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인ㅡ김 혜영 국제 사회복지사
얼마 전 KBS 1TV 감동 100도C에서 ‘작은 거인’이란 별칭으로 통하는 김 혜영이란 여성이 출연하여 눈길을 끌었던 적이 있다.
신장 134Cm라는 요즘 초등학생수준인 작은 키에, 그녀는 아프리카의 오지국가인 보츠와나에서 직업학교교장을 맡고 있으며,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사회복지석사학위를 받고, 국제 사회복지사가 된 국제적 인물이다.
이렇듯 외모와는 달리 남다른 큰일을 맡고 성공적입지에 들어선 그녀이지만, 그에게는 지울 수 없는 아픈 상처의 과거가 있었다.
그녀는 어릴 적에 어머니로부터 잘못 태어났다는 구박과 핀잔을 수없이 들으며 자라왔다고 한다.
얼굴도 그리 내세울 입장이 아닌데다 등이 굽은 척추장애아로써, 자신이 생각해도 남들과는 처지가 다른데, 자기를 낳아준 엄마가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쓸데없이 태어났다”이런 소리를 들으며 자라야만했단다.
태어나지 않았어야할 사람이라니.....
이럴 때 이런 아이를 일러 귀태(鬼胎)라고 말한다.
귀태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곧 태어나지 말았어야할 그런 사람이다.
본래 귀태란 귀신에게서 태어난 아이, 또는 불구의 태아를 뜻한다.
그래서 그런 아이를 배는 것이 두렵고 걱정이 되어, 귀태를 품었다고 하는데서 유래된 그런 용어다.
수개월 전 몰지각한 어느 야당 국회의원이란 작자가, 귀태라는 말의 뜻도 제대로 모르고 사용했다 호된 질책을 당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과 그분의 따님인 박근혜대통령을 지목해서, ‘귀태의 후손’이라 말했기 때문이다.
두 분 박대통령의 공과(功過)는 후대 사가들이 올바로 평가해 주겠지만, 우선 우리나라 현직 대통령과 그분의 부친을 일러 태어나지 말았어야할 <귀태의 후손>이라 말했다는 것은, 지극히 경우에 어긋나는 잘못 아니겠는가!
각설하고, 김 혜영여사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어머니로부터 줄곧 ‘못난이’라느니, 태어나지 말았어야할 아이라는 소리를 들어왔던 어느 날, 그녀는 참으로 어이없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배냇병신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어머니의 실토는 이랬다.
건강하게 맏딸로 태어난 혜영을 술에 만취해 돌아온 아버지가, 첫째가 재수 없게 딸이냐고 하면서 집어 던져 버렸다는 것이다.
참으로 상상할 수 없는 끔직한 사건이었다.
아버지는 딸을 죽어 없어지라고 내동댕이쳤다니 어찌 이럴 수가~!
그길로 던져진 혜영은 낳자마자 척추가 부러져 평생불구로 살게 된, 참으로 기구한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 후 네 명의 동생들을 두었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행위에 가책을 느꼈음인지, 결국 자살로써 자신의 운명을 마감하고 말았단다.
이것이 어머니가 들려준 기막힌 자신의 이야기였다.
김 혜영은 초등학교를 겨우 마치고 어머니마저 정신질환으로 큰문제가 생겨, 14세 때 가출을 하게 되었다.
집을 나온 혜영은 남의 집 가정부로 들어가 하루하루 힘들게 식모살이를 하던 중, 어느 날 우연히 무료직업학교훈련생 모집광고를 보았다.
그 순간 떠오른 생각이 기술을 배운다면, 가정부로 사는 것 보다는 낫겠다고 판단되어 학교를 찾아갔고, 그곳에서 독실한 크리스챤 선생을 만나, 그때부터 그녀의 운명은 서서히 바뀌어 지게 된다.
가난과 절망과 불구의 장애로, 평생 세상을 원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녀에게, 이때부터 새로운 희망과 성취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허리의 심한 통증에 시달리어, 울면서도 낮에는 기술을 배우고, 밤에는 공부를 하는 노력 끝에 해영은 전국 장애인 기능대회에서 연속 두 차례나 금메달(편물분야)을 따고, 철탑산업훈장도 수상했다.
연이어 콜롬비아에서 열린 세계장애인 기능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선교단체의 아프리카 보츠와나 직업학교편물교사 모집광고를 만났단다.
그길로 교사지원에 응했고, 6개월간 단기선교를 생각하고 아프리카 보츠와나로 달려갔다.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진학을 꿈꾸던 그녀는 학업도 일단 중단을 했다.
그러나 찾아간 그곳 생활은 모든 게 낯설고 열악하기만 하였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고 수돗물도 나오지 않는 칼라리 사막 한가운데 직업학교가 있었다.
처음에는 예정대로 6개월이나 1년 정도만 있으려니 했던 게 훌쩍 수년이 흘러갔다.
혜영은 평교사로 들어가, 어느새 그 학교 교장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보다 전문가로써 아프리카를 위한 더 큰일을 해야겠다는 다짐으로, 39세 되던 2004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나약칼리지에서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이어 명문 콜롬비아대학에서 석사과정을 이수하여 국제 사회복지사가 되어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간 것ㅡ.
그간 보츠와나에 가서 재직한 기간이 어언 14년.
자신이 운영하는 학교를 거쳐 간 졸업생이 어린 아동이 450명, 아줌마학생이 250명, 도합 700명에 이르렀다.
그녀는 열정과 집념을 불태우며 열사의 사막에서 자신의 젊음을 고스란히 바쳤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그 열악한 환경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발목을 붙잡았던 것일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첫째는 현지 어린애들이 너무도 불쌍해서 그곳을 떠나올 수가 없었다고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기 집에 먹을 것이 없다 하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돌봐줄 부모가 없다고 하는가 하면, 누군가는 병들고 고통스러운 현실들을 들려주기도 하더란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는 순간 그게 결코 남의 이야기로 들린 게 아니라, 곧 지난날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듣는 걸로 다가온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기도 했지만, 실상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때 들려준 이야기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가슴 뭉클한 사연이었다.
그곳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그녀를 보고, 들어보지 못한 말들을 들려주었기 때문이란다.
아이들은 하나같이“선생님 너무 이뻐요”라고 말해주었고, 어른들도 귀엽고 멋진 선생님이라고 옷을 만지고 피부를 만지기도 했단다.
그런 말들은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난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녀는 자라면서 누구로부터도 예쁘다, 잘생겼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는데, 모든 사람들이자기더러 멋지고 예쁘다고 말해주니 이 얼마나 기쁘고 기분 좋은 일인가!
혜영아! 너 귀엽다. 넌 정말 아름다워!
평소 이런 이야기를 한국에선 누구로 부터도 한 번 들어보질 못했는데 ...
키도 작고 못생긴 자기를 사람으로 봐주고, 여성으로 인정해주며 예쁘고 잘 생겼다 말해줄때, 그게 너무도 고맙고 감사했다고 말한다.
그토록 자신을 따뜻하게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는 그 사랑의 힘에 끌려, 그녀는 더욱 힘을 얻고 용기와 인내로써 그들을 위해 무한한 사랑을 쏟을 수 있었으리라!
김 혜영여사의 활약상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한국정부에서도 지난해 12월 청와대로 초청하여 국민훈장목련장을 수여하기에 이르렀다.
수상식 날, 김 여사는 어머니를 모시고 갔고 그 자리에서 기념촬영도 했다.
이날 혜영씨는 어머니와 난생 처음 사진을 찍어본 날이었단다.
그 순간을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가 진심으로 감사했다고ㅡ
그녀의 기억엔 찌든 가난과 잘못 태어났다는 구박만이 남아있고, 보통사람의 생각이라면 뭐 그리 고맙게 여길 그 어떤 미련도 없으련만.....
혜영씨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우선 자기 자신을 이 땅에 존재토록 낳아주신 어머니이시기에 고마웠고, 지금 옆에 계셔서
자신을 지켜볼 수 있으니 더없이 감사하고 존경스럽다고 까지 했다.
그러면서 자기를 이 땅에 낳아놓고 얼마나 마음 아프셨냐고 위로의 말까지 덧붙였다.
참으로 갸륵하고 장한 딸이다.
김 혜영여사는 젊은이들을 위한 책을 펴기도 했다.
청춘아, 가슴 뛰는 일을 찾아라!
그 책속에는 인생을 절대로 적당히 살지 말고/ 의미 없게 살지를 말며/닐마다 새롭게 꿈꾸고 도전하며 살아가라고 일러주고 있다.
그녀는 또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잘못 태어난 인생은 없다.
누구든 우연히 태어났다거나 갑자기 태어남도 아니요, 태어난 자체를 잘못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세상에 인간이 태어난 것은 분명 조물주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축복의 산물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먼저 진심으로 감사하고,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숨 쉬고 살아가고 있는 자체만도 한없이 고맙고 감사한일 아니겠는가!
김 혜영여사의 인간승리와 감동 스토리를 두고두고 되새기고 싶다.
첫댓글 )) __ 따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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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간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