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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강해 제 7장 미스바 대성회
본장에서는 이스라엘의 영적, 정치적, 군사적으로 국권을 회복하게 된 미스바 대성회를 언급하고 있다. 세 단락으로 나누는데 먼저, 사무엘의 영적 지도력 아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여 하나님께 회개했다는 사실, 그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지금까지 자신들을 괴롭히던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사실, 마지막으로 사무엘의 통치 기간에는 이스라엘이 안정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1. 사무엘을 통한 이스라엘의 회복 (7;1-6절)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오랜 영적 단절 끝에 다시 그 관계가 정상적으로 회복된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데 지극히 곤비했던 이스라엘의 영적 상황은 언약궤가 기럇여아림에 돌아와 20년이나 방치되고 있었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법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와서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어갔는데 아마도 아비나답은 ‘레위인’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후일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 성으로 옮길 때에 아비나답의 후손들이 공식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삼하6;3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아비나답의 집은 가럇여아림 교외의 높은 고지 즉 산에 있었으므로 언약궤를 보관하기에 적당했을 것이며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궤를 지키게 했는데 ‘엘리아살’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도우시는 자’라는 뜻으로 이 사람은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과 동명이인이다. 이 이름을 굳이 나타내는 이유는 그가 레위 지파의 후예라는 것을 은연중에 시사하는 것이다. ‘거룩히 구별했다.’라는 말은 제사장을 임직할 때 사용하는 말이기 때문에 그가 혈통적으로 제사장의 후예가 아니었으며 그래도 레위 지파였기 때문에 임시 제사장으로 세운 것이다. 아벡 전투 이후로 실로 성소가 파괴되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예배나 제사는 중지되었고 따라서 그의 임무는 법궤를 안전하게 잘 보관하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서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했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아비나답은 언약궤를 보관만 했으며 이스라엘은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할 수 없었다, 당시는 이스라엘이 여전히 블레셋 족속들에게 정치적 압력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언약궤가 이스라엘 땅에 있었지만 블레셋의 영향으로 제사나 예배를 회복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사모하기 시작했는데 ‘사모하다’라는 말은 ‘크게 울다.’ ‘부르짖다’라는 의미로 과거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한탄하며 부르짖었다는 것이다. 백성들이 이렇게 신앙의 마음으로 돌아선 것은 그동안 그 이면에 있었던 사무엘의 분투적인 노력과 활동이 지대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사무엘은 일찍이 이스라엘의 선지자로서 명망이 높았다. 하나님께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고 실로 성소에서 그에게 나타나서 말씀을 나타내셨기 때문에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었다고 한 것이다. 성경 기록에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그동안 사무엘의 활동을 짐작할 수 있다.
첫째, 아벡 전투의 결과로 실로 성소 파괴 이후에 사무엘은 성막을 놉으로 옮겼을 것이다.
둘째, 엘리의 사망 이후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정치, 종교, 지도자로서 사회 질서를 바로잡고 제사 예식의 기강을 수립하는 일에 매진하였을 것이다.
셋째, 블레셋의 위협을 무릅쓰고 여러 지방을 순회하며 여호와 신앙을 고취시키고 죄의 회개를 부르짖게 하여 신앙 각성 운동을 전개하였을 것이다.
넷째, 종교 교육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제사장과 레위인을 율법으로 바로 세우고 선지 학교를 창설하여 인재들을 양육하였을 것이다.
20년이 지나자 드디어 사무엘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된다. 그 동안도 비록 공식적이며 전면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신앙 부흥 운동을 계속해 왔기 때문에 백성들의 마음은 여호와를 사모하기 시작했고 부르짖고 기도하며 회개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허락 속에 정치, 종교 지도자로서 본격적이고 공개적인 활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사무엘의 나이 12살 때 아벡 전투가 있었고 법궤를 빼앗긴 때로부터 약 20년이 지났기 때문에 사무엘의 나이는 32-33세쯤 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려면 먼저 이방 신들과 우상을 제거해야 하고, 그들의 마음을 온전히 여호와께로 향하여 여호와만 섬겨야 한다. 우상을 제거하고 이방신을 버리는 일을 최우선적으로 해야 하는데 ‘이방신’은 가나안 족속들이 섬기는 바알 신을 가리킨다. ‘바알’은 ‘주’라는 뜻인데 가나안 땅에서 바알 신은 원래 ‘엘’ 신의 아들로서 풍년을 가져다주는 신으로 섬겼다. ‘아스다롯’은 ‘하늘의 여신’으로 가나안 사람들에게 미와 유연성을 지닌 ‘성의 여신’이었다. 이 두 신을 동시에 섬겼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성적 음란이 뒤따르게 되어 있었고 이로 인해 백성을 타락시켰던 것이다. ‘우상을 너희 중에서 제하라’ 고 했는데 이 말은 히스기야 왕과 요시아 왕은 ‘찍어버리라.’ ‘불살라 재로 만들어 버리라.’고 하였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면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지실 것이라고 사역의 일성을 외쳤던 것이다. 이로 보건데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 족속에 의해 얼마나 오랫동안 심하게 유린되고 압제와 박해를 당했는지를 알 수 있다.
사무엘의 말을 듣고‘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겼다.’는 것은 사무엘이 선지자로서 백성들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는 증거이며, 그동안 힘써 노력해 온 사무엘의 신앙 각성 운동이 열매를 맺은 것이다. 사무엘의 회개 촉구에 순히 응한 것은 그들이 여호와만 섬길 때 진정한 자유와 평화가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무엘은 백성들의 호응을 확인한 후 온 이스라엘을 미스바에 모이도록 했다. 실로가 중앙 성소로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스바의 모임의 의의는 실로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스바’는 ‘파수대’라는 의미로 예루살렘 북쪽 13km 위치에 있는 베냐민 지파의 땅이며, 이스라엘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백성들이 모이기에 아주 용이한 곳이며, 이 모임의 목적은 두 가지이다.
첫째, 지도자가 중보 기도를 해 주기 위해 모인 성회였다.
둘째, 백성들은 금식하고 회개함으로써 동참한 성회였다.
미스바 총회는 타락하고 피폐해진 이스라엘 사회를 하나님의 왕국답게 혁신하는 대개혁의 모임이었으며, 파괴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을 새롭게 회복하는 대전환의 모임이었다. 백성들을 위한 중보 기도는 마땅히 대제사장이 할 일이었지만 당시는 대제사장이 없었고, 제사 의식마저 행하지 못했으며, 사무엘은 새로운 질서를 세우도록 특별히 소명 받은 인물이었기 때문에 대제사장의 일을 대신하여 수행했던 것이다.
백성들이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는 행위는 마치 물을 부어 쏟듯이 자신의 마음의 전부를 다 쏟아 붓고 회개한다는 것을 뜻하는 상징적인 행동이며 아울러 자신의 슬픔을 외적으로 모두 토로해 낸다는 것을 상징적인 표현이다. 이와는 반대로 물을 길어 올리는 것은 기쁨과 즐거움을 뜻하는 것이다.
*사12:3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금식은 여호와께 진정과 겸손으로 회개한다는 구체적인 표시로 채택되고 있다. 백성들은 종일 금식하고 나서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라고 회개했는데 여호와를 향한 백성들의 이와 같은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는 그들이 블레셋의 압제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종교 개혁을 주도하였고 백성들의 생활 전반을 교정시키며 감독하며 재판함으로 사사로서 역할도 감당하였다.
2. 사무엘을 통한 이스라엘의 승리 (7:7-12절)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한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공격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두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하는 말을 듣고 블레셋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왔다. 저들은 이스라엘이 사무엘의 영도 하에 미스바에서 거행한 의식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로 뭉쳐 성전을 준비하는 행위로 판단하여 세력이 더 확장되기 전에 선제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사실 오랫동안 블레셋의 정치적 영향 아래 있던 이스라엘이 이방 신상을 제거하고 민족 신앙을 고취시키는 거국적 집회를 개최한다는 것은 명백한 도전이었다. 곧 블레셋의 압제로부터 정치, 종교적 독립을 선언하는 배반 행위인 것이다.
블레셋 족속이 쳐들어왔다는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은 심히 두려워했는데 그동안 숱한 압제를 당해왔던 터라 저들의 공격 소식에 이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거기에다 이스라엘은 싸울 무기나 조직이나 군사훈련이나 전술이나 아무 준비도 없었던 것이다. 강력한 철병거로 무장한 적군 앞에 두려운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백성들이 의지할 곳은 사무엘 한 사람뿐이었으므로 저들은 사무엘에게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라.’고 부탁했다. ‘부르짖다.’라는 말 ‘자아크’는 극한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간절한 호소를 의미한다.
*렘11;11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라.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인즉..
따라서 사무엘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어려운 고비를 벗어날 때까지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행위를 멈추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백성들이 사무엘을 중보자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며, 하나님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의뢰하는 것이다.
사무엘이 젖 먹은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드렸는데 사무엘이 성숙하지 못한 어린양을 취한 것은 무엇보다도 이방 신상을 제하고 회개한 이스라엘이 이 순결한 어린 양처럼 새롭게 태어났음을 상징하고자 했을 것이다. 사무엘이 온전한 번제를 드렸다는 것은 의식 절차에 있어 완전을 의미하기보다는 헌신하는 마음, 그 예배의 온전성을 뜻한다. 즉 어린 양 한 마리 전체가 온전히 화제로 드려진 것이다. 사무엘이 여러 가지 제사 중에서 번제를 드린 것은 번제가 헌신의 제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무엘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번제를 통하여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을 다짐함으로써 자신들의 회개의 진실성을 강조하고, 자신들이 받아야 할 구원의 필요성을 간절히 호소하였다. 이렇게 진실하고 간절한 기도가 얼마나 큰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은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부르짖을 때에 여호와께서 응답하신 것이다. 의인의 기도는 간구하는 힘이 크다고 한 것이다.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왔는데 미스바 제단에서 어린 양은 계속 불타고 있었고, 사무엘은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부르짖고 있었다. 블레셋 군대는 의기양양하여 서서히 접근해 오고 있었다. 절대 절명의 위기의 순간이 닥쳐온 것이다.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헌신과 기도에 우레로서 응답하신 것이다. 마른하늘에 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지면 놀라지 않을 사람이 이 세상에는 한 사람도 없다. 때맞추어 터져 나온 우레로 말미암아 블레셋 족속들은 혼비백산하였고 이스라엘은 승리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사사기 16장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한 이후 처음으로 이스라엘은 대승을 거두었는데 항상 그렇듯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스라엘 군대는 벧갈 아래까지 블레셋을 쳤는데 ‘어린 양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지명으로 미스바에서 서쪽으로 13km 지점에 있다고 한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우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 ‘도움의 돌’이라고 불렀다. 돌을 세우는 일은 특별한 사건을 후대에까지 전하고 기념하기 위함이다. 이 돌은 벧갈 근방에 세웠을 것이다. ‘에벤에셀’의 뜻은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의미이지만 이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며, 계속적인 은혜를 간절히 요청하는 말인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 안에 계속해서 머물겠다는 전적인 헌신과 각오이다.
미스바 전투의 승리로 블레셋은 굴복했는데 이 굴복은 실상 완전한 항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후에도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경내에 자신들의 총독부 및 수비대를 두고 있을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삼상10:5 그 후에 네가 하나님의 산에 이르리니 그곳에는 블레셋 사람들의 영문이 있느니라. 네가 그리로 가서 그 성읍으로 들어갈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산당에서부터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앞세우고 예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만날 것이요.
따라서 이 말은 미스바 패전 이후에 블레셋이 파상적인 공격을 감행했으나 하나님이 막아 주시므로 블레셋은 더 이상 이스라엘을 이기지 못했고 전투력이 상실되어 그 세력이 약화되어 갔으며, 도리어 이스라엘은 이 기간 동안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많은 성읍을 도로 회복했던 것이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승리는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계속되었는데 사울이 왕이 된 후 5년까지의 기간이었다.
아벡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많은 성읍을 빼앗겼지만 이제 그 성읍들을 도로 찾았다. ‘에그론부터 가드까지’라는 말은 블레셋의 성읍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까지 동쪽 성읍을 회복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은 아모리 족속들과 앙숙지간의 관계에 있었는데 미스바 전투 이후에 그렇게 강력했던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에게 패하는 것을 보고 아모리 족속들이 그 위세에 눌려 평화를 도모하였던 것이다.
15절에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다.’고 함으로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에도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사사요, 선지자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 세워지기까지 새로운 신정 왕국 건설을 준비해야 하는 사무엘은 사사직을 계속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사무엘은 해마다 한 번씩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였고 가나안 땅의 중심부를 순회하며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것이다. 사무엘은 라마 자기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당시에는 실로 성소도 없었으므로 더 이상 성소에서 헌신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향 라마를 중심으로 순회하며 임무를 수행하였고 라마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던 것이다. 선지자요 사사인 사무엘이 제사장 역할도 감당하여 하나님께 대한 제사 의식을 회복하는 일은 실로 시급한 문제였으며 라마에 제단을 쌓을 때 그곳에 희생 제사를 드리러 오는 백성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라마는 임시 성소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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