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자(seer)가 리더(leader)
참고말씀: 삼하24:11; 대상25:5; 29:29; 대하9:29; 16:7; 19:2; 막10:51; 요5:19
읽을말씀: 삼상9:9; 마15:14
주제말씀: 삼상9:9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
* 선견자는 선지자의 옛말입니다!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삼상9:9)
본문에서 보듯이, 선견자(先見者)는 선지자(先知者)의 옛말입니다.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삼상9:9 하) 선지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성경에서 선견자(히, 로에)라는 표현이 본문에 처음으로 등장하지만, 결국 이 둘은 같은 부류의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합니다. “...헤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왕의 선견자라...”(대상25:5 중)
‘선견자’(先見者)는 꿈이나 이상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어 ‘호제’와 ‘로에’는 모두 ‘보는 자’(seer)라는 뜻으로써, 하나님의 계시를 ‘선포하는 기능’(speaking forth)보다는 계시를 ‘보는 기능’(seeing)이 더 강조된 말입니다.
성경에 선견자로 불렸던 사람들에게는 어떤 이들이 있습니까? 사무엘, 헤만, 잇도, 갓, 하나니, 예후 등입니다.
“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윗의 선견자 된 선지자 갓에게 임하여 이르시되.”(삼하24:11) / “다윗 왕의 행적은 처음부터 끝까지 선견자 사무엘의 글과 선지자 나단의 글과 선견자 갓의 글에 다 기록되고.”(대상29:29) / “이외에 솔로몬의 시종 행적은 선지자 나단의 글과 실로 사람 아히야의 예언과 선견자 잇도의 묵시 책 곧 잇도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 대하여 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대하9:29) / “그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와서 그에게 이르되...”(대하16:7 상) /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대하19:2 상)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선지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고 부른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선지자와 선견자는 같은 부류의 사람들로써 선포하는 기능과 보는 기능이 다소 강조된 용어임을 알고 있습니까?
* 보는 자(seer)가 리더(leader)입니다!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마15:14)
선견자, 그들은 결국 어떠한 삶을 살았습니까? 그 이름의 의미처럼 '보는 자'(seer)로서의 삶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보면서 살았단 말입니까? 아직 되지 않은 미래의 일들입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범위 내에서, 믿음으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의 일들 바라보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또한 비저너리(visionary)로 살았습니다. 즉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바라보면서, 그 비전을 부지런히 백성들에게 전하고, 그 비전이 이스라엘 가운데에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하며 살았습니다. 비유컨대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눈(eyes)과 같은 존재로 살았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보는 자’가 리더(leader)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나조차도 보지 못하는데 누구를 인도할 수 있단 말입니까? 오직 ‘보는 자’만이 ‘어둠 속에 있는 이들'을 제대로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마15:14 하)
재미있게도 영어의 ‘vision’ 역시 기본적으로 ‘보는 것’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비전을 가질 수 있습니까? 보는 사람입니다. 누가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습니까? 보는 사람(seer)입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길과 방향을 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그 공동체의 진정한 리더(leader)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우리의 가정에서, 학교와 직장에서, 교회공동체에서 ‘seer’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떤 작업이 전제되어야 합니까? 보는 일입니다. ‘보지 않고는’ 어떤 일도 해낼 수 없고, ‘보지 않고는‘ 어떤 꿈도 꿀 수 없으며, ‘보지 않고는’ 어떤 비전도 품을 수 없으며, ‘보지 못하고서는’ 다른 이들의 눈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요5:19)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리더가 되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먼저 ‘seer’가 되기를 원하고, 그러려면 먼저 하나님의 비전 보기를 사모하고 또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막1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