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2일 묵상 본문 : 마가복음 5장 1절 - 20절 - 땅의 가치가 아닌 진리로 참 된 것을 분별하며 주의 구원 역사에 동참하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오늘도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어지는 하루하루의 삶이 귀하고 소중한 시간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땅의 것에 매여 있으며 그 소중함을 잃어버리고 무의미하게 보낼 때가 많습니다.
어리석은 자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주 안에서 주어진 귀한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게 하옵소서.
오늘도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주와 교제함의 기쁨으로 하루를 살게 하시고 감사함으로 보내게 하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붙드시고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1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3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4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5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7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8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10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11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12 이에 간구하여 이르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13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14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15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16 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17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18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19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20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본문 해설
예수님은 갈릴리의 폭풍우를 잠잠하게 하시고 안전하게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시게 된다.
거라사는 가다라로 불리기도 했으며 갈릴리 바다에서 10km떨어진 케르사로 추정한다.
그리고 배에서 내리시자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님을 맞이한다.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살았는데 사람들이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지만 그것을 끊어 버림으로써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고 제어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는 사단의 권세는 세상의 힘으로는 결코 제어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며 지냈었다.
이 또한 귀신은 사람을 얼마나 파괴적으로 만드는 존재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귀신들린 자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절하면서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외친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데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라고 말한다.
마가는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예수님이 이미 귀신에게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임을 설명함으로써 오직 예수님만 사단의 권세와 능력을 통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귀신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셨고 귀신은 자신들이 많기에 군대라고 대답한다.
그리고는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게 된다.
이는 귀신이 유대나 갈릴리가 아닌 이방인 지역은 넘겨줄 수 없다는 의사의 표시를 의미한다.
그런데 그때 마침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자 예수님께 자신들을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해달라고 요청하자 예수님이 허락하시고 이에 귀신들은 돼지에게 들어가 된다.
예수님의 허락은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돼지 떼를 포기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약 2천 마리 되는 돼지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게 된다.
그런데 돼지를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이 사실을 말하고 사람들은 그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보러 오게 된다.
그리고 예수님께 나아가 귀신 들렸던 자가 정신이 온전하여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며 귀신들린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알려주자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구하게 된다.
이는 영혼의 회복과 사단의 권세를 물리치시는 예수님에 대한 관심보다 물질적 손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은 그 지역을 떠나기 위해 배에 오르셨고 귀신들린 자도 함께 있기를 간구했지만 허락하지 않으시고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하신 일을 가족들에게 알리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예수님이 그에게 이방인들을 향한 복음 증거의 사명을 부여하신 것을 의미한다.
이에 그가 가서 예수님이 자신에게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데가볼리 사람에게 전파하였고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의 묵상
예수님은 폭풍우를 잠재우시고 거라사 지방에 도착하시게 된다.
이러한 폭풍우의 모습은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거부하는 사단의 권세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볼 수 있으며 이것을 잠잠하게 하시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거라사에 도착하신 모습을 보게 한다.
세상의 그 어떤 핍박과 거센 거부에도 하나님의 복음은 온전히 전파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방인 지역에도 복음이 선포되고 증거 되어야 함을 보여주시며 주의 구원이 유대지역을 넘어 온 세상에 증거 되어야 함을 먼저 보여주고 계신다.
예수님의 오심을 안 귀신들은 예수님을 찾아가 만나서 자신들의 지역을 넘겨주지 못하겠다고 완강하게 거부하지만 결국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나오게 된다.
무엇보다 당시 귀신들린 자의 모습은 예수님을 떠난 인생의 비참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고통이 극심하여 사람의 힘으로는 끊을 수 없는 쇠사슬과 고랑도 끊어버리는 초인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고통으로 인해 소리 지르고 자기의 몸을 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죽음을 의미하는 무덤 사이에 거하면서 영적인 죽음에 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처참함이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고통과 아픔으로 신음하며 스스로를 해하는 모습에까지 이르게 됨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거부한 인생의 모습과 부르시는 은혜를 분명하게 제시한다.
1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2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3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 4 그들이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에서 밤을 지내며 돼지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것들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 5 사람에게 이르기를 너는 네 자리에 서 있고 내게 가까이 하지 말라 나는 너보다 거룩함이라 하나니 이런 자들은 내 코의 연기요 종일 타는 불이로다(사65:1~5)
예수님이 거라사의 광인을 만난 사건을 살펴보면 이사야 선지자의 선포에 대한 성취의 목적도 담겨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구원받은 백성의 완전히 달라진 모습도 본문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알기 이전과 구원받은 이후의 모습을 선명하게 대조한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엡2:2~7)
인생의 비참함은 말 그대로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었으며 그리스도는 그런 자들을 죽음에서 살리시고 그 은혜와 사랑을 세상 가운데 증거 하게 만드셨음을 선포했던 것이다.
주님은 한 영혼을 살리시기 위해 험난한 길을 마다하지 않으셨고 그의 권세와 능력으로 사단의 세력을 결박하셨으며 세상을 잠잠하게 만드셨다.
그러나 이 사실을 보게 된 거라사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들은 귀신들린 자가 온전하게 된 것을 보고서 예수님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오히려 2천 마리의 돼지 떼가 몰사한 것을 보고 예수님이 그곳을 떠나도록 만든다.
그들에게 있어 귀신들린 영혼의 치유는 의미가 없고 죽은 돼지 떼에 의미를 두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무관심과 어리석은 반응은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
오늘날 돼지 2천 마리의 가치를 환산하면 한 마리당 50만원으로만 잡아도 10억이다.
한 순간에 10억을 날린 사람이 한 사람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실에 더 가치를 두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오히려 10억을 날린 일에 모든 마음과 신경을 쓰게 될 것이다.
결국 세상의 가치로는 영혼 구원에 대한 가치를 이해할 수 없으며 예수님의 행동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은 당연한 모습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된다.
그래서 구원의 역사는 땅의 가치를 버리고 하늘의 가치를 깨닫는 자에게 의미가 부여된다.
그리고 이 구원의 역사를 위해 하나님의 자리에서 내려와 기꺼이 모든 것을 포기하신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이 얼마나 놀라운 사건이며 사랑의 희생인지를 고백하게 된다.
오늘도 주의 말씀은 인생의 가치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복음의 가치는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신다.
나의 삶도 땅의 것으로 가치를 매기면 현재의 나의 모습은 비참함의 모습이 된다.
그러나 복음의 가치로 바라보면 더없는 복된 인생이며 세상의 그 무엇도 비교할 수 없는 존귀함을 얻고 누리는 모습이라는 것을 고백하게 하신다.
오늘도 그 참 된 가치를 발견하고 복음을 통해 생명의 은혜를 누리며 선한 열매를 맺는 자로 설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은 참 된 가치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게 만들어 주십니다.
복음의 가치에서 보지 않으면 주의 사역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오히려 손해를 가져오고 손실을 얻게 하며 무익한 것이 되어 버립니다.
진리를 붙잡고 참 된 가치를 얻고 누리는 자로 살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가치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참 된 것을 따라 진리를 담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세상은 갈수록 눈에 보이는 것과 감각적인 것에만 몰두하게 만듭니다.
땅의 것에서 눈을 들어 하늘의 보좌를 바라보며 진리를 따르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의 은혜와 사랑으로 붙드시고 참 된 것을 보도록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