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철부지
저는 병원에서 원목 소임을 맡아 많은 환자분을 만나고 있습니다.
많은 분과 함께 기도하고 이야기도 나누며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있는 곳에서
늘 느끼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은 언제 어디서라도 함께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마치 그 순간이 인간적인 시선으로는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때도 말입니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한순간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환자분들을 만나다 보면 새롭게 신앙을 가지고 세례를 받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그날도 한 형제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날이었습니다.
그 형제님께서는 어느 날 신앙을 가지고 싶고, 세례를 받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드렸고, 기다리던 세례를 받게 되신 것입니다.
형제님께서는 그날 많은 분의 축복과 기도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셨습니다. 세례를 받으신 형제님께
“이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셨으니, 하느님께서 언제나 함께하시며
지켜주실 거예요.”라고 말씀드리며 많은 축하를 해드렸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얼마 후 형제님을 찾아뵈었는데,
정말 깜짝 놀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형제님의 꿈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형제님께서 지난밤 꿈을 꾸셨는데, 어딘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하늘에 와 있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곳에는 빨간 장미가 온통 꽃밭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 향기가 너무 좋아서 마음이 참 편안했다고 하셨습니다. 마치도 그곳은
하늘나라에 마련된 장미꽃밭처럼 느껴졌다고 하셨습니다.
형제님의 꿈은 형제님에게 그리고 곁에 있던 많은 이들에게도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형제님의 이 꿈은 말로만 듣던 평온하고 아름다운 하늘나라에 대한 확신을
전해준 것이었고, 마침 그때가 5월 성모성월이었는데,
성모님께서 따뜻하게 품어주신다는 것을 하느님께서 확인시켜 주시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참으로 하느님께 감사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일을 떠올려 볼 때마다, ‘하느님께서 단순한 믿음을 가졌던 형제님에게
하늘나라의 신비를 열어 보여주셨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형제님께서는 신앙생활을 오래 하지 않았고,
많은 교리 지식을 배울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상 여정을 마무리하며, 하느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단순한 믿음을
지니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마음에 하늘나라의 신비를 담아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의 신비는 참된 평화와 행복의 열매를 맺어주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마태 11,25)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철부지들에게 당신을 드러내 보이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복음 말씀을 통해 우리도 철부지의 마음을
지니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하느님만을 바라보는
철부지들에게 하늘나라의 신비를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것을 이루고 많은 것을 잘해야 하는 세상 안에서 전능하신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희망을 품는 것이 때로는 힘이 없어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는 가장 강한 사람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철부지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당신의 신비를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하느님만을 바라보는 철부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글 : 이장선 요한사도 신부 – 인천성모병원 원목실
성소의 못자리 김제 '수류 성당’
전북 김제시 금산면 수류로 643(화율리)에 위치한 수류 성당은
김제의 드넓은 평야에서 조금 떨어진 오지에 위치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화율리는 박해를 피해 온 가톨릭 신자들의 교우 촌이 모태이기 때문입니다.
1882년 설립된 배재 공소가 1889년 봄, 배재 본당으로 승격했으며,
1895년 10월 초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수류 본당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니,
수류 성당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140년가량이나 거슬러 올라갑니다.
1887년 한불 수호 통상 조약으로 박해가 종식되고
비교적 선교가 자유롭게 이루어지던 때였으니,
숨어 살던 신자들에겐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성전이 절실했을 것입니다.
수류 성당은 처음엔 목조로 지어진 성당이었습니다.
성당 안 안내판 사진을 통해 당시 성당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목조로 올린 종탑이 격조 있게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현재의 성당은 1959년에 새로 지은 성당입니다.
첫 인상은 소박하고 단순한 모습으로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알고는 그 아름다움을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수류 성당은 일제 말기, 인근의 400세대 주민이 모두 신자였을 만큼 신심이 깊었던
곳입니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북한군이 지른 화재로 목조 건물은 전소되었고,
화재를 피해 빠져나온 신자 50여 명은 북한군에 잡혀 사망했다고 합니다.
남은 신자들은 이로부터 9년 후인 1959년, 먹을 것이 모자라 겨우 연명할 수 있는
상황에도 어렵게 구호물자를 적립해 건축기금을 모으고,
냇가의 모래와 자갈을 날라다 만든 벽돌로 지금의 수류 성당을 건축하였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안위보다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하느님의 성전을 먼저 건축한 것입니다.
수류 성당 곳곳에 배어 있는 뜨거운 신심은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내력 덕분인지 수류 본당은 현재까지 20여 명의 사제와
많은 수도자를 배출하여 그야말로 ‘성소의 못자리’라 불리고 있다고 합니다.
따뜻한 빛과 청명한 하늘 아래에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묵상하는 하루가 되었습니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산실인 목포 산정동 성당이
이곳 수류성당 소속 공소였다고 합니다.
글; 이선규 대건 안드레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