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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힌 하루 / 이성미
하루가 접혀 있었다. 금요일에서 일요일로 걸었던 것이다. 토요일은 접힌 종이 속에 있었다.
땅 밑에 녹색 어둠이. 어둡고 기름진 흙에서 검은 식물들이 자랐다. 종이 사이에. 하루가 있었다.
금요일 아침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나는 금요일 아침을 책상 위에 둔 채 책상 앞을 떠났다. 걸었다. 딴생각을 했을 것이고, 딴 곳을 걸었을 것이다.
일요일 오후의 희미한 공기들이 나를 둘러쌌다. 나무에는 일요일 오후의 잎들이. 잎들에는 일요일 오후의 햇빛이. 일요일 오후의 바람이 잎들을 흔들었다. 일요일의 뿌연 빛 속에서 내일의 조그만 전구들이 흔들리는 걸 보면서.
나는 일요일 오후를 통과하고. 일요일 오후의 속도로.
앞으로 걸었다. 딱딱해지는 저녁 공기. 저곳은 월요일의 검은 우산을 파는 곳, 도착하면 우산을 검게 펴야지.
밤이 되었고. 나는 책상 앞으로 돌아왔다. 월요일이 오기 5분 전이었을 것이다. 책상 위에
금요일 밤이 놓여 있는 걸 보았다. 접힌 종이가 펴지면서.
네번째 꽃잎과 여섯번째 꽃잎 사이에 다섯번 째 꽃잎이.
숨었다가 나타나면서.
일요일 오후의 증거들이 풍선처럼 터져버렸다. 토요일 0시를 알리는 괘종시계가 울렸다.
토요일이 빠닥빠닥한 파란 깔개를 폈고. 그 위에 토요일의 증거들을 소풍 도시락처럼 하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시집 『다른시간 다른배열』 문학과지성사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