 모자를 쓰고 있다. 흥겹게 시내투어를 한다. Edward Delaney's Famine Memorial를 만났다. Edward Delaney (1930–2009)는 아일랜드 출생의 유명 조각가이다. 공원 내에도 기근이라는 작품이 있지만 공원 외부 모서리에도 그의 작품이 있었다.
아일랜드 국기가 눈에 들어온다. 부드러운 녹색은 섬나라를 상징하며 로마 가톨릭을 상징한다. 흰색은 전 세계 종교 집단과의 화해와 단결을 상징한다. 주황색은 개신교, 특히 북쪽에 집중하여 살고 있는 장로교를 상징한다고 한다. 아일랜드 국화는 토끼풀이다. 토끼풀이 아일랜드의 국화가 된 연유를 보면 기독교의 성자인 성 패트릭이 아일랜드에서 선교활동을 벌일 때 아일랜드 국왕과 귀족들 앞에서 토끼풀, 즉 클로버의 세 잎을 가지고 성부, 성자, 성령 등 삼위일체를 비유하여 강론을 하였다고 하는데 이것을 계기로 클로버(토끼풀)가 아일랜드의 국화로 되었다고 한다.
더 걸어가니 관공서 건물들이 가득하다. 박물관도 많다. 국립박물관, 아일랜드 역사 박물관, 고고학 박물관, 국립 도서관 등 묵직한 건물들이 서로 마주하고 있다. Merrion Square 메리온 스퀘어 공원에 잠시 들렀다.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까지 포함한 구역을 메리언 스퀘어라고 부른다. 1762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800년대 초반에 완성되었다. 조지안 양식으로 만든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서 조지안 더블린 중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변 건물은 1950년대까지 대부분 주거용으로 쓰이다가 현재는 사무용 건물로 많이 쓰인다. 너무나도 예쁘고 고풍스럽다. 특히 각양각색의 문들이 너무 인상적이다. 유명인들 중에 예이츠가 82번지에, 다니엘 오코넬이 58번지에 살았다고 한다. 종로구 세종로 1번지에 청와대가 있다면 더블린 메리언 스퀘어 1번지에는 오스카 와일드가 살던 집이 있다.
오스카 와일드(1854~1900)의 조각상을 만났다. 기네스 그룹이 지원하고 조각가 Danny Osborne가 만들었다. 특이하다. 아일랜드의 유명한 작가다. 빅토리아 시대의 가장 성공한 극작가로 유명하다. (행복한 왕자)를 비롯해 (켄터빌의 유령),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등 수많은 작품이 지금도 사랑을 받고 있다. 트리니티 칼리지와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했다. 흥미롭게도 그는 당대 최고의 댄디보이이기도 했다. 의상 개혁이 종교개혁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던 만큼 웨이브 장발과 세련된 모자, 실크 스타킹과 반바지로 자신을 어필했다. 그래서 일반적인 동상과는 다르게 옷도 컬러 풀 하고 포즈도 거만하다. 동상의 얼굴도 실감나게 표현했다. 어릴 때 읽었던 (행복한 왕자)-제비와 함께 온 몸의 금조각과 사파이어로 된 눈까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행복해 한 왕자 동상 이야기다. 아름다운 동화를 지은 작가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표정이 코믹하고 거만해 보이는 동상이다.
그는 여자에 대해 ‘여자는 사랑 받을 대상이지, 이해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 앞에는 오스카 와일드의 비운의 부인동상이 있다. 오스카 와일드로부터 시선을 피하고 있는 모습이다. 오스카 오일드의 무덤은 프랑스에 있다는데.........프랑스에 있는 오스카 와일드의 무덤은 관광객들이 무덤에 키스하는 것을 막기 위해 유리벽이 세워졌다. 파리 페르 라세즈에 자리한 그의 무덤 묘비에는 1999년 누군가 립스틱 키스 자국을 남겨 놓았다. 이후 무덤을 찾은 관광객들은 너도나도 립스틱을 입술에 바르고 묘비에 키스 자국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묘비는 립스틱 자국으로 뒤덮였다. 그러나 립스틱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석재에 스며들어 관리가 힘들어지게 되었다. 결국 유족측은 묘비를 대대적으로 청소하고 그 앞에 보호 유리벽을 세워 공개했다. 외신은 와일드 묘소 참배 키스 열풍은 유리벽 설치 이후에도 계속되어 근처에 있는 나무에 누군가 벌써 장밋빛 키스자국을 남겨놓았다고 한다. 와일드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외치던 탐미주의 작가다. 그는 두 아이를 둔 가장이었다. 시와 소설, 희곡으로 한 세대를 풍미하던 그는 동성애 유죄판결로 유죄판결을 받고 징역형을 살고 1879년 석방되었다. 그 후 파리로 왔으나 다시 창작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1900년 호텔방에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묘비는 영국 조각가 제이콥 엡스타인의 작품으로 앗시리아 양식의 천사가 나는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다. 죽어서도 이렇게 전 세계 많은 여인들에게 키스를 받는 행운의 남자다.
어린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도 잘 만들어져 있다. 아일랜드 독립의 역사에서 빠질수 없는 마이클 콜린스의 흉상도 보이고, 예술작품 같은 청동제 의자도 잔디밭 구석에 있다. 이 공원을 들어와서 우리가 애타게 찾은 것은 화장실이다. 아무리 화장실을 찾아도 화장실이 없다. 그래서......... 이름 모를 청동 조각상을 하나 더 만나고 밖으로 나왔다. 거리에는 여러 가지 예술 작품을 파는 상인들이 있다. 눈에 들어오는 작품은 똑같은 대문에 디자인과 색상이 다른 그림 소품이 눈에 들어온다. 국립미술관과 국립 박물관 건물 앞에는 사람들이 줄서있다. 거리에는 마차가 경쾌한 소리로 손님을 태우고 달려가고 있다. 1884년부터 1897년까지 더블린의 대주교를 지낸 William Conyngham Plunket의 동상이 있다.
우리는 발걸음을 그라프턴 거리로 옮겼다. 오전에 비해서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여기서는 거리의 예술가들을 만나는 것이 재미있다. 검은색으로 온몸을 치장한 8명의 예술가들이 옆에 달마시안 개를 데리고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다. 개도 움직이지 않고 4명은 의자에 앉아있고 3명은 서있다. 페르시안 풍의 얇은 옷을 입고 춤을 추는 통통한 아가씨들은 배꼽을 다 내놓고 장미꽃을 입에 물고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데 웃음이 나온다. 커다란 비누방울로 꼬마들의 시선을 잡는 젊은이도 있다. 뼈다귀를 소중히 물고 있는 형상을 모래로 조각해 놓은 것도 눈길을 끈다. 깡통을 개조해 만든 키타를 들고 연주하는 총각 옆에는 꽃을 파는 아주머니가 연주를 감상하고 있다. 그 옆에는 전기 키타를 들고 있는 동상이 있다. philip Lynott(1949~1986) 이다. 아일랜드 밴드의 전설적인 보컬리스트이자 베이시스트라고 한다. Grafton 거리 끝, Bruxelles Bar 밖에 있는 이 실물크기의 동상은 Irish 레전드 락그룹 'Thin lizzy'의 전 멤버다. 더블린에서는, 매년 1월마다 'Annual Vibe for Philo memorial gig'라는 이름으로 그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사람들이 베이스에 피크를 끼워놓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동양인도 보인다. 키타를 기가 막히게 연주한다. 플릇 연주하는 아가씨도 보인다. 전자 바이올린과 팬 플릇을 연주하는 두 분이 보이는데 한분은 키가 무척 작고 한분은 팔이 하나 없다. 바닥에 성화를 그리는 영감님도 있다. 재미있는 거리다.
주일이라 교회를 찾아가기로 했다. 한인교회의 위치를 알아두었다. 예배시간은 오후 1시 30분이다. 교회는 아일랜드 교회를 빌려서 모이고 있었다. 참석한 예배드리는 사람들을 둘러보니 주로 젊은 유학생들이었다. 찬양을 30분 정도 한 후 예배가 시작되었다. 설교 말씀이 특이했다. 여름방학 특별 설교가 진행된다. 목사님이 미술사를 공부하시는 분인 것 같다. 설교내용이 빈센트 반 고흐였다. 제목은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하지 않는다 이다. 성경말씀은 고린도 후서 6장 10절~13절이다. 고흐의 작품과 삶을 신앙적으로 소개해 주었다. 고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런던의 미술관에 가서 고흐의 작품 해바라기를 다시 꼭 보리라 다짐했다.
다시 트리니티 대학 앞으로 갔다. 아일랜드 은행 앞에는 4명의 천사상이 있는데 아일랜드의 대기근을 생각나게 한다.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Grafton Street 방향 초입에 위치한 Molly Malone 몰리 마론 동상은 더블린에서도 가장 유명한 동상 중 하나이다. 1988년 밀레니엄 기념으로 세워진 이동상은 아일랜드 사람들이 The Tart with the Cart (매춘부와 수레) 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비꼬기도 한다. 또한 그녀의 이름을 딴 유명한 포크송도 있다. 그녀가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있지만, 그녀가 죽은 날이라고 추정되는 1699년 6월 13일을 기념해서 매년 6월 13일을 National Molly Malone Day라고 부르기도 한다. 몰리 말론(아일랜드 민요) 모든 여자들이 너무나 아름다운 더블린의 Fair City에서 예쁜 몰리 말론을 처음 보았네. 그녀가 수레를 끌 때, 넓고도 좁은 길들을 지나며 외쳤다. 새조개, 펄조게, 싱싱해요 참, 싱싱해요 싱싱해요, 참 싱싱해요. 참 싱싱해요. 새조개 펄조개가 싱싱해요, 참 싱싱해요. 그녀는 생선 장수였다.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이전에 생선 장수였다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그들 모두 수레를 끌어 넓고도 좁은 골목들을 지나며 외쳤겠지. 조개들이 싱싱해요, 참 싱싱해요 그녀는 열병으로 죽었다. 아무도 그녀를 구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다정한 몰리 말론은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녀의 혼령은 수레를 끌며 넓고도 좁은 골목들을 누비며 외쳤지. 조개들이 싱싱해요, 참 싱싱해요!
걸어가는 길에서는 주일이라 교회에서 나온 전도 팀이 찬양과 성경 이야기, 인형극 작은 성경책을 주면서 집회를 한다. 옆에 있는 커타란 벽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율리시즈(ULYSSES)라는 글씨가 보인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제목이다. ‘율리시스’라는 제목처럼 조이스는 구성상의 틀로 그리스 고전과의 대응 관계를 설정해 ‘신화적 방법’을 완성했다. 두 작품의 등장인물도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소설 속의 등장인물 BLOOM 과 BLAZES 이름도 예쁘게 씌어 있다.
더블린 시내를 돌아다니는 중년의 광고 영업 사원 레오폴드 블룸BLOOM은 지중해를 편력하는 신화 속의 영웅 율리시스에 대응하고 있고, 그의 정숙하지 못한 아내 몰리는 정숙한 페넬로페이아에 대응한다. 또한 문학 청년 스티븐 디달로스는 아버지를 찾아 헤매는 텔레마코스, 그리고 몰리의 애인 블레이지스BLAZES 보일런은 유혹자 안티노오스와 겹쳐진다. 이런 대응 속에서 블룸이 정신적인 아들을 찾아 헤매는 것과 스티븐 디달로스가 정신적인 아버지를 찾아 떠도는 것이 엇갈리며, 아버지와 아들의 문제, 추방과 회귀 등과 같은 주제가 부각된다. 총 3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제1부의 3개 에피소드, 제2부의 12개 에피소드, 제3부의 3개 에피소드를 합해 총 18개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백과사전 참고)
우리는 더블린 성에 도착했다. 930년대 덴마크 계 바이킹이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요새와 옹벽이 있던 곳에 세운 성으로 13세기에 세워졌다. 성이라기보다는 궁전에 더 가까운 건축물로 13세기 당시의 노르만족의 건축 양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원래의 성은 1204년 존왕이 건축하였는데 1922년까지 아일랜드 내 영국 세력의 중심지이며 더블린 역사의 중심지로 역할 해 왔다. 튜더왕조 시대에는 감옥, 영국 총독의 관저로 사용하였으며 아일랜드의 볼모들과 성직자들을 잡아두던 장소로도 쓰였다. 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은 베드퍼드타워이다. 1750~1760년 사이 토마스 아이보리가 설계와 건축을 맡은 곳으로 성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다. 1916년 부활절 봉기 때는 영국의 지배에 반대하던 사람들에게 공격을 받았으며, 1922년 독립하면서부터 아일랜드 임시정부의 수장이었던 마이클 콜린스가 사용하였다. 오늘날에도 공식적인 업무가 있을 때 사용하는 회의실이 있는데 유럽연합 의장들과 주정부의 수장, 경제계의 리더들이 사용하며 아일랜드 대통령의 취임식도 이곳에서 거행된다. 이밖에 초기 건립 때의 과정을 볼 수 있는 지하 발굴 현장이 있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두산백과)
더블린 성 안에 있는 광장에서는 모래로 만들어진 조각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처음 보는 모래 작품은 정말 멋지다. 매년 열리는 행사인 것 같다. 젖병을 들고 있는 손과 먹는 입이 기가 차게 묘사되어 있다. 모래임에도 불구하고 손의 주름까지 섬세하게 표현해 놓았다. 그 외에도 인체라는 제목의 여러 명의 나체가 질서가 있게 표현되어있다. 작년에는 아인쉬타인의 얼굴을 묘사해서 인기를 차지했던 것 같다. Niall Magee 나일 매기의 작품인 것 같다. 나일 매기는 2009년도에 우리나라 망상해수욕장에서 열린 세계 모래 조각 대회에도 참가한 아일랜드 조각가이다. 성에 있는 교회와 정원을 돌아보았다. 시청 건물도 보인다.
성에서 나와 서쪽으로 한 블록 걸어가니 크리스트 교회 성당이다. 바이킹 시대에 처음 세워진 것으로 목조에서 석조로 바뀌면서 다양한 건축양식이 적용되었다. 1169년에 지어진 것으로 1871년과 1878년 사이에 복원되었다. 성당 안에는 성당이 지어졌을 당시 통치자였던 스트롱 보우의 기념비가 있으며(지하에 의의 묘가 있다) 밖으로 기울어진 벽의 장식들이 재미있다. 더 눈길을 끈 것은 교회 앞 의자에 누워있는 걸인의 동상이다. 웅크려 자는 모습에 드러난 발등에 상처가 있는데 예수님의 못자국이다. 더 걸어가니 12세기에 지어졌다는 St Audoen’s 교회가 있다. 그 다음 만난 교회가 John’s Lane 교회다. 토마스 거리에 있는 교회인데 실내가 웅장하다.
길을 건너면 기네스 스토어 하우스가 나온다. 맥주 애호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는 기네스 흑맥주는 아일랜드에서도 명품으로 취급되는 품목이다. 어느 곳을 가도 눈에 띠는 펍. 아일랜드에서는 마을이 구성되려면 학교와 교회 그리고 펍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 많은 펍에서 그 많은 관광객들은 기네스를 앞에 두고 앉아 있다. 기네스 맥주가 탄생하게 된 배경과 기네스 가문의 역사를 보여주는 기네스 스토어 하우스다. 버려질 위기에 처한 양조장을 9 천 년간 리스하기로 해서 세상에서 가장 긴 계약기간으로 유명해진 계약서와 졸다가 맥주의 원료인 홉을 태운 바람에 실수로 탄생한 기네스 흑맥주에 얽힌 일화가 재미있다. 까만 맥주를 맛 본 근로자들은 무상으로 주는 맥주를 칭찬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칭찬에 고무된 기네스는 그 후 검은 색의 흑맥주를 만들게 됐다는 것. 실수가 부른 유쾌한 발명이었다.
아일랜드의 최고 히트상품 중 하나인 Guinness 기네스다. 이곳에서 하루에 약 250만 파인트를 생산해낸다고 하는데, 기네스의 생산 공장이 더 가면 있다. 더블린의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에 있는 양조장에서 처음 만들어진 Guiness 기네스 맥주는 아이리시 드라이 스타우트 맥주의 대명사가 되어 있다. 빽빽한 거품으로 유명한 이 맥주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알코올 음료다. 그리고 펍에서 술꾼들이 사소한 상식을 두고 서로 다투는 걸 보고 만들어낸 '기네스 북'은 기록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기네스 발원지 근처에 있는 '기네스 스토어 하우스'는 고층빌딩이 별로 없는 더블린 시내를 내려다보며 맥주 한 잔을 할 만한 관광 명소라 한다. 신기한 것은, 흑맥주에서 나는 독특한 향이, 이 부근을 감싸고 있어서 마치 기네스를 먹지 않아도 취한 것 같다.
내년 말부터 양조과정서 물고기 부레 사용 중단키로 했단다. 기네스 맥주가 256년 만에 정통적인 제조법을 바꿔 내년 말부터 양조과정에서 물고기의 부레로 만든 부레풀 사용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내년 말부터는 채식주의자도 기네스 맥주를 즐길 수 있게 됐다. 기네스 맥주는 내년(2016년) 말까지 아일랜드의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 양조장에 새로운 여과시스템을 설치해 양조과정에서 부레풀 사용을 중단하기로 했다. 소비자들은 내년 말부터 부레풀을 사용하지 않고 만든 맥주를 마실 수 있게 된다. 물고기의 부레로 만든 부레풀은 맥주나 다른 술 제조 시 정화과정에서 효모 침전물이 좀 더 빨리 가라앉도록 하는 데 사용돼 왔다. 부레풀은 양조과정에서 대부분 제거되지만, 기네스 맥주는 맥주에 부레풀의 흔적이 남아있을 수 있다고 시인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기네스 맥주는 채식주의자들에게는 부적절한 음료였다.
온라인 채식주의자 알코올 가이드인 바니보어는 앞서 기네스 맥주가 이메일을 통해 "부레풀은 제품에서 제거되지만, 100% 제거됐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기네스 맥주는 채식주의자들도 마실 수 있는 맥주를 만들어달라는 온라인 청원이 잇따르자 물고기 부레 사용을 중단하고 다른 물질을 사용하기로 했다. 기네스 맥주는 전 세계 150개국에서 맥주를 판매되고 있으며, 하루 1천 만 잔씩 소비되고 있다.(인터넷 신문에서)
다리가 아프다 너무 많이 걸어 다닌 것 같다. 슈퍼가 있어 여러 가지 물건을 샀다. 제법 등이 무겁다. 슈퍼 옆에는 한국 식당도 있다. 만두와 초밥, 비빔밥이 주 메뉴인 것 같다. 반가웠다. 왔던 길을 걸어서 트램을 타고 Windy Arbour 역에서 내렸다. 숙소가지 걷는 것도 한참이다. 주방에서 라면에 계란을 넣어 먹었다. 맛있다. 아일랜드는 유로화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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