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반존자와 빈두로존자의 관계..
부처님의 제자이고 16나한의 한 분이 빈두로파라타가 바로 나반존자라고 보는데, 빈두로존자는 열반에 들지 않고 영원히 세상에 머물며, 외적인 특성 중 두드러진것은 흰머리와 긴 눈썹을 가졌다는 점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아라한과를 얻었으나 세간에 신통력을 자랑하다가 부처님의 꾸중을 들었다.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너는 남염부제에 머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니 서구야니주에 가서 교화하라' 고 하였다. 나중에 돌아오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열반에 드는 것은 허락되지 않아서 영원히 남천의 마리산(티벳의산)에 머물며 중생을 교화하고 있다고 전한다. 중국에서는 도안(삼장법사)이 빈두로존자에 대한 신앙을 행하여 그 효시라 할 수 있으며, 당나라 이후에는 빈두로존자상을 안치하고 신앙하는 풍습이 크게 일어났다. 이상이 빈두로존자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인데 이 빈두로존자와 나반존자가 동일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가 될 만한 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반문>의 '독성재의문'에 나반존자에 대해서 "영산 당시에 부처님의 당부를 받고 항상 천태산에 있으면서 홀로 선정을 닦았다"라고 하였다.
<십송률>에 빈두로존자에 대하여 세존이 왕사성에 계실 때 수제장자가 전단향 나무로 바리때를 만들어 주머니에 담아 높은 말뚝 끝에 달아놓고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누구든지 사닥다리와 막대기를 쓰지 않고 신력(神力)이 있는 자는 가져가라고 공언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빈두로존자는 큰 반석위에서 선정에 들어 있다가 출정(出定)하여 반석과 함께 공중으로 날아가 그 바리때를 벗겨 가졌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부처님께서는 빈두로를 불러 그 사실을 확인하고는 크게 꾸짖은(일침은 놓은)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전한다.
"너는 어찌하여 금지한 나무 비리때에 욕심을 내어 대계(비구계)를 받지 아니한 속인과 외도들이 보는데서 과인법(신통)을 나타내 보였는가? 너는 죽을 때까지 대중으로부터 멸빈(승단에서 축출하는 것)을 명하니 이 남염부제에는 머물지 말라" 고 하였다. 그리하여 빈두로존자는 남염부제에서 사라지고 서구야니주에 나타났다.
<십송율>에 실린 빈두로존자의 이야기는 바로 <제반문>에 나오는 나반존자의 행적과 유사한 점이 있다. 같은 책에 이어서,
"진계(塵界)에는 나아가지 않고 그 은현(隱顯)이 무애하며 혹은 층층 대상에서 조용히 앉아 안선(安禪)하거나 낙낙 송간에 소요히 왕래하며 또는 산과 잔잔히 흐르는 물가에 한칸의 토굴을 지어놓고 임의 자재하며 꽃은 피어 작작(灼灼)하고 아름다운 새소리를 들으면서 자재히 경행하였다." 라고 하였는데, 이렇게 세상에 나아가지 않고 선정에 들거나 경행하면서 자재롭게 지내는 나반존자의 모습이 염부제에 나아가지 않고 서구야니주에 머물면서 살아가는 빈두로존자의 행장과 매우 유사하다.
<제반문>의 '독성재의문'에 나반존자에 대하여 "언제나 선정에 들어서 응공(應供)함이 한량없어 정성껏 기도하여 소원을 구하는 사람이 있으면 모두 그 소망을 성취시켜 주며, 능히 천재(天災)를 소멸하고 만덕을 성취케 하여준다.'
"열반에 들지 않고 말세 중생의 복전이 되어 미륵불이 강림하여 개설하는 용화회상을 기다린다.
중국 동진의 도안법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전한다.
"도안법사(314-385년)가 많은 경전을 주석하면서도 항상 경의 뜻에 부합되지 않을까 두려워 하였다. 이에 서원을 세우고 발원하되 만약 제가 지은 주소가 부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서상(瑞相)을 보여 주시옵소서라고 하였더니, 꿈에 인도의 스님을 친견하였는데 눈썹이 길고 머리가 희었다. 도안에게 이르기를 그대가 지은 경소는 자못 도리에 어긋남이 없다. 나는 열반에 들지 않고 서역(西域)에 있으면서 너의 불법 홍통(弘通)을 돕겠다고 하였는데 그후 <십송율>이 전역되었는데, 도안이 꿈속에서 만났던 스님이 바로 빈두로존자였음을 알았다."
이상을 통해서 볼 때 나반존자와 빈두로 존자는 눈썹이 길고 머리가 희다는 점 등 그 형상의 묘사에도 매우 유사한 점이 발견된다.
나반(那般)이라는 말은 저반(這般)과 대칭되는 말로, 저반은 이쪽이고 나반은 저쪽이라는 뜻이다. 빈두로존자는 목발(木鉢)사건으로 부처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듣고 남염부제에 있지 말고 서구야니주에 가서 있으라는 명령을 받았고, 이로써 염부제를 중심으로 할 때 저쪽 편인 서구야니에 계신다는 뜻에서 빈두로존자를 나반존자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나반존자 기도 발원문 중에서>
"우러러 고하노니 독성존자께서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 미륵부처님이 세상에 나오기 전인 그 중간의 세상에서 진계(塵界)에 나아가지 아니하고 숨기고 드러냄이 자재하여, 혹은 층층대상(層層臺上)에서 좌선하거나 혹은 낙낙장송의 소나무 사이로 소요하며 왕래하거나 혹은 물이 잔잔하게 흐르고 은은한 산 속에 한 칸의 난야(蘭若)를 지어 놓고 앉거나 눕거나 하며 노닐고 꽃은 환하게 피어나고 새는 지지배배 노래하며 성색(聲色)이 분연한 가운데 자재롭게 경행하며, 노을 같은 흰색 납의(衲衣)로 어깨를 반쯤 드러내고 앉아 도를 즐기며, 눈빛 같이 희고 긴 눈썹은 눈을 덮었다... 오늘 헌공하는 제자가 지극한 마음으로 청하옵나니 영산회상의 부처님 당시 부처님으로부터 너는 열반에 들아가지 말고 말세중생의 복전이 되라는 당부를 받고 항상 천태산에 있으면서 홀로 오매(寤寐)에 걸쳐 정혜를 쌍수(雙修)하고 열반에 들지 않으므로써 중생의 복전이 되고 있으면서 용화회상의 미륵부처님을 기다리고 계시는 나반존자와 아울러 항상 존자를 따르는 모든 권속들께서는 이 도량에 강림하시어 저희들의 공양을 받아 주시옵소서"
*천백억 화신으로 오시는 부처님..
이와 같이 부처님의 활동은 한없이 이 세상을 구원하고 계신다.
부처님은 다만 부처님만으로서만 나타나실 뿐 아니라 어떤 때에는 악마로 나타나시고
여자의 몸으로도 보여주시고, 신의 형상으로도 나타나시고,
국왕과 스승으로도 나타나시고, 노름하고 도박하는 곳에도 나타나시고,
전염병이 있을 때에는 의사가 되어 약을 베풀어 재난을 여의게 하시고.....-열반경-
절에 가 보면 불상의 종류도 많고 부처님의 이름도 많고 보살님의 이름도 많습니다. 그래서 '무슨 부처님이 이리도 많으신가?' 하고 얼떨떨해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요히 생각해 보면 이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또 당연한 이치입니다.
왜? 이 우주에는 무수한 세계가 있고 무수한 종류이 중생들이 있고 무수한 고통과 요구와 염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와 중생과 고통과 염원에 따라 부처님께서는 거기에 맞는 모습을 나투십니다.
신의 세계에는 신의 모습을 나투시고 인간 세계에는 인간의 모습을 나투시고, 동물 세계에는 동물의 모습을 나투십니다.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아미타불의 모습으로 오시고 병든 사람에게는 약사여래의 모습으로 오시고, 미래 세계의 중생에게는 미륵불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악마의 모습이 필요할 때는 악마로 오시고, 어머니 모습이 필요할 때는 어머니로 오시고, 노름꾼의 모습이 필요할 때는 노름꾼으로 오시고...
그래서 우리는 천백억 화신(천백억의 몸으로 오시는 부처님), 이렇게 찬탄합니다. -김재영의 글에서-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_()_
감사합니다_()_()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성불하세요_()_.
감사합니다_()_()_()_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감사합니다_()_()_()_
_()_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_()_()_()_
감사합니다.
잠시 머물면서 즐갑하고 갑니다
항상 건강하시고,행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