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49]아름다운 사람(5)-전각예술가 진공재
흔히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Art is long, Life is short’라고 말한다. 허나, 인생人生이 짧다는 것은 안다해도, 예술藝術이 진짜로 길다는 것을 실감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특기)이고 말이 좋아 예술가이지, 피카소 등 극소수 인간을 제외하고는 고흐처럼 평생 배 곯아가며 힘들게 사는 게 예술가가 아닐까. 외우畏友 가운데 국보급 전각篆刻예술가가 있다. 전각? 쉽게 ‘도장쟁이’라 말하자. 결코 신성한 직업을 비하하는 게 아니다. 나무에 글과 그림을 새기기도 하지만(서각, 목각), 돌에 글과 그림을 새기는 것이 전각이다. 마음을 다바쳐 돌에 글과 그림을 새기는 ‘심각心刻’이라는 말은 그가 만들어낸 조어이다.
남원 대산면 출신. 14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2년 동안 방황하다(‘어머니가 안계신 집은 집이 아니다’) 자전거 판 돈 3400원으로 무작정 용산행 비둘기호를 탔다고 한다. 이른바 가출家出이 아닌 출가出家. 그후, 신산한 가시밭길 50년을 헤쳐나오며, 전각부문에 ‘일가一家’를 이뤘다. 음악, 회화, 서예 등 예술계통은 ‘스승의 덕이 절반’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는 온전히 독학자습獨學自習으로 동양고전을 공부하고, 서예를 익히며, 돌에 글을 새기는 ‘석도필묵石刀筆墨’(돌칼과 붓과 먹)의 길을 걸었다. 그는 다시 태어난대도 석도필묵의 길을 걷겠다한다. 혼자여서 고독했기에 더욱 더 마음을 다잡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독불장군’ ‘괴짜’에 다름 아니었다. 1990년초 32살 때 채근담菜根譚 12,611자를 돌에 새기기 시작, 9년만에 완각을 하니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되었다. 그의 작품세계를 알아준 은문恩門 석도륜 선생은 “자기 한계를 뛰어넘은 증표로, 경건하면서 경이로운 하늘을 우러러 눈뜬 암중분효한暗中分曉漢(어둠과 새벽을 가르는 사람)”이라고 했다한다.
맨처음 도장 파는 것을 생업生業으로 익힐 때, 돈 벌어 먹고 살 바에야 이 ‘수단(전각)’으로써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에 일조하자며 몰빵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 내공이 쌓이니, 어느새 작품은 예술이 되고, 그는 예술가가 되었다. 15회가 넘는 개인전시회도 가졌으며, 독일 초대전에서 많은 화제도 낳았다. 그는 자신이 1958년생인만큼 1957년에 별세한 중국 최초의 인민예술가이자 ‘중국의 피카소’라 불리는 화가 치바이스齊白石(제백석.1864-1957)의 환생還生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방랑벽처럼 공방과 삶의 거처를 수십 번 옮긴 것은, 도장의 시대가 서서히 가고 사인sign의 시대가 도래한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말하자면 전각은 한때의 전성시대가 거하고 이제 ‘돈이 안되는’ 별종의 직업(사양사업)이 돼버린 것이다. 도사같은 외모의 그에게서 풍기는 무한대의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를 눈여겨 보는 이들이 거의 없는 것은 무척 슬픈 일이다.
애쓰고 노력한 만큼 그의 독보적안 작품들이 시대를 넘어 빛을 발해야 하거늘, 갈수록 천박해져가는 세상에 그는 점점 위축되어 가고 있다. 그래도 예술가는 어느 시대든 진보進步일 수밖에 없다며 작금의 정치현실을 개탄하면서도, 거의 매일 주옥같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찐진보’이다. ‘백기완 노나매기재단’에 재단 편액과 <임을 위한 행진곡> 작품을 무상기증한 것은 좋은 일이다. 재능기부는 이렇게 쓰여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작품과 관련단체에 기증한 것은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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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바보대통령’이 퇴임 후 고향에서 자전거에 손녀을 태우고 들길을 가는 장면을 새긴 작품을 보라. “사람 사는 세상”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바보’ 김수환 추기경의 얼굴을 새긴 작품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 전태일 열사의 죽어가면서 부르짖는 말씀을 새긴 그림판을 보면 삶이 경건하게 다가온다. 신혼부부들에게 새겨주는 <비익연리比翼連理‘ 인감도장 한 벌을 보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그는 전각으로 묵묵히 증빙하고 싶어하고 증거하고 있다. “밥은 하늘이 먹여주는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예술가의 삶이 나날이 기름지기를. 아아-. 그대는 정녕코 아름다운 사람.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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