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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12일(금)
* 시작 기도
주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신 주님은 그렇게 하나님 나라를 실제로 보여주셨습니다(마 12:28).
그럼에도 바리새인들은 주님께 표적을 보여달라고 요구합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지만 내가 보여줄 표적은 오직 한 가지 요나의 표적밖에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나의 표적은 곧 주님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묻힐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전도를 받고 회개하였는데 저는 주님의 표적을 오해한 자였습니다.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하고 표적이라고 하면 그저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일이나 병자가 회복되는 일쯤으로만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표적은 주님이 먼저 계신 무덤에 나도 함께 장사되어 새 생명으로 행하는 것임을 일찍이 알지 못하고 남의 다리만 긁는 헛헛한 자였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나를 아주 멸하지 않으시고 주님 지신 그 십자가에 나를 못 박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과 내가 하나로 연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주님의 십자가와 무덤이 나의 것이 되어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장사되어 새 생명으로 살아 영원한 나라를 소망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그 빛으로 주님과 함께 교제와 사귐의 삶을 사는 오늘이 곧 영생의 날임을 믿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막 5:1-20
제목 : 예수께서 ‘배에서 나오시매’... 귀신들린 자가 ‘무덤 사이에서 나와’...
1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 인의 지방에 이르러
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3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4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5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7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8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10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11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12 이에 간구하여 이르되 우리를 되재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13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2,000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라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14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15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16 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17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18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19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20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 나의 묵상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저녁 무렵이 되어 제자들에게 바다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시고 그 배에 타신 채로 고물에 주무시다가 한 밤 중에 광풍을 잔잔케 하셨다.
그리고 새벽녘에 건너편 거라사 지방에 도착하셨을 것이다.
거라사는 데가볼리에 속한 한 지역으로 통일왕국 시대는 물론 분열왕국 시대까지는 분명 이스라엘에 속한 지역이었으나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함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잊혀진 땅이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는 비유대적이며 헬라화된 지역의 대표성을 지닌 지역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거라사 지역에 도착하자마자 더러운 귀신들린 자가 맨 먼저 나오는 것을 보면 이 거라사 지역이 얼마나 영적으로 황폐화 되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2절에서 그 귀신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님을 만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6절에 그 귀신들린 사람이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서 예수님께 절을 하였다고 기록한다.
이는 예수님을 두 번 만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2절에서 예수님을 만났는데 3-5절에서 그 귀신들린 사람에 대한 자세한 묘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 귀신들린 사람이 이렇게 예수를 만나 절을 하였다는 의미이다.
2절에서 마가의 중요한 진술을 볼 수 있다.
‘배에서 나오시매’와 ‘무덤 사이에서 나와’의 표현이다.
배에서 나오신 것은 예수님이다.
무덤 사이에서 나온 자는 귀신들린 자이다.
이렇게 두 존재가 각각 배에서 나왔고 또한 무덤 사이에서 나왔다.
이 때 사용된 단어는 헬라어 ‘에크’로 똑같다.
예수님은 가버나움 뿐 아니라 이방 땅인 거라사까지도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해 ‘배로부터(에크 투 플로이우)’ 나오신다.
귀신들린 자 역시 사탄의 지배 아래 있는 거라사 지역을 예수님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무덤으로부터(에크 톤 므네메이온)’ 나온다.
이를 볼 때 거라사에서 예수님과 거라사를 비롯한 데가볼리를 지배하고 있는 사탄과의 한판 대결에 긴장감이 고조됨을 볼 수 있다.
한편 귀신들린 자 곧 사람이 예수님 앞으로 왔기 때문에 이를 묘사한 한글성경은 무덤 사이에서 나온 것으로 기록하였지만, 헬라어 원문은 무덤으로부터 나왔다고 표현하였다.
이는 마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데, 이미 이 거라사를 비롯한 데가볼리 지역이 사탄에 장악되어 있어 무덤과 같은 지역임을 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귀신들린 자가 거처하는 무덤이 주는 이미지는 죽음과 멸망이고 예수님이 주는 이미지는 생명과 구원이다.
이처럼 똑같은 ‘에크’를 통하여 극명하게 대조되는 두 이미지는 사탄의 미혹을 받아 자신의 죄로 이미 죽은 인간의 형편과(엡 2:1) 그들을 살리고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잘 대비시켜 준다.
이 후에 예수님은 귀신 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어 돼지 떼에게로 들어가게 하시고 그 돼지 2,000여 마리는 바다에 뛰어들어 몰사한다.
이를 목격한 돼지를 치던 자들이 동네 사람들에게 말하고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께 그 지방에서 떠나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그곳을 떠나려고 배에 오르실 때 귀신들렸던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다.
하지만 주님은 이를 허락하지 않으시고 집으로 가서 주께서 어떤 큰 일을 행하셨는지와 너를 얼마나 불쌍히 여기신 것을 가족에게 알리라고 하셨다.
그 사람이 예수님이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 지역에 전하자 이를 들은 사람들이 다 놀랍게 여겼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아들에게 생명을 주셨다.
그래서 아버지의 생명을 받은 아들(요 5:26)은 말씀으로 계시면서(요 1:1) 늘 아버지 품속에 거하셨다(요 1:18).
그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언약을 맺으셨다.
우리가 사람을 만들어 그들에게 영생을 주기로 말이다(딛 1:2).
그리고 말씀으로 계시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
이는 자기 죄로 인하여 죽은 자들을 살리고 구원하여 영생을 주시기 위함이다(마 1:21, 요일 2:25).
그 일을 위하여 아들은 ‘하늘로부터’ 나오셨고 또한 ‘배로부터’ 나오셨다.
하늘로부터 나오신 것은 아담의 생명으로 태어나 아담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제2 제3의 아담들을 무덤에서 건져내어 구원하기 위함이며, 배로부터 나오신 것은 무덤과도 같은 거라사 곧 데가볼리 지역에 있는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살리시기 위함이다.
우리 주님은 그 일을 위하여 귀신들린 자와 일전을 불사하신다.
이는 곧 뱀은 여자와 원수가 되고 뱀의 후손은 여자의 후손 곧 예수 그리스도와 원수가 되어 싸우게 된다.
그리하여 뱀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지만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박살낼 것이다(창 3:15).
이 예언의 말씀 곧 원시복음과 같이 예수님은 귀신들린 자로 표상되는 사탄과 일전을 담당하신다.
곧 그 귀신을 그 사람에게서 쫓아내신다.
그리고 그 귀신이 자신들을 군대 귀신이라고 칭하면서 돼지 떼에게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요청할 때 이를 허락하자 2,000여 마리 되는 돼지 떼가 바다로 치달아서 몰살하고 만다.
주님은 2,000여 마리의 돼지보다 한 사람의 영혼을 귀하게 여겨 그 사람을 구원하셨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씀의 실재이다(마 16:26).
하지만 영혼에 무관심한 자들은 그렇게 귀신으로부터 건짐을 받은 그 사람이 아니라 몰살당한 돼지 떼에게 초미의 관심을 둔다.
그들은 이재(理財)에 눈이 밝아서 금전적 관계만 따졌던 것이다.
나는 과연 어떠한가?
영혼을 살리고 건져주는 복음에 관심을 두었는가, 아니면 이재에 관심을 두고 만물 안에 있는 존재물에 관심을 두었는가?
이도저도 따질 것도 없이 나는 영혼에 대한 관심보다 존재물 곧 이 세상의 물질에 관심을 둔 자였다.
예수를 잘 믿어서 이 땅에서 잘 되면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 생각하였다.
이런 자는 구약의 사상에 철저히 함몰되어 빠져나오지 못한 자임에 틀림없다.
구약의 신앙은 하나님을 잘 믿어서 다윗과 같이 경제적으로 부요하고 정치적인 해방을 가져오며 사회적인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최고의 신앙이었다.
그래서 그 이전에도 하나님을 잘 믿는 자들이 부자가 되고(아브라함 등) 높은 자리 곧 권력을 거머쥐기도 하였다(요셉 등).
하지만 그것은 구약 시대로 끝이다.
예수님이 오신 이후로는 구약 시대에 보여주시던 실물 예시로써 보여주시던 복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신약 시대의 복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진정한 복이다.
비록 물질적으로 손해를 볼지라도, 예수님 때문에 권력에서 밀려난다 할지라도, 예수님과 함께라면 그것이 진정한 복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런 고난과 시련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큰 복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이런 복을 미처 알지 못하였다.
그저 이 땅에서 돈 많고 높은 권력을 가지며 떵떵거리고 사는 것이 진정한 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교회를 개척하고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를 크게 하고자 부단한 애를 쓰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나의 뜻과 생각대로 되던가?
예수님께서 건물 성전을 다 무너뜨리고 당신이 성전이라고 하셨음에도 나는 교회 건물을 가리켜 성전성전 하면서 성도들의 마음을 훔치며 호도하였다.
이런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이런 나를 아주 진멸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참으시며 고난과 시련을 통하여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하셨다.
아니 오히려 주님은 그런 나를 안으시고 십자가에 오르셨다.
그리고 썩어 냄새나고 최악의 더러움이 있는 무덤에 나와 함께 장사되셨다.
나는 그렇게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무덤에 장사되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만물 안에 있는 존재물에 치심하지 않는다.
다만 위에 계시는 존재이신 그 분,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의 나라를 소망할 뿐이다.
나 비록 연약하여 넘어질지라도 주남을 힘입어 다시 일어나 영원한 나라의 표상인 아버지 품으로 나아간다.
그곳만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기 때문이다.
나의 심령에 하늘의 기쁨이 가득 솟아오른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님께서 이 땅에 왜 오셨는지 그 뜻과 목적도 알지 못한 채 공허와 흑암 속에서 내 맘과 뜻대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미신(迷信)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은 이런 나를 공허와 흑암에서 건져내고 살리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오셨건만, 나는 그 주님을 믿으면서 나의 유익과 존재물에 함몰 되어 내 것만을 구하는 자로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시내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여호와라 일컬었던 것처럼 나 또한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세상의 맘몬을 하나님으로 섬겼던 자입니다.
이런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이 안 됩니다.
오직 창세전 언약을 기억하여 오늘도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또한 무덤에 장사되어 새 생명의 기쁨을 누릴 뿐입니다.
날 위하여 오신 주님을 기뻐했던 것은 주님으로 인하여 나의 인생이 잘 되는 것임을 믿었기 때문이었지만 이제는 이 세상에서 잘 되는 내가 아니라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오니 나를 받으소서.
주님 뜻을 바르게 알고 주님을 믿고 섬기는 자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늘로부터(에크 톤 우라노스) 오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