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타 5 - 니가타에서 이자카야를 거쳐 TV 에서 엔카를 들으며 원류를 생각하다!
니가타현 남쪽 끝에 자리한 조에쓰시 上越市(상월시) 에서 다카다성을 보고
옛 에치고국 가스가야마 산성 과 임천사 를 거쳐 모노가타리관
ものがたり 物語館 에서 에치고의 용 우에스기 겐신 의 일대기를 구경합니다.
16세기 일본의 센고쿠(戰國 전국) 시대에 두각을 나타낸 10명의 센고쿠 다이묘 중에
군략이 뛰어나 군신(軍神) 소리를 듣던 그도 에치고국(니가타) 에 총동원령을
내리고 출진 나흘전에 급작스레 병사한 탓에 오다 노부나가 를 저지하지 못했습니다.
여기 도로변에는 나무로된 함 이 있는데 누구든지 문을 열고 여행 안내 유인물 을
가져갈수 있도록 해 놓았으니..... 이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를 짐작케 합니다.
모노가타리관 입구 정류소에서 15시 50분 정각에 도착하는 7번 버스 를 타고는 가가 가도를
25분을 달려 16시 15분에 조에쓰시 上越市 나오에쓰역 直江津駅(직강진역) 에 도착합니다.
나오에쓰역에서 우리는 이제 동해에 자리한 니가타 로 가야하는데, 기차 시간표를
보니 16시 25분에 중간역인 나가오카 로 가는 기차가 있지만.... 우리는
에치고유자와역 코인로까 에 배낭을 넣었으니 다음 16시 57분 기차를 타야 하네요?
역 광장으로 나와 식당으로 들어가서 우동을 시켜 먹는데.... 우동은 일본과 당나라의 교류 과정에서
출현했으니, 일본은 기원전 3세기 한반도인들이 벼농사와 청동기 및 철기를 가지고 건너가
왜 소국들이 탄생했고 이후 야마토 왜국은은 백제에서 불교와 건축에 한자 등 문화를 수입했습니다.
이후 왜국 조정은 5호 16국 시대에 이르러서는 한반도가 아닌 중국 남조 여러나라에
사신을 파견하기 시작해 이후 수나라때에 견수사 를 보냈고, 그후 당나라때인 630년
부터 894년 까지 235년간 무려 190 차례에 걸쳐 외교 사절인 견당사 를 파견 했습니다.
우동 은 원래 견당사가 당나라에서 들여온 ‘훈둔(混沌·혼돈)’ 이라는 중국식 만둣국
이었다고 하니, 밀가루 경단에 콩이나 팥소를 넣어 끓인 것으로 끓어오르는 경단
이 빙글빙글 돌며 정신이 없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훈둔(混沌·혼돈)’ 이라고 합니다.
그후 세월이 흐르면서 음식이므로 삼수변(氵) 이 먹을식(飠) 변으로 바뀌면서 ‘곤통
(餛飩·혼돈)’ 이라고 부르다가.... 다시 시대가 지나면서 뜨겁게 먹는다는 뜻
으로 ‘온통(溫飩·온돈)’ 이 됐고, 다시 지금의 ‘우동(饂飩·온돈)’ 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기차를 타고 에치고유자와역 으로 가서는 코인로까에서 배낭 을 찾아..... 다시 신칸센 기차를
타고 니가타 新潟(신석) 로 가야 하는데, 시간이 있어 잠시 광장을 둘러보는 중에 마눌이
뛰어오며 기차가 도착했다고 다급하게 소리를 치네요? 아니 아직15분 이상이 남았는데....
에치고유자와를 출발한 열차가 도착한 것이니 출발은 15분 후에나 할 것인데 다급하네요?
예전에 프랑스 칸느 에서 저런 다급한 소리를 듣고는 아직 기차 시간이 남았을
텐데.... 하는 의아심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급한김에 마눌을 뒤따라 올라 탔습니다.
기차가 달리는데 보니 아니? 바다가 오른쪽에서 보여야 하는데 왼쪽이네? 그럼 니스 와는
정반대 방향인 마르세유 방향으로 가는 기차라..... 게다가 떼제베 열차 라
작은 역에는 서지도 않으니 한참동안 발을 동동 굴렀던 기억이 떠올라 쓴 웃음을 짓습니다.
또 이탈리아의 코모에서 밀라노행 우리 열차가 연착이 되는데 지겨울 무렵 방송 이 나오고
열차가 들어오기로 우리 일행들이 타려는걸 아무래도 미심쩍어 제지했더니...
어리숙한 동양인들이 방송을 이해하지 못했을거라 생각한 차장이 아니라고 말해주던군요?
하지만 일본 에서는 기차가 연착되는 법이 없으니 출발시간 만 정확히 알고있으면 기차를 잘못 탈
염려가 전혀 없으며...... 시내 버스 도 시간을 아주 정확히 지킵니다. 그런데 일본을 열댓번
여행했지만 이번에도 버스 기사에게 주의를 받는 것은 버스가 서기도 전에 일어나기 때문 입니다?
그런데 몇 년전에 신칸센 열차가 탈선 을 했으니.... 1~ 2분 연착 조차도 하지 않으려고
커브길에서도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고 무리하게 운행 을 하다가 탈선했던 것이라네요!
나오에쓰에서 에치고유자와로 가는 북월급행선 (호쿠호쿠선) 보통 열차는 私鐵(사철) 이지
싶은데, JR 패스 소지자에게 돈을 받지 않는게 의아하네요... 하교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한가지 의아한 점은 도시에 사는 학생들이 대거 시골에 소재한 학교로 통학 한다는?
일본 여행중 여러번 도시에서 시골학교로 통학하는 모습을 보는데 연유를 모르겠네요?
예전에 일본인들은 지하철이나 기차에서 책 을 읽는 사람들이 엄청 많아
독서량이 우리나라에 비해 5배 에 달했는데, 지금은 60대 이상이나 간혹 책을 읽을뿐....
그 아래 세대에서는 노트북 하는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너도나도 스마트폰 이라, 이제는 독서량
차이가 엄청 줄었다고 여겨지는데..... 우리 기차는 십일정과 육일정을 지나서는 남하합니다.
18시 15분에 에치고유자와역 えちこゆざわ 越後湯沢駅 에 도착했는데 백여개 가게와
청주를 시음할수 있는 폰슈칸 까지도 15분 전인 오후 6시에 모두 문을 닫아버렸네요?
역 구내의 코인로까 에서 배낭을 찾아서는 다시 조에쓰 신칸센 上越 新幹線 とき
기차를 타고는 2층 자유석인 지유세키 차량 으로 들어가서 빈자리에 앉습니다.
기차는 북쪽으로 달려서 니가타역 新潟駅(신석역) 에 내려 반다이 출구 (万代口) 로 나오니...
코프시티 가렛소 빌딩에 도요코인 니가타 에키마에 東橫 イン 新潟駅前 호텔이 보입니다.
건물 4층으로 올라가니 호텔 리셉션이 있기로 체크인을 하는데 음식점과 가게 할인권 을
몇장 주니.... 우리 호텔과 같은 층에 있는 체인 이자카야 시로키야 白木屋(백목옥) 가
할인권에 해당되느냐 물으니 거긴 장사가 잘되는지 안된다고 하기에 3층으로 내려갑니다.
일본해장 이란 해산물 이자카야 로 들어가 새우며 스파게티에 프렌치 프라이 그리고 맥주
를 시켜서 잘 먹었는데 3천엔은 나올줄 알았더니... 맥주 2잔 천 2백엔은 할인해 주네요?
그러고는 4층 호텔로 돌아와 다시 호텔 방으로 올라가서는 텔레비전 을 트니....
한국 연속극 이 나오길래 반가와서 보는데, 이윽고 끝나고는 이어
일본 엔카 가 나오는데 우리 트로트 와 같은 음악이라 익숙하니 편하게 듣습니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나 김연자 를 생각하면 알수 있듯이 한국의
트로트 (뽕짝) 와 일본의 엔카 演歌(연가) 는 한 뿌리 에서 나왔습니다.
때문에 한국의 김연자와 조용필 등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노래를 불렀을때 일본인들은
듣던 가락인지라 마치 자기 가슴속에 담긴 곡조인양 친숙하게 받아들였던 것이지요?
그러니까 엔카(트로트) 는 일제 시대에 서울의 선린상고 를 다닌 일본인
고가 마사오 (古賀政男) 가 창안한 음악이 한일 양국 에 퍼진 것입니다!
고가 마사오 는 1904년 일본 후쿠오카 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여의고 생계가
어려워지자 1912년에 형이 있는 조선 으로 온 집안이 건너오게 되었습니다.
1922년에 선린상고 를 졸업한 뒤 10년 동안의 조선 생활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서는
메이지대학 상과 에 진학했으니.... 직접 만돌린 클럽 을 결성해 작곡 을 시작합니다.
1930년 데뷔후 콜럼비아 레코드 에서 작곡가 로 활동하며 사나이 설움 (波止場がらす),
꽃서울 (東京ラプソディー) 및 순 정의 달밤(東京娘) 을 발표 했는데....
또 이난영 이 일본에서 오카 란코(岡蘭子) 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때 곡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는 한국 대중음악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인물이니 감각적인 현악기 선율을 특징으로
하는 "고가 멜로디" 가 한국 대중음악 양식에 끼친 영향은 지대한데.....
오케 레코드의 작곡가 박시춘 (朴是春)은 고가 멜로디의 충실한 계승자 라 할수 있습니다.
만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모교 선린상고에 기증한 시계탑 이 남아 있는데, 케이블 TV
(주)아이넷 방송 은 2013년 1월 3일 “한국인의 소울, 트로트” 에서
엔카의 창시자 고가 마사오 (古賀政男) 는 한국인 이라고 방송해 세상을 놀라게 합니다.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일본 엔카 가요협회의 타카키 이치로우 (高樹一郎)회장의 인터뷰를
통해 밝혀진 내용인데.... "엔카의 멜로디는 한국으로 부터 온 것으로 일본의 엔카 와
한국 트로트는 매우 닮았다” 며 엔카의 시조 고가마사오 선생은 전후 일본인들이 존경한다.
선생은 패전후 절망하고 있던 일본인들에게 노래로 꿈과 희망 을 안겨주었다고 말했는데
이에 한국의 대중가요 작사가 조동산 (차표 한 장, 미스고) 씨는
“만약 사실이라면 그간 트로트와 엔카 사이에서 벌어졌던 모든 논쟁 은 무색해질 것” 이다!
“그동안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해방되지 못했던 우리의 음악 트로트(뽕짝) 를 이제는
제자리에 갖다 놓아야 할 것” 이라고 말했는데..... 한국에서는 일제시대인
1932년 왕평 작사, 전수린 작곡 “황성옛터” 라는 최초의 그 유명한 트로트곡 이 나옵니다!
황성옛터의 황성은 개성의 고려궁궐 을 뜻하는 것이라고 하니 작사자 왕평씨는 고려왕가
의 후예가 아닌가 모르겠는데.... 이무렵 고가 마사오 (古賀政男) 라는 사람이 일본
최초의 정립된 엔카 를 만드니 그는 일본에서 “엔카의 시조, 엔카의 아버지” 로 불립니다.
그런데 한국인 전수린 작곡의 “황성옛터” 라는 노래가 나올 때 고가 마사오가 한국에
있었다고 알려져있고 그후 일본 엔카를 만들었다는 설도 있으니.... 그러니까
고가 마사오가 엔카(트로트) 를 만든게 1930년이냐, 아님 1932년 황성옛터 이후냐?
발표시기 문제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논쟁 이 있었던 것인데 고가 마사오가 한국인 이라면
전수린이 “황성옛터” 를 작곡하는데 어떤 도움 을 주었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라?
다른 얘기로는 전수린은 “황성옛터” 를 작곡하기 이전에도 트로트곡 들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무렵 고가 마사오는 전수린의 집 과 가까이 살았으며 전수린의 곡들을
들은 그가 영향 을 많이 받아서 혹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일본 최초의 엔카” 를 만들게 되 었다고 해야 할른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트로트(뽕짝)” 라는 우리 음악은 한국 전통음악 과 서양음악 에
일부 일본 음악 도 융합되어서..... 만들어졌다고 해야 할러나요?
일본 전통 음악 이라는게 기원전 3세기 고대로 부터 한국 에서 건너간 사람들의
야요이 문화 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니..... 이래 저래 "트로트는
한국의 노래" 라고 말할수 있겠습니다! 나의홈페이지 : cafe.daum.net/baik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