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산이 품은 오래된 절, 대전사
절에 들어가기 전부터 산이 먼저 사람을 맞는다. 청송 주왕산 대전사로 향하는 길, 고개를 들자 거대한 바위 봉우리들이 하늘을 떠받치듯 솟아 있다. 짙은 숲 위로 불쑥 솟은 암봉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웅장하다. 그 아래 기와지붕 몇 채가 낮게 몸을 낮추고 있다. 산은 높고 절은 낮다. 그 대비만으로도 대전사가 어떤 마음으로 오랜 세월 이 자리를 지켜왔는지 짐작하게 한다.
주왕산은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산이다. 수직으로 솟은 암벽과 깊은 계곡, 그 사이를 메운 숲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런데 산의 품에 들어선 대전사는 오히려 조용하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향할수록 바깥에서 가져온 생각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듯하다. 사람의 말보다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먼저 들리고, 걸음도 저절로 느려진다.
대전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천년고찰이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여러 차례 화재와 중창을 겪었지만 주왕산을 배경으로 오늘까지 법등을 이어오고 있다. 절의 역사를 알고 다시 바라보니 오래된 기와 한 장과 돌계단 하나도 예사롭지 않다. 천 년이라는 시간은 숫자로 읽으면 멀지만, 오래된 절 마당에 서면 갑자기 가까워진다.
경내에서 가장 눈길을 붙잡는 것은 역시 절 뒤편의 산세다. 기와지붕 위로 우뚝 솟은 기암이 한 폭의 산수화를 펼쳐 놓는다. 자연이 만든 거대한 병풍 앞에 인간이 지은 건축물이 단정히 앉아 있다. 어느 쪽도 다른 쪽을 밀어내지 않는다. 산이 절을 품고 절이 산의 풍경을 완성한다.
산사를 볼 때마다 한옥의 지붕선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위로 치켜오른 처마 끝에는 하늘을 향한 가벼움이 있고, 가지런히 놓인 기와에는 땅을 향한 묵직함이 있다. 대전사의 지붕도 그렇다. 뒤편 암봉의 거친 수직선과 기와의 부드러운 곡선이 만나면서 서로 다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다. 자연을 정복하기보다 그 안에 자리를 빌려 앉은 듯한 모습이다.
절 주변에는 초록이 깊다. 바위틈에도 나무가 자라고 절벽 위에도 소나무가 뿌리를 내렸다. 흙 한 줌 있을까 싶은 곳에서 나무가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면 생명이란 좋은 자리만 골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주어진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견디는 동안 어느새 그것도 하나의 풍경이 된다.
대전사를 지나 주왕산 안쪽으로 조금 더 눈길을 보내면 산은 또 다른 얼굴을 보여 준다. 거대한 암벽 사이로 계곡이 깊숙이 이어지고 물은 바위를 돌아 아래로 흐른다. 바위는 수없이 많은 계절을 그 자리에서 맞았을 것이다. 봄에는 연둣빛 잎을, 여름에는 짙은 녹음을, 가을에는 붉은 단풍을, 겨울에는 눈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사람이 한 생애라 부르는 시간도 저 바위 앞에서는 한 계절처럼 짧아 보인다.
그래서인지 산사에서는 마음속 시계가 느려진다.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빨리 이루려고 한다. 조금 늦으면 불안해하고, 남보다 뒤처지면 실패한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대전사의 오래된 기와와 주왕산의 바위는 서두르지 않는다. 나무도 오늘 하루에 숲이 되려고 애쓰지 않는다. 하루만큼 자라고 한 계절만큼 견디며 자신의 시간을 완성한다.
경내 한쪽에서 돌탑을 만난다. 크고 작은 돌을 쌓아 올린 모습에는 누군가의 소망이 스며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돌 하나를 얹으며 마음 하나를 내려놓았다. 가족의 안녕을 빌었을 것이고, 이루지 못한 소원을 맡겼을 것이며, 말로 다 하지 못한 슬픔을 돌 한 개에 담아 두고 갔을지도 모른다. 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사람의 마음을 오래 받아 주었다.
나는 한동안 그 앞에 선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오래된 것들은 이상하게 말을 아끼게 한다. 설명하려 할수록 오히려 본래의 깊이에서 멀어지는 느낌 때문이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한 순간이 있다. 대전사에서는 그런 순간을 여러 번 만난다.
꽃이 핀 길 너머로 작은 전각이 보이고, 그 뒤로 기암이 솟아 있다. 사람이 만든 문 하나를 통과하면 자연의 거대한 문이 다시 나타나는 것 같다. 이곳에서는 절과 산의 경계를 나누기가 어렵다. 전각 안에서도 산이 보이고, 마당에서도 산이 따라온다. 대전사는 주왕산 안에 있는 절이 아니라 어느 순간 주왕산의 일부가 되어 버린 절처럼 느껴진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름난 명소를 찾아갔다가 정작 오래 기억하는 것은 뜻밖의 작은 장면일 때가 많다. 대전사에서도 그렇다. 웅장한 기암만큼이나 처마 밑의 어둑한 그늘이 좋고, 돌계단 옆 이름 모를 풀이 마음에 남는다. 바람에 나뭇잎이 뒤집히는 순간, 기와 위를 스쳐 지나가는 구름 한 조각도 여행의 한 페이지가 된다.
절 마당에서 다시 산을 올려다본다. 조금 전까지 위압적으로 보였던 바위가 이제는 든든한 울타리처럼 느껴진다. 풍경은 그대로인데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졌다. 여행이 주는 변화는 어쩌면 이처럼 작은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을 바꾸어 놓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의 높이를 조금 바꾸어 놓는 것.
대전사를 나서는 길에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본다. 기와지붕 너머 기암이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천 년 전 이곳을 찾았던 사람도 저 바위를 올려다보았을 것이고, 백 년 뒤 누군가도 같은 산을 바라볼 것이다. 사람은 바뀌어도 산은 오래 남고, 그 산 아래 절은 또 사람을 맞을 것이다.
주왕산은 높음으로 자신을 보여 주고 대전사는 낮음으로 자신을 지킨다. 하나는 하늘을 향해 솟았고 하나는 땅 가까이 몸을 낮추었다. 그런데 그 둘이 함께 있을 때 풍경은 비로소 온전해진다.
산문을 나서며 다시 한번 뒤돌아본다. 거대한 바위와 작은 기와지붕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제야 알 것 같다. 높은 것만으로 세상이 아름다운 것도, 오래된 것만으로 귀한 것도 아니다. 서로 다른 것들이 제 자리를 지키며 어울릴 때 하나의 풍경이 완성된다.
청송 대전사에서 나는 절 하나를 보고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산처럼 버티되 절처럼 낮아질 줄 아는 삶, 오래 살아갈수록 더욱 깊어져야 할 마음의 자세 하나를 배워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