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읽는 단편 교리]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
모든 그리스도인은 구약에서 메시아를 ‘왕’으로 예시한 내용이 나자렛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다고 믿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장차 도래할 메시아가 왕으로 제시되거나 예언되는 대목이 많이 나옵니다. 다윗 가문을 통한 왕위 계승에 관한 예고(2사무 7,18-29; 23,1-7), 야곱의 축복(창세 49,10), 발람의 예언(민수 24,17)이 대표적입니다. 또한 많은 시편(2장, 24장, 45장, 72장, 89장, 110장)과 예언서들(이사 2,1-4; 9,5-6; 예레 23,5-6; 에제 21,32; 다니 7,13-14; 호세 3,5 등)에서도 이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구약의 예언에 따라 왕으로 오실 메시아를 기다렸으며, 예수님이 그런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일 때 실제로 왕으로 영접하거나(마르 11,1-10; 요한 12,12-19) 억지를 부려서라도 그분을 왕으로 세우려고 하였습니다(요한 6,15).
하지만 예수님께서 실현하신 왕의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라고 기대했던 것과 크게 달랐습니다. 그분의 다스리심은 지상의 영화를 위한 것도 아니고 강력한 세력 행사도 아니었습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18,36)라는 말씀이 이 점을 잘 요약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속적 권력이나 재력이 아니라, 오로지 진리와 정의만으로 당신이 왕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비오 11세 교황(1922-1939 재위)은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께서 세상의 참된 왕이심을 기리고자 1925년, 회칙 [콰스 프리마스] (Quas primas)를 발표하면서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제정하였습니다. 사실, 이 배경에는 20세기 초 확산하던 무신론과 세속주의를 경계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당시 세속 권력이 아무리 강해 보여도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이 온 인류에게 두루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미사의 본기도는 대축일의 성격과 의미를 잘 요약해 줍니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사랑하시는 성자를 온 누리의 임금으로 세우시어 만물을 새롭게 하셨으니 모든 피조물이 종살이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섬기며 끝없이 하느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시간이 갈수록 물신주의와 세속화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세상의 유혹이 점점 강해지는 오늘날,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임금이시라는 진리를 우리 마음 안에 확고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대축일을 지내며 우리 각자가 그리스도의 나라에 속한 시민임을 되새기고 자신의 삶을 쇄신할 것을 다짐하도록 합시다.
[2024년 11월 24일(나해)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의정부주보 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