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5 교회개척과 기도처(5-1)
신학생 실습활동으로 간 임자도
경성성서학원의 학생들은 학습과 실습을 병행하는 방법으로 학업을 이수해야 했다. 6개월은 학교 수업을 듣고, 나머지 6개월은 현장 실습으로 교회를 개척하거나 전도활동을 하는 체계였다. 이러한 두 축으로 된 학제를 통해서 당시 학생들은 대부분 수업이 없는 기간에 자신의 고향으로 내려가서 전도활동을 하고 교회공동체 모임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문준경 또한 마찬가지였다.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전도왕’으로 인정받고 있었고 열심을 넘어 특심으로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었기에 학교의 이러한 제도는 문준경에게 반가운 것이었다. 문준 경은 목포에 내려가서 전도할 곳들을 생각해 보았다. 이전부터 전도 해온 압해도와 목포 주변 섬 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을 생각해 보았다. 남편이 있는 임자도와 시댁 식구들이 있는 증도가 생각났다.
문준경은 먼저 임자도로 가서 전도활동을 펼치기로 작정하고 기도했다. 임자도는 남편이 둘째 부인과 살고 있는 곳이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그러한 상황에서 임자도로 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하나님은 사명자로 부르신 문준경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한때 문준경은 정식 신학생이 되기 위해 이혼을 요구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이제는 남편과 그 집안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돕고자 했다.
문준경은 부모님께 전도하러 암태도에 간것처럼 남편과 소실, 그들의 자녀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임자도에 들어갔다. 그리고 오직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이 주신 용기를 가지고 임자도 섬마을로 향했다.
신안군 서북쪽에 위치하는 임자도 섬 안에는 전장포라는 유명한 마을이 있었다. 이곳은 예로부터 새우잡이가 성행하여 상인들이 이를 팔아서 강경으로 실어 나르던 곳이었다. 강경젓갈의 원산지가 바로 이곳 임자도였다. 임자도 섬마을은 교통이 불편한 곳이자 매우 조용한 곳이기 때문에 그곳 사람들은 복음을 접할 기회가 적었다. 문준경은 그곳의 영혼들이 생명의 복음을 듣지 못하여 메말라 있는 상태를 안타까워했다.
▲신안군 임자도와 임자진리교회 지도
문준경이 임자도에 도착했을 때는 1932년 3월경이었다. 처음에 그녀는 섬마을 어디에도 발붙일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발품을 팔아 거할 곳을 찾던 중 ‘박처자’라는 여성을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이 동갑내기라는 공통점으로 금방 친해졌다. 문준경과 친해진 박처자는 자신의 남편인 ‘박성복’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게 되었고, 박성복은 자신의 가족에게는 절대 전도하지 말라는 조건으로 문준경의 거처를 제공해 주었다.
임시 거처를 구하고 차분히 생각하니 임자도에는 친척이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정씨 가문에서 아이를 낳지 못하여 혼자 사는 문준경의 숙모였다. 숙모와 문준경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다. 숙모를 물어서 찾아가 인사를 하고 대화를 하는 가운데 서로 아이를 갖지 못한 여인이라는 공감대가 흘렀다. 그리고 이심전심으로 마음이 통하는 숙모 집에서 거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그곳은 예배도 가능한 곳이었다. 그래서 그곳에서 기도회와 예배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곳은 훗날 임자진리교회의 시작점이 되었다.
처음 임자도에서 전도활동을 펼칠 때에는 여성 홀로 낯선 곳에서 사역하는 일이라 무척 힘겨웠다. 그곳의 동네 사람들과 친분을 맺고,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까지 많은 인내와 정성이 필요했다. 사회적으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녀에 대한 선입견, 그리고 편견은 사람들이 그녀의 전도활동을 곱게 바라보지 못하게 했다. 그러한 사회적 선입견은 복음전파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비록 남편과 함께 살지 않았지만, 남편의 임자도 어업활동은 성공적이어서 남편은 그곳 사람들에게 이미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문준경이 이런 남편의 첫째 부인이라는 사실이 섬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일정 부분의 선입견이 불식되는 듯했다.
섬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낮에 일하고 밤에 시간이 나기 때문에 문준경과 친인척들은 주로 밤에 모여서 기도하고 예배를 드렸다. 밤에 옆집에서 소리가 나고, 무슨 모임이 있는 것을 알게 된 주변의 동네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들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섬에 들어와서 서양 귀신을 섬기는 여자라며 문준경을 일부러 깎아내렸다. 하지만 그러한 평판은 문준경의 전도 열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문준경은 오히려 어떻게 하면 섬마을 사람들에게 복음의 말씀을 전할 수 있을지 늘 기도하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게 되었다.
어느 날 문준경은 동네 어귀 높지 않은 언덕 느티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점심시간이라서 일을 잠시 마치고 시원한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 사람이 많았다. 문준경은 이곳에 올 사람들을 예상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세상만사 살피니 참 헛되구나. 부귀공명 장수는 바람잡이요 고대광실 높은 집 문전옥답도 우리 한 번 죽으면 일장의 춘몽.
인생일귀 북망상 불귀객되니 일부황토 가련코 가이없구나. 솔로몬의 큰 영광 옛말이 되니 부귀영화 어디 가 자랑해 볼까.
문준경은 신학교에서 배운 ‘허사가’의 1절과 2절을 불렀다. 그러자 동네 아이들이 재밌어하면서 모여들었다. 그리고 한 사람 두 사람 신기한 구경거리가 난 듯 계속 모였다. 모여드는 사람들을 향해 문준경은 12절까지 끝까지 쉬지 않고 노래했다.
추초 중에 만월대 영웅의 자취 석양천에 지낸 객 회고의 눈물. 반월산성 무너져 여호집 되고 자고새가 울 줄을 뉘 알았으랴.
여류광음 덧없이 보행군 같고 왔다 갔다 비틀어 복보다 빨라. 동원춘산 백합화 아름다운 향 서풍추천 누른 잎 애석하고나.
인생백년 산대도 슬픈 탄식뿐 우리 인생 무언가 운무로구나. 묘소칠척 짧은 몸 창해일속은 조생모사 부유의 생애로구나.
이 세상은 역이요 우리는 과객. 우리 생명 신속함 날아감 같고 그 헛됨은 그림자 지냄 같으니 후생만사 헛되고 또 헛되고나.
홍안소년 미인들 자랑치 말고 영웅호걸 열사들 뽐내지 마라.
유수 같은 세월은 널 재촉하고 저 적막한 음부는 널 기다린다. 나인성의 동문 밖 누누중총중 영웅호걸 미인들 그 수 얼만가.
일관장개 포환귀 원망의 눈물 천수만구 송풍성 쓸쓸하고나.
서강월색 좋다고 노는 왕손과 당시 일대 가인들 가고 못 오니 지금 있는 서강월 여전하건만 묻힌 성이 그동안 어디 있는가.
한강수는 늘 흘러 쉬지 않건만 무정하다 이 인생 가면 못 오네. 서시라도 고소대 한 번 간 후에 소식조차 방연해 물거품이라.
년년춘색 오건만 아이타인생 한 번 가면 못 오나 한이로구나. 금일향원 노든 객 내일 아침에 청산매골 마른 뼈 한심하구나.
요단강을 거스릴 용사 있으며 서산악일 지는 해 막을 자 있나.
홍안소년 늙는 것 뉘 물리치며 백발노인 갱소년 시킬 수 있나.
토지 많아 무엇 해 죽은 후에는 삼척광중 일장지 넉넉하오며 의복 많아 무엇해 떠나갈 때에 수의 한 벌 과한 개 족치 않으랴.
땀 흘리고 애를 써 모아 논 재물 안고 자나 저 갈가 헛수고로다. 적신으로 왔으니 또한 그같이 공수 들고 갈 것이 명백잔은가.
모든 육체 풀같이 썩어 버리고 그의 영광 꽃같이 쇠잔하리라.
모든 학문 지혜도 그러하리니 인간 일생 경영도 바람잡이뿐.
우리 희망 무언가 뜬 세상영화 분토같이 버리고 주님을 뫼서 천국낙원 영광 주 화평의 생애 영원무궁하도록 누림이로다.
문준경은 이 긴 노래를 한 번도 쉬지 않고 불렀다. 사람들은 문준경의 노래가 끝나자마자 박수를 치며 흡족해했다. 그들은 처음 듣는 이 노래의 가사를 들으면서 재미있어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지, 그렇지.’ 공감하며 숙연해지기도 했다.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은 문준경을 주목했다. 그때 문준경은 요한복음 3장 16절을 가지고 주저 없이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오늘 지가 여러분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말을 하고 싶어 서라.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겁나게 사랑하신다는 겁니다.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들을 우리를 위해 보내 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신 거예요. 이 귀한 아들이 예수 그리스도신데, 이분은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대신해서 우리의 죗값을 치르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우리가 받아야 할 죄에 대한 형벌을 치르셨다는 겁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세상에 어떤 사람이 우리가 죄짓고 받아야 할 벌을 대신 받기 위해 목숨을 바치겠습니까? 세상에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디 이분 자체는 정작 죄가 하나도 없는 분이세요. 그런데도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쳐 대신 죽으신 겁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이렇게 말씀 하고 있어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갈 수 없으니라.’ 그렇죠. 이러한 예수님의 공적을 믿으면, 우리는 복 받고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것을 믿지 않으면 인생의 끝은 허무이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옥뿐입니다. 여러분,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되는지라. 아무런 대가 없이 죽으신 이 십자가 사건의 예수님을 믿으면 됩니다. 성경에 분명히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문준경 전도사의 설교를 경청했다. 그중 어느 아주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듣고 있었다. 어떤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음속 깊이 말씀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문준경 전도사는 다시 한번 찬양하기 시작했다.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밝고 빛난 내 집에 편히 살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구원함을 받으며 영생복락 면류관 우리가 받겠네.
이렇게 해서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저녁에 다시 모였다. 온종일 힘든 노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모여서 문준경 전도사의 기도 모임에 참여했다. 문준경은 이렇게 모인 적은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임자도 섬에 믿음의 불씨를 지폈다. 이 불씨는 꺼지지 않고 타올라 끊이지 않는 예배의 불꽃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임자진리교회 공동체가 세워지는 모습이었다.
*이 글은 한국교회총연합에서 발행한 <한국교회 선교사 전기 시리즈>의 "섬마을 선교의 어머니 순교자 문준경" 내용입니다.
http://www.newsnnet.com/news/articleView.html?idxno=22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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