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탈라 앞의 기도하는 순례자. by yong-han
라싸의 아침은 일주일간의
노정으로 몸이 무거웠다. 쇳덩어리 차도 여러 번 고장을 일으켰는데, 몸이 멀쩡하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단지 몸이 무거운 건 몸의 무게 때문이
아닌, 영혼을 잡아당기는 중력의 무게에 있는 것만 같다. 해발 3658미터. 지금 나에게 희박한 건 산소가 아닌, 영혼이었다. 영혼이 중력을
이기지 못해 나는 자꾸만 가라앉았다. 숙소를 나와 공복에 담배 한 대를 쭉 빨아들이자 머릿속이 금세 뿌얘졌다. 중띠엔으로부터 달려온 약
1800여 킬로미터의 길도 머릿속에서 흐릿해졌다. 흐릿한 채로 나는 길을 나선다. 하늘의 구름과 라싸의 실체도 아직은 불분명하다.

용왕담 공원 연못에 비친 포탈라 궁. by yong-han
이른
아침의 포탈라궁은 벌써 수많은 순례자들과 구경꾼들이 점령했다. “예약은 하셨나요? 그렇다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매표소 직원에 따르면, 최근
포탈라궁을 구경하려면 외국인일 경우 최소한 일주일 전에는 예매를 해야 표를 구할 수 있다고 한다. 더구나 입장객(현지인은 누구나 출입
가능하다)은 하루 1천명으로 제한을 두고 있다. 이는 포탈라의 건물과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하는데, 최근 칭장철로 개통 후 포탈라의 하루
입장 정원수는 슬그머니 1600명으로 늘어났다. 아무래도 티벳인이 아닌, 중국 관리들에게는 문화재보호보다 돈벌이가 우선인 것이다.

흙과 돌과 나무로만 지은 포탈라는 300년 티벳의 시간이 깃들어 있다. by
yong-han
설령
포탈라에 들어간다고 해도 관광객에게 공개하는 공간은 홍궁의 1, 3, 4층(2층에는 달라이 라마와 관련된 중요한 벽화가 있어 공개하지 않고
있다)으로 아주 제한적이고, 촬영은 전면 금지되어 있다. 홍궁 1층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국내에 최근 3.7톤의 황금영탑으로 소개된 달라이
라마 5세 영탑이다. 포탈라에 안치된 8개의 역대 달라이 라마 영탑 중 가장 크고 화려한 영탑으로 알려진 것이다. 이 영탑은 약 15미터 높이에
황금 외에도 진주와 비취 등 수만 개의 보석으로 장식돼 있는데, 티벳인들은 이것을 ‘세계 최고의 장식’으로 여기고 있다. 달라이 라마
5세(1617~1682)의 영탑을 이렇게 화려하게 치장한 데에는 그의 뛰어난 공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교일치의 통치이념을 수립하면서
티벳이라는 국가의 틀을 다지고, ‘하늘 위의 궁전’이라 할만한 지금의 거대한 포탈라궁을 지었다.

인체로 표현한 티벳 지도. 둥그렇게 심장을 표시한 부분이 조캉사원이다. by
yong-han
보타산(뿌따라까산,
관세음보살이 사는 산)에 돌과 나무로만 지었다는 포탈라는 가장 높은 건물이 13층이고, 높이가 118미터, 1천여 개의 방을 갖췄으며, 크게
달라이 라마가 거처하던 백궁과 역대 달라이 라마의 영탑을 모신 홍궁으로 나눠진다. 현재 이 곳에는 수십만 점의 불상과 유물이 아직 남아 있지만,
중국의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인해 대부분은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중국은 달라이 라마 14세가 인도로 망명한 1959년 이후
오랜 동안 포탈라를 폐쇄해 왔고, 박물관으로 개방(1980년)한 이후에도 달라이 라마가 거처하던 백궁만큼은 철저한 문단속을 하고 있다.
티벳인들에게 달라이 라마가 어떤 존재인가를 잘 아는 중국으로서는 그의 존재를 아예 ‘부재한’ 것으로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이 현재 중국에서
임명한 판첸라마를 티벳의 지도자로 앉혀, 포탈라가 아닌 시가체의 타시룬포에 둔 것도 그 때문이다.
바코르에서 본 조캉사원. by yong-han
포탈라
전경을 감상하기에는 건너편에 자리한 착포리 언덕이 제격이지만, 이른 아침엔 역광으로 포탈라를 바라보아야 하므로 사진을 찍기 위해선 오후에 오르는
것이 좋다. 포탈라 앞 광장을 끼고 자리한 용왕담 공원에서 바라보는 포탈라도 운치가 그만이다. 이 곳에서는 연못에 비친 포탈라궁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데,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면 슬픔에 잠긴 티벳과 포탈라가 보인다. 외국인의 눈에는 포탈라궁이야말로 티벳의 역사와 문화, 정치와 종교가
총결집된 ‘티벳의 모든 것’이라 여길지 모르겠지만, 티벳인들에게는 사실 포탈라보다 조캉사원이 ‘종교의 구심점’이자 ‘정신의 구심점’ 노릇을 하고
있다.

조캉사원 앞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순례자들. by yong-han

흔히
‘티벳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조캉사원은 티벳 불교의 총본산이자 최고의 성지로 티벳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조워 불상(석가모니)을 모신 곳이다.
조캉이란 이름도 ‘조워를 모신 라캉’이란 뜻에서 조캉이 되었다. 조캉은 당나라의 공주였던 문성공주와 인연이 깊은 절이다. 본래 조캉은 7세기
640여 년쯤 당시 토번 왕국(Thubet, 투베트는 몽골어로 ‘눈 위의 거주지’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의 송첸 감포 왕에 의해 건축되었는데,
당시 토번의 힘은 매우 강력해서 당나라와 네팔에서는 공주를 왕비로 바쳐야 했다. 이에 문성공주(당나라 현종의 딸)가 티벳으로 가지고 온 불상이
바로 석가모니 불상이었다. 이 불상은 처음에 라모체 사원에 모셨으나, 송첸 감포 왕이 죽은 뒤 불상의 보호를 위해 조캉으로 옮겨 지금에 이르고
있다.

조캉의 바코르를 따라 코라를 도는 순례자들. by yong-han
그러나
중국이 티벳을 점령하고 문화혁명 기간(1966년 무려 6천여 개의 티벳 사원이 파괴되었다)을 거치면서 조캉은 한때 폐허(중국은 티벳의 심장인
조캉을 한때 돼지우리로 사용하게 했다)가 되다시피했고, 1979년 이후 조금씩 재건돼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과거 ‘양(Ra)의
거주지’란 뜻의 라싸(Rasa)가 ‘신의 거주지’란 뜻의 라싸(Lhasa)가 된 것도 문성공주 시절 조캉의 건립과 무관하지 않다. 티벳에서
불교가 국교로 자리잡고 수많은 사원이 건설된 것이 바로 그 시절이다. 조캉은 이른 아침부터 붐빈다. 포탈라궁이 순례자만큼이나 많은 관광객들로
붐빈다면 순전히 이 곳은 티벳 각지에서 온 경건한 순례자들로 붐빈다. 순례자들은 코라(마니차를 들고 시계 방향으로 사원을 한 바퀴 도는 의식)를
돌거나 조캉의 문앞에서 염려스러울 정도로 오체투지를 한다. 이들의 오체투지는 거의 필사적이다. 필사적으로 붓다에게 마음을 바친다. 열린
문틈으로는 끊임없이 버터기름 냄새와 신성한 기운이 흘러나온다.

조캉사원 마당에 있는 버터 촛불(위)과 대법전으로 향하는 순례자들(아래). by
yong-han

티벳의
심장, 조캉사원
조캉사원
앞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뤄랑자두 스님(25세)을 만났다. 쓰촨에서 오체투지로 조캉까지 왔다는 스님은 그동안의 오체투지로도 부족했는지 계속해서
온몸을 바닥에 부비며 ‘옴마니반메훔’을 중얼거렸다.
뤄랑자두 스님.
-
언제 이 곳에 왔는가?
-
6개월 전인 올 2월에 도착했다.
-
얼마나 걸렸나?
-
2년 걸렸다. 쓰촨에서 빠이를 거쳐 링트리를 지나 라싸까지 오는데 총 3000km쯤 오체투지로 왔다.
-
왜 그런 고행을 하는가?
-
꼭 한번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체투지로 라싸에 오는 것은 일생의 불경을 다 읽는 것과 같으니까. 오체투지로 라싸에 오는 것은 한 단계 높은
승려가 된다는 의미다.
-
그럼 라싸는 처음인가?
-
아니다. 네 번째다. 하지만 오체투지로는 처음이다.
-
차 타고 왔을 때와 오체투지로 왔을 때의 심정은 어떻게 다른가?
-
조캉사원에 도착해 조워 석가모니불을 봤을 때, 가슴이 먹먹하고 미어졌다. 무어라 표현할 수가 없었다.
-
지금 마시는 차는 누가 준 것인가?
-
내가 입고 있는 이 옷도, 그리고 이 차도 순례자들이 가져다 준 것이다. 이렇게 오체투지로 온 스님들에게 조캉사원은 숙소를
제공한다.
-
그럼 이제 돌아가는가? 아니면 계속 여기 머무는가?
-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았다. 오체투지로 시가체까지 갔다가 카일라스까지 가볼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은 조캉에 머물며 쉬는
중이다.

노스님의 늙은 손이 들고 있는 얼룩이 진 불경. by yong-han
그에게는
조캉사원 앞에서 매일같이 오체투지를 하는 것이 쉬는 것이라고 한다. 잠시 몸을 추스르고 나면 다시 시가체로 떠날 것이란다.

조캉사원 1층 법전으로 가는 길(위). 조캉사원의 황금지붕(아래). by
yong-han

조캉의
순례자들은 문이 열리는 아침 8시 이전부터 정문 앞에 줄을 서는데, 문이 열리면 마치 100미터 달리기라도 하듯 사원으로 뛰어들어간다. 남보다
먼저 조워 석가모니불을 만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외국의 관광객들이 조캉에 들어가려면 무려 70원이나 하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70원을 내고도 아깝지 않은 곳이 조캉사원이다. 흔히 포탈라와 조캉을 다 둘러본 관광객들은 포탈라의 입장료는 아까워하지만, 조캉의
입장료는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만큼 티벳의 진면목을 조캉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캉에 들어가면 우선 내부 광장을 지나 대법당을
만나게 된다. 1층 대법당은 조워 석가모니를 모신 조캉의 핵심인데,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미륵불(Jampa), 왼쪽에 구루
링포체(Guru Rinpoche, 8세기 티벳에 불교를 전파한 인도 현자, 제2의 부처로 여김)를 모시고 있다. 또한 이들 불상을 모신 1층
대법당을 중심으로 18개의 법당이 호위하듯 에워싸고 있다.
조캉사원 바코르 골목에서 만난 탕카(탱화) 그리는 소년(위). 티벳에서는 아이들에게 엉덩이가 뚫린 바지를
입힌다(아래). by yong-han
2층에도
법전이 여러 개 있으며, 2층을 거쳐 3층으로 올라가면, 조캉사원의 화려한 황금지붕탑을 만나게 된다. 또한 이 곳은 사원의 옥상 전망대 노릇을
하고 있어 조캉 앞 바코르 광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정문 앞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순례자들의 모습도 위에서 곧바로 내려다보일 뿐만 아니라 멀리
포탈라궁은 물론 사방으로 펼쳐진 라싸 시내의 풍경까지 제대로 조망할 수 있다. 만약 오후에 조캉을 방문했다면 순례자 입장시간인 오후 6시까지
기다렸다가 그들을 따라 조워 석가모니불을 만나고 낭코르(사원 내부를 한 바퀴 도는 의식)까지 함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무너지는 라싸의 구시가 골목. 라싸에서도 티벳 전통구역은 4%밖에 남지 않았다. by
yong-han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티벳다운 풍경을 만나기 위해 라싸를 찾아온다. 그러나 라싸에 남은 극히 일부분의 전통 티벳구역(라싸 전체의 4%)과 조캉사원,
세라사원, 드레풍사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빠르게 중국다운 풍경으로 변모하고 있다. 칭장철로가 개통하기 이전의 모습도 그러한대, ‘트로이의
목마’로 불리는 중국의 열차가 매일같이 수많은 중국인과 외국인을 실어나르는 지금의 라싸가 어떻게 변모할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사실 라싸에
수많은 관광객이 들끓는다 해도 티벳인들의 삶은 별로 나아질 것이 없다. 어차피 라싸 관광으로 얻는 이득의 90% 이상은 중국인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다. 모든 관공서와 상권과 심지어 택시까지도 한족이 거의 다 차지하고 있다. 고작해야 티벳인들은 조캉사원 앞에서 구걸을 하거나 좌판을 벌여
물건을 팔거나 인력거로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것으로 근근히 삶을 유지해가고 있다. 이제는 그들에게 또다시 옛날과 같은 라싸봉기를 일으킬 여력조차
없어 보인다. 이미 라싸는 티벳인들보다 한족이 더 많이 사는 한족 도시가 다 되었다.
-- 글/사진: 이용한
첫댓글 박범신님의 티벳여행기는 참 많은 걸 배우고 느끼게했습니다. 달라이라마가 머무르던 거대한 사원보다 비구니스님이 계신 조용한 절에서 부처님을 보았다는<느꼇다> 소설가의 말씀이 시사하는 바가 많았습니다.
더 중국화가 되기 전에, 문명의 이기가 더 가닿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어떤 역사학도는 티벳을 위해서는 관광(?)을 안가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도 하는데.., 하지만,, 빨리 적금이라도 들어야 하겠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