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 안토니오 파사니
그는 아뿔리아의 루체라에서 태어나
도나도 안토니오 요한 니꼴라오라는 이름으로 영세받았으나,
10살 되던 해에 부친이 사망하여 계부 밑에서 자랐다.
그러나 계부가 좋은 사람이어서 그를 꼰벤뚜알 수도원 학교에서 교육받게 하였으므로 수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고,(1695년 입회) 1705년에는 모든 학업을 마치고 아씨시에서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1707년에는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뛰어난 교수이자 설교가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천주의 모친에 대하여 특별한 신심을 가졌고, 무염시태 축일(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마리아 대축일) 전에 꼭 9일 기도를 바쳤으므로, 지금도 루체라에서 이런 관습이 전수되고 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성 프란치스코 안토니오는 1681년 8월 6일
남부 이탈리아 루세라에서 태어나 꼰벤뚜알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였다.
사제품을 받고 철학 교수로 봉직했으며 열심한 설교가였다.
관구 봉사자로 재임하면서 외적으로 수도원 성당을 보수하는 한편 내적으로는 엄격한 가난에 관심을 기울여 관구를 쇄신하였다. 엄격한 개혁가이면서도 사랑 깊은 봉사자였다.
1742년 11월 29일 고향에서 선종하였다.
(꼰벤뚜알프란치스코수도회홈에서 www.ofmconv.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