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열풍이다. 지방 자치 단체마다 특색 있는 걷기 코스를 계발하여 걷기 매니아들을 유혹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강원도 강릉에도 '해파랑길', '바우길'이 조성되어 있고 수 많은 관광객들이 오로지 걷기 위해 찾는다. 해파랑길 한 개 코스가 직장 부근 뒷산(모산봉, 101.9m)을 지난다. 점심 시간을 이용해 뒷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객지에서 찾아온 많은 분들을 만난다. 부산에서 왔다며 세 분의 아저씨들을 만나기도 했고, 아빠, 엄마, 아들 이렇게 한 가족이 수원에서 '해파랑길'을 걷기 위해 찾아 오신분들도 만났다. 괜찮은 시원한 막국수 집을 추천해 달라고 하기도 하고, 잘못 길을 들어선것은 아닌지 재차 길을 묻는 걷기족들을 만난다. 걷기는 사색과 함께 솔솔하게 건강을 챙기기 참 좋은 운동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나 또한 짧은 점심 시간을 이용해 30분 가까이 뒷산을 걷는다. 거기다가 맨발로 걷는다. 맨발 걷기 애호가들은 시멘트 길, 아스팔트 길보다 촉촉한 흙길, 붉은 색 산길이 효과 만점이라고 한다. 멀리서도 찾아오는 '해파랑길'을 근무하는 직장 근처에 두고 있는 나로서는 그들이 보기에 행복하기 그지 없는 사람일게다.
이번에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길 걷기 여행 』을 펴낸 저자 윤승진님도 일반 직장인이다. 직장 생활하며 틈틈히 시간을 쪼개 걷기에 도전하는 특이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남들이 도전하기 어려운 길이면서 역사적으로도 유서 깊은 '충무공 이순신의 백의종군길' 을 직접 완주하면서 기록들을 모아 책을 펴냈다. 평생에 있어 도전할만한 의미 있는 걷기라고 생각된다. 단순히 걷기 여행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백의종군길을 걸으면서 충무공 이순신이 남긴 '난중일기'의 흔적을 되새기며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운치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걷기 여행이라는 것이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막상 하루 이틀 도전해 보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서울에서 경남 합천까지 670km라고 하니 거의 이천리에 가까운 거리이며 걷는 도로가 완비된 곳이 아닌 풀숲을 헤치며 이정표를 꼼꼼히 챙겨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니 평범한 이들은 쉽게 포기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기어코 완주를 해 버린다. 도전에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고, 인내하며 완주한 노력에 찬사를 드리고 싶다.
갑자기 군 생활(96.3.~98.6.)이 떠올려 진다. 703특공부대. 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에 투입된 부대다. 천리행군(450Km)만 한 해 두 번씩 했다. 천리라고 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서 가는 거리가 된다. 가벼운 배낭을 메고 걷는 것이 아니라 20Kg이 넘는 군장과 개인화기, 무겁고 탄력성이 없는 군화를 신고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산길과 민간인들이 들어갈 수 없는 자연휴양제로 묶여 있는 곳, 가파른 절벽과 암반으로 둘러싸인 소름끼치는 길도 주야간 구분 없이 걷는 것이 '천리행군'이다. 하루에 못 잡아도 평균적으로 30Km를 걸었던 것 같다. 열흘을 기준으로 천리를 걸었으니 말이다. 숙식은 당연히 노숙이다. 둘둘 만 개인 매트리스를 펴고 자거나, 텐트를 치고 발길이 머무는 곳이면 그곳이 숙영지가 된다. 눕는 곳이 곧 침대요, 방바닥이다. 계곡 물을 만나면 시간과 상관없이 밥 지어 먹는 장소가 된다. 이렇게 1년에 두 번씩 천리행군을 해 내면 제대할 날이 눈 앞에 보이게 된다. 인생에 있어 짧은 군생활이었지만 천리행군으로 다져진 체력 때문인가 지금도 걷기만큼은 자신있다. 윤승진님의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길 걷기 여행 』에 관심이 간 것도 다름 아닌 '걷기'라는 공통점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걷기만 해도 힘들었을 텐데 곳곳마다 충무공 이순신의 흔적을 담긴 곳을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고, 영상을 촬영해 관심 있는 분들에게 공유하기도 한다. 함께 걷자는 취지 하에 동호인들을 규합하고 인터넷 밴드를 만들어 평소에 걷기에 도전하고 싶으나 선뜩 용기가 나지 않는 분들을 끌어내고 있다. 좋은 것을 함께 나누자는 선한 의도일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