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룻번
김희숙
초록 조각달을 열 맞춰 세운다. 물이 끓고 있던 찜통에 채반을 얹는다. 갈 곳을 찾아 헤매던 수증기는 구멍을 빠져나와 돌덩이처럼 얼어 있는 송편을 감싼다. 뜨거운 열기가 몸피를 적시자 마른 가지에 새순 틔우듯 연둣빛으로 부풀어 오른다. 스테인리스 냄비 바닥이 얇아 센 불로 켜둔 채 눈길을 거두면 금세 물이 졸아든다. 지키고 서서 알밤 같은 송편 소까지 제대로 익혀야 맛이 든다. 찜기는 뻘겋게 녹아내릴 듯한 몸뚱이를 불에게 마저 내어준다.
어머니는 앉은 자세로 펼쳐 놓은 공책에 얼굴을 파묻고 고개를 들지 않는다. 얼마나 몰두해 있는지 스냅사진 한 장 세워 둔 것처럼 미동이 없다. 연필만 탁자에서 부지런히 밭갈이 중이다. 곁에는 절편처럼 얄팍한 공책 두 권을 두꺼운 연습장과 함께 전리품마냥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다른 쪽에는 아직 비닐포장도 뜯지 않은 노트 한 권이 수굿이 기다린다. 쪄낸 송편을 눈앞에 내려놓으니 그제야 몸을 일으켜 빙긋이 웃는다. 오랫동안 엎드려 있었던 탓인지 피가 쏠린 얼굴이 설핏 부은 듯하다.
기도문을 일만 번 적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유명하신 목사님이 쓰기를 권하셨단다. 네 시간 만에 썼다는 설교를 듣고 와서는 당신도 해야겠다면서 알파벳 공부 연습용으로 사 둔 공책을 호기롭게 펼쳤다. 그러나 어머니는 일백 번 쓰는 것만으로도 꼬박 하루를 매달렸다. 아무래도 목사님에게 속은 것 같다면서도 기도문 적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목사님의 말씀은 상징적이었나 보다.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적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성전에서 의식을 치르는 듯 엄숙하여 감히 시시콜콜한 잡담을 시작하지 못한다. 춤추는 글자 너머로 어릴 적에도 보았던 어머니의 경건한 표정이 지나간다.
어머니는 바라는 일이 있을 때마다 시루를 씻었다. 설명절과 대보름날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 있는 내 생일은 빠뜨리지 않았다. 밥벌이를 하지 않던 가장을 대신해 집안을 지탱해내면서 육남매 키우느라 번거로울 법도 했으련만 불과 보름 동안에 세 번의 떡시루를 거르지 않고 쪄냈다. 첫아이인 내가 태어난 지 육 개월 만에 기도가 막혀 저세상 문턱을 오간 이후로 어머니의 소원은 오매불망 자식들 건강뿐이었다.
찹쌀과 멥쌀을 반반씩 섞어 물에 불렸다. 반나절이 넘으면 고무대야에 담아 머리에 이고 시장통 방앗간에서 가루로 갈아왔다. 가마솥에 물을 넉넉히 채우고 불을 지펴 솥에 김이 오르면 빈 시루를 올렸다. 뽀얗게 말려 둔 광목천을 깔고 쌀가루와 고물을 누누이 앉힌 후 밀가루를 반죽하여 가마솥과 시루 사이에 벌어진 틈새를 기다랗게 둘러막았다. 한 땀 한 땀 바늘로 박음질하듯이 손끝으로 촘촘히 눌러주면 시루 아래로 어머니의 하얀 지문이 떡살같이 새겨졌다. 무늬조차 닳아 없어지고 나뭇가지처럼 여러 갈래로 갈라터진 손자국이었다. 철없던 자식들은 떡보다도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시룻번이 빨리 익기만 기다렸다.
어머니는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도 행여 부정이라도 탈까봐 바싹 붙어 앉아 불길을 살폈다. 미처 마르지 않은 생솔가지를 넣을 때는 부엌 안으로 매케한 연기가 가득 차 눈이 매웠으나 연신 눈물을 닦아내면서도 꿋꿋이 불을 지켰다. 당신인들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지 않았을까. 보살펴야 할 것이 있기에 이겨냈으리라. 무쇠 솥뚜껑 아래로 김물이 떨어져 내리고 천장까지 뿌연 김이 올라서면 기세 좋게 타고 있던 큰불가지는 긁어내고 잔불만 남겼다. 그 즈음이면 어머니의 얼굴에는 땀이 솟고 목덜미는 홍시보다 더 붉게 달아올랐다. 한참을 뜸 들인 후 가느다란 젓가락으로 시루떡 가운데를 깊숙이 찔러본다. 뽑아 올린 젓가락에 생쌀 부스러기가 묻어 있지 않으면 익었다는 표시였다. 지푸라기 한 움큼을 다듬어 윗목 바닥에 깔고 떡시루를 통째로 가져다 놓았다. 시루 안에 정안수 한 사발을 올리고 사기그릇도 얹어 초를 켰다. 여닫는 문 뒤를 따라 붙은 꽁무니바람에도 촛불은 일렁이지 않았다. 어머니의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린 자식들은 떡시루 근처로 모여들었다.
어머니는 종류가 다른 시루를 장독대에 뒤집어두었다. 옹기로 된 시루는 어른이 두 팔을 벌려야 안을 수 있었다. 두툼한 질감 덕분에 떡을 찔 때 외에도 콩나물을 길러냈다. 그러나 우리 집에선 아무 때나 질그릇을 사용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가족들의 일상을 무너뜨리는 지진을 일으켰다. 집안은 화산 폭발하듯 흔들렸고 밥상이며 그릇 등 깨지는 물건은 버텨내지 못했다. 언제 걷어차일지 모를 콩나물시루는 방안에 두지 못하고 곡식을 쟁여두는 고방에서 키워야했다. 어머니는 주로 깨지지 않는 양은시루를 사용했다. 정신없이 고함을 지르던 아버지도 윗목에 자리 잡은 촛불 켠 시루만은 손대지 못했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향하던 주먹질을 막아서 초주검이 되곤 했지만 기도 올린 떡시루를 보호할 때에도 결연한 태도를 보였다. 그때 시루는 곧 가정이었고 시루 속 잘 익은 떡은 지켜내야 할 자식이었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시룻번처럼 당신의 몸을 굳혀 풍파를 견뎌내었다.
어머니는 계절마다 연례행사처럼 떡시루를 익혔다. 잡귀를 없앤다며 쓰이는 팥시루떡은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막내아들의 액막이로 쪄냈다. 소화력이 약해 떡을 내치는 나에게는 가을무를 굵게 채 썰고 대추와 밤을 섞은 무시루떡을 권했다. 한여름에 태어난 둘째를 위해서 더위 타지마라며 수수팥떡을 만들었으나 정작 동생은 언니의 떡시루를 부러워했다. 늦봄과 가을에도 그 계절에 구하기 쉬운 재료를 넣어 딸들의 생일 시루를 앉혔다. 무릎 꿇고 두 손 모으던 당신의 시루 덕분에 모두들 제 앞가림 정도는 해나갈 수 있었다.
이제 자식들은 각자의 길 찾아 떠나고 팔순의 어머니는 더 이상 시루를 씻지 않는다. 어머니가 써둔 공책을 한 장씩 넘긴다. 비뚤배뚤. 바람 부는 날 집게 없이 널어놓은 빨래처럼 공책 줄에 낱말들이 자유롭게 걸렸다. 글씨는 으깬 콩가루마냥 고르지 않고 절구통에서 갓 빻은 팥알을 펼쳐 놓은 듯 굵기와 크기가 제각각이다. 틀린 글자가 하나라도 생기면 바로 지우개로 걷어낸다. 1000 90 1, 1000 90 2 …, 기도문 중간에 빨간색 볼펜으로 표기해 둔 숫자에 시선이 멈춘다. 일천구십 한 번째 썼다는 뜻은 이해했고 일천과 구십 하고 일은 셈을 따로 해야 한다.
“엄마, 무슨 소원 빌면서 쓰셔요?”
“날 위해 쓴다. 아픈 것 낫게 해달라고.”
어머니는 이제야 당신을 위한 시루를 앉히는 중이었다. 갑자기 써놓은 글자들이 켜켜이 뿌려놓은 쌀가루처럼 흩어진다. 사이사이에 붉은 팥고물이 박혀 있는 것 같다. 이번엔 내가 시룻번이 되어 어머니의 시루를 감싸 안으리라. 문구점으로 달려가 새 공책 몇 권을 한 켜 한 켜 담는다. 뜨거운 김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가슴에 꼭 닿도록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