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꿈의 5억원, 분노의 5억원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인 5억… 보통사람이 평생 모으는 巨額 기업인 수명 끝난 허 前 회장, 勞役 日當 5억 인정받은 건 탈세·횡령으로 특혜 얻은 결과… 황당한 판결 왜 나왔나 따져야
김창균 부국장 겸 사회부장 |
서울 지역 아파트의 평균 가격은 5억원 정도다. 평수와 위치에 따라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강북 14개구 아파트 값 평균은 4억원, 강남 11개구 아파트 값 평균은 6억원을 오르내린다. 보통 사람들에게 '내 집'은 필생의 과업이다. 안 먹고 안 입고 모은 돈에 빚까지 보태 첫 주택을 구입하는 데 8년 정도 걸린다는 통계가 있다. 부동산 시세를 따라 몇 차례 이사를 해 가며 아파트 평수를 늘려가다 보면 훌쩍 중년이다. 그렇게 아등바등 마련한 재산 1호 목록이 5억원짜리 아파트라는 얘기다.
그래서 누군가의 '5억원 대박'은 화제가 된다. 소치올림픽에서 제2의 조국 러시아에 쇼트트랙 금메달 3개를 안긴 안현수 선수는 포상금 5억원과 아파트를 선물 받았다. 빙속(氷速) 여제(女帝) 이상화 선수는 500m 스피드 스케이팅 2연패에 성공하면서 1년 전속 계약 기준 광고 모델료가 5억원으로 뛰어올랐다는 보도가 나왔다. 네티즌은 이들에게 축하 박수를 보내면서 한편으론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 번에 5억원'이 짜릿하다면, '5억원 봉급'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올해부터 연봉 5억원이 넘는 기업 등기이사는 보수 공개가 의무화된다. 대상자는 200여개 기업에서 600명가량 될 것이라고 한다. 그중 일부 오너가 포함돼 있지만, 나머지 대다수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성공한 봉급 생활자들이다. 그 200개 기업 중에서도 봉급이 가장 센 기업의 등기 임원은 연봉이 52억원이다. 월급이 거의 5억원에 가깝다.
한 주에 5억원을 버는 사람도 있다. 영국 야당인 노동당의 예비내각 재무장관은 지난주 "웨인 루니는 매주 5억원을 벌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명문 축구 구단(球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루니와 주급(週給) 5억원에 재계약했다는 소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논란이 일자 의견을 밝힌 것이다.
'일당(日當) 5억원'짜리 노역(勞役) 소식이 며칠째 나라 전체를 들쑤셔 놓고 있다. 허재호 전(前) 대주그룹 회장의 하루 노역 대가가 5억원으로 정해진 것은 사실 뉴스가 아니다. 4년 전 일이다. 2010년 1월 광주고법 형사1부가 500억원 법인세 탈루 및 100억원 횡령 혐의의 허 전 회장에게 벌금 254억원을 선고하면서 벌금을 내지 않으면 하루 노역을 5억원으로 환산해 형을 집행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노역 일당 최고액 신기록이었다.
당시 이 판결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한때 계열사 20곳을 거느렸던 재벌급 회장이 설마 벌금을 몸으로 때우겠느냐고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실제 그런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 4년 동안 뉴질랜드에 머물렀던 허 전 회장은 지난 22일 오후 6시 귀국했다. 그날 밤 11시 40분 광주교도소에 도착한 허 전 회장은 그날부터 매일 매일 벌금 5억원씩을 탕감받고 있다. 허 전 회장은 처음 며칠 준비 과정을 거쳐 종이가방에 풀을 붙이는 일을 하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허 전 회장의 노역 일당 5억원이 보도된 조선일보 지면엔 1만5600원을 훔쳤다가 3년형을 선고받은 노숙자 얘기가 나란히 실렸다. 절도로 두 차례 이상 실형을 선고받고, 형 집행이 끝난 지 3년 안에 다시 범죄를 저지르면 형(刑)을 두 배 이상 선고해야 하는 특가법(特加法)에 따라 내려진 판결이다. 1만5600원 절도 금액에 대한 죗값을 1095일의 감옥 생활로 치르게 되는 셈이다. 하루치 죗값이 14원이다. 허 전 회장과 이 노숙자에 대한 판결은 단순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하루 감옥 생활의 금전적 가치를 굳이 맞세워 보면 '5억원 대(�) 14원', 3500만배 차이가 난다.
모든 사람의 몸값이 똑같을 수는 없다. 같은 프로구단 안에서도 에이스급과 후보 선수의 보수는 100배 이상 차이가 난다. 그런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자본주의 원리다. 그러나 이미 기업인으로서 수명이 끝난 허 전 회장의 하루 노역 가치가 일반인의 수천 배, 수만 배가 될 리는 없다. 허 전 회장은 나랏돈과 회사 돈 수백억원을 빼돌려가며 자신의 가치를 부풀려 놓았던 과거 '거품' 때문에 법의 심판대 앞에서 초특급 대우를 받게 된 것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5억원은 꿈같은 돈이다. 남들이 5억원을 번다는 소식은 부러움을 산다. 그러나 허 전 회장이 국가에 납부할 벌금 250억원을 하루 5억원씩 탕감받는다는 소식은 분노를 일으킨다. 그가 뉴질랜드에 건설사를 차렸고 수십억원짜리 아파트까지 보유하고 있다는 소식 때문에 더욱 그렇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인지, 4년 전 판결에 관여했던 사람들에게 까닭을 묻고 싶다.
즐겁고 행복한 나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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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말
너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