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공이란 자는 족성이 자세치 못하나, 본시 왜인으로 처음에 박을 허리에 차고 바다를 건너온 까닭에 호공이라고 일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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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거세 8년에 왜와의 접촉 기사가 처음으로 나타나지만, 호공의 출신이나 그의 말을 분석해 보면 왜와 상당한 교류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호공의 말에 의하면 왜가 신라에 있어서 낙랑이나 변한 등과 같은 위치의 주변국임을 알 수 있고, 사로국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호공이 왜인이라는 것은 이미 왜가 신라에 있어서 중요한 주변국이라는 것이다.
2.남해 차차웅
11년 (AD 14년) : 왜인이 병선 100여소를 보내어 해변의 민호를 노략하므로, 왕은 6부의 정병을 일으켜서 막게 하였다.
이어 낙랑의 군사가 쳐들어왔을 때도 6부의 군사 1000명이 추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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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가 이미 100여척의 배를 보내어 공격할 능력이 있으며, 낙랑의 침입 때와 마찬가지로 사로국의 6부의 정병이 출동하여 막는 것을 볼 수 있다.
3. 유리 이사금
( 교류나 침입 기록이 없음)
4. 탈해 이사금
탈해는 본시 다파라국의 출생으로, 그 나라는 왜국의 동북 1천리쯤 되는 곳에 있었다.
3년 (AD 59년) : 왜국과 호의를 맺고 빙문을 나누었다.
17년 (AD 73년) : 왜인이 목출도를 침노하자, 왕이 각간 우오를 보내어 막다가 이기지 못하고 우오는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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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국과 가까운 곳의 출신이었던 탈해는 왜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으나, 왜는 계속 침입을 하였다.
5. 파사 이사금
(교류나 침입 기록이 없음)
6. 지마 이사금
10년 (AD 121년) : 왜인이 동변을 침범하였다.
7. 일성 이사금
(교류나 침입의 기록이 없음)
8. 아달라 이사금
5년 (AD 158 년) : 왜인이 내빙하였다.
20년 (AD 173년) : 정월에 왜국의 여왕 비미호가 사신을 보내어 내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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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상으로 80년 이상 교류가 끊기었던 신라와 왜는 우호적인 관계를 회복하였다.
9. 벌휴 이사금
(교류나 침입의 기록이 없음)
10. 내해 이사금
13년 (AD 208년) : 왜인이 국경을 침범하므로, 이벌찬 이음을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막게 하였다.
11. 조분 이사금
3년 (AD 233년) : 왜인이 갑자기 닥치어 금성을 에워싸므로, 왕이 친히 나아가 싸우니 적이 궤주하는지라, 경기(輕騎)를 보내어 이를 추격하게 하여 1000여 명을 살획하였다.
4년 (AD 234년) : 5월에 왜병이 동변을 침범하였다.
7월에 이찬 우로가 사도에서 왜인과 싸울 때 바람을 따라 불을 놓아 배를 태웠으므로 적병들이 물에 뛰어들어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12. 첨해 이사금
3년 (AD 251년) : 왜인이 서불감 우로를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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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3세기에 들어와서 국경의 해안이나 섬을 침입하던 왜가 수도 금성까지 진격해 오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조분 이사금 당시에는 각간 석우로의 맹활약으로 패배를 거듭하던 왜가 첨해 이사금 당시에는 사로국 안까지 들어와 우로를 죽였다.
이는 첨해 이사금의 석우로 세력의 견제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삼국사기 열전 제 5 석우로편을 참조하여 석우로와 첨해왕의 관계를 고찰해보자.
석우로는 벌휴왕의 손자이다.
벌휴왕의 태자 골정과 둘째 아들 이매는 일찍 죽고, 골정의 아들 조분이 아직 어려서 이매의 아들 내해가 왕위를 계승했다.
내해의 태자 우로와 왕자 이음은 일찍부터 가야, 왜, 백제, 말갈을 상대로 상당한 전공을 세웠으나 이음은 내해왕 25년에 죽었다.
그러나 왕위 계승은 내해왕의 사위이며 골정의 맏아들인 조분에게로 돌아갔다.
조분왕 시대에 우로는 서불감으로 군권을 장악하고 왜를 물리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사론에 이르기를 "우로가 당시의 대신으로서 군국대사를 맡아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또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패하지는 아니하였으니, 그 모책이 다른 사람보다 월등함이 있었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첨해 7년 (본기에는 3년으로 기록되어 있음) 왜국의 사신 갈나고가 使館에 와 있었는데 우로가 이를 주관하였다. 우로는 사신과 희롱하여 말하기를 " 조만간에 너희 왕으로 염노를 삼고 왕비로 취사부를 삼겠다" 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왜왕이 대로하여 신라를 공격해왔다.
우로는 이 일이 자신의 말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책임을 지고 왜군에게로 갔다.
"전일의 말은 희롱이었다. 어찌 군사를 일으켜 이렇게 까지 할 줄 알았겠는가"
하였지만 왜인은 석우로를 잡아 불태워 죽인 다음 돌아갔다.
이 일은 사로땅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조분왕의 동생이었던 첨해왕은 3대에 걸쳐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우로를 왜인의 손을 빌려 제거한 셈이었다.
또 석우로에게 연패한 왜 였지만. 첨해왕의 묵인 아래 사로국 안에서 그들의 숙적인 우로를 제거할 수 있을 만큼 만만치 않은 국력을 보여주는 장면이랄 수 있다.
13. 미추 이사금
(왜와의 교류나 침입 기록이 없음)
사기 열전의 우로편 기록에
....미추왕 때에 왜국의 대신이 내빙하였는데, 우로의 아내가 국왕에에게 청하여 사사로이 왜국 사신에게 음식을 대접하다가 몹시 취하게 되자, 장사를 시켜 마당에 끌어내려 불태워 전의 원한을 보복하였다. 왜인이 분하여 와서 금성을 치다가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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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로의 아내 명원부인은 조분왕의 딸이며, 미추의 아내 광명부인과 자매간이다.
이 일을 살펴보면 미추왕의 묵인 아래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로가 화형을 당할 당시 흘해는 아버지 우로의 화형 현장에 있었고, 아직 어리고 약하여 보행하지 못하므로 다른 사람이 말에 태우고 돌아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석우로 집안의 왜에 대한 원한을 짐작할 수 있다.
14. 유례 이사금
4년 (AD 287년) : 왜인이 일례부를 습격하여 불을 놓고 사람 1000명을 사로 잡아 갔다.
11년 (AD 294년) : 여름에 왜병이 장봉성을 공격해 왔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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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는 사로와 왜의 관계가 역전하여 왜에게 밀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5. 기림이사금
3년 (AD 300년) : 정월에 왜국과 교빙하였다.
<10년 국호를 신라라고 하였다.>
16. 흘해 이사금
(흘해 이사금은 내해왕의 손자로 아버지는 우로 각간이며, 어머니는 명원부인으로 조분왕의 딸이다.)
3년 (AD 312년) : 왜국왕이 사신을 보내어 아들의 혼인을 청하므로 아찬 급리의 딸을 보내주었다. (아찬 급리는 2년 후 이찬이 됨)
35년 (AD 344년) : 왜국이 또 사신을 보내어 혼인을 청하였으나 신라는 앞서 여자의 출가를 이유로 사절하였다.
36년 (AD 345년) : 왜왕이 글을 보내어 절교하였다.
37년 (AD 346년): 왜왕이 풍도에 이르러 변호를 초략하고, 또 금성을 진위하여 급히 치므로 왕이 군사를 내어 치려 하는데,
이벌찬 강세가 말하기를, 적이 멀리서 와 기봉을 당하기 어려우니 천천히 하여 그 군사의 피곤함을 기다림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
왕이 옳게 여겨 성문을 닫고 나오지 아니하니 적이 양식이 다하여 물러가려 하자 강세를 명하여 경기를 이끌고 추격하여 쫓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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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물왕 이전의 신라는 수도 금성까지 왜국에게 자주 침범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비미호 여왕 이후 왜는 국력을 증대하여 사로국의 수도 금성까지 침입을 해 왔다.
비록 석우로에게 자주 패하기는 했지만 사로땅 안에서 서불감을 불에 태워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만만치 않은 국력을 과시하였고,
우로의 아들 흘해왕 시절에도 혼인을 빙자한 인질을 요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계속되는 인질 요구를 신라가 거절하자, 글을 보내어 외교적인 절교를 선언하고 다시 금성까지 쳐들어오는 전쟁을 일으켰다.
이어지는 내물왕 시대에 왜의 침입이 본격화되어 왜인이 금성을 에워싸 5일 동안이나 풀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신라는 전 해에 대세지의 아들인 실성을 고구려에 볼모로 보내고, 고구려의 도움을 받았다.
(고구려에서 돌아온 실성이 내물의 아들들이 어린 것을 기회로 왕위에 올라, 내물왕의 셋째 아들 미사흔을 왜에 볼모로 보내고, 복호는 고구려에 볼모로 보내고,
고구려인에게 눌지를 죽여달라고 부탁하였지만 실성은 결국 내물의 맏아들인 눌지에 의해 제거 당하였다.)
10살의 미사흔은 왜에 볼모로 간 후 30년 이상이나 볼모 생활을 하다가 박제상의 활약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 후 소지왕까지도 왜의 침략은 신라에 큰 위협이 되었다.
이는 왜의 국력이 신라를 능가할 정도로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러한 왜가 여러 분국 중 과연 어떤 나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