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은 우주(宇宙)의 자궁(子宮)이다. 빛은 체온이며, 물은 양수, 공기와 바람은 숨결이다.
분재 뿐 아니라 나무를 기르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흙이다. 물론 빛과 공기, 물 등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분재란 분(盆)에 담아서 길러야하기 때문에 흙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땅에서 옮겨 심거나 분갈이를 할 때는 뿌리가 잘리거나, 잘라서 정리를 해야하므로 흙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나무를 옮겨 심는다는 것은 사람으로 치자면 외과수술을 받은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나무를 분에 담기 위해서는 나무를 있던 자리에서 캐거나 뽑아야 하는 데, 이 때 '분뜸' 이나 '막뜸'을 해야한다. '분뜸' 이란 본토의 흙을 60~80% 정도 붙여서 뜨는 것을 말함이며, '막뜸' 은 흙을 전혀 붙이지 않고 뽑거나 캐는 경우를 말한다. 이 때 필연적으로 뿌리가 다치거나 상하게 되는 데, 분뜸의 경우가 경상이라면, 막뜸의 경우는 중상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따라서 수술 후 의사가 환부에 소독약을 바르듯이 뿌리를 무리하게 잘라낸 나무일 수록 깨끗한 흙으로 심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지식이나 학식(學識)이란 묵은 흙과도 같다. 묵은 흙은 식물을 침체시키거나 퇴화시킨다. 따라서 흙을 오래 동안 바꿔주지 않으면 나무는 뿌리 채 썩어버린다. 지식도 이와 같다.
분재 교본을 보면 하나같이 '물 주기 삼 년' 이라는 말이 들어있다. 분재에 입문을 하려면 먼저 물 주기부터 배워야 한다는 말일 터이다. 그러나 이 말은 벌써 썩어버릴 때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대로 베껴서 써먹는 것 또한 지식의 속성이라면 속성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속성은 물주기에 대한 가르침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수종에 따라, 혹은 계절에 따라 하루에 한 번, 또는 몇 번씩 주라는 식의 지식은 이미 지식의 수준이 아니라, 무식의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거의 비슷비슷한 내용에다 그럴듯한 화보들만 갖다 붙여서 책이나 한 권내면 그 방면의 전문가나 지식인 축에 끼는 것 또한 지식의 속성이 아니던가. 예를 들어 여기 지식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농부들이 바로 그들이다. 전문가가 제아무리 교육을 시켜도 그들은 그들의 체험에 의해 농사를 짓는다. 교육받은 것은 그 다음의 가치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전문 지식인인 농대출신들이 농업전반을 장악하고 있을 터인데 전혀 그렇지 못함은 또한 지식의 허구라면 허구성일 것이다.
★흙 담기 일 년이면 물 주기 삼 년을 능가한다. 흙을 알면 물을 줘야할 주기를 알게되고, 또한 흙으로 그 주기를 손수 조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림 출처 ; www.namumore.com
흙의 성질을 모르고 꽃이나 나무를 기른다는 것은 날개도 없이 공중에 떠 있는 것과도 같다. 마치 나라는 사람이 겨우 한타 몇 자 치고 칼럼 페이지를 연 것과 같이 글은 올릴 수 있겠지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려면 다시 기초로 돌아가야 하는 것과도 같다고 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나무가 죽어가고 있을 때는 더욱 절실하다. 그럴 때는 당장에 흙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흙부터 갈아줘야 소생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꽃이나 나무 몇 그루를 기르기 위해서 누구나가 그 어려운 지질학이나 토양학을 새로 배워야 한다면 꽃이나 나무를 기르겠다고 나설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최소한 알아야 할 것은 알아야 하는 것 또한 지식의 속성이 아니던가.
★흙은 곧 생명이다. 흙 속에는 수 천 수 만 종의 생명이 살고 있으며, 생명에 필요한 제반 요소들이 다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흙이 죽게되면 나무들도 죽게되지만, 사람이라고 해서 결코 예외는 아니다.
직접 배운 적은 없지만, 지질학이나 토양학에서 쓰이는 용어 중에 ' 전공극률' 이라는 용어가 있다는 것을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자세하게 설명을 할 수는 없지만, 간단히 말해서 흙의 비율, 즉 ,흙에 함유하고 있는 성분의 비율, 그러니까 일정량의 흙 중에 순수한 흙의 성분을 빼고 난 수분 및 공기가 차지하고 있는 비율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흙이라고 하는 그 흙에는 많게는 절반을 조금 넘거나 작게는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량의 흙이 함유되어 있다는 사실이며, 그 나머지는 공기와 수분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지식이야말로 화분에 흙을 담는 데 있어서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빼놓을 수 없는 필수조건이라고도 할 수가 있을 터인 데, 우리는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설사 안다하더라도, 그것이 일반적으로 제대로 응용이 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것 또한 지식의 편중 현상이며, 독과점 현상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혹시, 나만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아무튼 분재를 가꾸기 위해 화분에 흙을 담아야 하는 사람들에겐 매우 중요한 기초지식임에는 두 말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