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움이 한번 뼛속을 사무치지 않았다면 어찌 매화꽃 짙은 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오(不是一番寒徹骨 불시일번한철골 爭得梅花撲鼻香 쟁득매화박비향).” 중국 당나라 때 이름을 떨쳤던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가 남긴 한시 구절이다. 깨달음을 이루려면 뼈를 깎는 노력과 불퇴전(不退轉)의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동안거(冬安居)를 맞아 ‘매화향기’를 얻기 위한 수행자들의 분투는 올 겨울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공주 학림사(주지 서봉스님) 오등선원의 수행 열기는 동장군의 기세를 족히 녹일 만하다. |
오등선원에선 21명의 납자들이 100일간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에 몰입하고 있다. 사진은 조실 대원스님이 수행자를 경책하고 있는 모습. |
동안거 100일 용맹정진. 여기서 ‘용맹(勇猛)’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무려 100일 동안이나 잠을 자지 않는 것이다. 지난 16일 오등선원을 찾아 초인적인 두타행(頭陀行)을 직접 목격했다. 욕망의 초극을 향한 몸부림은 뜨거웠고 또한 미더웠다.
지난해 12월6일(음력 10월15일) 전국 100여개 선원에서 일제히 동안거를 결제했다. 오등선원 100일 용맹정진은 일반적인 동안거보다 열흘 빨리 시작한다. 올해는 21명의 납자들이 부처를 뽑는다는 선불장(選佛場)에 방부를 들였다. 잠을 자지 않고 1일 18시간을 꼬박 정진한다.
공양을 하거나 오랜 좌선으로 굳은 몸을 풀기 위해 잠시 포행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전체가 ‘이뭣꼬’에 할애된다. 45분 입선(入禪) 15분 방선(放禪). 얼핏 단조로운 일상이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본능인 수면을 불허한다는 점에서, 단조로움은 칼끝을 닮았다.
대중이 정진하는 큰방에 21개의 좌복이 일렬로 깔렸다. ‘길 없는 길’은 죽비소리와 함께 열린다. 어둑한 조명 아래서 가부좌를 튼 스님들의 모습은 마치 결전을 앞둔 장수를 닮았다. 그리고 말 그대로 텅 빈 고요. 숨소리도 사치라는 듯 스님들의 호흡마저 거대한 침묵이 삼켜버렸다.
단 하룻밤을 새는 것도 일반인에겐 고역이다. 1주일 이상 자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법이다. 그래서 아무리 독하게 수행하는 선원이라도 용맹정진의 기간은 21일을 넘지 않는 것이 상례다. 7일 용맹정진은 간혹 들어봤으나 100일은 생판 처음이다. 인간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인지 자문하게 된다.
기자가 학림사를 방문한 때는 용맹정진 50일이 넘어가던 즈음이었다. 정진의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서, 스님들의 형색은 하나같이 수척했다. 극단적인 ‘차가움’ 속에 파묻혀 온몸이 얼어붙은 듯한 모습이다. 반면 깡마른 육체와는 대조적으로 형형하게 빛나는 눈동자는, 극한의 피로 속에서도 여여(如如)했다.
한 조각의 망념(妄念)조차 허용하지 않는 눈빛 앞에서 말 한마디 붙이기가 난감했다. 온 방안이 눈에 보이지 않는 화두로 꽉 찬 느낌이다. 이따금 죽비소리가 번뜩이며 도저한 정적을 깬다.
자기도 모르게 수마(睡魔)에 곁을 내준 경책하는 조실 대원스님의 손길은 매섭다. 물론 한국불교를 떠받치는 근간인 정진력을 독려하기 위한 ‘징벌’이기에, 매섭기에 앞서 따뜻하게 느껴진다.
대중이 정진하는 큰방 한쪽에는 서릿발 같은 법문이 붙어있다. “성성하게 정신을 바짝 차리고 혼침(昏沈)에 빠지지 말고 참구하라.” “마음으로 참구하라. 눈앞이나 단전에 화두를 두는 경우 변통이 생기기 쉽다.” “공부가 밋밋한 것은 생사가 급한 줄 몰라서 그렇다.” “내일 당장이라도 사형집행을 당할 수도 있는 게 인생이다.” 대원스님이 직접 기록한 화두참구에 관한 법요(法要)다.
“한철 공부하고 밖에 나가 만행을 한다는 건 10년 20년을 해도 기약 없는 일이 되고 만다”는 지적은 따끔하다. “하루 24시간 행주좌와 화두일념을 지향하라.” “삭박목욕일(매월 14,29일) 외에 자율정진은 없으며 외식을 금한다”는 청규(淸規) 역시 엄혹하다.
자꾸만 바깥세상을 기웃거리고 들썩거리기 십상인 마음의 문은, 담백한 법요와 청규 앞에서 굳게 닫힌다. 일체의 욕심과 분별을 쓸어낸 자리엔, ‘참나’를 향한 열정만이 가득하다.
■ 오등선원 조실 학산 대원스님 인터뷰
“수행자에겐 아무리 짧은 잠이라도 허송세월”
100일 용맹정진을 하는 도량은 전국에서 오등선원이 유일하다. 누구도 쉽사리 도전할 수 없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조실 대원스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선연(善緣)이다. 1986년 계룡산 자락에 학림사를 창건한 대원스님은 30년 가까이 후학들을 제접하며 견성(見性)을 촉구하고 있다.
100일 용맹정진은 2004년부터 시작됐다. “수마를 조복받고 나면 오히려 공부가 쉬워지고 자신감도 커진다”는 지론에서 비롯된 결행이다. 잠도 일종의 습관이란 이야기고, 이왕 발심했으면 최대한 빨리 깨달으라는 권고다. “수행자에겐 아무리 짧은 잠이라도 허송세월”이란 말에는 선사 특유의 단호함이 묻어난다.
조계종의 정통 수행법인 간화선(看話禪)에 대한 자부심도 확고했다. “위빠사나를 비롯한 여타 수행법이 산 정상을 향해 걷는 일이라면 간화선은 사람을 단박에 산꼭대기에 가져다놓는 것과 같다”며 “여러 가지 명상과 관법은 참선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맛보기로 하는 연습”이라고 일갈했다.
다만 공부의 단계가 단시일 내에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아 ‘간화선은 어렵다’는 편견이 생길 뿐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등선원에서는 수행자들을 수시로 점검하며 공부의 상태를 일러준다. 많은 선원에서 사라지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는 법거량(法擧量) 전통이 활성화되어 있는 것이다.
“작은 경계에 도취돼 공부를 그만두는 방일(放逸)은 수행자들의 가장 큰 적”이라며 “역대 1700공안에 근거해 단견(短見)을 바로잡아주면서 마음의 그릇을 키워준다”는 설명이다.
웬만한 교구본사급 선원에서도 안거인원 20명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만큼 오등선원은 진짜배기 공부를 하고 싶은 수행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도량이다. 그래서 대원스님에게 겨울은 적막이 아닌 보람의 계절이다. “선원에 있으면 한국불교의 미래를 이끌어갈 재목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기”에 그렇다.
세간에선 불교의 미래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많지만, 적어도 오등선원 안에서는 의혹의 시선들을 말끔히 걷어낼 수 있다. 당신이 오늘도 죽비를 손에서 놓지 않는 이유다. 대원스님은 “인생 공부의 근본은 결국 마음공부”라며 “참선으로 내 안의 불성을 밝혀 사회와 국가를 밝히는 불자가 돼라”는 신년 덕담도 전했다.
쪾약력 : 1942년 경북 상주 출생. 1957년 상주 남장사로 출가해 고암스님을 은사로 득도(得度)했다. 동산스님을 계사로 사미계와 구족계를 수지했다. 이후 40여년 간 상원사 동화사 해인사 불국사 등의 전국 선원에서 정진하며 효봉 경봉 전강 향곡 성철 월산스님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선지식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1986년 옛 제석사 터에 학림사를 세우고 수행 납자를 위한 오등선원과 재가자를 위한 시민선원을 열어 마음공부를 지도하고 있다. 2013년 4월 조계종 원로의원에 추대됐다.
은사인 고암스님이 대원스님에게 내린 전법게. |
■ 대원스님은…
용성·고암스님 법맥 이은 선지식
대원스님은 일제강점기 한국불교의 중흥을 위해 헌신한 용성스님의 법맥을 이었다. 용성진종(龍城震鍾, 1864~1940) 대선사는 왜색불교에 위축된 선풍을 진작시키고 대중포교의 문을 열었다. 3.1운동 33인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만해 한용운 스님과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것도 스님의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이다.
용성스님의 문하로는 동산혜일(東山慧一, 1890~1965) 스님과 그 아래로 퇴옹성철(退翁性撤, 1912~1993) 스님이 있다. 또한 제3·4대 조계종 종정(宗正)을 역임하며 살아있는 보살로 추앙받던 고암상언(古庵尙彦, 1899~1988) 스님도 용성스님에게서 인가를 받은 제자다.
어느 날 고암스님은 용성스님을 친견한 자리에서 “반야(般若)의 공리(空理)는 정안(正眼)으로 봄이라”는 스승의 말에 크게 깨쳤다. “조주무자(趙州無字) 십종병(十種病)에 걸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용성스님이 묻자 고암스님은 “다만 칼날 위를 갈뿐”이라고 받아쳤다.
이에 용성스님이 부처님이 영산회상에서 가섭에게 꽃을 들어 보인 ‘염화미소(拈華微笑)’의 이치를 되묻자 “사자의 굴에는 다른 짐승이 있을 수 없습니다”며 경지를 드러냈다. 용성스님의 마지막 질문은 ‘바람이 움직인 것도 깃발이 움직인 것도 아니고 오직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라던 육조혜능 스님의 법문을 풀어보라는 것이었다.
고암스님은 “하늘은 높고 땅은 두텁습니다”라며 관문을 통과했다. 막힘없는 대답을 내놓던 고암스님이 이번에는 용성스님에게 물었다. “스님의 가풍은 무엇입니까?” 용성스님은 말없이 주장자를 세 번 내리치며 고암스님에게 “그렇다면 너의 가풍은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고암스님 역시 주장자를 세 번 내리쳤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은 완성됐고 용성스님은 “만고(萬古)의 풍월(風月)을 아는 자 누구인가. 고암을 독대하니 풍월이 만고로다”라며 인가를 내렸다.
고암진종 대선사의 입실제자가 바로 한암대원(閑庵大元, 1942~) 스님이다. 1973년 고암스님이 해인총림 해인사 방장으로 주석할 때였다. 대원스님은 저녁정진을 마치고 방장실로 찾아가 법거량(法擧量)을 겨뤘다. “잣나무 꼭대기 위에서 손을 놓고 한걸음 나아갔을 때 어느 것이 너의 본래면목이겠느냐”는 고암스님의 말씀에 홀연히 깨쳤다.
깨달음의 기쁨에 박장대소하던 제자의 법기(法器)를 측정할 목적으로 고암스님은 중국 당나라 마조도일(馬祖道一) 선사의 공안(公案)을 제시했다. 주장자로 원상(圓相)을 그린 뒤 “여기에 들어가도 몽둥이 30방이요 들어가지 않아도 몽둥이 30방”이라고 일렀다.
이에 대원스님은 깔고앉아 있던 좌복을 머리 위에 올리면서 “이것이 안에 있습니까 밖에 있습니까”라고 되물었다. 고암스님은 “아니다”라고 응수하곤 곧장 주장자로 대원스님의 머리를 치려고 했다. 그 찰나에 대원스님은 좌복을 고암스님에게 던지고는 문밖으로 나가버렸다.
잠시 후 대원스님이 다시 방에 들어오니 고암스님은 “눈 푸른 납자는 속이기 어렵다”며 오도송을 요구했다. 다음은 대원스님의 오도송. “忽聞栢頭手放語(홀문백두수방어) 廓然鎖覺疑團處(확연쇄각의단처) 明月獨露淸風新(명월독로청풍신) 凜凜闊步毘盧頂(늠름활보비로정).”
“홀연히 잣나무 꼭대기에서 손을 놓고 반걸음 나아가라는 말을 듣고/확연히 의심 덩어리가 녹아 깨달았네/밝은 달은 홀로 드러나고 맑은 바람은 새로운데/늠름히 비로자나 이마 위를 활보함이로다.”
고암스님은 공부를 ‘다 해 마친’ 대원스님에게 전법게와 함께 학산(學山)이란 당호를 내렸다. 대원스님이 중국 임제스님의 33세손으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1986년 개원한 오등선원 전경. |
■ 학림사 오등선원
계룡산 자락에 자리한 천하의 명당
참선수행의 생활화·대중화 ‘눈길’
학림사(學林寺)는 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계룡산 자락에 위치한 사찰이다. 학림사 뒤편의 주봉은 계룡이 날개를 펴고 승천하는 듯한 모습이다. 좌측에는 장군봉과 임금봉, 수리봉이 솟아있다, 정면은 유려한 산세가 마치 학이 날개를 펴고 절 안으로 날아 들어오는 형국이다. 학림사라는 이름의 연원이다. 1986년 대원스님이 대중포교를 위해 터를 잡은 천하의 명당이다.
옛 제석사 절터에 사찰을 창건한 대원스님은 1995년 오등선원(五燈禪院)을 개원해 후학들을 제접하고 있다. ‘오등’이란 전등록 광등록 속등록 연등회요 보등록 등 다섯 개의 선어록을 묶은 고전인 <오등회원(五燈會元)>에서 유래했다. 무공해 청정지대에 자리한 참선수행의 도량에선 매년 동안거마다 수십 명의 납자들이 찾아와 목숨을 건 화두정진에 임하고 있다.
차량으로 대전시 유성에서는 30분, 공주시에서는 20분이 걸릴 정도로 가깝다. 아울러 충남대 목원대 과학기술원 대덕연구단지 대전시청 대전정부청사 등 주요 공공기관인 지척에 있어 참선의 대중화 생활화엔 최적지다. 2001년 문을 연 오등시민선원엔 충청지역은 물론 전국의 불자들이 방문해 마음을 닦고 있다. 연건평 200여평의 규모에 숙식 및 휴식공간을 갖추고 있어 쾌적한 환경에서 누구나 편안하게 수행할 수 있는 가람이다.
충남 공주시 반포면 제석골길 67
www.odzen.or.kr ☎ 042)825-1724(종무소) |
[불교신문3078호/2015년1월31일자]
첫댓글 스님의 매서운 눈빛 .....()()()
고맙습니다..감사합니다....()()()
참회합니다()()()
삼귀의(三歸依)
귀의불 양족존(歸依佛 兩足尊)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 양족: 복덕과 지혜
귀의법 이욕존(歸依法 離欲尊)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귀의승 중중존(歸依僧 衆中尊)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귀한 인연 만남에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