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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세계대전을 준비하며 병상 확보를 위해 와상 장애인들을 죽였다. 장애인이나 동성애자 없는 우수한 아리안족만을 남겨야 한다는 게 히틀러의 판단이었다. 전쟁에 병사로 동원될 수 없거나, 장차 병사로 동원될 아이를 낳지 않을 사람들은 그 존재 이유로 사형을 언도받고 실제로 처형된 셈이다. 사람을 죽여야 하는 전쟁을 준비하는 이들은 전쟁 전에도 사람을 죽이며 전쟁을 준비했다.
2024년 12월 2일 수도권 군 병원들에서 “환자 수가 폭증하는 상황에 대비하는 훈련을 실시”했다고 한다.1) 군 병원에 이송될 환자들은 군인들일 것이다. 비상계엄으로 만약 부상당한 군인 환자 수가 폭증하는 상황이 실제 발생했다면,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들은 무수히 학살당했을 것이다. 비상확대계엄령이 내려진 이후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민들이 공수부대에 학살당하지 않았던가. 윤석열이 발표한 비상계엄령을 국회가 해제하지 못했다면, 대한민국 수도 서울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들이 내란을 저지하기 위해 전국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1980년 5월에 광주는 고립되었고 언론도 철저하게 봉쇄되었기에 저항도 학살도 광주에 국한되었지만, 2024년 12월엔 707특임대가 국회에 진입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국민 모두가 목격했기에, 비상계엄령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44년 전보다 광범위한 시민 저항이 일어나고, 민주 시민들을 진압하기 위한 끔찍하고 잔인한 제노사이드가 전 국토에서 실행되었을지 모른다. 섬뜩하다.
군부 내 쿠데타를 일으킬 수도 있는 사적 조직이었던 하나회를 정리했고, 정권 교체 후 세 번의 민주 정부가 국정을 맡았음에도 대한민국에서 다시 쿠데타가 일어났다. 다행히 쿠데타를 예상하고 있었던 민주당의 대응과 국회의원들의 신속한 본회의실 집결,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아 세우고, 계엄군의 총구를 손바닥으로 막아서며, 계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된 후에도 밤새워 부릅뜬 채 감시한 시민들, 특임대가 타고 온 헬기의 속도를 늦춘 날씨 등 어느 하나라도 빠졌으면 윤석열은 친위쿠데타를 성공시켰을 것이다.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 계단을 “콸콸” 흐르던 핏물이 국회 본회의실과 국회대로에 다시 흘렀을지 모를 일이다.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을 지켰던 ‘스물세 살 교대 복학생’의 음성을 《소년이 온다》(창비)에서 작가 한강이 이렇게 복원한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만발이었다는 것을. 그때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만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의 몸에 두 발씩 죽음을 박아넣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되었던 겁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렇게 하라는 명령이 있었을 거라고 나는 믿습니다. 학생 대표의 말대로 우리가 총기를 도청 로비에 쌓아놓고 깨끗이 철수했다면, 그들은 시민들에게 총구를 겨눴을지도 모릅니다. 그 새벽 캄캄한 도청 계단을 따라 글자 그대로 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던 피가 떠오를 때마다 생각합니다. 그건 그들만의 죽음이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들을 대신한 거였다고. 수천곱절의 죽음, 수천곱절의 피였다고.
1980년 5월 27일 새벽에 전남도청을 지키며 “콸콸” 피 흘리며 죽어갔던 시민군들은 죽었으나 죽지 않았다. 그들은 역사 속에 살아있었고,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이 비상계엄령을 발표하는 방송을 보자마자 국회의사당 앞으로 달려온 시민들과 함께 있었다. 국회의사당으로 달려올 때 사람들은 어쩌면 가족들을 다시 보지 못할 수 있다는 심정이었다고 한다. 마지막 인사하는 마음으로 현관에서 가족들과 포옹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아내에게 생활비를 미리 주기도 했다. 21세기 온 국민이 티브이로 시청하는 현장에서 극단적인 상황이야 벌어지지 않을 거라 여기면서도, 비상계엄 아닌가, “처단한다”는 동사가 명기된 포고령이 내리지 않았는가, 윤석열이 대통령 아닌가, 군 병원들에서 “환자 수가 폭증하는 상황에 대비하는 훈련을 실시”하지 않았는가. 어쩌면 마지막일 수 있다는 각오로 시민들은 국회의사당 앞으로 모였다.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윤석열이 2024년 12월 3일 22시 30분 비상계엄을 선포했으나 국회가 12월 4일 1시 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하면서,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라는 큰불은 잡혔으나, 어딘가에 내란의 잔불이 숨어있진 않을까. 12월 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안건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던 날 100만이 넘는 사람들이 국회대로를 가득 길게 채웠다. 내란의 잔불을 진압하는 홍수였다. 탄핵소추안은 국민의힘 의원들 105인이 불참하여 불성립되었지만, 결국 탄핵소추안은 가결되고 윤석열은 심판받을 것이다.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정치 세력도 타격을 입을 것이다. 민주 정부가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우리 사회는 조금 더 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런가.
권력 서열 1위 대통령이 주도한 내란을 진압해,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데 성공하더라도, 기후위기는 비등점을 향해 치솟고, 빈부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고, 지역 간 학력 격차는 커지고, 여성과 성소수자, 장애인 등의 일상은 위험하고, 분단 체제에 희생당하는 남성들의 불만은 들끓고, 청년 취업률은 심각하고, 저출생으로 국가 존속이 위태롭지 않은가. 이런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떠안고 시작하는 새해, 우리는 더 좋은 세상을 살게 될까.
인류가 메시아, 미륵, 진인을 기다렸던 것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종교적으로 해소하지 않으면, 더 힘써 애써 살아가야 할, 또 한 걸음 진보해야 할 이유를 찾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권이 교체되어 민주 정부가 들어선다 해도 근본적인 문제들이 눈에 띄게 해결되진 않을 것이다. 그 밥에 그 나물, 양비론 따위 정치 냉소는 오래된 근거가 있다. 인간 사회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떠안은 이들이 종교를 통해 문제를 승화한 사상이 메시아니즘, 미륵 사상, 진인 사상이겠다. 간절하고 오랜 기다림은 좌절에서 비롯되었겠다. 좌절의 자리에서 기다림에 지쳐버렸다면,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살아가야 할, 애써 힘써 진보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애써 힘써 진보해도 윤석열 같은 위험 요인 때문에 한순간에 퇴행할 수도 있고, 다행히 제자리를 지키고 조금 진보한다 한들, 산적한 문제로 인한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왜 더 살아야 할까. 돌덩이 같은 무거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왜 더 살아가야 할까. 한 걸음 한 걸음, 조금씩 조금씩 진보하던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윤석열이 굴러 떨어뜨리는 바위에 다시 추락할 뻔했다. 바위만큼 무거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왜 더 살아가야 할까.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2)
카뮈(1913-1960)는 자살하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는 게 철학의 목표라고 쓴다. 오늘, 올해 살아가야 하는, 살아가며 반걸음이나마 진보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가고 가도 어느 날 갑자기 감당할 수 없는 바위가 개인과 역사의 머리 위로 굴러떨어지는 순간순간이 반복되거나 지속된다면, 손바닥에 왕(王) 자를 쓰고 티브이 토론에 나와 우스웠던 대통령 후보가 무서운 대통령이 되어 친위쿠데타를 시도하는 일들이 일어난다면, 온 국민이 힘을 모아 복잡한 절차를 다시 거쳐 그렇게 민주주의를 수호해도, 여전히 근본적인 문제들이 쌓여있다면, 윤석열과 윤석열들을 뽑아내는 게 무슨 의미일까. 한겨울 언 아스팔트를 데우며 윤석열을 뽑아낸다 한들, 다시 윤석열과 윤석열들을 대통령으로 뽑아주는 역사가 반복되진 않을까. 개인과 공동체 모두에게 연이어, 동시에 굴러 내려오는 거대한 바위 같은 질문들에 뭐라 답하며 살아가야 할까.
윤석열이 내란을 일으키고 나흘 뒤 스웨덴 한림원에서 한강이 노벨상 수상 연설을 했다. “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 —대답을 찾아낼 때가 아니라— 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 … 《채식주의자》를 쓰던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나는 그렇게 몇 개의 고통스러운 질문들 안에서 머물고 있었다.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 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3) 《채식주의자》(창비) 주인공 영혜는 폭력을 거부하고 순수한 인간이 되어가지만 인간으로 살아갈 순 없다.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매순간 죽음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영혜는 죽지 않고 “구급차”에 실려 간다. 아무리 애쓰고 힘써 살아가도, 머리 위에 바위가 떨어져 애쓰고 힘쓴 것들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된 것이 되어버리는 인생일 수 있다면, 죽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한 명쾌한 “대답”은 없다. 대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의 끝엔 뭐가 있을까. 《채식주의자》 마지막 문장이다.
대답을 기다리듯, 아니, 무엇인가에 항의하듯 그녀의 눈길은 어둡고 끈질기다.
2024년 12월 3일 밤, 복통으로 식사를 하지 못해 수액을 맞고 허리를 구부린 채 침대에 누워있었다. 뉴스를 검색하던 아내가 비상계엄령 소식을 전했고, 거실로 나와 티브이를 켜고 화면 속 윤석열을 노려보았다. 페이스북으로 연결된 지인은 이미 국회의사당 앞으로 달려가며 등에 땀이 난다며 소식을 전해주었다. 국회의사당 앞으로 가야 한다는 마음속 외침은 허리를 펼 수 없는 복통에 진압되고, 긴장하며 국회 본회의실에 모인 의원이 몇 명인지, 707특임대를 국회 직원들과 보좌관들이 막을 수 있을 것인지 실시간 방송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서울 국회의사당 앞으로 가지 못했어도, 무언가를 해야 했다. 국회의사당 앞에 어둡고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깃발 들고 서지 못했어도, 무언가를 해야 했다.
“내란수괴 윤석열을 탄핵하라 체포하라”라는 펼침막을 민들레교회가 모이는 공간 입구에 내걸었다. 여전히 15퍼센트 전후의 사람들이 윤석열을 지지하는 까닭에 돌 맞아 유리창이 깨질까 염려되었지만, 유리창이야 다시 끼우면 된다. 행여라도 전쟁이 일어나거나,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며 내 삶의 자리에서 깃발을 들었다. 이게 뭐라고, 펼침막을 내걸 때 긴장되고 동네 사람들 시선이 신경 쓰였다. 뭐, 어쩌겠는가. 개인과 역사에게 느닷없이 굴러 내려오는 거대한 돌덩이 같은 질문에 등 돌리지 않고, 한 발은 뒤로 빼더라도 한 발은 앞으로 딛으며, 고개를 숙일지언정 두 손을 주머니에서 꺼내, 바위를 밀어내 보겠다고 호기를 부리는 게, 내겐 믿음이다.
한낱 개인이 호기를 부려도 되는 이유는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소개한 여덟 살짜리 한강이 쓴 시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연결된 금실이 있다. 보이지 않지만 가슴에 사랑을 품은 이들이 자아내는 금실이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랑이 있는 까닭에 《전도서》는 한 사람과 한 사람이 함께하면, 끊어지지 않는 세 겹 줄이 된다고 말한다. 1+1=3이다.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다.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전도서 4:12, 새번역)
추미애 국회의원이 받은 제보에 의하면, 내란을 실질적으로 기획하고 지휘한 전 경호처장, 전 국방부장관 김용현은 히틀러가 쓴 《나의 투쟁》을 애독했다고 한다. 김용현은 국회의사당으로 특전사 특임대와 공수부대를 보내며, 히틀러가 부렸던 ‘돌격대’(Sturmabteilung)의 성공과 그 성공을 목격했던 히틀러의 환희를 꿈꿨을까.
나는 그들에게 강제 해산의 기미가 약간이라도 보이거든 즉시 전진할 것이며, 공격이야말로 최선의 방어라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고 명했다. … 강당 왼쪽 아직 큰 무리가 버티고 있어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갑자기 회장 입구에서 연단을 향하여 두 발의 피스톨이 발사되더니, 연이어 난사가 시작되었다. 옛날 전쟁에서 있었던 사건의 이와 같은 재현에 직면하여 나의 마음은 다시 환희에 찼다.4)
김용현이 보낸 특임대와 공수부대는 명령에 따라 국회의사당으로 진입하긴 했지만, 흔들렸다. 국회의원들을 반국가 세력으로 여기는 음침한 윤석열과 달리, 우리 군대 하급 지휘관과 병사들은 밝은 이성을 갖고 있었다. 과연 사람과 사람 사이 연결된 금실이 있어, 서로에게 속한 존재임을 일깨워주는 빛나는 이성이 있어 화기로 무장한 특전사 대원들이 국회 보좌관이 발사한 소화기 분말 앞에 “전진”을 멈추었다. 친위쿠데타로 이루고자 했던 윤석열의 꿈도 그 자리에서 끝났다.
“만일 육사에 갔으면 쿠데타를 했을 것이다, 쿠데타는 검찰로 치자면 부장검사인 당시 김종필 중령이 한 것이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5)
부장검사 시절 이루어야 했을 쿠데타를 윤석열은 대통령이 되어서도 포기하지 않고 “일거에” 실행했다. 비록 2시간 만에 깨졌지만 육사에 가지 못해 이루지 못한 꿈을 대통령이 되어 기어이 이루었다. 윤석열이 일으킨 친위쿠데타(내란)는 미수가 아니다. 쿠데타가 성공했든 실패했든 권력기관을 군대로 공격한 것으로 쿠데타는 실행된 것이다. 대통령 윤석열은 내란수괴로 전락했다. 대통령 윤석열은 꿈을 이룬 까닭에 사형수가 될 것이다. 자신의 꿈에 취해 국민들을 잠 못 들게 한 죄, 크다. 사형제도는 없어져야 하나, 내란수괴에겐 법정 최고형이 집행되는 게 정의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비상계엄을 경고하던 때, 계엄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예방적 조치일 것이라 짐작했다. 1980년 5월 17일 내려진 확대계엄령이 2024년에 다시 반복될 것이라 염려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사람들을 죽이고 일상을 파괴할 거대한 바위들을 굴려 내리는 악한 권력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44년 동안 우리는 진보했을까.
아무리 대통령이 명령했더라도 위헌 위법한 명령에 걸음이 흔들리는, 비무장한 시민들이 소화기 분말로 길을 막을 때 “전진”을 멈춘,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아선 시민들을 깔아뭉개지 않는, 생각하는 사병들이 있었다. 대통령은 히틀러였지만, 우리 사병들은 아이히만이 아니었다. 역사는 “그렇게 조금 더 / 나아갔다” 생각하는 까닭에 전진을 망설이는 사람들이 있어, 나는 역사의 진보를 믿는다.
비가 들이치기 전에
베란다 창을 닫으러 갔다
(건드리지 말아요)
움직이려고 몸을 껍데기에서 꺼내며 달팽이가 말했다
반투명하고 끈끈한
얼룩을 남기며 조금 나아갔다
조금 나아가려고 물컹한 몸을 껍데기에서
조금 나아가려고 꺼내 예리한
알루미늄 새시 사이를
찌르지 말아요
짓이기지 말아요
1초 만에
으스러뜨리지 말아요
(하지만 상관없어, 네가 찌르든 부숴뜨리든)
그렇게 조금 더
나아갔다
- 한강, 〈조용한 날들2〉 전문
■ 주
1) 김민관, [단독] 군, 미리 알았나…계엄 선포 하루 전 군병원 환자 ‘전시 분류’ 실시, JTBC뉴스(2024.12.4.)
2)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시지프 신화》(민음사)
3) nobelprize.org/prizes/literature/2024/han/225027-nobel-lecture-korean/
4) 아돌프 히틀러, 이명성 옮김, 《나의 투쟁》(흥신문화사)
5) 전광준, “윤, 검찰총장 때 ‘육사 갔으면 쿠데타’ 발언”…전 검찰간부 법정서 증언, 〈한겨레〉(2023.10.30.)
첫댓글 비가 들이치기 전에
베란다 창을 닫으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