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 02 - 또 다른 나
씬1. 전회 마지막 부분 스케치
씬77. 호텔 로비 (밤)
하은, 현관 유리문을 통해 보이는 은하와 진우의 모습을 복잡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입맛이 쓴 듯 머리 긁적거리며 밖으로 나서는 하은.
씬80. 호텔 한 곳 (밤)
태준 :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며)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건 누구보다 니가 더 잘 알잖아?
씬79. 호텔 앞 (밤)
밖으로 나와 서 있는 하은, 쉽게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껌을 꺼내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는다.
상국 : (E) 분명히..그 아이라고 했어.
씬80. 호텔 한 곳 (밤)
상국 : 그 애가...살아있어.
씬81. 호텔 앞 (밤)
하은, 감정을 추스르듯 발길을 옮긴다.
그 앞으로 진입해서 멈추는 고급 승용차. 대기하고 있던 호텔 직원이 뒷문을 열어준다.
차에서 내리는 양복차림의 남자의 뒷모습.
남자가 무심히 하은이 가고 있는 방향으로 돌아본다.
하은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 신혁이다.
신혁, 고개를 다시 돌려 호텔 안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하은과 신혁, 간발의 차이로 엇갈리듯 스친다.
씬2. 호텔 로비 (밤)
신혁, 무표정한 얼굴로 출입문 쪽에서 걸어 들어온다.
핸드폰 통화를 하느라 정신없이 걸어오던 남자와 어깨를 툭 부딪친다.
남자, 고개만 까닥 숙여 보이고는 통화에 정신이 팔려서 간다.
신혁, 불쾌한 표정으로 남자와 부딪쳤던 양복 어깨를 탁탁 털어낸다.
한쪽에서 걸어오던 강주가 그런 신혁을 본다.
강주 : 유신혁!
신혁, 소리 나는 쪽을 향해 휙 돌아보는 얼굴위로 어린 하은의 목소리.
하은 : (E) 신혁아 일어나!
씬3. 동네 공원 (낮, 회상)
엉덩방아를 찧은 듯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는 겁먹은 표정의 어린 신혁(7세),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의 신혁의 시선이 멈춘 곳엔
어린 하은(7세)이 자기보다 덩치가 큰 꼬마 두 명을 상대로 아이들다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하은, 꼬마1과 엉켜서 바닥에 뒹굴고 있고 꼬마2는 꼬마1을 도와 하은을 떼어내려고 하고 있다.
누가 봐도 하은이 불리한 싸움이다.
하은 : (싸우면서도 신혁을 향해 소리친다) 신혁아, 일어나!
겁먹은 얼굴이면서도 그 소리에 얼른 일어서는, 신혁.
엎치락뒤치락 하는 꼬마1과 하은.
신혁, 싸움에 끼어들 용기가 없어 갈등하는 얼굴로 주춤거리며 보고 있다.
꼬마1, 힘으로 밀어 붙여 하은을 올라타고 앉는다.
꼬마1의 승리다.
꼬마1 : 항복이지?!
하은 : (입 꽉 다물고 주먹을 휙휙 날려보지만 허공에 헛손질이다)
신혁, 안타까운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쥐어보지만 용기는 내지 못한다.
꼬마1 : 항복해!
하은 : (투지에 불타서) 악당들한테 항복 같은 건 안 해!
타이틀 뜬다. ‘부활 2회’
씬4. 동네 공원 (낮, 회상)
시간경과.
그네에 나란히 앉아있는 어린 하은과 신혁.
하은의 얼굴엔 여기저기 긁히고 멍든 상처가 나 있다. 하지만 하은은 마치 승자의 얼굴로 의기양양하다.
신혁 : (미안하다)...많이 아프지?
하은 : (다리 까닥이며 씩씩하게) 아니. 우리가 합체를 하면 무조건 다 이겨. 천하무적이니까.
신혁 : (눈 동그래져서) 합체?
하은 : (장난치던 발 멈추고) 그래, 합체! (벌떡 일어나서 엄청난 일을 결행하듯 결의에 차서)
아빠가 그랬잖아. 너랑 나랑 힘을 합치면 어떤 악당도 다 물리칠 수 있다구!
신혁 : (감동 받았다)
하은 : 아빠도 맨날맨날 악당들 잡으러 다니느라 바쁘니까 이 동네 악당은 우리가 전부 물리쳐야 돼. 알았지?
신혁 : (자못 진지하게 고개 주억인다)
하은 : (헤 웃고) 가자! 엄마가 만둣국 해 놨을 거야. (하며 걸어가려는데)
신혁 : (그네에서 일어선다)..형!
하은 : (돌아본다)
신혁 : (잠시 망설이다가 결심이 선 듯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서 쓱 내민다)
하은 : (보면, 주사위 한 개다. 성인 하은이 갖고 있는 주사위 중. 한 개와 같은 것. 어리둥절해서 신혁을 본다.)
신혁 : 형 가져. (대단한 물건을 주는 얼굴이다)
하은 : (믿기지 않아서) 정말?
신혁 : 이번엔 잃어버리지 마. 이거 주면 형이랑 나랑 똑같이, 두개씩이니까.
하은 : (좋아 죽는다) 정말이지? 도로 달래기 없기다?
신혁 : (끄덕인다)
하은 : (신혁의 손에 주사위를 얼른 가져간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가자!
하며 주사위를 공중으로 휙 던진다.
씬5. 경찰서 근처 분식집 (밤, 현재)
공중으로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주사위를 탁 잡는 손, 하은이다.
작고 소박한 분식집 식탁 앞에 앉아있는 하은 앞으로 주인할머니가 찐만두 한판을 턱 놓는다.
하은 : (주인여자 앞으로 주먹 쥔 손 내밀며) 홀 짝?
주인 : (퉁명스러운 말투지만 정이 담긴) 철 좀 들어라, 이놈아.
하은 : (주먹은 내민 채로 만두 집어서 먹으며) 홀이요, 짝이요?
주인 : (주방 쪽으로 가며) 짝!
하은 : (펼쳐보면 주사위의 숫자가 짝수다. 놀란 표정) 백발백중이네.
(만두 하나 입에 넣으며 주인에게) 맞혔으니까 나한테 만두 사는 거예요.
주인 : 염병에 끈 달았네.
하은 : (씩 웃으며 탐스럽게 만두 먹는다. 그러다 문득 씹는 걸 멈춘다)
플래시 컷 - 호텔 앞에서 진우와 함께 있던 은하의 모습.
하은, 맘이 편치 않아 괜한 화풀이 하듯 만두를 또 밀어 넣고는 우적우적 씹는다.
주인 : (식혜 갖다 놓으며) 얹혀, 이놈아! 만두 못 먹고 죽은 귀신이 붙었나.
하은 : (입안 가득 만두 넣고 빙글빙글 웃어 보인다)
주인 : (곱게 흘기며) 싱거터진 놈. (하며 자기일 시작하면서 궁시렁) 전생에 만두하고 뭔 상관이 있어도 있는 거지.
하은 : (볼이 미어지게 만두 먹는 일에 열중하는 위로)
주인 : (E) 살다보니까 길바닥에서 만난 개새끼도 나하고 다 뭔 상관이 있으니까 만나지는 거구, 다 필요하니까 생기는 일이구.
하은 : (그 소리에 갑자기 만두 먹던 손을 멈춘다)...!
플래쉬 컷 - 죽은 임대식 손에 끼워져 있던 반지.
1회. 씬 67의 수철.
수철 : 우리 강력5팀으로 전화를 했었다니까아. 그것도 두 번씩이나.
하은 : (한대 얻어맞은 표정으로 벌떡 일어서더니 서둘러 나가면서) 달아놓으세요!
하며 뛰쳐나가려다가 먹다 남은 만두 한 개를 집어 들고 뛰듯이 나간다.
씬6. 분식집 앞 (밤)
만두를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으며 급한 걸음으로 서둘러 가는 하은이 건너편 길에 무심히 시선을 준다.
그 위로 찰칵! 디지털 카메라 셔터소리.
어두운 건너편 길에 서 있는 검은 승용차 안의 동찬의 부하, 카메라 내려놓으며 하은의 뒷모습을 심드렁한 표정으로 본다.
씬7. 강력 5팀 (밤)
아무도 없는 사무실.
하은, 자기 책상 앞에서 임대식의 수사일지를 다급한 손길로 뒤적이다.
임대식의 현장 사진들이 붙어있고..그 옆에 임대식의 명함판 사진이 눈에 띤다.
하은, 사진을 수사 일지에서 떼어낸다.
씬8. 태준의 서재 (밤)
가내복 차림의 태준, 냉정한 표정으로 20년 전 유건하, 인철, 태준, 상국이 함께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네 사람 모두 환한게 웃고 있다.
태준 : (혼잣말)...형사라...(피곤한 듯 사진을 책상위로 툭 던져 놓는다)
사진 속 유건하의 웃는 얼굴 C.U. 그 위로.
하은 : (E, 선행되는) 이 사람이 맞냐구요?!
씬9. 포장마차 (밤)
재수의 얼굴 앞에 바짝 임대식의 증명사진을 들이대고 있는 하은.
재수 : (어이없다는 듯) 술 먹었냐?
하은 : (진지하다) 여기 이 사람이요. 이 사람 맞죠?
재수 : 드디어 니가 미쳤구나.
하은 : 자세히 좀 보세요. 아저씨한테 날 맡겼다는 사람이 여기 이 사람 아니에요?
재수 : 맞긴 개뿔. 씨잘데기 없는 소리 그만하구(하는데)
하은 : (화내 듯) 이 사람이 제 아버지 아니냐구요?!
재수 : (황당해서) 뭐어?
씬10. 모텔 안 (밤)
임대식의 자살 현장을 둘러보고 있는 경반장. 덤덤한 표정이지만 눈빛만은 살아 빛난다.
특별한 점을 발견 못한 경반장, 발걸음을 옮기려다 문득 시선이 벽 아래쪽 한 곳에 멈춘다.
임대식이 죽었을 당시 쓰러져 있던 벽 쪽으로 다가가는 경반장,
무릎을 굽히고 몸을 낮추어 벽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며 한곳에 시선을 고정한다.
순간 뭔가를 발견한 듯 경반장의 눈빛이 빛난다.
씬11. 포장마차 (밤)
재수 : (황당한 듯 하은을 보고 있다)
하은 : (자못 진지하게 재수의 시선을 맞받고 있다)
재수 : 큼..(기세에 눌려서 하은의 손에서 임대식의 사진을 낚아채서 사진을 들여다본다)
하은 : ...맞아요?
재수 : 누가 그러냐? 이 놈이 니 애비라구?
하은 : 정말 모르는 사람이에요?
재수 : 아는 놈이면 니가 내 애비다! 사실적으로 니 애비가 누군지 알았으면 지금까지 널 데리고 있었겠냐? 엉? 너 같은 폭력경찰을?
하은 : (아직도 미덥지 못하다)...정말이죠?
재수 : 형사란 놈이 참말 거짓말도 구분 못하냐? 이 서재수가 왜 이 나이에 포장마차를 하고 있냐?
그 놈의 정의감, 엉? 거짓말은 사회악이다, 이런 신념 땜에(하는데)
하은 : (궁시렁) 거짓말도 능수능란하네.
재수 : (한 대 칠 듯 손 휙 들어올리며) 이 자식이 근데.
손님 : (E) 소주 한 병 주세요.
재수 : (얼른) 예에. (소주 병 집어서 하은 가슴팍으로 퍽 안긴다)
하은, 소주 받아서 옆에 있는 오이 하나 집어 들고 빈 탁자에 가서 턱하니 앉는다.
재수 : 얌마, 너 뭐하는 거야?!
하은 : (들은 척도 안하고 소주 병뚜껑을 연다)
재수 : (열 올라서) 아니 근데 저 자식이. (하다 보면)
병 채로 소주 한 모금 마시고 오이를 와작 베어 무는 하은의 모습이 어쩐지 힘이 없어 보인다.
재수 : (조금 마음이 짠해져서 보는)...
씬12. 모텔 안 (밤)
경반장, 긴장된 표정으로 벽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벽에 뭔가 흐릿하게 보이는 흔적, 말라붙어 으깨진 채로 붙어 있는 미세한 귤 알맹이 조각.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벽에 라이터 불길을 그을려 보는 경반장.
차츰 선명하게 드러나는 벽 위에 써 놓은 글자. ‘양만철...강릉’
삐뚤삐뚤 힘겹게 썼던 흔적이 역력하다.
씬13. 상국의 거실 (밤)
술잔을 드는 미세하게 떨리는 상국의 손.
상국, 생각에 골몰한 채 소파에 앉아 양주를 마시고 있다.
화려한 가내복 차림의 미정,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하면서 연신 떠들어댄다.
미정 : 강회장은 신혁이 엄마 어디가 그렇게 좋을까? 순진한 척, 고상한 척, 난 딱 밥맛이든데...
암튼 단수가 보통은 넘는 여자야.
상국 : (미정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 듯 술잔에 술을 또 채운다)
미정 : 허긴 그러니까 남편 친구하고 재혼을 했겠지만. (하다 상국을 보곤) 오늘 좀 이상하네, 당신?
상국 : ....뭐가?
미정 : 출판기념회에서 이의원하고 무슨 일 있었지?
상국 : (순간 굳어서 미정을 본다)
미정 : 아까 보니까 이의원하고 당신하고 분위기가 좀 이상하든데? (애교 섞어서) 왜? 무슨 일인데? 기분 나쁜 일이에요?
상국 :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미정 : (화가 난다) 사람이 말을 하면 대꾸를 해얄 거 아냐? 당신까지 날 무시하는 거야?
상국 : 심심하면 진호도 볼 겸 뉴욕이라도 갔다 와.
미정 : (대뜸) 당신 여자 생겼지? 이번엔 또 누구야?
상국 : (짜증스럽게 확 노려보는데)
진우 : (들어온다) 다녀왔습니다.
상국 : 그래. (휙 방으로 들어간다)
진우 : (분위기를 감지했다. 미정을 본다)
미정 :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미소 띤 얼굴로) 피곤하겠다. 쉬어 그럼. (방으로)
진우 : (표정 변화 없이 담담하게 보고 있다)
씬14. 진우 방 (밤)
고급스러운 가구로 깔끔하게 꾸며진 실내에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다.
고급 오디오와 CD, 책상위엔 건설업 관련 서적, 여행 관련 서적..
진우, 별 다른 감정의 동요 없는 표정으로 넥타이를 푼다. 그러다 문득 손을 멈춘다.
씬15. 버스 정류장 (밤, 회상)
은하와 진우, 나란히 서 있다.
은하는 진우의 존재가 없는 듯 그저 무심한 얼굴로 버스 오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진우 : 호텔 근무한지 오래됐어요?
은하 : (시선은 여전히 버스 오는 방향에) 아르바이트에요.
진우 : 아...그럼 본업은 수영선수?
은하 : (그 소리에 멀뚱히 진우를 본다)
진우 : (미소로 보며) 좀 놀랬습니다. 남자들도 망설이고 있었는데 너무 용감하게 풀장으로 뛰어들어서.
은하 : 용감한 게 아니라 무식한 거래요.
진우 : 누가 그런 무식한 소릴 해요? (농담이다)
은하 : 우리 오빠가요. (미소)
진우 : (당황해서 순간 말문이 막히는데)
은하 : 버스 왔네요. 여기까지 바래다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맙습니다. (깍듯하게 인사하고 멈춰선 버스 앞으로 간다)
진우 : (바라보고만 있다)..
씬16. 버스 안 (밤, 회상)
올라타는 은하, 버스 요금 통에 지갑을 대어 패스로 요금을 계산하고는 뒤쪽으로 간다.
그 뒤로 승객 한두 명 오른 뒤 급하게 따라 올라타는 진우. 은하가 있는 쪽을 향해 가려는데.
기사 : 요금 내셔야죠.
진우 : 아...(지갑을 찾으며) 얼마죠?
은하 : (그 소리에 진우 쪽을 돌아본다)
기사 : (E) 구백 원이요.
진우 : (지갑을 열어본다. 수표뿐이다. 당황스러워서)...수표밖에 없는데.
기사 : (어이없는 표정으로 본다)
진우 : (난감해서 다시 지갑 안을 뒤적거린다)
은하 : (어쩌지...싶은 표정으로 진우를 보고 있다)
기사 : (퉁명) 다음 차 타세요.
진우 : (주변 승객의 시선을 느낀다....어쩔 수 없이 버스에서 내리면서 은하를 본다)
은하 : (아무 것도 모르는 듯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씬17. 진우 방 (밤, 현재)
진우, 자신의 행동이 스스로도 어이가 없는 듯 실소를 흘리며 고개를 살래살래 가로저으며 옷을 벗기 시작한다.
그 얼굴엔 여전히 미소가 머금어져 있다.
씬18. 포장마차 (밤)
탁자 앞에 앉아 기운 없이 고개를 푹 떨구고 있는 하은. 소주병에 술이 반쯤 비어있다.
하은의 모습이 안쓰러운 재수, 괜히 두서없이 떠들고 있다.
재수 : 골백번도 더 말했잖냐? 그 인간 이름도 모르고...그냥 오다가다 화투판에서 딱 두 번 봤는데
내가 그 인간한테 돈을 (하다 관두고) 암튼 널 맡긴 뒤룬 그 자식 코빼기도 못 봤어.
알아 볼 데도 없구, 아는 인간도 없구, 그 놈이 니 애빈지 아닌지 그건 나두 모르고 너두 모르구.
하은 : (고개만 푹 숙인 채로 코를 훌쩍인다)
재수 : (우는 줄 착각) 니가 나훈아야, 울긴 왜 울어? (위로하려고) 너 말야, 예수님이 왜 훌륭한 줄 아냐?
하나님의 아들이래서가 아니라 마구간에서 태어났기 땜에 훌륭하다 이거야.
홍길동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구 (하는데)
하은 : (코고는 소리) 크으...푸우.
재수 : (한심해서) 에라, 이 자식아! (하은의 머리를 팍 친다)
하은 : (탁자에 머리를 쿵 박고도 아픈 기색 없이 아예 편하게 잠을 잔다)
재수 : 너는 임마, 기억상실이 아니라 머리가 나쁜 거야, 자식아.
은하 : (들어오며) 저 왔어요, 아빠.
재수 :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하은 : (벌떡 일어나며) 왔냐?!
재수 : (황당해서 하은 보고)
은하 : 여깄었어? 야근해서 피곤할 텐데 집에 가서 쉬지.
하은 : (능청스럽게) 어떻게 쉬냐? 우리 아저씨가 고생을 하시는데.
재수 : (잡아먹을 듯 눈을 부라리며 하은 본다)
하은 : (은하만 보며) 근데...혼자...왔냐?
은하 : ? 누구랑 같이 와야 돼?
하은 : (당황해서 머리 긁적이며)..아니 뭐..그런 뜻은 아니구.
재수 : (하은 등 떠밀며) 야야야 너 들어가. 니놈이 알짱대니까 손님이 안 와.
하은 : 아, 왜 그러세요? (하는데)
은하 : (콜록, 기침을 한다)
하은 : (번쩍) 감기 걸렸어?!
은하 : 아냐. (하고는 또 기침을 한다)
하은 : 안되겠다. 집에 가자. 가서 푹 쉬어.
은하 : 괜찮아.
하은 :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게 감기바이러스야. (은하 손잡아 끌고 나가며) 무조건 쉬어야 돼. 아저씨 가요!
재수 : 둘 다 가면 여긴 어떡하구?!
하은 : (은하 손잡아서 끌고 이미 밖으로 나가며) 장사가 문제예요? 애가 죽게 생겼는데?
재수 : (황당) 죽긴 누가 죽어, 임마!
씬19. 달리는 버스 안 (밤)
은하와 하은, 나란히 뒷좌석에 앉아있다.
하은 : (앞 만 보고 떠든다) 넌 다 좋은데 너무 부지런한 게 문제야. (하고 보면)
은하가 창에 머리를 콩콩 찧으며 피곤하게 잠들어 있다.
은하의 모습이 안쓰러운 하은, 잠시 은하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다가
아주 조심스럽게 은하의 머리 뒤로 손을 뻗어서 차창에 자신의 손바닥을 갖다대어 준다.
은하의 머리가 이젠 따뜻한 하은의 손에 닿는다.
하은의 손에 편안하게 자신의 얼굴을 기댄 은하, 평화로운 얼굴이다.
애틋한 미소 짓는 하은, 잠든 은하의 얼굴에서 시선이 떠날 줄을 모른다.
그러다 번쩍 정신을 차리 듯 황급히 고개 돌려 앞을 보는 하은.
그 순간 은하가 고개를 돌려 하은의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기댄다.
움찔해서 고개를 돌리다가 심장이 멎을 듯 굳어버리는 하은. 은하의 얼굴이 자신의 코끝까지 닿아있다.
하은, 은하의 숨소리와 체온을 느낀다.
당황스럽게 고개를 돌려 앞으로 시선 주는 수줍은 하은의 얼굴에서....
씬20. 달리는 버스 안 (낮, 회상)
강원도의 한적한 봄 길을 달리고 있는 버스 안.
중학생 교복 차림의 은하와 하은이 뒷좌석에 앉아있다.
하은이 고개 돌려보면 은하가 차창에 머리를 꽁꽁 박으며 자고 있다.
빙그레 미소가 떠오르는 하은, 조심스레 손을 뻗어 차창에 손등을 갖다 대어 은하의 머리를 보호한다.
하은, 만족스러운 듯 씨익 웃고는 앞을 보는 순간 은하가 고개를 돌려 하은의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기댄다.
순간 움찔하는 하은, 얼굴을 돌려 은하를 본다.. 자신의 코끝에 닿을 듯 가까이 있는 은하의 얼굴.
그녀의 숨소리와 체온을 고스란히 느끼는 사춘기 소년 하은,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한 공간에 오로지 심장만이 요란하게 고동치고 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 듯 수줍고 당황스럽게 황급히 시선을 돌려 앞을 보는 하은.
하지만 여전히 자신에게 전달되어 지고 있는 은하의 숨소리와 체온으로 하은은 뻣뻣하게 굳어서 앞만 보고 있다.
은하 등 뒤에 두었던 자신의 팔을 어디 둘 줄 몰라 하며 엉거주춤 폼으로..
사춘기 소녀 은하의 얼굴에 좋은 꿈을 꾸듯 살포시 미소가 떠오른다.
씬21. 달리는 버스 안 (밤, 현재)
소년 때의 모습처럼 굳은자세로 앞만 보고 있는 하은, 여전히 뻗었던 팔을 어디다 둘 줄 몰라 엉거주춤한 자세다.
은하의 얼굴엔 평화로운 미소가 입가에 살며시 잡혀있다.
씬22. 고급 까페 안 (밤)
드레스를 벗고 출판기념회 가기 전, 편안한 차림으로 갈아입은 강주와 신혁이 앉아있다.
강주 :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고 술잔을 힘껏 탁 내려놓으며) 지금이 몇 년돈지는 알지?
신혁 : (별다른 표정 없이 본다)
강주 : 찰스 황태자도 자기 좋아하는 여자랑 재혼하는 시대에 정략결혼이 말이 된다고 생각해?
신혁 : (쓰게 웃는다)
강주 : 우리 아빠나 아저씬 그렇다 치고 오빠까지 왜 그래, 대체?
신혁 : (술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다)
강주 : 오빤 아저씨 부탁 거절 못해서 이러는 모양인데 부모가 하란다고 하는 결혼, 이거 해외토픽감이야.
오빠하고 내가 강력하게 반대
신혁 : (말 자르며, 감정 없이) 내가 원한 거야. 아버지가 아니구.
강주 : (말문이 막혀서 보다가)...나 좋아하고 있었어? 결혼하고 싶을 만큼 필 꽂혔던 거야, 나한테? (비꼰다)
신혁 : (무표정하게 본다)
강주 : (복잡한 머리 털어내 듯) 오빠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내 관할 밖이니까 알아서 수습하구
(강하게) 난 아니야. 오빠한테 손톱만큼의 감정도 없을 뿐 아니라..
(잠시 망설이다..내친김이다 싶은 맘으로) 싫어, 밥맛이야 오빠 같은 남자.
(말해 놓고 좀 심했나 싶어 미안하지만)..내 얘긴 끝났으니까 (하며 자리 털고 일어서려는데)
신혁 : (반지 케이스를 내민다)
강주 : (벙)..뭐하자는 거야?
신혁 : (뚜껑 열어 내밀며) 디자인은 내 맘대로 골랐어. 맘에 안 들면 바꾸고.
강주 : (도로 자리에 앉으며) 미친 거야?
신혁 : (자기 말만 한다) 약혼식은 다음달에 하고 (하는데)
강주 : (신혁의 손을 확 잡아 쥔다)
신혁 : ? (본다)
강주 : 느낌이 있어? 나무토막이지? 그치? 아무 느낌도 없지? (손 탁 놓으며) 결혼은 최소한 어떤 감정이란 게 있어야 하는 거야!
신혁 : 난 결혼에 대단한 의미 같은 건 두지 않아.
강주 : (어이없다는 듯 본다)
신혁 : 내가 널 선택한 건, 서로의 미래를 위해 적합한 상대란 판단 때문이구.
강주 : (한숨 쉬 듯 보며) 결혼이 사업이야?
신혁 : 거래라면 거래라고 볼 수 있지.
강주 : (O.L. 화간 나서 버럭)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야? 예전엔 이렇지 않았잖아? 여리고 착한 사람이었잖아, 유신혁이란 남자!
신혁 : (낮게 인상 쓴다)
강주 : 괜히 시니컬한 척 고약 떠는 거 이젠 그만 해. 누구나 아픈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어. 오빠한테 닥쳤던 불행(하는데)
신혁 : (자르며, 차갑게) 이강주!
강주 : (본다)
신혁 : (낮지만 강하게) 섣불리 판단하지 마.
강주 : (할 말을 못 찾고 본다)...
씬23. 신혁의 방 (밤)
신혁, 가내복으로 갈아입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노트북 자판을 타닥타닥 두드리고 있다.
(E) : 노크
신혁 : (본다)
이화 : (들어오며 부드럽게) 피곤할 텐데..일은 내일 하지.
신혁 : (시선을 모니터로 돌리며) 금방 끝나요.
이화 : 어..만둣국 해 놨는데..조금 먹어 볼래?
신혁 : (모티터에 시선 고정한 채로) 밀가루 알레르기 있잖아요, 저.
이화 : (당황, 미안함)...내가 왜 자꾸 그걸 깜빡하는지 모르겠다.
신혁 : (여전히 시선은 모니터에)
이화 : (자신에게 시선 주지 않는 아들을 잠시 보다가 조용히 돌아선다)
신혁, 그제야 시선을 돌려 모친의 뒷모습을 애잔하게 바라본다.
씬24. 몽타주 (아침)
-동네 거리
편안한 추리닝 차림으로 아침 운동인 달리기를 하는 하은. 복싱 자세 취해 가면서 장난스럽게 동네 거리를 누비며 달리고 있다.
-고급 헬스클럽
런닝머신을 하고 있는 무표정한 얼굴의 신혁. 마치 기계와 경쟁이라도 하듯 점점 속도를 올리며 뛰기 시작한다.
-하은의 방
막 감은 머리가 마구 헝클어진 채로 급하게 바지를 다리에 꿰어 입는 하은,
은하가 문을 열자 놀라서 한쪽 다리만 바지에 걸린 채로 앞으로 쿵! 고꾸라지며 엎어진다.
-신혁의 방
깔끔한 와이셔츠 차림의 신혁, 거울을 들여다보며 넥타이를 맨다.
씬25. 강력 5팀 (아침)
강력5팀 조회시간.
하은 : (자판기 커피 마시다 말고 보며) 귤을 으깨서 글씨를 썼다면.
경반장 : 불로 그을렸을 때 글자가 선명해지지.
하은 : (감이 오는) 임대식의 손에도 귤 즙 성분이 묻어 있었구요.
경반장 : (끄덕인다)
하은 : 그럼? (번쩍하듯 본다)
플래시 컷 - 모텔 현장.
-바닥에 아무렇게 나동그라져 있는 술 잔, 술병, 껍질이 벗겨져 있는 귤.
-임대식이 엎어진 채로 필사의 힘을 다해 귤을 집어 껍질에서 떼어낸다.
-귤을 움켜쥔 채로 힘겹게 벽에다 글자를 쓰는 임대식의 손. 그 손에서 뚝뚝 떨어지는 귤 과즙, 벽을 타고 내리는 과즙...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인 듯 바닥으로 툭 힘없이 떨어져 내리는 임대식의 손에서 또르르 바닥으로 굴러 나오는 으깨진 귤.
하은 : 임대식이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라면 양만철이 범인일 확률이 높겠네요.
수철 : 그거야 타살이라는 가정에서 하는 얘기지.
하은 : 아니면 임대식이 만나려고 했던 사람이 양만철인가?
경반장 : (본다)
하은 : 유서에 만날 사람이 있다고 했잖아요. 모텔종업원한테도 강원도에 간다고 했구.
수철 : 정리가 쫘악 되네. 우울증 환자 임대식이 양만철이란 사람한테 과거에 캥기는 일이 있었는데
자살하면서 회계하는 심정으로 이름을 남겼다. (손바닥 탁 치며) 맞네. 그거네.
하은 : 그래서 자살이라구?
수철 : 당연하지.
경반장 : (장형사에게) 일단 임대식 주변 인물 중에 양만철이 있는지부터 확인해 봐.
장형사 : ...네.
경반장 : 어, 강원도에 살고 있는 사람 중에도 찾아보구, 가능하면 빨리. (하는데)
감식반 : (서류 들고 들어오며) 국과수에서 임대식씨 사채 부검결과 나왔는데요.
모두 감식반원에게 시선이 쏠린다.
씬26. 경찰서 로비 (아침)
급한 걸음으로 걸어가는 하은, 하은의 보폭을 따라잡으려고 애쓰면서 뒤따른 수철.
수철 : 임대식이 다니던 성당엔 뭐 땜에 가? 부검결과도 자살로 나왔구만.
하은 : 그게 독살이 아니란 증거도 아니야. (하며 경찰서 밖으로)
수철 : (한숨 쉬 듯 보는데)
강주 : (E) 안녕하세요?
수철 : (돌아본다)
강주 : (씩씩하게) 수습기자 이강줍니다. 저번에 인사 드렸죠?
수철 : 예에.
강주 : 임대식사장 부검결과도 자살로 나왔다면서요?
신부 : (E) 자살했을 리가 없습니다.
씬27. 성당 안 (낮)
하은과 수철, 임대식이 다니는 성당에 탐문 수사를 나왔다.
신부 : 에드문도 형제는 믿음이 남달리 깊었던 카톨릭 신자였습니다. 자살은 납득이 안 가네요.
하은 : (동감하듯 주억인다)..네에.
수철 : (심드렁한 표정)
하은 : 저, 나중에라도 생각나는 게 있으시면 (명함 꺼내서 주며) 이리로 전화 주세요.
신부 : (명함 받고는)...그러죠.
하은 : 그럼. ((고개 숙여 인사하고 돌아서서 현관 쪽으로)
수철 : (궁시렁) 시간 낭비라니까. (하는데)
신부 : (E) 잠깐만요!
하은 : (돌아본다)
신부 : ...맘에 걸리는 말이 있긴 한데..
하은 : ...?!
씬28. 성당 앞 (낮)
밖으로 나오는 하은과 하품하면서 따분한 표정의 수철.
생각이 많은 하은의 얼굴 위로.
신부 : (E) 자신은 살인자라면서 괴로워했습니다.
씬29. 성당 안 (낮)
하은 : 살인자요?
신부 : ..네. 이젠 용서를 구할 때가 왔다는 말도 했구요.
하은 : (생각에 골몰하며)..네에.
수철 : (역시 자살이네 하는 표정으로 의기양양)
신부 : 그리고...좀 이상한 말을 했습니다.
하은 : ? 이상한 말이라뇨?
신부 : 죽었던 사람이 다시 나타났다는.
하은 : (조금 황당한 표정으로 본다)
씬30. 고급 일식집 룸 (낮)
속살을 드러낸 채로 아직 살아서 기이하게 입만 뻐금거리고 있는 생선.
태준과 상국, 검은 양복 차림의 동찬이 일식 상을 앞에 놓고 있다.
태준 : (만두 집 앞에서 찍힌 하은의 사진을 들여다보며)..이름이 뭐라구?
동찬 : 서하은입니다. 임대식이 그 모텔에 투숙한 이유가.
태준 : (O.L.) 이 아일 만나기 위해서였단 얘기군.
상국 : (술잔을 비워내며) 최사장 아니었으면 앉아서 당할 뻔 했어.
동찬 : ....
태준 : (동찬에게) 그리고?
동찬 : 현재 서재수란 사람 호적에 올라 있습니다.
상국 : 뭐하는 위인이야, 서재수란 인물.
동찬 : 젊어선 여기저기 시장판을 떠돌며 야바위꾼을 했고 현재는 포장마차를 하고 있습니다.
상국 : 한심한 위인이구만. (하며 술잔을 또 비운다)
태준 : 어떻게 그 사람 손에서 자랐는지는 아직도 모른단 말이지.
동찬 : 알아보고 있습니다. 헌데..흥미로운 얘기를 들었습니다.
상국 : (마시던 술잔을 멈추고 본다)
동찬 : 서하은은 어린시절을 기억 못한다고 합니다. 자기 본명조차 몰랐던 모양이구요.
태준 : ....!
상국 : (번쩍해서) 어디서 들은 얘기야?
동찬 : 우리 애들이 서하은의 동료경찰한테 얻은 정보니까 확실할 겁니다.
태준 : (혼잣말처럼)...그래서 가족을 찾지 않았었군.
상국 : 됐어, 됐어! 걱정할 거 없어!
태준 : (상국을 본다)
상국 : (안심이 된 듯 큰 소리 친다) 기억을 하든 못하든 알아내는 건 불가능 해. 벌써 20년 전 일이야.
그리고 (동찬 앞으로 준비해 온 돈이 든 007가방을 밀어주며) 이 정도면 충분할 거야. 임대식 문젠 최사장이 책임지고 마무리 해!
동찬 : ..네.
상국 : (술잔을 시원스레 들이키고)
태준 : (미간 찡그리며 상국을 보곤 동찬에게) 서하은을 계속 지켜봐.
동찬 : 알겠습니다.
태준 : (위기감을 떨쳐버릴 수 없는 표정이다)...
씬31. 거리 한 곳 (오후)
하은과 수철, 아이스크림 하나씩 들고 맛있게 먹으면서 나란히 걸어온다.
하은 : 의미심장하지 않냐? (부러 엄숙하게) 죽은 자가 다시 나타나다!
수철 : 추리소설에서 괴기소설로 장르를 바꿨냐?
하은 : 추리의 진면목은 픽션에서 논픽션을 찾는 거다, 임마.
수철 : 도대체 이 사건에 매달리는 이유가 뭐냐?
하은 : (툭) 누군가는 죽은 사람을 위해 일해야 하니까.
수철 : 뭐?
하은 : 만에 하나 임대식이 자살로 위장된 타살이라면...죽은 사람이 너무 억울하잖냐? (한 곳 시선주며 굳어서) 어?
수철 : (뭔가 해서 하은의 시선 따라 두리번거리며) 왜? 뭔데?
하은 : 신호 바꿨다. (급하게 횡단보도를 향해 뛴다)
수철 : (엉겁결에 덩달아 같이 뛰고)
씬32. 강력 5팀 (오후)
침통한 표정으로 수철의 책상 앞 의자에 앉아있는 동찬.
하은은 주사위를 만지작거리면서 그 주위를 서성거리며 동찬이 하는 얘기를 귀 기울여 듣고 있다.
경반장은 덤덤한 얼굴로 자기 자리에서 서류를 보면서도 귀는 동찬에게 열려있다.
수철 : (조심스럽게) 임대식씨하고 마지막으로 통화한 건 언제였습니까?
동찬 : 사일 전입니다. 그 뒤론 핸드폰을 해도 받질 않으셨어요.
하은 : (끼어들며) 최근에 누구한테 원한을 산다거나 뭐 그런 일은 없었나요?
동찬 : 없습니다. 오히려 좋은 일을 많이 하셨죠. 최근 들어 특히.
수철 : (끄덕이곤) 그럼, 자살할 만한 기미 같은 건 안 보였습니까?
동찬 : 많이 힘들어 하셨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자살까지 하실 거라고는...(감정이 북받치는 듯 시선을 돌린다)
수철 : (난처해서)...
하은 : (대뜸) 그저께 저녁 8시 30분 부터 9시 30분 사이에 어디 계셨습니까?
동찬 : (하은을 본다)
하은 : 뭐, 기분 나쁘겐 생각마세요. 저희 일이니까.
동찬 :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부산 행 새마을호 기차 안에 있었습니다. 서울 역에서 출발하는 8시 15분 기차였거든요.
경반장 : (고개 들어 동찬을 보는 위로)
동찬 : (E) 사장님이 가셨어야 하는 일인데 사장님이 연락두절 상태라서
동찬 : 제가 급하게 내려갔던 겁니다.
수철 : (마무리 지으려고) 네에. 협조해 주셔서 (하는데)
하은 : (말 자르며) 급한 일이셨는데 왜 새마을호를 타셨어요? 고속열차가 더 빠를 텐데.
동찬 : (연출된 불쾌함으로) 기다리지 않고 탈 수 있는 기차였습니다. 어차피 약속시간 안에 도착하면 되는 거구 해서.
하은 : ...아.
동찬 : 부산으로 확인해 보시죠. 실무자들이 부산 역에 마중을 나왔었으니까.
(문득 떠올랐다는 듯) 아, 그리고 서울 역 개찰구 역무원과 작은 실랑이가 있었습니다.
하은 : (그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얼굴이 꿈틀하며 동찬을 본다)
씬33. 경찰서 앞 (오후)
일그러진 표정으로 안에서 걸어 나오는 동찬.
기다리고 있던 동찬의 부하(만두집 앞에서 있던)가 동찬을 맞는데.
하은 : (E) 잠깐만요!
동찬 : (움찔 굳는)
하은 : 저기요.
동찬 : (돌아본다. 침울한 표정으로 바뀌어 있다) 아직 뭐가 남았습니까?
하은 : 그건 아니구. 혹시 담배 태우세요?
동찬 : ?...그게 이 일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플래시 컷 - 재떨이에서 담배꽁초를 주어드는 장갑 낀 동찬의 손.
하은 : (사람 좋게 웃으며) 뭐 꼭 그런 건 아니구요.
동찬 : 끊으려고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수고하십시오. (하고 돌아서는 표정이 차갑게 굳는다)
하은 : (지켜보고 있다)...
씬34. 달리는 차 안 (오후)
동찬 : (핸드폰으로 통화중이다) 최동찬입니다. 정회장님이 허서장님 안부도 물으시고 또...의논드릴 말씀도 있고 해서...
오늘 저녁 시간 괜찮으십니까?
하은 : (E) 너무 완벽해요.
씬35. 강력 5팀 (오후)
경반장 : (본다)
하은 : 최동찬 알리바이요. 마치 미리 준비한 사람처럼 너무 완벽하잖아요.
수철 : (퉁) 완벽한 것도 문제냐?
하은 : 그래서 걸려...역무원이랑 실랑이 했단 것도 어쩐지 좀 걸리고.
수철 : 걸릴 것도 차암 많다.
하은 : (혼잣말처럼) 뭔가 냄새가 나긴 나는데. (하면서 의자에 앉고)
수철 : 냄새는 너한테 난다. (인상 구기며) 신발 좀 벗지 마!
하은 : (내려다보면 양말만 신고 있다...자기 발 들어서 코에다 대고 킁킁 냄새를 맡는다)
수철 : 으으. 더러운 놈.
하은 : (벌떡 일어서며 수철을 확 쏘아본다)
수철 : ?!...왜 그래?
하은 : (쏘아보고 있다)
수철 : (겁먹었다)...농담이야, 임마.
하은 : (대뜸) 백화점 할인 쿠폰 있지?
수철 : (벙)...그건..왜?
하은 : 우리 은하 내일 면접이잖냐. 옷 한 벌 쏠려구. (하며 씨익 웃는다)
씬36. 재수의 집 앞 (오후)
강주, 닫힌 대문 앞에서 살펴보고 있다.
강주 : 여기가 맞는데? (안을 들여다보며) 아무도 없나? (하는데)
은하 : (대문을 열고 외출 하는 차림으로 나온다)
강주 : (깜짝 놀라서 한 걸음 물러선다)
은하 : (강주를 알아봤다)
강주 : (역시 은하를 알아봤다)...어?
은하 : (미소 지으며) 안녕하세요?
강주 : (얼떨떨) 네에...이 집에 사세요?
은하 : (호텔에서 만난 건 모른 채로) 네..그날 아침에 너무 급하게 가셔서 인사를 못했어요.
강주 : 아우, 인사는 제가 했어야죠. 죄송합니다. 실례를 했어요.
은하 : 아니에요.
강주 : (민망한 듯) 인사도 드릴 겸. 궁금해서 왔어요. 제가 어떻게 여기서...
은하 : 오빠가 모시고 왔어요. 술이 (조심스럽게) 좀 취하셔서 오빠차를 택시로 잘못 아시고 타셨나 봐요.
강주 : (창피해 죽겠다)...아아...네에. (괜히 묻지도 않은 말을 한다) 사실 제가 술이 좀 센 편인데요.
그 날은 이상하게 빨리 취하더라구요. (겸연쩍게 웃는다)
은하 : (미소 지으며) 그런 날이 있어요.
강주 : 근데 어제 호텔에 계셨죠?
은하 : ?....네.
강주 : 신기한 인연이네. 저도 어제 (하는데)
(E) : 핸드폰이 울린다.
강주 : 죄송합니다. (받으며) 네, 선배님. (군기 팍 들어서) 불이요? 알겠습니다. 확인하고 보고 드리겠습니다!
(끊고 급하게 명함 꺼내서 주며) 다음에 전화 한 번 주세요. 술 살게요.
은하 : (명함 받는다)
강주 : (이미 발 길 돌리며) 꼭 전화 주세요! 꼭이여!
은하 : (얼떨결에)...네에. (미소 지으며 급하게 가는 강주를 보고...명함을 본다)
씬37. 한정식 집 룸 (밤)
탁자위로 턱 놓여지는 신문.
태준 : (본다)....?
인철 :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서) 임대식이란 자가 죽었다는데..
태준 : (순간 미간이 미세하게 구겨졌다가 이내 여유 있게) 그 기사 나도 봤어.
(술잔 들어 마시며) 안 됐어. 나도 안면은 있는 사람이었는데 말야.
인철 : (불안한 눈빛으로 본다)...
태준 : 그 일 때문에 난 만나자고 한 건 아닐테구..
인철 : 혹시...(머뭇거리다 결심이 선 듯) 자네하고 정회장이 관련 된 일은 아니겠지?
태준 : (어이없다는 듯 보다가 이내 웃어버린다)
인철 : ....
태준 : (웃음 끝을 흐리며)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인철 : ..임대식은 20년 전에 건하에게서 들었던 인물이야.
태준 : (웃음끼 거두고)..그래서?
인철 : 건하는 임대식이란 자가 건설부 과장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고 했었어.
태준 :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지?
인철 : ...건하가 맡았던 사건..너희도 관계가 있었으니까. (자신은 없다)
태준 : 그건 건하의 오해였어. (여유 있게) 자넨 아직도 건하의 죽음에 내가 관련돼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인철 : (미안한 듯)...그런 뜻은 아니야. 다만 건하가 날 믿고 한 얘길 (하는데)
태준 : (말 자르며) 건한 내 친구였어.
인철 : (본다)
태준 : 너만큼 나한테도 충격이었고..슬픔이었어, 건하의 사고 소식은.
인철 : ....미안하네. 자넬...오해해서 한 소린 아니야. (흔들리는 시선)
태준 : (표정 풀고 미소로) 자, 그 얘긴 그만 하자구. 어차피 사람 사는 일이야 다 하늘의 뜻이지.
자네가 그렇게 흠모하던 이화씨랑 재혼한 것도 결국 하늘에 뜻인 거구. (미소 짓는다)
인철 : (순간 움찔 굳어진다)...
씬38. 달리는 차 안 (밤)
굳은 표정으로 목적 없이 창 밖을 응시하고 있는 태준.
정무 : (운전하면서) 댁으로 가시겠습니까, 의원님?
태준 : (대답 않고 묵묵히)...
정무 : (눈치 빠르게) 혜화동으로 모시겠습니다.
태준 : (피곤한 듯 눈을 감는다. 그 위로)
인철 : (E. 괴로운) 건하는 너희를 수사하고 있어.
씬39. 술 집 룸 (밤, 회상)
20년 전, 젊은 태준과 상국, 그 앞의 인철.
인철 : (괴롭게) 지금이라도 너희 스스로 사건 전말을 밝혀. 그게 최선이야.
상국 :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 사건과 우린 아무 관계가 없어. (그렇게 말하는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린다)
인철 : 건하는 증거도 확보하고 있다고 했어.
태준 : (굳어서)...증거?
인철 : 건하가 날 믿고 한 얘길 너희에게 하는 건...건하도 너희들도 내 친구기 때문이야.
상국 : (갈등하는 시선)
인철 : 건하도 많이 괴로워하고 있어. 부탁이다. 어차피 밝혀질 일이라면
태준 : (O.L. 낮지만 무섭게) 겁날 거 없어! 난...깨끗하니까.
상국 : (그 말에 태준을 힐끔 본다)
씬40. 한적한 거리 (밤, 회상)
차를 세워두고 밖에 나와 서 있는 20년 전 태준과 상국.
상국 : (불안하고 초조하다) 증거란 게 뭘까?
태준 : 넘겨짚은 거야. 그런 게 있을리 없어.
상국 : 안되겠어. 건하를 만나자. 만나서 해결하는 수밖에 없어.
태준 : (냉정하게 가라앉은) 인철이 말대로 돈으로 해결될 상대가 아니야. 방법은 한 가지야.
상국 : (본다)...한가지라니?
태준 :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보며) 다음달이면 선거야. 지금까지 쌓아 온 것들을 한 순간에 잃어버릴 수는 없어.
그건 너 역시 마찬가지구.
상국 : (망설여진다) 하지만 건하는
태준 : (O.L.) 인생전부가 걸린 문제야! 상대가 친구라도 어쩔 수가 없어.
상국 : (흔들리는 눈빛)..
태준 : 돌아가기엔 너무 많이 왔어, 너두 나두.
상국 : (결심이 선 듯) 인철인 어떻게 할 건데?
태준 : 우리말을 믿어 줄 거야. 믿지 못한다 해도 인철인 걱정할 거 없어. 소심한 친구니까.
씬41. 인철의 거실 (밤, 현재)
인철, 막 들어온 차림으로 이화 앞으로 아름다운 꽃다발을 내민다.
이화 : (고마운 미소로)...당신도 참.
인철 : (사람 좋은 웃음으로) 이럴 땐 고맙다거나 예쁘다거나 그런 말이 어울리는 겁니다.
이화 : (웃음) 예쁘네요. 고마워요.
인철 : 별 말씀을요.
신영 : (주방에서 주스 잔 들고 나오며) 우리아빤 엄마밖에 몰라.
입시지옥에 시달리는 고3 딸도 이 집에 살거든요? (귀여운 투정)
인철 : 그거야 항상 명심하고 있지. (이화 보며) 신혁인 회의가 길어져서 좀 늦을 거야.
신영 : (얼른) 난 고3이기도 하구 3등이기도 해. 엄마 오빠 담이니까. (투정)
이화 : (곱게 흘긴다)
인철 : (신영에게) 오랜만에 아빠랑 체스 한판 둘까?
신영 : 무서워서 싫어요.
인철 : ? 무섭다니?
신영 : 맨날 져주는 척 하다가 결국 이기는 건 아빠잖아요?
인철 : 져주는 척 한 적은 없었는데? 기초전술을 지켰을 뿐이지.
이화 : (무심히) 기초전술이 뭔데요?
인철 : 상대가 미처 볼 수 없는 곳에 있는 틈을 공략하라. (미소 짓는다)
씬42. 강력 5팀 (밤)
장형사 : (경반장에게) 임대식 주변에 양만철이란 인물은 없구요. (서류 보며) 강원도에 거주하는 사람 중엔 (하는데)
하은 : 어디 봐. (얼른 서류 뺏듯이 가져가서 보며)...초등학생이구..
수철 : (못 말리겠다 싶은 얼굴로 하은을 보고)
하은 : ...회사원...학생...이건 뭐야? 사형수?
장형사 : 강릉 교도소에 있더라구.
수철 : 그 놈은 확실히 아니네. 임대식을 죽이려면 탈옥해야 되니까. (비꼬는)
하은 : (집중해서 서류만 본다)..
수철 : 반장님, 이 사건 끝난 거 아닙니까? 부검결과도
경반장 : (O.L.) 그 사람들 중에 임대식과 관련 있는 인물이 있는지 좀 더 알아봐.
수철 : 전 양경파 피해자 확보도 해야 되구, 참고인도 만나야 되구.
장형사 : 저두 기획수사 하던 게 있어서
하은 : (얼른) 제가 맡겠습니다.
경반장 : (본다)
하은 : (뜬금없이) 반장님 환영회는 언제 해요? (장난스럽게 웃는다)
씬43. 대포 집 (밤)
드럼통 테이블이 놓인 서민적인 분위기의 막걸리 집.
몇 군데 손님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위에선 고기 굽는 연기가 자욱하다.
하은 : (술잔 들어 올리며) 원 샷! (단번에 털어 넣는다)
경반장 : (웃으며 술잔을 비운다)
하은 : (안주 집어 먹으면) 임대식, 예전부터 알던 사람이죠, 반장님?
경반장 : (본다)
하은 : (경반장 잔에 술을 채워주며) 어떻게 아시는 건데요?
경반장 : (씁쓸한 미소로 덤덤하게) 20년 전에 내가 맡았던 사건의 중요한 목격자였어.
하은 : (여전히 안주 먹느라 건성으로)..그랬구나아.
경반장 : 비리혐의가 있던 건설부 과장의 자살 사건이었는데...신기하게 닮았어.
하은 : (건성으로) 예에. (하다가 보며) 뭐가요?
경반장 : (피식 웃고는) 너처럼 타살이란 확신으로 사건에 매달렸던 선배가 있었던 것도 비슷하구. (웃는 얼굴이 허전하다)
하은 : 아아, 그래서 저번에 그런 말씀을 하셨구나. 나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구.
경반장 : (농담한다) 인물은 너보다 그 선배가 훨씬 좋지.
하은 : 희한하네. 나보다 잘생긴 남잔 본 적이 없는데.
경반장 : (싱거운 자식, 웃는데)
수철 : (장형사와 들어와 앉으며) 죄송합니다. (하은이 따라 주는 술 잔 받으며) 부산에 전화했다면서?
하은 : 전화 왔어?
수철 : 최동찬 말대로야. 실무자들이 부산 역까지 마중 나갔었대.
하은 : 부산 역 어디서?
수철 : 출구 바로 앞에서 만났댄다. 도착 시간도 딱 맞구.
하은 : ...그래?
씬44. 재수의 집 앞 (밤)
은하, 밖에 나와 서서 바람을 쏘이듯 봄바람을 느끼며 하은을 기다리고 있다.
저쪽에서 들리는 하은의 씩씩한 노래 소리.
하은 : (E) 나의 마음은 황무지 차가운 바람만 불고
은하 : (반가운 미소가 저절로 머금어지며 하은을 본다)
하은 : 풀 한포기 나지 않는(하다가 은하를 발견하고 멈춘다)
은하 : (따뜻한 미소로 보고 있다)
하은 : (환한 미소로 본다. 반가움에 성큼 한걸음에 와서 선다) 왜 나와 있어?
은하 : (미소가 새침한 표정으로 바뀌어 있다) 폭력경찰도 모자라서 고성방가까지?
하은 : 민중의 지팡이도 가끔은 부서지고 싶을 때가 있는 거다, 너?
은하 : (곱게 흘기곤) 밥은 먹은 거야? (하는데)
하은 : (쇼핑백 턱 내민다)
은하 : ? 뭐야?
하은 : 옷!
은하 : 왜 또(하는데)
하은 : (자르며 은하 흉내 낸다) 쓸데없는데 돈 쓰고 그래?! 이럴려 그러지?
은하 : (풀썩 웃는다)
하은 : 하나뿐인 동생이 면접을 본다는데 오빠가 이 정도는 해 줘야 폼이 나잖냐.
은하 : 나 옷 있어.
하은 : (은하의 콧등을 쓸어주며) 비싼 거 아니야. 그냥 착하게 입어주라.
은하 : (빤히 본다)
하은 : (무안해져서)...왜?
은하 : 오빠 이름이 왜 하은인지 알어?
하은 : 아저씨가 그냥 니 이름 거꾸로 해서 지었잖아. 은하, 뒤집어서 하은.
은하 : 틀렸어.
하은 : ? (본다)
은하 : 하늘에서 보내준 은하의 천사. 하은!
하은 : (순간 멍해지는 기분으로)..
은하 : (미소로) 고마워, 잘 입을게. (하더니 얼른 집안으로 들어간다)
하은 : (그제야 따뜻한 미소가 머금어진다.)..(F.O.)
씬45. 하은의 방 (아침)(F.I)
재수 : (출근하려는 하은을 잡고서) 은하 맞선 보기로 했다, 오늘.
하은 : (좀 놀라서) 은하가 그러겠대요?
재수 : 그래서 지금 작전을 짜야 된다니까아.
하은 : ? 뭔 작전이요?
재수 : (은밀히) 니가 은하한테 만나자고 하는 거야.
하은 : 예에?
재수 : 은하가 일단 약속 장소로 나오기만 하면 되는 거거든.
(출판기념회 초청장 앞면에 아무렇게나 약속 장소와 시간 적은 거 내밀며) 여기루 7시까지
하은 : (말 자르며) 아 싫어요. 왜 민주경찰 사기치게 만들어요?!
재수 : 이게 왜 사기야? 트릭이지.
하은 : (O.L.) 아저씨가 만나자고 하세요, 그럼. (휙 나간다)
재수 : (잡아먹을 듯 입으로만 씰룩거리며 따라 나간다)
씬46. 은하 방 (아침)
은하, 탁자위에 아침상을 치우고 있다.
하은 : (나오며) 서은하! 이 오빠 출근한다.
은하 : ..어. 운전 조심하구.
하은 : 너 얼 거 없다. 서은하는 무조건 합격이야. 왜냐? 대한민국에서 최고니까!
은하 : (웃으며) 늦겠어, 얼른 가.
하은 : (웃고는 마당으로 가려다 뒤통수에 꽂히는 재수의 시선에 돌아본다)
재수가 하은 보며 은하 모르게 재촉하는 손짓 눈짓을 보내고 있다.
하은 : (휙 은하를 돌아보더니) 너 면접 끝나고 뭐 하냐?
재수 : (바로 그거지 하는 얼굴)
은하 : ...왜?
하은 : 오빠가 기념으로 맛있는 거 사줄게. 만두집 어때?
재수 : (인상 확 구겨지고)
은하 : (좋다)...뭐..괜찮아.
하은 : 끝나고 전화 해. (주먹 쥐어 들어 보이며) 서은하 홧팅!!
은하 : (웃는다)
하은, 마당으로 나가려는데 재수가 하은을 가로막고 서서 장소 적힌 초청장 보이며 무언의 압력.
재수 : (손짓으로 장소를 쓴 글자 가리키며 여기야! 여기!)
하은 : (능청스런 표정)
재수 : (손 확 들어서 한 대 칠 듯)
하은 : (번쩍 하는 얼굴로 재수의 손 탁 잡으며) 잠깐!
재수 : ? (본다)
은하 : ? (돌아본다)
하은 : (재수의 손에 초청장 뺏듯 들고 앞 뒤 안을 급하게 뒤적인다) 이거 저번에 너 아르바이트 했던.
은하 : (본다)...응.
재수 : 이리 내놔! (뺏으려는데)
하은 : (뺏기지 않고) 갔다 올게요! (도망치듯 밖으로)
은하 : ? (보고)
재수 : (갸우뚱...맘이 바꿨나 싶기도 하고)...
씬47. 강력 5팀 (아침)
하은, 모텔 화장실에서 발견한 쪽지를 책상위에 펴 놓고 초청장과 하나씩 비교를 해 본다.
겉표지에 있는 볼록하게 나온 목련꽃 문향의 한쪽.
그리고 조각난 글자들을 하나씩 맞춰보는 하은.
‘이태준’의 태, ‘아내와 목련 꽃’의 꽃, 기념회 날자와 일치하는 숫자. 호텔 이름과 일치하는 한 단어..
수철 : (들어오다 보며) 아직도 그거 갖고 씨름하고 있냐?
하은 : (됐다! 고개 번쩍 들며) 반장님은?
수철 : 회의 들어가셨어.
(E) : 핸드폰.
수철 : (받으며) 네에. 잠깐만요. (하은에게) 핸드폰은 왜 안 받냐? 모텔 종업원이랜다.
하은 : 어. (핸드폰 받으며) 서하은입니다. (주머니 뒤져 핸드폰 찾으면서) ....네. (중얼) 아~핸드폰 놓고 왔네.
(하다 반짝) 콜택시를요?
씬48. 무릉건설 면접 대기실 (낮)
하은이 사준 정장을 입고 면접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 속에 은하, 긴장된 표정이다.
면접 진행원이 없어서 서로 출신학교도 묻고 정보를 교환하느라 수군거리는 사람들과 긴장된 사람들 등등..
차분히 옷매무새를 다듬어 보는 은하, 하은이 사준 옷이 소중한 듯 미소를 지어 보이는데 핸드폰이 진동으로 울린다.
은하, 확인해 보면 하은이 보낸 메시지다.
‘은하야, 장소를 바꿨어. 7시에 청담사거리에 있는 00까페에서 만나자. 이쁘게 하고 와. 오빠가 ^^‘
메시지 내용에 푹 웃음이 터지는 은하, 짧은 답신을 보낸다.
하은과의 만남에 설레는 듯 긴장됐던 은하의 표정이 밝아졌다.
씬49. 하은의 방 (낮)
재수 : (하은의 핸드폰 내려놓으며) 짜식, 만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만족스럽게 웃는다)
씬50. 무릉건설 부사장실 (낮)
신혁의 비서 재훈이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다.
신혁 : (격앙된 소리로) 우진이 맘을 바꾸다뇨?
재훈 : (유약한 모습이지만 또박또박) 저희가 강원도에 갔을 땐 이미 J&C하고 계약을 끝낸 상태였습니다.
아마 이번 컨벤션센터 건립을 겨냥해서 미리
신혁 : (딱 자르며, 차갑게) 그래서요? 강원도에 있는 다른 업체와 컨소시엄이 어렵다는 것도 역시 J&C 때문인가요?
재훈 : ...네. J&C 쪽에서 이후 사업계획을 조건으로 우리와 손잡지 못하도록 묶어 놓은 것 같습니다.
신혁 : (일그러진다)
(E) : 노크
여비서 : (들어와서) 부사장님. 면접시간 다 됐습니다.
신혁 : (차갑게 식은 얼굴로 앞만 응시한 채 생각에 빠져서) 마케팅부 김이사로 대체하세요.
여비서 : ..네에. (나가고)
재훈 : (조심스럽게)...그리고 시급한 문제가 있습니다. 노조원들이(하는데)
신혁 : (O.L.) 도청 건설과 담당자와 미팅 날짜 잡아요.
씬51. J&C 회장실 (낮)
진우가 상국에게 보고를 하고 있다.
진우 : 중앙 토건과는 컨소시엄 회답을 받았습니다.
상국 : (골똘하게 딴 생각에 빠져있다)...
진우 : 설계도면 작업은 시작단계부터 예상위원들한테 코치를 받는 것이 확실할 것 같아서 (하다 말을 멈추고 부친을 본다)
상국 : (진우의 말이 끊긴 것도 모른 채 생각에 골몰해 있다)
진우 : ...아버지?
상국 : (그제야 정신이 드는 듯 보며) 어..그래서?
진우 :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세요?
상국 : (얼른 예의 그 호탕한 성격으로) 고민될 게 뭐가 있어? 컨벤션센터 건은 니 선에서 해결 해. 나한테 일일이 보고할 거 없어.
진우 : ...알겠습니다. (부친에게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불안함을 감지한다)
씬52. 기사 식당 앞 (오후)
하은, 식사를 마치고 나온 택시 기사 앞에 임대식의 사진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하은 : 기억나세요? 00모텔에서 나온 손님인데.
기사 :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곤)...예. 근데 왜요?
하은 : 목적지가 어디였습니까?
기사 : 경찰서 앞이요.
하은 : (직감으로 짐작이 드는 듯한 표정)...어느 경찰선데요?
씬53. 강력 5팀 (오후)
경반장 : 여기 왔었다구?
하은 : 네. 이건 우연이 아니에요.
수철 : (의아해서) 그건 좀 그러네. 전화도 두 번씩이나 했고 여기까지 찾아왔으면
하은 : (O.L.) 분명히 이 경찰서 아니면 우리팀 누군가한테 뭔가 목적이 있었던 거지.
혹시 반장님을 만나러 온 건 아닐까도 생각해 봤는데요.
경반장 : (본다)
수철 : ? 반장님을 왜?
하은 : (자기말만 한다) 그건 시기적으로 안 맞아요. 임대식이 전화한 날하고 찾아온 날은 반장님이 오시기 전이었거든요.
경반장 :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하은 : 그리고 그 모텔 화장실에서(하는데)
여경 : (문 열고 들어오며) 팀장님. 서장실로 오시라는데요.
경반장 : (본다)
씬54. 서장실 (오후)
서장, 허덕우라는 명패가 보인다.
경반장과 허서장, 커피를 앞에 놓고 앉아 있다.
허서장 : (사람 좋은 웃음으로) 사람 참, 내가 이렇게 꼭 불러야 인사를 오나? 우리가 모르는 사이도 아니구.
경반장 : 죄송합니다.
허서장 : 자네 바쁜 거 알면서 괜히 한 소리야. 어 그리고, 임과장한테 지시를 하긴 했는데 임대식 자살사건 말야.
경반장 : (본다)
허서장 : (부러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거 왜 아직도 잡고 있어? 요즘 조직폭력배 소탕 기간이라 인원도 모자라는 판에.
경반장 : 아직 타살 의문점이 남아 있습니다, 서장님.
허서장 : (웃으며) 의문점이 있을 게 뭐 있어? 부검 결과도 그렇고 유서까지 있는데. 자살로 종결짓고 기획수사 들어가.
경반장 : 부검결과 특별한 소견은 없지만
허서장 : (말 끊으며 인상 굳히고) 자살이 분명한데 왜 뭉기적거려? (명령조) 근거도 없는 일에 수사력 낭비하지 말고 내사종결 지어!
경반장 : (인상 굳어져서)....
씬55. 서울 역 (늦은 오후)
하은, 한손으로 주사위 장난을 치면서 경부선 하행선 열차시간표 전광판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개찰구 쪽에 있는 역무원을 보고 다시 전광판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는 하은, 발길을 돌리려다가 뭔가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다시 열차시간표 전광판에 시선이 멈춘다.
씬56. 까페 (밤)
세련된 인테리어로 장식된 고급 까페.
은하, 설레는 듯한 표정으로 하은을 기다리고 있다. 손목시계를 본다. 7시를 향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시계바늘.
까페 안을 둘러보는 은하, 이런 분위기가 어쩐지 낯설기만 한데..
정장 차림의 남자(대학병원 의사)가 은하 앞에 와 선다.
남자 : 안녕하세요?
은하 : ? (본다)
남자 : (앉으며) 일찍 나오셨네요?
은하 :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서 보고만 있다)..
남자 : 안 나오실까봐 걱정했는데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은하 : (상황파악이 됐다. 너무 기막혀서 말문이 막혀있다)
씬57. 까페 앞 (밤)
은하, 굳은 표정으로 밖으로 나온다. 어이없고, 기막혀서 잠시 숨을 고르고는 부러 더 힘껏 걸음을 옮긴다.
그 뒤로 나서는 의사, 역시 황당한 얼굴로 은하를 보고 있다.
씬58. 거리 (밤)
입술을 앙 다물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는 은하. 하지만 눈에선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얼굴이다.
인써트 1회 씬35의 하은.
하은 : 이 오빠는 니가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잘난 놈을 만나는 게 꿈이야.
은하의 눈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 흐른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는 거의 뛰다시피 걷는, 은하.
씬59. 공중전화 부스 (밤)
하은 : (재수와 통화중이다) 은하한테 연락 없었어요?...핸드폰을 안 받아요. (걱정 가득해서 혼잣말처럼) 면접을 잘 못 봤나..
(움찔) !... 예?
씬60. 포장마차 (밤)
재수 : (한손으로 음식 만들면서 통화 중) 맞선보러 갔다구, 맞선. (버럭) 그래, 맞선!
(신나서) 전화 안 받는 거 보니까 잘 되고 있나부다. (하은이 전화를 끊었다) 여보세요?...얌마! 이런 싸가지.
씬61. 공중전화 부스 앞 (밤)
갈 길 잃은 사람처럼 잠시 멍하니 서 있는 하은.
애써 대수롭지 않다는 듯 머리카락을 북 흩트리고는 가슴에 바람을 넣듯 훅훅 숨을 들이쉬고는 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하은의 뒷모습은 어쩐지 무겁고 외로워 보인다.
씬62. 고급 바 (밤)
진우, 들어와서 보면 신혁이 바텐더 앞 바에 앉아서 마티니 정도의 칵테일을 마시고 있다.
진우 : (담담한 표정으로 자리로 가서 앉으며 공손히 인사하는 바텐더에게) 마시던 걸루.
바텐더 : 네.
진우 : (반갑게) 무슨 바람이 분거야? 유신혁이 이런 데로 날 다 부르구.
신혁 : (대답대신 무표정한 얼굴로 술을 한 모금 마신다)..
진우 : (피식 웃는다)
바텐더, 술잔을 진우 앞에 갖다 놓아준다.
진우 : (친절하게) 고마워요. (하며 술잔을 잡는데)
신혁 : (대뜸 용건을 말한다) 진흙탕 싸움은 하지 말자.
진우 : (멈추고 본다)
신혁 : (똑바로 보며) 강원도 컨벤션센터.
진우 : (훗 웃으며) 아아...난 또. 아직 진행 중인 사안인데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 아냐?
신혁 : 우리와 조인 못하도록 미리 손을 써 놨든데?
진우 : (여전히 여유 있는) 사업은 사업일 뿐이야.
신혁 : 로비도 실력이란 건 나도 인정하는데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라.
진우 : (웃음끼 있는) 좀 우습다. 결혼도 비즈니스로 생각하는 니가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신혁 : (차갑게 식어서 본다)
진우 : (입은 웃고 있지만 그 눈은 차갑다) 신혁아, 최소한 남한테 충고를 하려면 자기 약점은 감췄어야지.
넌 너무 잘 보여. 그래서 내 상대가 안 되는 거구. 먼저 일어난다. (일어나서 나간다)
신혁 : (조각처럼 앞만 보고 있다)...
씬63. 경찰서 로비 (밤)
수철, 휘파람 불면서 퇴근하는데 하은이 터덜터덜 걸어 들어온다.
수철 : (얼른 다가가서) 마누라! 너 어디서 놀다 이제 오냐?
하은 : 탐문수사 놀이!
수철 : 그 놀이 이제 끝내라. 임대식 사건 자살로 종결 됐다.
하은 : (놀라서 눈 커져서) 누구 맘대루?!
씬64. 강력 5팀 (밤)
하은, 경반장에게 자기 할 말만 해 대고 있다.
하은 : (따진다) 종결이라뇨? 사건 난지 얼마나 됐다구 벌써 종결지시냐구요?
임대식은 자살한 게 아니에요. 타살이라니까요?
경반장 : (덤덤하게 묵묵히 듣고만 있다)
하은 : 반장님도 타살 의혹 갖고 계시죠? 그러니까 모텔에도 가셨구..
(답답해서) 양만철만 해도 그래요. 아직 임대식하고 관계도 추적 못했잖아요?
수철 : 도대체 무슨 근거로 자꾸 타살이라는 거야, 너는?
하은 : (답답해 죽겠다는 듯) 걸리는 게 어디 한두 가지냐?!
수철 : 걸리는 건 있어두 증거가 없잖아, 증거가.
하은 : (강하게) 범인은 최동찬이야!
경반장 : (놀라서 보고)
수철 : (역시 어리둥절해서) 최동찬?
경반장 : (긴장된) 증거 있어?
하은 : (갑자기 소리 작아져서) 아직...없지만. 제 육감에
수철 : (O.L.) 육감으로 구속영장 나오냐? 최동찬은 살해 동기도 없구, 알리바이도 확실해!
하은 : (O.L.) 증거를 찾으면 될 거 아냐?! 반장님, 조금만 시간을 더 주세요.
제가요, 지금 머리 속이 엄청 복잡하게 엉켜있긴 한데요, 2프로만 접근하면 풀릴 거 같거든요?
경반장 : (망설이는 눈빛)...
수철 : (또 시작이다..한숨 쉬 듯 보고)
하은 :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임대식과 양만철 그리고 이태준의원과의 관계만
경반장 : (무섭게 굳어져서 하은을 돌아보는 얼굴위로)
하은 : (E) 알아내면 뭔가 실마리가 풀릴 것도
경반장 : (말 끊으며) 방금 누구라고 했어?
하은 : 국회의원 이태준이요. 모텔 화장실에서 발견한 종이조각들 있잖아요.
(하다 빠르게 자기 책상 서랍을 열어 출판기념회 초청장을 꺼내 내민다) 그게 이거거든요?
경반장 : (받아서 본다)
수철 : (호기심이 생겨서 초청장 들여다보며) 출판기념회 초청장이잖아?
하은 : 어. 범인은 이태준의원이 임대식과 관계가 있단 걸 숨기려고 했던 거야.
이태준이 이 사건의 키워드가 될 수 있단 얘기지.
경반장 : (창백하게 굳어서 초청장만 뚫어져라 쳐다본다)
씬65. 경찰서 한 곳 (밤)
경반장, 혼자 남아서 긴장된 표정으로 창밖을 응시하고 있다. 그 위로.
건하 : (E) 난 믿는 것이 있어.
마치 현재에서 들리는 목소리인 듯 휙 돌아보는 경반장.
씬66. 경찰서 한 곳 (밤, 회상)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20년 전의 유건하가 뒤를 돌아본다.
그 앞에 서 있는 20년 전 경반장, 뒷모습만 보인다.
건하 : (차분하고 침착한) 진실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결국 밝혀진다는 거.
경반장 : ...아직도 타살이라고 생각하세요?
건하 : (잠시 보다가..뜬금없이) 강원도에 다녀와야겠어.
경반장 : 거긴 왜요?
건하 : (대답대신 쓸쓸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씬67. 경찰 서 한 곳 (밤, 현재)
경반장, 동상처럼 굳어서 마치 건하가 그 자리에 있는 듯 텅 빈 공간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얼굴에 비장함마저 스치는 듯 하다.
씬68. 하은의 방 (밤)
하은, 의자에 앉아 장난치듯 빙글빙글 의자를 돌리며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다.
모니터 창엔 고속열차 시간표가 떠 있다.
하은 : (들여다보며 궁시렁)....이럼 얘기가 안 되는데..(피곤한 듯 고개를 돌리다가 번쩍 스치는 생각에 다시 모니터를 본다)
어?! (벌떡 일어나며) 찾았다! (좋아서 입 벌어지며) 아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최동찬 너 사람 제대로 만났다.
하다 문득 벽시계를 본다. 10시를 막 넘고 있는 시간.
맞선을 봤을 은하 땜에 마음이 복잡해지는 하은.
씬69. 동네 거리 (밤)
은하를 마중 나온 하은, 터덜터덜 걸어오다가 걸음을 멈추고는 확인하듯 고개 빼고 본다.
한 손에 미역과 소고기가 든 검은 비닐봉투 들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비틀비틀 걸어오고 있는 은하.
하은, 은하 확인하고 확 반가움이 번졌다가 비틀거리는 은하의 걸음걸이에 곧 미소가 잦아든다.
하은 : 서은하!
은하 : (멈추고 고개 들어 흐릿한 시선으로 본다)
하은 : (한걸음에 달려와 선다) 술 먹었어?
은하 : (흐릿한 시선으로 보다가 말없이 비틀비틀 걸어간다)
하은 : (팔 잡아 부축하며) 소주 한 잔에 취하는 놈이 (하는데)
은하 : (팔 탁 쳐내며 혀 꼬부라진) 됐어, 됐다구 나 안 취했어.
하은 : (따라가서 팔 잡은 채로 화낸다) 그 자식 되게 웃기는 놈이네!
술을 먹였으면 데려다 주든가?! 아니면 술을 먹이지 말든가?! 뭐 그딴 자식이 다 있냐?
은하 : (걸음을 딱 멈추고 하은 보며) 나쁜 놈.
하은 : (띵해서)..엉?
은하 : 나쁜 놈이라 그랬다, 왜?
하은 : (능청스럽게 달랜다) 아무리 취해도 나쁜 놈은 좀 심하다, 오빠한테.
은하 : (대뜸) 서하은 동생 안 할 거야.
하은 : (당황스러운 기분으로 본다)
은하 : 하기 싫어!
하더니 갑자기 입을 막는다. 비틀거리면서 구석 쪽으로 가서 토하기 시작한다.
하은, 다가가 은하의 등을 말없이 두드려준다.
은하, 그런 하은의 팔을 쳐내고 일어서서 몇 걸음 걷어가는 가 싶더니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진다.
하은이 빠르게 은하를 받아 안는다.
씬70. 동네 거리 (밤)
하은, 술에 취해 잠든 은하를 등에 업고 천천히 걸어온다.
자신이 바보 같다는 생각에 착잡한 기분이 드는 하은, 잠든 은하의 얼굴을 애잔한 마음으로 돌아본다.
닿을 듯 가까이 있는 은하의 얼굴..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려 걷는다.
씬71. 재수의 집 대문 앞 (밤)
은하를 업고 걸어오는 하은, 대문 앞에 발길이 멈춘다.
들어갈 생각 않고 잠시 그대로 서 있더니.
하은 : (내려놓기 싫다. 하늘을 보며 혼잣말) 바람도 좋은데 동네 한바퀴만 더 돌자. (하곤 왔던 길을 돌아서 간다)
씬72. 어느 집 앞 (밤)
오래되고 소박한 양옥집. (20년 전, 건하의 집이다)
그리움이 스민 얼굴로 집을 바라다보고 있는 신혁, 오랫동안 그렇게 서 있었던 듯싶다.
잠시 그렇게 서 있다가 발길을 돌리는데 어린 하은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은 : (E) 신혁아.
신혁 : (멈추고 휙 돌아본다)
환상처럼 닫혔던 대문이 열리면서 밝은 빛이 빛난다.
씬73. 씬74의 집 앞 (낮, 회상-환상 같은 분위기)
대문으로 조심스럽게 나서는 어린 하은.
대문 앞에 세워져 있는 건하의 소형 승용차로 조심스럽게 가다가 멈추고 돌아본다.
어린 신혁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대문에 몸을 반쯤 내밀고 보고 있다.
하은 : 정말 같이 안 갈 거야?
신혁 : (자신 없이 고개를 가로 젓는다)
하은 : 그럼 차 떠날 때까지 비밀이야. 알았지?
신혁 : 형도 가지마. 아빠 출장 가는 거랬잖아?
하은, 개구쟁이처럼 히죽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뒷문을 열고 뒷좌석에 몰래 탄다.
신혁 : (부럽고, 걱정되고)...
하은 : (창문을 통해 신혁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다. 신나는 여행을 가는 모습이다)
신혁 : (갈등하며 바라보는 얼굴위로)...
신혁 : (성인 신혁의 E) 그때 비밀 지키지 말 걸..
씬74. 집 앞 (밤, 현재)
죄책감에 차 있는 신혁의 얼굴.
신혁 : ...그랬더라면 좋았을 걸....그랬어야 했는데...
눈빛이 흐려지며 고개가 차츰 힘없이 꺾이는 신혁의 모습에서..하은의 악몽으로.
씬75. 몽타주 (하은의 악몽)
-어딘지도 모르는 길을 정신없이 달리고 있는 어린 하은.
-먼저가라고 손짓하던 트럭운전사의 둔탁한 손, 그 손에 끼워져 있는 반지.
-달리던 어린 하은, 등대 끝에 멈춘다. 그 곳에 등 돌리고 서 있는 소년의 모습.
하은, 두려움과 호기심에 찬 얼굴로 조심스럽게 다가가는데 아이가 천천히 돌아본다.
하은과 똑같은 얼굴을 한 소년이 거기에 있다. 그 아이가 입을 연다.
소년 : ...형, 가지마.
씬76. 하은의 방 (아침, 현재)
소스라치듯 놀라 잠에서 깨어 벌떡 일어나 앉는 하은.
땀범벅으로 거친 숨을 내 쉬는 굳은 하은의 얼굴에서..(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