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槪念美術 , conceptual art 미니멀 아트(minimal art) 이후에 대두한 현대미술의 경향.
사진 또는 도표로 나타내는 문서 등을 수단으로 종래의 예술에 대한 관념을 외면하고 완성된 작품 자체보다 아이디어나 과정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반(反)미술적 제작태도를 가리킨다. 이와 같은 현상은 동유럽권을 포함해서 북미·남미·오스트레일리아 및 일본에까지 확산되어 있다. 그 맥락은 예술의 ‘최소한’을 강조하는 미니멀 아트의 논리적 귀결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네오다다이즘이나 플럭스(flux) 파문을 일으켰던 1960년을 전후하여 여러 기존형식을 파괴하는 일련의 운동과 함께 거의 같은 시기에 발생하였다.
M.뒤샹
그는 1913년 미술가의 역할에 대하여 “물질을 교묘하게 치장하는 데 있지 않고 미의 고찰을 위한 선택에 있다”는 정의를 내렸다. 이것이야말로 개념미술의 근본적인 미학이다. 뒤샹은 《레디 메이드:Ready-made》와 그 이후의 작품들을 통하여 형식과 기교 및 회화의 낭만성을 버리고 평범한 대상물과 사상쪽으로 관심을 기울였다. 이러한 동향은 예술 일반의 전통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결과적으로 그는 아무런 미술작품도 제작하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그는 생활 그 자체가 미술이요, 조형활동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이미 미술가들이 창조자로서의 존재에서 밀려나와서 연출자나 제조자로 빠져들어갈 함정을 예견하였던 것이다. 뒤샹의 작품은 1960년대 말기에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 미국의 신진 개념미술작가들이 계속 추구한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었다. 개념미술의 또 다른 원류는 다다이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정신적인 갈등과 혼매(昏昧)에서 탄생한 다다이즘은 허무주의적인 내용과 반미술적인 형식을 띨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상황과 흡사한 1960년대의 정신적인 고갈에서 많은 젊은 미술가들은 반물질적인 태도로 작품을 만들었다. 즉, 물질적인 형태를 갖추지 않은 조형예술을 추구하였다. 산업적으로 조립된 회화와 조각은 미술에서 점차적으로 ‘손재주’가 제거당하는 구체적인 증거로 나타났다. 복잡한 형태가 허물어지는 당연한 귀결로서 나온 것이 바로 미니멀 아트였다. 그러다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미술작품 자체를 제거하려고 시도하는 새로운 바람이 곧 개념미술이다. 물질적 대상에서 심리적 이미지로 옮겨간 비약적인 변천이고, 그 내용은 보통 사진이나 문서, 상투적 문구 또는 일상적인 산문뿐만 아니라, 때때로 작가들의 공식적인 서명을 수단으로 하여 형성되었다. 어떤 비평가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러한 변천된 사항은 미술을 문학으로 대체하려는 것 같은 인상마저 풍기는 것이다.
*요셉 보이스
는 마르셀 뒤샹,앤디 워홀과 함께 20세기 현대미술에 가장 영향을미친 작가로 꼽힌다 차학경(1951~1982)한국계 미국 작가로서 이산(離散·Diaspora)과 언어의 문제를 중심으로 탈 장르 작업을 시도,포스트모던 미술에 확실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백남준에 이어 한국계 작가로서는 두 번째로 미국 휘트니 미술관에서 전시를 갖기도 한 차학경은 특히 비극적 생애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행위예술 [ 行爲藝術 , performance ]개념미술의 관념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육체 그 자체를 통하여 실행하는 예술행위.
실행 ·연기 ·연주 등의 어학사전적 의미에서 볼 수 있듯이 회화 ·조각 등이 전통적인 장르개념으로는 충족할 수 없는 표현욕구를 신체를 이용하여 시간의 흐름에 따라 표현하는 예술행위를 말한다. 신체를 이용한다는 측면에서 신체예술,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한다는 측면에서 과정예술로 불리기도 한다. 해프닝 ·이벤트 등으로 불렸으나 점차 퍼포먼스라는 용어로 통용되기에 이르렀다.
인간의 원초적인 표현욕망을 연극적으로 표출한다는 차원에서 역사적으로 그 기원을 원시종합예술(ballad dance)로까지 소급할 수 있으며, 20세기 예술에서 그 전조를 미래주의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에서 발견할 수 있으나 1950년대 말에 해프닝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시도되었다. 그러나 해프닝의 선구적 사례로서 1954년 J.케이지가 가졌던 《4분 33초》란 전위음악연주회를 들 수 있는데 이 연주회는 4분 33초 동안 아무 연주도 하지 않은 채 공연장에 모인 청중들의 소음을 채집하는 것으로 끝난 행사로서 그가 1962년에 나타나는 ‘플럭서스(Fuluxus)’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플럭서스란 흐름, 끊임없는 변화, 운동을 의미하는 중세라틴어로서 J.매키우나스에 의해 조직된 행위예술 단체인데 요셉 보이스, 백남준(白南準)과 함께 비디오 첼로를 협연했던 S.무어맨 등이 이 운동에 참가했었다.
해프닝은 연극의 형태로서 극장보다는 야외나 극장 이외의 장소에서 시연되며, 미리 기획된 연기나 즉흥적인 연기로 이루어지는데, 1959년에 시도된 A.카프로의 해프닝이 이러한 예술의 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Y.클라인은 1960년 《인체측정술》이란 이벤트를 연출한 바 있고 1970년대 이후 많은 작가들이 행위예술을 시도하여 이제 행위예술은 장르의 경계를 뛰어넘는 가장 보편적인 예술의 하나로 통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퍼 온 글]
미술관 입구의 분위기는 약간 썰렁했다 그러나 소요유는 오히려 이런때를 즐긴다,번집하지 않음으로 차분하게 볼 수 있으니~~
첫댓글 덕분에 잘 보았습니다. 참 멋진 곳이군요. 저도 봄이 오면 꼭 한번 가보고 싶군요. 고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