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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을 그리다 ※
# 1
"아파.... 나 아파..."
이런 내 목소리가 온 세상에 퍼져.
하늘 끝까지 닿으면.
니가 내 목소리를 들을수 있지 않을까.
그럴까... 그럴까.....
".....강혁....."
살며시 네 이름을 부르면...
믿을수 없는 눈물 한방울이 내 볼을따라 흐르고...
위태롭게 난간 위에 서서 눈을 감아버린다.
"몰랐어..... 정말 몰랐어.... 난...난 몰랐어...."
마지막까지 난 눈물이다.
이젠 안녕이야. 모두.
미안해- 미안해- 너무.... 너무 많이......
절대 못 할것 같던 미소가......
내 입에 스르르 걸리면...
그 미소 끝에 나는 온 몸에 힘을 빼고 말아.....
"....아아악!!!!!!!!!"
".....잘 있었....니.....혁아....."
하늘 끝에 매달린 운명.
그게 바로 이 셋의 운명이다.
# 1
"까먹었다고?"
하,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서 지나가던 개가 코웃음을 치겠다.
허구헌날 한단소리가 사랑한단 소리였으면서.
오늘은 주눅든 소리로 한단소리가.
"미안해... 오늘 500일인지 정말 몰랐어."
강준.
평소 관심 없는듯 했지만.
나도 역시 여자인지라 이런 일에는 민감했다.
"그래. 왜 까먹었는지 이유나 들어보자."
"....어?"
"이유가 있을거 아냐. 이유가. 너 이런거 잊어버리는 애 아니잖아."
"...그...그게..."
말을 또다시 얼머부리는 강준의 모습에 나는 할말을 잃었다.
"민나래 때문이니?"
"...어?"
".....맞구나?"
"아니... 나래가 어제 많이 아파서.. 너무 정신이 없어서...."
미치겠군.
어제부터 완전히 오늘이 기대가 가득 차서.
잠도 한숨 못 잤던 내가 다 한심하다.
"그럼. 너 좋다는 민나래한테 가."
"..야, 한유리. 너 말이 너무 심하.."
"꺼져. 너랑 나 이제 끝이야. 디 엔드. 언더스탠?"
멋져.
멋졌어, 한유리.
나는 씩씩대며 뒤를 돌았다.
어쩐지.
평소 이런 날 같았으면 아침부터 붕붕 뜬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해야 맞는건데.
전화하지 않는것부터가 이상했어.
이런줄도 모르고... 쪽팔리게 내가 먼저 전화걸었잖아.
"여보세요? 혁이니?"
그러나 두근두근 떨리는 심장은 어쩔수 없었다.
내 말에 웃고 우는 녀석인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지만. 별 내색하진 않았다.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애써 태연한 듯 말하는 내가 다소 어색하다는 것쯤 알고 있었지만.
[어, 유리야. 지금쯤 오붓한 500일 파티를 즐겨야 할 때가 아니야?]
"큭큭.. 나 걔랑 깨졌어."
부질없는 연기.
내색하진 않았지만 나도 그놈을 좋아하긴 했었나 보다.
우리 아빠 성격을 닮아 난 감정표현이 시원치 않다.
뭐 그딴 건 다 집어치우고.
내 발걸음은 어느새 준이네.... 아니 혁이네 집으로 간다.
둘은 형제다.
아니 쌍둥이.
[후우... 내가 이러라고 강준한테 너 보냈냐.]
"뭘. 싫증난거야. 내가 찼어. 내가. 꼴에 또 핏줄이라고 챙기냐."
[.....너 그냥 나한테 다시 와라.]
"지랄."
베실베실.
어느새 나는 웃고 있었다.
내 첫사랑. 내 옛애인 강혁.
우리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고요한 적막 속에서 그 침묵을 깬건 나의 활기찬 목소리.
"근데. 너 그거 기억나냐?"
[또 뭘.]
"너 예전에. 만우절날. 준이가 니 안경쓰고. 너는 준이 팔찌 끼고 학교온거."
[아아~ 생각난다. 그때 너 완전 속았었지. 우리 진짜 똑같이 생겼잖냐.]
"야, 야. 그래두 내가 나중에는 알아챘잖냐~ 준이 쇄골 위에 있는 점때문에."
[큭큭.. 맞다. 강준 그새끼 목밑부분에 점하나 있었지. 맞다.]
우리는 또 웃으며 얘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난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어깨에 끼우고 이미 도착한 혁이네 집 초인종을 눌렀다.
"누님이 오셨다!!!"
# 02
[여. 왔냐?]
내가 온단 소리도 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예고하고 있었다는 듯 태연한 목소리로 대문을 여는 혁이.
금방 머리를 감았는지 머리카락은 잔뜩 젖어 있었다.
"으이그~ 머리좀 말려라! 이게 뭐야~"
내가 혁이의 머리를 헝크러뜨리며 말했다.
그러자 혁이는 기분좋은 웃음을 지으며 드라이기를 가져온다.
"말려줘."
"닌 손이없냐 발이없냐. 요새 너 기어오른다?"
내 말에 피식 웃더니 제 방으로 쏙 들어가는 혁이.
곧 윙윙대는 드라이기 소리가 들린다.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능숙하게 코코아 가루를 꺼냈다.
아주 우리 집이 따로 없군. 뭐가 어디 있는지 다 외워버렸어.
"캬-"
물을 끓이고 코코아를 타 손으로 감싸니 따뜻한 기운이 확 퍼진다.
게다가 맛도 일품.
혼자 소파에 앉아 맛을 음미하고 있을때.
"변태냐? 표정이 왜 야시꾸리해."
안경을 치켜올리며 말하는 혁이.
머리는 이미 말렸는지 햇빛에 빛나며 갈색빛을 띈다.
나는 픽 웃곤 딱 한입 먹은 코코아를 건냈다.
좋다고 마시는 혁이.
말해두지만 내가 마신 쪽으로.
"....준이..는?"
"그새끼? 아까 너 오기 전에 들어왔다가. 전화받고 다시 나갔어."
내 떨리는 목소리를 정말 못 들은 냥 재잘대는 혁이.
나는 빙긋 웃었다.
"민나래 전화 받았겠지 뭐."
시큰둥.
나는 혁이를 쳐다봤다.
정말... 준이랑 겹쳐 놓은 듯 완전히 똑같은 얼굴.
심지어는 왼쪽부분에 난 덧니까지 완벽히 똑같았다.
"혁아-"
"응?"
뜨거운 코코아를 홀짝대는 혁이의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나는 혁이의 머리를 만지작댔다.
그 느낌이 그닥 싫지만은 않은지 베시시 웃는 혁이.
정말. 준이랑 너무 닮았어. 아니 똑같아.
똑같아도 이렇게 똑같을 수가 없어.
"..우리 사귀자."
".....어?"
"사귀자구. 우리 사귀자구요."
"한유리. 장난이면 너 가만안둬."
"지금 내 말이 장난같이 들리냐."
나는 내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나는 나쁜년이다.
혁이를 보고 준이를 그리는 나쁜년이다.
자기가 먼저 훌훌 보내줘놓고는 또다시 그자식을 그리는 그런 나쁜 년이다.
"이야. 천하의 한유리가 먼저 고백도 하냐?"
"농담이냐. 장난이냐. 진담이냐."
혁이는 어깨를 으쓱한다.
나는 인상을 노골적으로 찌푸렸다.
"너 죽을래!!!!"
"살려만 주세요!!!!"
쿵쾅쿵쾅.
난 혁이를 잡히면 죽일 기세로 쫓아가고.
혁이는 잡히면 죽을 것 같은 기세로 도망가고.
그러나 어느새 내 입에는.
베실베실..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 깨달은 게 있다.
"야 왜 안쫓아와~ 에이. 재미없게."
나는 강준이 없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 03
그 후로.
난 혁이와 커플링, 커플티, 커플시계,
심지어는 커플베게까지.
난 정말 원하지 않았건만.
강혁 이 녀석이 아주 징징대는 바람에 사버렸다.
그치만 나 역시 좋다고 베고 잔다.
"유리야!"
오늘도 역시,
녀석의 붕붕 뜬 기운찬 목소리로 시작한다.
오늘 날씨도 굿이고. 컨디션도 괜찮고.
왜이럴까. 다른 날과는 다른 기분.
"유리야. 오늘 뭐할까? 스티커사진 찍으러 갈래?"
"바보냐? 스티커사진은 어제 찍었잖아."
"..그...그런가? 하하하..."
안경을 슥 치켜올리며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거리는 녀석.
나는 피식 웃었다.
"어? 너 커플링 어딨어?"
"아... 오..오늘 씻다가 집에 두고 왔나봐."
"그래?"
얘가 오늘 왜이래.
내가 자기를 이상하게 쳐다보자 어색하게 웃더니 방방 뛰는 녀석.
"그럼 커플 가방 사자! 커플 가방!"
"미친. 가방은 무슨."
"사자~ 사자사자~"
또다.
쟁쟁대는 혁이의 모습이 어린애가 따로 없다.
그치만 오늘따라 좋은 기분에 나도 모르게 끌려간것 같다.
"이거는?"
"분홍색은 질색이야."
"그럼 이건?"
"너무 화려하잖아."
"이건이건?!"
"지금 이걸 나보고 메란거냐?"
"치. 다 싫대. 다 싫대!!"
레이스 투성이인 노란 가방을 내려놓으며 혁이는 투덜댄다.
솔직히 그건 좀 아니라고 보지 않니? 응?
나는 그 노란 가방을 뭔가 경멸스러운 것을 보듯 쳐다봤다.
그러자 내 눈에 띄인 가방.
"혁아, 이거."
하얀색과 까만색의 커플 가방.
굉장히 심플했다.
혁이도 꽤나 마음에 드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쏙 까만 가방을 가져간다.
"이건 내꺼!! 띰!!! 퉤퉤퉤!!!"
"야!! 내가 까만거 할라그랬어!!"
"먼저 찜한사람이 임자!!!!"
혁이는 잽싸게 계산을 하더니 가버린다.
나는 피식 웃으며 흰 가방을 들고 계산하려 지갑을 꺼내자 언니가 막는다.
"저 남자분이 계산하셨는데요."
"아.. 그래요?"
나는 평소 안하던 짓을 한 혁이에게
은근 뿌듯함을 느끼며 흰 가방을 메고 나왔다.
"알았어. 니가 그거 메라."
"오올~~~ 한유리 니가 웬일이야? 양보를 다하고?"
"미친. 그럼 내놓던가."
"아니!!! 내꺼!!!"
가방을 꽉 안으며 말하는 혁이의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와 흡사하다.
오늘따라 귀여운 짓을 많이 하는 혁이.
이상하네.
항상 끼는 저 십자가 목걸이도.
깔끔한 무테 안경도. 빛나는 갈색머리도 다 혁이 맞는데.
왠지 달라 보인다.
오늘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
"근데- 유리야."
갑자기 진지해지는 녀석을 보며 나는 혁이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물론 표정과 목소리만 진지했을 뿐.
손에 꼭 쥐고 있는 가방에는 뺏기지 않으려는 의지가 가득했다.
"..준이말이야.... 아직도 잊지 못했니.."
"....강준? 그새끼 잊은지 오래야."
나는 빙긋 웃었다.
갑자기 이런걸 묻는 이유조차 알수 없었다.
혁이는 뭔가 슬픈 웃음을 가득 띄며
내 손을 꽉 잡는다.
"그럼 난?"
"...어?"
"나 사랑하냐?"
그냥.
정말 태연하게.
어제 앞집 순이랑 뒷집 철이가 사귄다더라- 하는듯,
나긋나긋한 목소리였다.
".........."
"너 준이를 잊지 못한것 쯤 알고 있어."
"그새끼 처음부터 좋아하지도 않았어. 지금쯤 민나래랑 열심히 놀고 있겠지."
이렇게 생각하니까 또 열받기 시작했다.
민나래....
중학교 때부터 강준을 짝사랑하던 놈이였다.
그때쯤 나는 혁이와 사귀고 있었다.
그리고 준이가 나에게 고백해 사귀게 됐을 무렵.
민나래는 나를 준이에게서 떼어 놓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준이랑 헤어진 이유도 결국엔 민나래 때문이지만.
"...... 유리야."
"아냐. 아냐. 근데 강준 그놈 요새 안보인다?"
"....어?"
"어디 갔어?"
"아...아니...그냥 잠깐 머리 식히러 여행.... 응. 여행 갔어."
심하게 더듬는 혁이의 모습.
하지만 난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랬다. 그랬는데.....
...... 난 혁이의 이런 모습들을 한번쯤 눈여겨 봤어야 했다.
# 04
"혁아. 오늘은 뭐할래?"
"으음.. 글쎄. 어디갈까?"
"나이트?"
"야 너 그런데좀 가지마. 막 남자들이 너 쳐다본단 말야. 그리구 우리 아직 18살이야."
"칫. 넌 안가본 것처럼 말한다?"
혁이와 사귄지도 어언 두 달.
우리는 항상 커플링과 커플 가방을 메고 다녔다.
그리고 이녀석 옆에 있으면.
닭살커플이 되는 것 같다.
"아무튼. 거긴 안돼."
단호한 혁이의 말.
난 입을 비죽거렸다.
그리고 혁이는 뭔가 생각난게 있는 듯 내 손을 부드럽게 잡고 어디론가 향한다.
"야!! 강혁 어디가!!!! 아쫌 이 손 놔봐!!!!"
"잠시만.... 아주잠시만....."
아주 지독히도 슬퍼보이는 녀석의 모습.
나는 그런 혁이의 모습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 따라가버리고 말았다.
결국 도착한 곳은.....
햇볓에 아주 눈부신 예쁜 강이였다.
이런데도 있었구나. 대한민국에.
"멋지다."
"...... 그치... 멋지지....."
"응, 응! 죽여. 죽여."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치 집어 삼킬 듯한 커다란 나무가 숲을 연상케 했다.
나는 강에 손을 살짝 넣어 흔들었다.
"유리야."
"응?"
".....여기 예쁘지."
"그러네. 예쁘다."
"...그럼 우리... 매일 올까?"
"미쳤냐! 이 먼델 어떻게 매일 와!"
난 아예 작정을 하고 바지를 걷었다.
그리고 물 위에서 첨벙거리며 놀았다.
왠지 따뜻하고 편한 기분.
"그래... 매일 올 수는 없지."
얘가 오늘따라 엄청 분위기잡네?
나는 물에서 나와 신발을 구겨 신고 털퍼덕 주저앉았다.
"야..야.. 왜울어. 울지마. 야?"
날 놀라게 만든건.
혁이의 볼 위로 흐르는 눈물 한 방울.
불러도 소용 없었다.
이젠 아주 손으로 눈을 가리고 소리내어 울었다.
나로썬 도리가 없었다.
그저 혁이의 등을 두드려주는 일밖엔.
"내가... 뺏은거 아니지?"
"뭐?"
"..흑....하아......"
"야 무슨 소리야..."
"미안해.. 미안해 진짜...내가..... 내..내가...."
코가 빨개질 만큼 우는 혁이의 모습.
처음 본다. 정말. 처음 봤어.
"강혁. 울지마. 왜우는건데. 응?"
"....한유리.."
"그래. 왜."
"유리....바보유리야...유.."
나는 혁이 옆에 앉았다.
위로해도 그칠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는 그렇게 한참을 앉아있다 일어서는데,
"...!!!"
"...미...민나래...?"
".....한유리...."
쟤가 여긴 어떻게 알고 온걸까.
나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근데 이걸 어쩌나. 여기엔 준이가 없는데.
나는 슬쩍 민나래의 양손에 있는 꽃을 쳐다봤다.
"거추장스러운 그 꽃은 뭐니?"
"...날 놀리는 거야. 진짜 묻는 거야?"
뭔가 있다.
나만 모르는 뭔가가 있다.
눈물을 눈에 가득 담으며 말하는 민나래가,
오늘따라 한없이 작고 부질없어 보인다.
"무슨....소리야....."
"......강혁."
뜬금없이 혁이를 부르는 민나래.
나는 슬쩍 혁이를 쳐다봤다.
혁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민나래의 손목을 휘어잡았다.
"아직 아니야. 아직은 안돼. 너무 일러."
"왜!!! 한유리도 알건 알아야해!!!!"
"내가... 내가 말할께.... 조금만 뒤에.... 조금만 행복한 뒤에...."
"하. 정말 너. 진짜 바보같다? 응?"
혁이는 민나래의 등을 떠밀었다.
나만... 나만 모른다.
뭔가를...
내가 꼭 알아야 될 뭔가를 나만 모른다.
하지만 혁이에게 묻지는 못했다.
혁이의 눈빛이 슬프고도 단호했다.
그 눈빛에 나는 할말을 잃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05
"한유리~!"
그때 이후로 정말.
그날 일은 다 잊었다는 듯.
더 활기찬 모습이 된 혁이의 모습.
나는 풋. 웃어버렸다.
"오오. 한유리 오늘 죽인다?"
꽤나 신경쓴 내 모습에 혁이는 빙긋 웃는다.
어제 친구들이랑 팽팽 놀며 쇼핑 하다 산 옷을.
나름대로 코디하고 입어봤다.
"오늘은 일곱번째."
"응?"
아참.
빼먹은 게 있다.
그때. 강에 가서 펑펑 울었던 그 날 이후.
날 만날 때면 항상. 몇 번째라는 둥.. 이런말을 지껄인다.
어제는 여섯번째였다.
무슨 뜻인지 물어도 그냥 웃기만 할 뿐.
"야아~ 궁금해 죽겠다. 그게 무슨 뜻이야?"
빙긋.
또, 또 웃기만 한다!!
에휴-
그냥 그 웃음에 나도 웃어버렸다.
몇번째건 몇개건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오늘은 뭐할래?"
"나 너무 피곤해..."
"안돼!!! 오늘도 놀자. 놀자~~"
징징 떼를 쓰는 혁이.
평소같았으면 집앞까지 바래다주며 푹쉬라고 말했을텐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내 흰 커플가방을 고쳐맸다.
"요새 강준도 안보이고. 민나래도 안보이고. 둘이 도망이라도 갔나?"
"어디.. 있겠지 뭐. 하하..."
"뭐야~ 니 동생인데 걱정도 안되냐?"
"동생은 무슨. 웬수.웬수."
손을 휙휙 흔들며 말하는 혁이의 모습.
언뜻 보면 장난스레 웃는 것처럼 보이지만.
난 알수 있었다.
혁이는 지금 슬픔에 잔뜩 찌들어 있단걸.
이녀석의 제스쳐 하나하나가 다 어색 그 자체란걸 이놈은 알까.
"강혁. 너 요새 되게 이상하다? 뭔일 있냐?"
"일은 무슨. 오락실갈래?"
슬쩍.
화젯거리를 떠넘기는 혁이의 모습.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럴땐 자꾸 캐묻는것보단 그냥 원하는대로 묻어가주는게 더 좋은 방법이란걸 알고 있었다.
"가면 보글보글하자!!!"
"허구헌날 보글보글이냐."
내가 투덜대자 상관않고 오락실 쪽으로 빠르게 뛰는 혁이.
"빨간용 내꺼!!"
"야 뭐냐!! 내가 빨간용!!!"
쟁알쟁알쟁알.
별 잡다한 효과음이 다 나는 커다란 오락실 구석에 자리잡은 보글보글.
혁이는 손수 동전까지 넣어주며 자기가 먼저 빨간용을 시작해버린다.
"아 그게 아니지!! 왜 자꾸 죽어!!"
"죽을수도 있지!! 우씨."
"너 그럼 바나나좀 먹지마! 게임은 드릅게 못하면서 쏙쏙 잘 골라먹네."
"뭐!!!!!"
또 티격 태격.
종알종알 말은 많으면서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르게 잘하는 혁이를 난 말없이 쳐다봤다.
그리고 내 눈에 띄인 총 게임.
보글보글에 정신이 없는 혁이를 놔두고 나는 총 게임에 500원짜리를 땡그랑. 넣었다.
"아 진짜!! 이거 진짜 사기다. 쏘는데 왜 안죽냐고!!"
"거야 니가 조준을 못하고 총알만 낭비하니까 그렇지! 바보냐!!"
어느새 보글보글을 끝내고 내 옆으로 자리잡은 혁이.
또 옆에서 종알종알. 성가심의 극치다.
"난 조준 하는데 이 병신오락기가 안되잖아!!"
"왜 얘탓으로 돌려!! 니가 못하는거지!!!"
"야 그럼 니가 해봐!!"
나는 혁이의 등을 떠밀었다.
혁이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총을 들었다.
그러나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지 총알만 낭비해댄다.
푸흡.
"야 내가 뭐랬냐!! 니도 못하면서. 병신."
"이 오락기 진짜 애자네!!!"
"참나. 지가 못하니까 또 오락기 탓 하는거 봐."
"어? 저게 뭐야?"
궁지에 몰리자 얘깃거리를 바꾸는 혁이.
나는 그 모습에 웃어버렸다.
그러나 얘깃거리를 바꾼게 아니라 정말 뭔가를 봤는지 나를 그쪽으로 끌고 가는 혁이.
"인형뽑기다!! 내가 저거 뽑아줄께!!"
"됐네요."
"아니야!! 아니야!! 내가 너닮은 저 돼지인형 뽑아줄께!!!"
그러더니 천원짜리 한장을 쑥 넣어버리는 혁이.
미쳤어. 미쳤어.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나 해?
돈만 날릴텐데. 쯧쯧.
# 06
"야~ 이거 진짜 애자다. 왜 안뽑히냐."
"안뽑히는게 아니라 못뽑는거야."
"야 나 벌써 5000원 넘게 날렸다. 오기로라도 뽑는다 내가."
"아 그냥 하나 사는게 싸겠다, 병신!!!"
끝까지 나를 닮은 저 돼지인형을 뽑는다며
바락바락거리는 혁이.
푸흡.
돼지인형이 나랑 닮았다니.
"목표를 너무 크게 잡았어. 저 돼지는 너무 크잖아."
"안됏!! 싫어!!! 난 저 돼지를 뽑고야 말겠어!!"
그리고.
정확히 6400원을 날렸을때.
"한유리!! 봤냐!! 들렸어!! 들렸어!!!"
"어? 진짜다!!"
커다란 그 돼지인형.
안 뽑힐것 같던 그 인형이 어느새 혁이가 조준한 인형뽑기에 의해 쑤욱 들리고.
"우와. 우와. 이런걸 뽑다니."
그걸 받아든 나는 감탄에 머지않고 한참이나 그 돼지를 바라봤다.
혁이는 그 돼지의 입에 쪽, 하고 입을 맞춘다.
"그거 보면서 맨날맨날 내 생각 해야돼?"
"미친. 내가 니생각을 왜해."
"내가 돼지 선물해줬잖아~ 돼랑이 돼랑이."
"이거 나 주는거?"
"그럼 너줄려고 뽑지. 내가 그런걸 왜가져."
나는 오랜만에 착한짓 한번 한 혁이의 머리를 쓰윽쓰윽 쓰다듬었다.
나가보니 이미 날은 저물어 있었다.
인형뽑기에 시간을 너무 투자했구만. 쯧쯧.
**
"학교 다녀올께요~"
후다닥.
지각이다 지각~!
나는 다리를 쭉쭉 뻗어가며.
어깨에는 혁이와의 커플 가방을 메고.
학교로 후다닥 뛰어갔다.
"..하악...하악..... 어?"
나와는 다른 학교에 다니는.
....... 준이가...
준이다....준이가 맞다.
"강준....."
"한유리-"
나는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최대한 밝게.
그리고 왼손 약지에 끼워져있는 반지를 꼬옥 잡았다.
"오랜만이다?"
"그러네...."
"여긴 웬일이야? 우리 학교 근처잖아."
"...그냥 지나가다 들렀어."
그대로 날 지나쳐 가버리는 준이.
왜이렇게... 틀어져 버린걸까.
"강준!!!!"
내 부름에 준이는 날 슬쩍 돌아본다.
"우리 헤어졌어도 친구 맞잖아. 근데 왜 너 날 피해?"
"미안해서. 너무 미안해서...."
"저번 500일 민나래 사건땜에 그래? 그거라면 다 잊었어 그러니까...."
"아니. 그거랑은 별개루. 너한테도... 그리고...... 혁이한테도......"
추욱 늘어진 준이의 뒷모습이.
그렇게 안타까울수가 없다.
나는 한참이나 준이의 그런 아픈 뒷모습을 쳐다보다 이내..
다시 학교로 들어갔을땐.
30분이나 늦어있는 엄청난 사태.
정문에는 학주 선생님이 불같은 눈으로 날 기다리고 계셨고.
따따따. 하는 엄청난 연설을 감수해야만 했다.
# 07
"혁아."
".....응?"
오늘따라 시무룩한 녀석의 모습.
나는 레몬에이드를 쭈욱 빨며 계속 힐끔힐끔 녀석을 쳐다봤다.
아이씨.. 뭐 좋은 얘깃거리 없나?
.....아!!!
"있잖아, 혁아."
"....응?"
"나 오늘 아침에 준이 만났다?"
"....그..그래?"
그리고 또다시 침묵.
얘가 오늘 왜이럴까.
먼저 전화해서 할말 있다고 한건 자기였으면서.
"야, 할말 있다며. 얼른 해봐."
".......아...그..그게...."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뜸을 들여."
쭈욱.
난 도다시 빨대를 물고 시원한 레몬에이드를 마셨다.
"오늘이... 마지막... 열번째야... 한유리 병신아..."
"아 그니까. 그게 무슨 뜻이냐구요!!"
후우.
내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슬픈 기색을 띄는 혁이의 모습이.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강혁. 알지."
"..갑자기 뜬금없이 뭔소리야. 니가 강혁이잖어."
긴 컵에 가득 담겨있던 레몬에이드가 바닥날 무렵.
혁이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 말 뜻을 난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하하.. 그래 맞다. 내가 혁이지. 내가 강혁이지."
"....너... 미쳤냐?"
내 말에 피식 웃으며 날 쳐다보는 혁이.
그리고는 내 이마를 검지손가락으로 툭 친다.
"남자친구한테 별 소리를 다 한다."
"치."
다시 빨대를 물었을 때 남아있는건 얼음뿐...
아. 허무해.
나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혁이의 오렌지에이드를 탐했다.
달라고해도 안 줄게 뻔하다.
혁이는 진짜 오렌지 광이기 때문.
준이는 오렌지 진짜 싫어했지. 맞다.
그런데 혁이는 뭘 먹어도 항상 오렌지 맛이었다.
오렌지맛 사탕, 아이스크림, 주스.....
혁이는 먹기가 싫은건지. 평소 그렇게 좋아하던 오렌지에이드를 한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혁아. 너 그거 안마셔?"
"..으...응.. 마셔야지. 응."
이렇게 말해놓고 전혀 마시지 않는 혁이다.
오히려 그 오렌지에이드를 나에게 넘긴다.
"너 마셔."
"뭐?! 진짜?! 웬일로 니가 오렌지를 양보하냐?"
그러면서 벌써 빨대를 쏙 넣고 마시는 내 모습.
킁.. 맛있는건 어쩔수가 없는거다.
..
"유리야."
"응?"
한껏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나즈막히 부르는 혁이.
"오늘이 마지막이었는데. 왜이렇게... 왜이렇게 말해주기가 싫을까?"
"뭘 말이야."
"........ 나 그러면 너무 욕심내는건데."
나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책상을 탕. 박차고 일어나 버렸다.
도데체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알아들을수가 없잖아.
나는 혁이의 손목을 낑낑 들어올렸다.
"왜 그러는지 말좀 해봐. 요새 너 안어울리게 진지한거 알어?"
"....잠깐. 화장실좀 갔다올께...."
또다시.
손등으로 눈물을 쓱. 훔쳐내곤 후다닥 사라져버리는 혁이.
정말... 나만.... 나만 모르고 있다.
남들 다 슬퍼할때.
나만 웃고 있다.
뭔지.... 말해줄수 없을만큼... 많이 슬픈일이니... 그러니...혁아...?
"어 혁아. 너 나한테 할말 있는것 같던데..
너 너무 힘들어보이니까 오늘은 안될것 같은데.
응, 응. 고맙긴.... 너가 자꾸 그러니까 나도 듣기가 두려워서 그러는거야.
응. 그래.. 내일 보자."
툭.
혁이에게 전화를 해버리고.
그대로 카페를 나와버렸다.
퐁퐁. 눈물이 이유도 영문도 모른채 나온다.
혁이가 무슨 말을 하고싶었는지 알수는 없었지만,
느낄 수는 있었다.
그랬기에 눈물이 복받혀 올라......
".....한유리."
날 부르는 고음의 여자 목소리에-
펑펑 울던 그 추한 모습을.... 그녀에게 보여줘야 했다.
# 08
"할 말 있어."
"난 너랑 할 얘기도, 들을 얘기도 없어."
자존심 없으면 시체인 한유리가.
눈이 벌겋게 충혈될 만큼 병신같은 모습을
....민나래에게 보여버렸다.
이 자리를 얼른 피하고 싶다.
저 애도.. 왠지 날 비웃고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그래서...
"니가 꼭 들어야 돼. 준이 얘기야."
"..준...이?"
"그래."
날 우악스럽게 잡아 끌며 호프집 안으로 들어와버리는 민나래.
껄끄럽게 여기는 아까 혁이와 헤어졌던 그 카페 바로 옆 호프집이었다.
나는 자존심이고 뭐고 민나래가 말한
준이 얘기를 들어야만 했다.
왠지 아까 혁이가 말하려다 말았던 그 얘기와 연관이 있는것 같아.
새삼스레 가슴이 쿵쿵 뛰며 두려움이 느껴졌다.
"생맥주 둘이요."
대충대충.
생각나는대로 시켜버리고 의자에 기대 한참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민나래.
하지만 나도 조급해하진 않았다.
이 아이 역시 시간이 필요한 듯 했으니까.
그만큼 슬퍼보였으니까...
"아마... 내가 이 말을 너에게 먼저 한걸 알면."
"......."
"니 옆에. 그 남자친구란 그 놈이 날 아마 죽이려 들꺼야."
"....그런.....!!"
말도 안돼. 진짜 말도 안된다.
내 옆에 남자친구라면. 혁이잖아.
혁이가? 준이면 몰라도 혁이는.. 혁이는 그럴 애가 아니다.
민나래가 후우- 하고 한숨을 쉬고는 뭔가 단단히 마음을 먹은 듯.
표정을 굳히고 입을 열었을때,
"생맥주 둘 나왔습니다."
맥 빠지는 종업원언니의 목소리.
민나래도 타이밍을 놓쳐서인듯 다시 기운이 빠져버렸다.
그리고 또다시.
생맥주에는 손도 대지 않은 우리 둘이 한참이나 말이 없었을까.
"후우-"
벌컥벌컥,
생맥주를 한꺼번에 다 마셔버린 민나래가.
취기가 약간 도는 눈으로 흐리멍텅- 날 쳐다봤을때.
그제서야 또 입을 연다.
"혁이.... 혁이 말이야....."
"응. 응. 혁이가 왜."
말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 역시.
궁금하고 불안하고.. 또 조급했던건 마찬가지였기에.
민나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의자를 당겨 앉았고.
"두달정도 전에...... 죽었어.... 죽어버렸어....."
하하.
실없는 웃음이 나온다.
죽긴 누가 죽어. 바보. 방금까지만 해도 나랑 같이 있었는데.
얘가 은근히 술이 약하구나. 벌써 취해버렸어.
"....흑.....죽었어....저..정말 죽었어...."
그러나 민나래의 말에는 거짓이 들어있지 않았다.
나는 그제서야 표정을 풀고 흔들리는 눈빛으로 민나래의 어깨를 잡았다.
죽다니. 죽다니!!!!!!
왜... 왜? 그럼 나랑 같이 있던 강혁은?
그 강혁은!!!!!
"죽다니. 그게 무슨소리야."
나는 다소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내 목소리가 많이 떨린다는 것쯤은 코흘리개 꼬마도 알 수 있었다.
"교...교통사고....흑.....뺑소니였대..."
"그럼.. 그럼 지금까지 나랑 있던 강혁은!!!! 그 강혁ㅇ....서...설마......"
"..... 니 예상 확실히 맞을꺼야. 그래. 걔는 강혁이 아니야. 눈치챘을꺼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진정을 되찾은듯한 민나래는 눈물이 줄줄 흐르는 눈으로,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차갑게 대꾸했다.
난....난 정말 둔한 바보였다.
그런....그런......
...이젠 내 눈에서 눈물이 나온다.
..
.........
'유리야. 오늘 뭐할까? 스티커사진 찍으러 갈래?'
'바보냐? 스티커사진은 어제 찍었잖아.'
'..그...그런가? 하하하...'
'아냐. 아냐. 근데 강준 그놈 요새 안보인다?'
'....어?'
'어디 갔어?'
'아...아니...그냥 잠깐 머리 식히러 여행.... 응. 여행 갔어.'
'내가... 뺏은거 아니지?'
'내가... 내가 말할께.... 조금만 뒤에.... 조금만 행복한 뒤에....'
'요새 강준도 안보이고. 민나래도 안보이고. 둘이 도망이라도 갔나?'
'어디.. 있겠지 뭐. 하하...'
'미안해서. 너무 미안해서....'
'저번 500일 민나래 사건땜에 그래? 그거라면 다 잊었어 그러니까....'
'아니. 그거랑은 별개루. 너한테도... 그리고...... 혁이한테도......'
'오늘이... 마지막... 열번째야... 한유리 병신아...'
'....강혁. 알지.'
'..갑자기 뜬금없이 뭔소리야. 니가 강혁이잖어.'
한번도....
한번도 정말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혁이가.... 안경이 너무도 잘 어울리던 혁이가.
......
...... 준이일거라곤.
# 09
3일이 지났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학교다니는게 신기할 정도로.
".....여보세요"
주머니속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아무 생각 없이 귀에 대버렸다.
이미 수척해진 내 얼굴. 그리고.... 놈의 목소리.
[한유리. 할말 있어. 왜 전화도 안받고 그래.]
혁이가 아닌... 준이의 목소리.
시력 0.3이 아니라. 2.0이라고 자랑하던 준이의 목소리.
하하..... 바보 한유리.
아직... 혁이한테 찾아가지도 않았잖아.
"....응.."
[이따 니네학교 앞으로 갈께.]
"...응....."
[수업 잘받구.]
".......응..."
[잘 웃어. 졸지 말고.]
".....응..."
[유리야.]
".......응"
[야 한유리..]
"..응......"
점점 작아지는 혁이의.... 아니 준이의 목소리.
미안해 준아. 나 니가 할말이란거.. 알아버렸어.
미안해. 미안해. 모르는게 더 나을 뻔했다고..
자꾸 그렇게 생각되는 이 나쁜 한유리를 용서해. 준아.
[왜그래. 무슨 일 있어?]
".........."
[유리야!!!]
"..아니야....일은 무슨.."
[..그래. 이따 보자.]
뚝.
내가 먼저 폴더를 닫아버리고.
쪽팔린것도 모른채 애들 다 있는 이 교실 안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죽지마... 죽지마 혁아...
이 나쁜자식아... 나한테 말도 없이 죽으면 어떡하라고 이 개자식...
거기는 좋냐? 좋아? 나 없으니까 속 편하고 좋지? ......
니가 원하지 않으면 나.. 니 앞에 안나타날께.
나타나지 않을께.
그러니까 제발 살아주라.... 다시 돌아와주라... 부탁이야. 응?
"...혁아......"
나땜에 죽은걸까.
사실 내가 혁이한테 사귀자고는 했지만..
내가 진짜 좋아하는건 준이라고 생각한걸까.
그런거야? 그런거니.
"...흑...흐으...."
그대로.
그대로 뛰어나와버렸다.
갈 곳이 없다.
이렇게 땡땡이를 치면 항상 혁이가 같이 놀아줬었는데.
자기 수업 상관 안하고 나한테 달려와줬었는데.
"으...으아아아아!!!!!"
미치겠다.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울기 싫은데... 울기 싫은데.....
타박타박, 나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언제나 닫혀 있던 옥상 문이 오늘은 웬일인지 열려있다.
차가운 바람이 내 살갗에 닿아도..
난 추운것도 모른채...
... 그저 혁이와 조금 더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 베실베실 웃음이 피어오르고.
"거기. 쭉빵이 천사들 많지. 그치."
나는 계속 하늘만 보고 빙긋 웃었다.
두둥실. 하얀 구름이 계속 떠다니면.
몇분 안 되어 조금씩 까만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고.
"....쭉빵이 천사들 보느라... 나같은건 다 잊었겠다... 그치..."
또.. 또다시 눈물이 쉴 새 없이 흐른다.
이런건... 이런건 말도 안돼.
왜 나한테....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지...? 응.....?
털썩. 주저앉으면.
이제는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난 그걸 그대로 맞고 있는다.
"....헤헤.. 나 안잊었나 보구나? 나 보니까 또 우는거 봐, 강혁."
"........"
"....남자는.. 울면 안되는데......."
잠시 내리는 소나기인 듯한 그 비는.
아주 세게 퍼부어 금새 내 교복을 적셔댔고.
난 그 빗줄기가 꼭 돌덩이라도 되는 냥.. 아파왔다.
.....아프다.... 아파.....
"나...너 보구싶어..혁아...."
내 눈물이 비와 섞여 옥상 밑으로 떨어지면.
난 그 눈물을 따라 시선을 밑으로 내리고.
생각보다 아찔하게 높은 난간에 나는 움찔하다가도 어느새 씨익 웃고 만다.
"여기서 떨어지면.... 너 볼수 있을까.....?"
스르르.
기막힌 타이밍으로 점점 비가 걷힌다.
먹구름이 가시고 다시 쨍쨍한 해가 떠오르면...
나는 홀딱 젖은 몸으로 하늘을 보고.
"....이제..안우는구나.. 내가 너 만나러 간다니까.... 그렇게 좋아...?"
나는 손을 뻗어 힘겹게 난간 위로 올라섰다.
비틀...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높이에 나는 눈을 꼭 감았다.
손에 땀이 쥐인다.
.......아찔하다.
....그냥.....죽지 말까.....?
..........
...아니야. 여기서 떨어지기만 하면. 한 걸음만 내딛으면.
금방 혁이를 만날 수 있어. 그럴 수 있어.
준이인줄 모르고.... 나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랬...는데....
나는 눈을 뜨고 하늘을 쳐다봤다.
아까 비가 왔는지도 모를 화창한 날씨.
하지만 아직 내 얼굴에는 비가 오고 있다..... 내 눈에서 비가 내리고 있다....
# 10 (完)
"아파.... 나 아파..."
금방이라도 픽 쓰러질 듯 위태로운 유리의 목소리.
그녀의 마음도 모른 채 하늘은 맑기만 했다.
유리의 눈에서는 어느덧 눈물이 흘러 .....
".....강혁....."
유리는 생각만해도 아찔한 아래를 잊기 위해
눈을 감아버린다.
그 순간까지도 눈물은 멈추질 않고....
"몰랐어..... 정말 몰랐어.... 난...난 몰랐어...."
이제는 닦을 새도 없이 흐르는 눈물.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얼굴에는 알수 없는 미소가 담기고.
유리는 계속해서 그 미소를 유지하며 몸에 힘을 빼버린다.
...그대로... 그대로....
덜컹-
"한유리!!!!!!!!!"
... 강준.
준이다. 준이가 왔다.
안경을 낀 채로. 팔찌는 벗은 채로.
혁이의 모습을 한 준이가 왔다.
........... 목 밑에는 점 하나를 새긴채로.
....
혁이에게는 없고 준이에게는 있는.
..... 점 하나를 쇄골에 새긴채로.
이래도... 이래도 눈치채지 못했어.
난....난....... 하하.... 너무 바보같다.......
"안녕...혁아...?"
"..뭐....뭐하는거야...유리야..얼른...얼른...."
심하게 떨리는 준이의 목소리.
나는 빙긋 웃었다.
여느 때와 다름 없는 편한 미소.
나는 살며시 손을 뻗었다.
준이는 한걸음..... 두걸음.....이쪽으로 와 내 손을 잡는다.
"그래... 그래...얼른 내려와... 왜그래, 유리야..."
어느새 아래에는 구경꾼들이 수두룩.
나는 준이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그리곤 내 손등에 살짝 뽀뽀를 하고 준이의 입에 살며시 댔다.
"...간접...키스. 강준."
".....한유리..."
"준아. 미안해. 진짜 키스는.....다음 생에 해줄께. 미안해...미안..해...."
내 말에 눈물을 한방울 흘리더니 나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준이.
"....일단. 내려와서 얘기하자, 유리야. 유리야...제발....제발......"
내 마음을 울리며 금방이라도 사르르 녹일 듯한 애절한 목소리에.
나도 어느새 미소는 가시고 엉엉 울고 있었다.
그리곤 난간에서 발을 떼어놓아......
"....아아악!!!!!!!!!"
".....잘 있었....니.....혁아....."
나...... 혁이 만나러 간다....
저 하늘을 그리면서... 그렇게.... 지금....
끝까지 울면서 간다.....
나....나....난.......
콰아아앙-........
........
삐용... 삐용......
"어머. 어떡해. 진짜 죽었나봐."
"야 그럼 저기서 떨어졌는데 죽지 않고서야."
"꺅!!! 야 여기까지 피 다 튀었어."
"뉴스감이다. 진짜."
............... 안녕. 혁아. 잘 있었니.
하늘을 그리다.
마지막에는 준이의 눈물로 장식하며.
...
The End.
첫댓글 우힛♡ 언니 여기에 올렸다 <-
헉 응!! >_< ㅋㅋ 봤구나!!ㅋㅋ
아아...이런...ㅠㅠ
헉. 꼬릿말감사합니다.ㅠ_ㅠ ♡
어머.. 너무 재밌어요!! 흐아!! 짱짱!!ㅜ_ㅜ.. 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대단한 실력..ㅜ_ㅜ...
헉.ㅜ_ㅜ 과찬이십니다 ♡ 읽어주신거 너무감사드려요 >_< !! 으헤헤
아...슬퍼요..ㅠㅠ 이런...너무잘쓰셧어요!!!!
헉. 감사합니다.ㅠ_ㅠ 흑흑흑
잘보았습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
캭. 감사합니다.ㅠ_ㅠ ♡
너무 슬펐요.. ㅠ.ㅠ
감사합니다!! ㅠ.ㅠ ♡
와 감동적입니다 잘쓰셧어염
악 ! 감사드립니다.ㅠ_ㅠ 흑흑
우ㅠ_ㅠ 너무너무 슬퍼요...
헉. 정말이요?ㅠ_ㅠ 감사합니다 ♡♡
ㅜㅜ넘흐슬퍼여 ㅠㅠㅠㅠ 감동적인 ㅠㅠ 소설을 넘흐잘쓰시네요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