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소리에 마음을 씻다
내장산에 들면 먼저 귀가 열린다. 산보다 앞서 물소리가 길을 내고, 사람의 발걸음보다 먼저 계곡이 달려온다. 비를 머금은 산은 짙은 초록으로 내려앉아 있고, 골짜기를 빠져나온 물은 바위와 바위를 건너며 흰 포말을 일으킨다. 그 한가운데 푸른 기와를 얹은 우화정이 고요히 앉아 있다. 세차게 흐르는 물과 움직이지 않는 정자. 서로 반대되는 풍경이 한 화면에 들어오자 걸음이 저절로 멎는다.
우화정은 내장산의 단풍과 함께 익숙한 풍경이다. 가을이면 붉고 노란 잎에 둘러싸여 화려한 얼굴을 보여 주지만, 초록이 깊은 계절의 우화정은 사뭇 다르다. 산은 온통 푸르고 물은 넘친다. 계곡을 가득 메운 물줄기가 층층의 바위를 타고 쏟아지면서 작은 폭포 수십 개를 한꺼번에 펼쳐 놓는다. 하얀 물결 사이에 선 우화정은 마치 거센 세월 한복판에서 중심을 잃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물소리가 커진다. 한 줄기의 물이 바위를 만나 둘로 갈라지고, 갈라진 물은 다시 아래에서 하나가 된다. 어떤 물은 바위에 부딪혀 높이 튀고, 어떤 물은 낮은 틈을 찾아 조용히 빠져나간다. 그러나 어느 것도 흐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길이 막히면 돌아가고, 높이가 달라지면 몸을 낮춘다. 계곡을 바라보다 문득 여행이란 낯선 곳을 구경하는 일이 아니라 익숙했던 생각 하나를 바꾸어 돌아오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주 길이 하나뿐이라고 믿는다.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실패라 여기고, 누군가 나보다 앞서가면 뒤처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물에게는 정해진 길이 없다. 바위가 나타나는 순간 새로운 길이 생긴다. 물은 장애물을 없애려 애쓰지 않는다. 그것을 품거나 돌아서며 끝내 아래로 흐른다. 낮아지기에 멀리 갈 수 있다는 오래된 진리를 계곡은 말 대신 몸으로 보여 준다.
한참 물을 바라본다. 흰 물줄기는 끊임없이 내려오는데 같은 물은 한 번도 다시 지나가지 않는다. 방금 보았던 물은 이미 저 아래로 사라졌고, 그 자리를 또 다른 물이 채운다. 풍경은 그대로인 듯하면서 매 순간 달라진다. 사람의 생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붙잡고 싶은 순간조차 어느새 흘러가고, 힘들어 밀어내고 싶은 시간도 결국 지나간다. 그래서 삶은 견디는 것만으로도 때로 충분하다. 흐르는 시간 앞에서는 기쁨도 슬픔도 영원한 주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화정의 푸른 지붕이 물 위에 희미하게 비친다. 물결이 흔들릴 때마다 정자의 모습도 흔들린다. 그러나 정자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흔들리는 것은 그것을 비추는 물이다. 그 장면 앞에서 오래 마음에 남아 있던 생각 하나가 풀어진다. 우리는 때때로 세상이 흔들린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흔들리고 있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인지도 모른다. 마음의 물결이 잦아들면 흐릿했던 풍경도 제 모습을 되찾는다.
여행길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나를 멈춰 세우는 풍경을 만나는 일은 흔치 않다. 우화정 앞에서는 카메라를 들었다가 몇 번이나 내려놓게 된다. 사진 한 장으로 가져가기에는 물소리가 너무 크고, 산의 초록이 너무 깊다. 눈으로 담는 것보다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편이 낫겠다 싶어진다. 여행에도 바라보는 시간이 아니라 스며드는 시간이 필요하다.
물은 여전히 바위를 넘는다. 산은 말없이 그 물을 품고 우화정은 그 사이에서 오래 풍경이 되어 있다. 사람만이 잠시 머물렀다가 떠난다. 돌아서는 길에도 계곡의 소리는 한동안 등을 따라온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또 크고 작은 바위를 만나겠지만 예전처럼 모든 바위를 밀어내려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때로는 돌아가고, 때로는 몸을 낮추며 나에게 주어진 방향으로 흐르면 된다.
내장산에서 내가 본 것은 정자 하나와 계곡만이 아니었다. 흘러가는 법을 잊고 살았던 내 마음이었다. 우화정을 뒤로하고 산길을 내려오는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가볍다. 계곡물에 손 한번 담그지 않았는데도 마음 한쪽이 깨끗이 씻긴 듯하다. 그날 우화정에서 물은 쉼 없이 흘렀고, 나는 오래 멈추어 있었다. 어쩌면 여행은 멀리 가는 일이 아니라, 그렇게 잠시 멈추어 내 안의 물길을 다시 내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