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주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게 하옵소서.
주님,
저 자신은 주님의 긍휼을 구하면서도
타인을 긍휼히 여기지 못하는 자이니
만 달란트 탕감받고 백 데나리온 받지 못한 것 때문에 부르르 떠는 자가 여기 있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는 매일 주님 앞에 불합격입니다.
이래서 무슨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한심하기만 합니다.
‘그게 말씀으로 사는 자의 마음이냐?’ 하는 사탄의 정죄에 기가 죽습니다.
하지만 또 낯 두껍게 주님께 나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덮으시는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마음을 눈곱만큼이라도 닮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6.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8.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9.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10. 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11.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12.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13.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본문 주해)
1~3절 :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고향으로 가셨다. 예수께서 복음을 전하시면서 여러 곳으로 다니셨기에 이미 고향에도 소문이 나 있었다.
안식일 때 화당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다른 권세 있는 가르침이었다.
그런데 회당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그의 행하신 일에 놀라기는 하였지만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예수님을 잘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리아의 아들이며 목수였던 그를 알고 있고, 그 형제들의 이름과 누이들을 줄줄이 언급하며 어릴 때부터 그를 지켜봐 왔다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혈과 육으로 보고서 아는 것을 정말 아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 안다는 것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이다.
4~5절 : 예수님께서 고향을 찾아가신 것은 그곳에도 천국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안다고 하였지만 아는 게 아니었다. 예수님의 놀라운 말씀을 듣고 기적을 보고서도 믿지 못하였다. 자신들이 잘 아는 고향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고향에서 병자 몇 사람에게만 안수하여 고쳐주신다.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는 곳에서 많은 능력을 행한들 그것은 바알세불을 힘입었다는 비난 외에는 돌아올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다.’(5절) 라고 한 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기적을 보여주면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표적과 기적이 일어난 장면들을 보면 늘 관계성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혈루병 여인에게 하신 말씀에서의 ‘믿음’도 그 여인의 믿음이 아니라, 주님께로부터 오는 것이었다.
6절 :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마을들을 두루 돌아다니시며 가르치셨다.”(새번역)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하여 계속하여 설득하시거나 표적과 기적을 보여주시면서 자신을 증거 하신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떠나신 것이다.
7~9절 : 예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기 위해 부르신다.
두 사람씩 짝지어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도 주신다.
그런데 여행을 위한 지팡이와 신발만 신고 가라고 하신다. 여분의 양식이나 배낭이나 돈 주머니와 같은 것을 가지지 말라고 하신다.
이는 철저하게 순례자로서 주님의 채우심만을 의지하고 경험하는 삶을 강조하시는 것이다.
10~11절 : 그리고 마치 노숙자와 같은 초라한 몰골의 제자들을 영접하는 자들의 집에 머무르라고 하신다.
이 제자들을 받아들인 것은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이기에 그 집에서 머무르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복음의 전초기지가 되는 것이다.
전도자는 처음 거주지가 비록 만족하지 못하다 할지라도 일단 거처할 곳이 정해지면 그곳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해야지 더 안락한 안식처가 있다고 해서 이 집 저 집 전전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을 영접하지 않으면 거기서 나갈 때에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을 고발할 증거로 삼으라고 하신다.
어느 집이나 마을에서 그들을 영접하지 아니하면, 그들은 그곳 사람들에게 심판을 선언하도록 명령하신 것이다. 이것은 이방인에 대한 복음의 편협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배척하는 자들과 그 지역이 멸망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음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를 환영하지 않거나 너희의 말을 듣지 않는 고장이 있거든 그 곳을 떠나면서 그들에게 경고하는 표시로 너희의 발에서 먼지를 털어버려라.”(12절, 공동번역)
11~12절 : 제자들이 가서 전하는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내용은 ‘회개하라’는 것이었다.
회개하는 것이 곧 귀신이 쫓겨 가는 일이며 병이 고쳐지는 것이다.
병을 고칠 때 기름을 바르는 것은 그들의 직접적인 권능이 아니라, 주님께 받은 권능임을 보이기 위하여 기름을 바르는 것이었다.
(나의 묵상)
예수님에 대해 하나도 알지 못하던 때에도 나는 스스로 믿음이 있는 자라고 생각하였다.
그 자기 열심으로 아프리카에 자비량 선교사로 가서 3년이나 지냈으니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꼭 들어맞는 경우이다.
그렇게 알지도 못하고 설쳐대던 나를 불쌍히 여기신 주님께서 폭포수와 같은 은혜를 부어주셨다. 바로 그곳 아프리카에서 복음을 듣게 하시고 생명의 삶을 살도록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영생이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요17:3)이란 말씀을 듣고는 곧장 말씀 앞으로 나아갔다.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말씀을 잘못 알고 오해했었는가를 알게 되었다.
가장 큰 것은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전에도 ‘나는 죄인’임을 읊조리긴 했지만, ‘뭐 그렇게까지.....’라는 마음이 깔려 있었고, 주님께서 나를 택해 주신 것에도 ‘뭔가 이유가 있겠지....’ 생각했었다. 즉 주님께서 나를 쓰실 만하니 택하셨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말씀은 내가 전적인 죄인임을 가르쳐 주셨고, 내게 무슨 쓸 만한 것이 있어서 택하신 것이 아니라, 천하에 쓸모없는 것을 택하셔서 주님의 은혜로 이것저것이라도 하면서 살 수 있도록 이끄신 것임을 알게 하셨다.
그리고 십자가 보혈의 은혜를 알게 해 주셔서 죽으나 사나 십자가를 붙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또한 이 모든 과정이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서 된 일임도 알게 하신 것이다.
매일의 말씀에서 주님을 알아가는 기쁨이 너무도 크다.
일일이 내용을 정리하면서 나타내지 않아도, 솜에 물이 흡수되듯이, 햇볕에 몸이 따듯해지듯이 자연스럽게 알게 된 진리가 나를 살게 한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유한한 인간이 창조주이신 주님을 안다면 얼마나 알 수 있을까?
다만 매일의 말씀에서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내 수준에 맞추어 일러주시고 알게 해 주심을 믿는다. 오늘 알았다고 기뻐한 진리가 참으로 얕은 수준이더라도, 내일 또 수정될 것이라도 걱정하지 않는다.
겨우 걸음마하는 아가에게 유치원생의 수준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유치원생에게 대학생 수준을 기대하지 않으시는 주님이기 때문이다.
오직 이끄시는 대로, 매일을 말씀으로 살면서 한 걸음씩 걸어갈 뿐이다.
비록 자주 넘어지고 엎어지지만 다시 연약한 무릎을 세우고 일어설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심만을 믿는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매일매일 주님을 더 잘 알아가는 삶, 이 영생의 삶을 살게 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린다.
(묵상 기도)
주님,
주님을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신 은혜가 큽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이끄심이요, 성령의 역사입니다.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은
그만큼 주님을 더 잘 알게 되었기 때문임을 생각합니다.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주님을 알게 될는지 모르지만
흔들림 없이, 끝까지 이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