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요한은 크고 놀라운 다른 표징이 나타난 것을 보았습니다. 일곱 천사가 마지막 일곱 재앙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하느님의 분노가 끝나게 될 것입니다. 나는 또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 유리 바다 위에는 짐승과 그 상과 그 이름을 뜻하는 숫자를 무찌르고 승리한 이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수금을 들고, 하느님의 종 모세와 어린양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1~3ㄱ)
요한 묵시록의 핵심 내용은 한마디로 대종말의 전개 과정을 보여주는 묵시이다. 이것은 묵시록의 거의 대부분의 분량에 해당하는 묵시록 4장1절에서 22장 5절에 기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묵시록 4장에서 18장은 재림 이전의 세말의 대환난을 다루고, 19장 1절에서 22장 5절은 재림 이후의 심판 및 새하늘과 새땅의 도래를 다룬다.
한편, 묵시록 4장에서 18장은 대환난 관련 묵시들을 일곱 봉인(묵시 6장,8장), 일곱 나팔(묵시 8장,9장, 11장), 일곱 대접 재앙(묵시16장) 등 삼대 칠중 재앙과 7년 대환난(묵시 12장 5절,14절; 7년 대환난의 전(前)삼년 반/ 묵시록 13장 5절 ; 7년 대환난의 후(後)삼년 반)이라는 두 가지 관점 내지 양식으로 제시하고 있다.
크게 보자면, 묵시록 4장에서 18장 전체가 삼대 칠중 재앙 기사들이고, 그 사이인 묵시록 12장 ~14장에 7년 대환난 묵시들이 중간 계시 형태로 삽입되어 있다.
묵시록 15장은 이러한 7년 대환난 관련 묵시가 끝나고, 묵시록 15장과 16장에 걸쳐 이어지는 세번 째 칠중 재앙인 일곱 대접 재앙 기사의 전반부이다.
여기에는 일곱 대접 재앙의 개시 직전의 준비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일곱 대접 재앙은 이제 일곱 봉인 환시와 일곱 나팔 환시에서 시작되었던 하느님의 종말론적 심판이 마무리되는 마지막 심판임을 보여준다.
본문에서 '가지고 있었는데'로 번역된 '에콘타스'(echontas)는 '소유하다'라는 뜻을 지닌 '에코'(echo)의 현재 분사로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한편, 사도 요한이 목격한 하늘의 '크고 놀라운 다른 표징'이 꾸며낸 이야기나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더욱 실감나게 나타낸다
'그것으로 하느님의 분노가 끝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분노'로 번역된 '호 튀모스 투 테우'(ho thymos tu theu;the wrath of God)는 묵시록 14장 10절과 19절에도 나오는데, 거기서 하느님의 분노는 포도주 잔과 포도 확과 짝을 이루어 비유적으로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하느님의 분노가 끝나게 될 것입니다'라는 본문의 언급은 '마지막 일곱 재앙'에 대한 단순한 부연이 아니다.
왜냐하면, 본문에서 '끝나게 될 것입니다'로 번역된 '에텔레스테'(etelesthe)는 '이루다', '성취하다', '채우다', '충만하다'라는 뜻을 지닌 '텔레오'(teleo)의 예언적 부정 과거이기 때문이다.
즉 이것은 향후 쏟아질 일곱 재앙이 하느님의 분노를 종식시킨다는 의미 이전에 마지막 일곱 재앙 안에 하느님의 분노가 가득히, 충만하게, 완전하게 담겨 있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본문에 언급된 일곱 재앙이 마지막 재앙인 까닭은 일곱 재앙 안에 하느님의 분노가 충만하게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일곱 재앙이, 악마와 짐승과 거짓 예언자와 그 이름이 생명의 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불 못에 던져지는 하느님의 최후의 심판으로 묘사되고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묵시록 19,20; 20,10.15).
이러한 견지에서 본절에 언급된 '일곱'(헵타; hepta) 재앙은 과거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내린 '일곱 배나 더한 재앙'(레위 26,21)의 이미지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7'이란 숫자가 '완전'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이것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진노의 철저함과 극렬함을 넘어 완전함으로 나아간다.
이처럼 이제 보여질 일곱 재앙(묵시 16장)이 완전한 재앙이라면, 이것이 마지막 재앙인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나는 또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 유리 바다 위에는 짐승과 그 상과 그 이름을 뜻하는 숫자를 무찌르고 승리한 이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수금을 들고, 하느님의 종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2~3ㄱ)
구문상 묵시록 15장 1절과 직접 연결 되고 있는 것은 묵시록 15장 2절이 아니라 일곱 재앙이 쏟아질 것을 서론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묵시록 15장 5절이다.
그렇다면, 묵시록 15장 2~4절은 묵시록 15장 1절과 15장 5~8절 사이에 특별한 신학적 목적을 의도하기 위해 끼어든 삽입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삽입 기사의 기능은 무엇인가?
이것은 마치 여섯 봉인과 일곱째 봉인 환시 가운데 삽입된 묵시록 7장 1~17절의 기능과 유사하다.
즉 묵시록 15장 2~4절은 일곱 재앙이 쏟아질 때 신실한 하느님의 백성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대답이다.
그것은 묵시록 12장 1절~14장 20절에 묘사된, 사탄을 상징하는 붉은 용 및 적 그리스도와 거짓 예언자를 상징하는 두 짐승이 주도하는 환난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구원을 받은 자들이 철저한 하느님의 보호를 통해 결국 승리하고,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을 찬양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따라서 묵시록 15장 2~4절의 삽입 단락은 전술된 여섯 봉인과 일곱째 봉인 및 나팔 재앙 사이에 삽입된 단락이 그러하듯이, 구원받은 하느님의 백성의 운명에 대해 어떠한 악의 세력도 궁극적 의미에서 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묵시록이 용과 두 짐승에 의해 환난과 핍박, 또는 유혹을 당하고 있는 자들을 일차 독자로 한다는 점을 감안할 경우, 이러한 삽입 단락은 그들에게 더 없이 용기와 위로를 주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묵시록 15장 2~4절의 삽입 단락은 일곱 대접 재앙 가운데 외치는 교회의 승전보이다.
한편, 묵시록 4장 6절이나 본문에 언급된 '유리 바다'는 홍해 바다를 상징적으로 변환한 것이다.
특히 본문이 홍해 바다와 관련된다는 점은 묵시록 15장 3, 4절에 언급된 찬양이 '하느님의 종 모세의 노래'란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말하자면, 묵시록 15장 2~4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넌 후 불렀던 감격적인 모세의 노래를 상기시킨다(탈출15,1~8).
본문에 언급된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은 사탄을 상징하는 붉은 용과 용의 하수인인 두 짐승의 핍박 가운데서 구원받은 하느님의 백성을, 파라오의 학정에서부터 출애굽한 이스라엘에 대입하여 묘사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과거 이스라엘이 경험했던 홍해 도하 사건은 종말에 하느님의 백성이 경험할 최종적 구원의 예표이다.
따라서 현재 용과 두 짐승의 핍박으로 고난당하고 있는 성도들은 결코 낙담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과거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의 위협으로부터 구원하신 하느님께서는 성도들을 최종 구원에 이르도록 이끄시는 바로 그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피앗사랑 rigel 글 참조> |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