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반존자란 누구인가 ?

경북 군위군에 있는 비로석불
나반존자(那般尊者)
독성각 안을 보면 작은 키에 아기자기한 한 분이 여러 개의 방석을 포개 놓고 닫집 아래에
앉아 계신다.닫집이란 임금님의 자리나 부처님의 자리 위에 장식으로 만들었다는 집의 모
형인데, 이분도 닫집에 있는 것을 보면 상당히 중요한 분으로 여겨진다.
나반존자는 일반적으로 삼성각(三聖閣)이나 독성각(獨聖閣)에 모시는데, 논산 개태사에서
는 ‘삼일지상정천궁’이라고 명명하여 다른 사찰과는 달리 팔각정에 모시고 있다. 또한 일반
사찰에서는 탱화를 모시는 데 반하여, 석조로 조각된 나반존자 상을 모시는 점이 특이하다.
계룡산에서 가져온 돌로 나반존자 상을 조성하여 모셨다고 한다.일반사찰에서는 나반존자
를 삼성각(三聖閣)이나 독성각(獨聖閣)에 모시고 있으며, 삼성각에 탱화를 조성하여 모시
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남 화순군 운주사에 있는 마애불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들기 전에 큰 제자인 마하가섭ㆍ군도발탄ㆍ빈두로ㆍ라후라
등 네 명의 존자들에게 미륵불이 와서 세상을 구제할 때 까지 열반에 들지 말고 지상에 남아
서 신통력으로 중생을 제도하도록 부촉하셨다.
그러면 나반존자는 누구인가?
부처님의 16나한 중 첫 번째 제자인 「빈두로」 존자가 나반존자라고 한다.
* 중국에서 넘어온 18나한 說에서는 18번째 나한을 나반존자라고도 한다.
또 중국의 천태산에서 깨달음을 얻었으나, 귀국하지 않고 중국에서 열반했다고 하는
고구려의 파약(破若) 스님이 나반존자라는 이야기도 있다.
* 파약 스님 : 천태지자(天台智者)의 법제자. 596년(고구려 영양왕 7) 중국에 건너가, 불롱(佛隴)에서 지
자의 교관(敎觀)을 배워 깊은 이치를 터득했다.
지자가 “천태산의 최고봉인 정화봉은 내가 옛날 두타행(頭陀行)을 하던 곳이니, 그곳에
가서 도를 닦으면 큰 이익을 얻으리라”라고 일러주자 598년 그 산에 올라가 16년 동안
좌선하였다.613년 어느 날 홀연히 불롱 산사에 올 때 백의(白衣) 3인이 의발을 지고 따
라 왔다는데 잠깐 있다가 보이지 않았고, 다음에 국청사에 가서 며칠 동안 있다가 나이
52세로 입적했다.파약 스님은 천태교관을 처음으로 받은 우리나라의 스님이다.

지리산 벽송사 돌계단 조각
그러나 나한이라면 여러 나한들과 함께 나한전에 모셔져야 하는데, 빈두로존자나 파약스님
이라면 그분만 유독 우리나라에서 따로 모셔질 만큼 독특한 성인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대
부분 사찰에서는 독성각이나 삼성각에 나반존자를 별도로 모신다. 그렇다면 이분은 불교의
빈두로존자는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분의 정체는 무엇일까? 도대체 불교와는 어울리
지 않게 산신과 칠성신과 왜 함께 계실까? 우리나라 고대사에서 환인이 인간을 창조하시니
남자이름은 나반이요, 여자이름은 아만이다. 나반은 다름 아닌 인류의 시조로서 아사달에서
아만과 만나 결혼하여 우리민족을 만든 분이다. 서양에서 말하는 아담과 이브가 만들어 진
것과 같다.
나반과 아만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지 오래됐으나, 아버지ㆍ어머니라는 우리말로 기억
되고 있다.나반은 아바이, 즉 아버지라는 함경도 사투리를 한자로 음역한 낱말이다. 아만 역시
함경도의 방언 오마니라는 소리를 한자로 바꾼 것이라고 한다. 결국 우리 민족이 불교전래 이
전부터 가지고 있던 전통 신령인 것이다. 불교신앙과 융합되는 과정에서 그 본연의 모습을 잃
고 불교 용어화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박성수 著 ‘단군문화기행’ 중에서)
결국 불교는 우리의 전통신앙과 치열한 다툼 끝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남아 있던 전통신앙을
불교식으로 변형을 하여 오늘 날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우리의 고유 신앙을 차용한 흔적
으로 4월 초파일은 해모수가 단군조선의 5가 원로들을 끊임없이 회유하고 설득하여 마침내
화백회의를 통해 단군으로 등극한 날로서, 해모수 단군 등극 축제일을 고구려 소수림왕 때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 석가탄신일로 변경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대웅전이란 배달국의 환웅을 모셨던 ‘환웅전’의 변형으로 전각의 이름만 남기고, 석가세존이
대웅의 자리에 앉은 것으로 우리나라만 대웅전이라 불리 우고 있다.삼성각 또는 삼신각도 역
시 다른 나라 불교에서 없는 한국만의 전각이다.한단고기의 기록대로 환인ㆍ환웅ㆍ환검(단군
) 세 성인을 모셨던 단군조선의 전각이 불교와 타협하면서 절간 뒤로 밀려 보존된 것으로 생
각된다.

지리산 벽송사 산신각의 산신
기독교와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하나님(하느님)은 본래 단어의 기원이 ‘하눌님’(하늘天에 있는
님)이다. 우리나라는 고대로부터 천손(天孫)의 자손으로서 하늘을 공경해오는 전통신앙 강했
으나, 중국 명나라 때에 조선은 신하의 나라이므로 하늘神인 천신(天神)의 제사를 받들지 못
하도록 하여 원구단(圓丘壇)의 설치를 강력히 제한하였다.즉, 제후는 산천에만 제사를 지내고,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는 천자의 위상을 가지지 못하도록 압박하였던 것이다. 하늘에 대한
제사권의 박탈은 자주권의 제한이었다.하늘을 상실한 민족은 오늘날 제공권을 상실한 국방과
같으며, 우주선이나 핵을 보유하지 못한 국가가 느끼는 국제사회의 초라한 위상과도 같은 것
이다.(허흥식 著 ‘한국신령의 고향을 찾아서’)
천손민족으로 자부해오면 고조선 이래 고려시대까지도 중화(中華)에 대해 우월적 지위를
누리던 우리 민족이 고작 조선시대에 들어서 명나라에 눌렸으니, 명이 만주족인 청나라에
게 망한 후, 중국은 사라졌고 신해혁명으로 청나라로 부터 독립을 해서야 중국이 다시 등
장하게 된다. 그러나 명이 망한 후에도 우리의 천신인 하늘에 대한 제사권을 찾지 못하고,
소중화(小中華)를 외치면서 망한 명나라만 쳐다보고 동경해 왔으니, 결국 국민들의 하늘에
대한 강렬한 믿음은 조선末 새로운 서양종교인 천주교의 전래로 하늘 신을 다시 찾게 되는
아이러니를 가져 왔다.
유일신을 뜻하는 단어인 천주(天主)를 당시의 한글 표현인 하ㄴㆍ(天)님(主)으로
번역하여 받아들인 것인데, 天主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대단한 것이라서 당
연히 천주교의 전파속도도 빠를 수밖에 없었다. 외래 종교였던 불교가 우리의 전
통신앙인 환웅전ㆍ칠성ㆍ산신ㆍ나반존자 등을 버리지 않고 불교 속으로 끌어넣
어 성공했지만, 천주교나 개신교는 우리 민족이 공경하던 ‘하눌님’이라는 이름을
잘 빌려서 성공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에 있는 성황당 표지석
나반존자는 과거ㆍ현재ㆍ미래의 모든 일을 꿰뚫어 알고 있고,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는
능력인 삼명(三明)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말법시대의 중생에게 복을 주고 소원을 성취
시켜 준다고 한다.
* 3명이란 숙명명(宿命明) 천안명(天眼明) 누진명(漏盡明)을 말하며, 숙명명은 전생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지혜, 천안명은 미래를 훤히 꿰뚫어 보는 능력, 누진명은 현세의 고통의 원인이 되는 번뇌를 끓는 지혜를
말한다.
독성각에는 나반존자 상을 봉안하기도 하지만 보통 독성탱화를 많이 봉안하는데, 이 탱화는
천태산을 배경으로 하여 희고 긴 눈썹을 가진 늙은 비구가 오른손에는 지팡이를, 왼손에는
염주 또는 불로초를 들고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사찰의 삼성각에 모셔진 나반존자 독성탱화와 산신탱화가 엇비슷하게 보이지만, 다소 차이
나는 점이 있으니, 관심을 갖고 비교해 보시기 바란다.
*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나반존자 도량은 청도 운문사 사리암, 서울 북한산 삼성암, 부산 금정산 미륵사,
전남 영암 축성암 등이 있다. 終

경기도 남양주시 수종사 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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