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승리를 믿지 않는다'는 미 시사주간지 타임의 표지 기사가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거센 후폭풍을 일으켰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측근(혹은 대통령실 직원)을 인용한 것으로 활자화된, 예상을 뛰어넘는 '폭탄 발언'들은 대통령실의 반발을 불렀고, 언론과 오피니어 리더들의 주목을 끌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31일 "많은 사람들이 '타임지'에서 매우 분명하게 강조된 중요한 사실, 즉 (군사 작전의) 향후 진로에 대한 젤렌스키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 간의 이견에 주목했다"며 "(이 문제는) 오늘도 계속 논란의 대상이 됐다"고 전했다. 또 "더욱 중요한 것은 우크라이나 군부도 젤렌스키 대통령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기사의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이날 '타임지' 기사의 전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누구도 우리의 승리를 믿지 않는다'는 타임지 표지/캡처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대통령과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군 총참모장(합참의장 격)의 군부 간에 군사 작전에 관한 의견 충돌 소문은 이미 돌았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반복적으로 반박됐다. 영국의 유력지 '더 타임즈'는 얼마 전 "계속 공격을 주장하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잘루즈니 총참모장이 방어에 집중하는 신중한 전술로 전환하고, 내년을 대비할 것을 제안했다"면서 (두 사람의) 의견 대립 문제를 거론한 바 있다.
그럼에도 '타임지'가 쓴 우크라이나 군부의 리더십과 정치권 리더십(대통령) 간의 의견 충돌은 전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스트라나.ua는 평가했다. 또 "그같은 이견으로 우크라이나의 최고위급 지휘관 '톱 3' (잘루즈니 총참모장, 시르스키 지상군 사령관, 타르나브스키 '타브리아' 작전부대장 겸 자포로제(자포리자) 전선 담당 사령관)중 한 사람이라도 해임되는 일이 발생하면, 군 내부와 사회적 분위기 등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이 매체는 짚었다.
잘루즈니 총참모장과 젤렌스키 대통령/사진출처:스트라나.ua
스트라나.ua는 이날 또다른 기사에서 '타임지' 기사가 갖는 정치 사회적 의미를 이렇게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군부과 젤렌스키 대통령 일부 측근은 적군(러시아군) 전력을 약화시키고, 향후 반격시 병력 확보를 위해 공격에서 전략적 방어로 '작전 변경'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영향력 있는 서방 언론(타임지)의 기사를 통해 대통령뿐 만아니라 서방의 주요 동맹국들에게 대통령의 태도를 바꾸도록 영향력을 미친다", "우크라이나 내부에 젤렌스키 대통령에 불만이 있고, 이에 대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신호를 서방 측에 보내려는 시도다".
이 매체는 "우크라이나의 일부 군사·정치 지도자들이 전장에서의 군사적 승리가 불가능하다고 믿고, 현재의 전선을 따라 전쟁을 동결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면서 "그러나 아직 그러한 결론을 내릴 충분한 근거는 없으며, 향후 군사 전략은 전적으로 미국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한국형 휴전 시나리오'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면, 이후 논의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최근 젤렌스키 대통령을 향해 각을 세워온 대통령실 고문 출신의 오피니언 리더 알렉세이 아레스토비치는 타임지 기사를 인용하며 또다시 대통령을 직격했다.
그는 소셜 미디어(SNS) 포스팅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다룬 지난해 5월의 타임지 표지와 이번 호 표지를 나란히 올린 뒤 "등을 돌린 대통령의 작은 사진은 부정적인 인상을 안겨준다"며 "이런 변화에 대한 책임을 젤렌스키 대통령 스스로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작년 5월 타임지 표지를 장식한 젤렌스키 대통령(왼쪽)과 이번 호 표지/캡처
그는 "처음에는 독재자처럼 정상적인 발전 경로가 아니라, 침체를 선택하더니, 엄청난 부패를 조장하고, 그 다음엔 자신과 다른 의견에는 증오심을 드러낸다"며 "(전쟁이 발발한 지) 1년 반이 지나 가을이 찾아왔는데, 서방과의 관계에도 마찬가지이고, 현실은 아무리 부정해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타임지 기사는 불쾌하지만, 어쩐지 친숙한 이미지를 잘 그렸다"며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신경질적으로 빠른 승리만을 외치는 버림받은 독재자가 벙커 뒷골목을 배회하는 이미지"라고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쏘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당국은 '타임지' 기사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박에 나섰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알렉세이 다닐로프 우크라이나 국가안보회의 서기(사무총장, 장관급)은 '타임지' 기사에 단 댓글을 통해 "정보기관이 대통령 측근 중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믿지 않는 사람이 누구인지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익명의 소식통은 늘 많은 의문을 남긴다"며 "우리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측근이 있다면, "당신은 우리 대통령과 함께 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무엇보다도 익명 뒤에 숨은 은밀한 행위는 국가에 막대한 해를 끼친다"고 덧붙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잘루즈니 총참모장에게 생일 선물(권총)을 전달한 뒤 어깨 동무를 한 모습. 왼쪽 웃으면서 박수를 치는 이가 다닐로프 국가안보회의 서기다/캡처
다닐로프 서기는 "각 지역 군사위원장(우리의 병무청장격)들의 해임으로 동원이 사실상 중단됐다"는 기사 내용도 부인했다. "우크라이나군 병력 손실 10만명 정보도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미하일 포돌랴크 대통령실 고문도 이날 '라디오 리버티'(Radio Liberty)와의 인터뷰에서 "타임지 기사는 쓴 기자의 주관적인 관점에 불과하다"며 "익명의 출처를 용인하지 못하겠다"고 반발했다. 그는 "대통령실을 대신해 분명히 말씀드려야 할 것은, 여기 저기의 익명 소식통들이 특정 (고급) 정보에 접근하지도 못하면서, 그 근처에서 몸집(영향력)을 늘리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은 보다 효과적인 의사소통, 보다 효율적인 직무 수행, 우리의 전략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 지에 대한 보다 명확한 파악를 원한다"며 "적어도 70~80%는 실현되고, 그에 따른 심리적 피로도도 있을 수 있지만,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