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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80. 북마케도니아 스코페 (Skopje)2일 차 시티투어 (230810)
23.08.10.목요일
여행 80일 차 날이다.
1.
북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에서는 3박 4일 간을 머물계획이다. 어제 오후 시간에 숙소 주소지로 갔으나 예약된 B&B 숙소를 찾는 게 쉽지 않아 한동안 집주인과의 연락을 시도하다가 현지 젊은 친구의 도움으로 연락이 닿아 당초 예약한 주소지가 아닌 곳으로 이동을 해 체크인을 했다. 주인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어 다행이었는데 3박 4일간 예약에 문제가 있는 듯 했다.
집 주인 착오로 마지막날 1박이 중복 예약 이 되었다고 한다. 결국 2박을 하고는 1박 은 다른 곳에서 해줄 것을 요청해 수락을 하긴했다. 대신 본인들 차량으로 짐을 옮겨 주기로 했다.
2.
북마케도니아에서는 국가적으로 내 세우고 있는 두가지 빅 테마가 있다. 하나는 카톨릭 계의 성인으로 추앙 받는 테레사 수녀가 마케도니아 태생이라는 점과 알렉산드르 대왕이 마케도니아의 왕이었다는 게 가장 큰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오늘 스코페에서 의 일정도 이 두 곳을 중심으로 한 스코페 광장, 개선문, 스톤 브릿지, 구도심과 스코 페 성을 둘러보는 일정으로 두 쨋날을 보낼 계획이다.
먼저 북마케도니아 수도인 스코페(Skopje)에 대한 지식백과 소개를 훑어보기로 한다.
스코페(Skopje)
바르다르강 상류에 위치하며, 베오그라드와 아테네 사이의 주요 남북 발칸 노선에 있다. 북마케도니아에서 가장 큰 도시로 정치, 문화, 경제 및 학문의 중심지이며, 북마케도니아 인구의 25% 이상이 이곳에 거주한다. 그리스에서 중부유럽으로 가는 중요한 통로 역할을 하고 있어, 고대부터 다양한 민족의 침략과 지배를 받아왔다.
그러나 1991년 구유고슬라비아로부터의 독립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빠르게 성장하였으며, 1963년 대지진으로 성장이 다소 주춤하였으나, 오늘날 다양한 문화유 산을 보유한 근대도시로 성장하였다. 특히 금속, 가공, 화학, 목재, 섬유, 가죽, 인쇄 산업이 발전하였으며, 이러한 산업으로 인해 무역과 금융업이 동반 성장하고 문화와 스포츠도 발전하였다.
아침식사는 한식으로
숙소에서 보이는 전경
3.
아침식사를 마치고 오늘 하루일정을 9시가 조금 지나 시작했다. 팀원들 중 한 두 사람 을 빼곤 모두 걷는데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 들이라 시내투어는 대개 걸어서 하고 있다. 오늘도 2~3km 내 있는 목적지인 테레사 수녀 기념관 쪽까지 걷는 것으로 시작했다.
대로변을 걸으면서 다양한 건물들과 풍경들을 보게된다.
농산물 직판장도 지나고 현지인들과도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가는길에 눈에 띄는 구경꺼리가 있으면 둘러보기도 한다. 이런게 자유여행의 묘미일것이다
너른 차도를 따라 걷는다
농산물 직판장
이 사람들 손을 흔들며 어데서 왔느냐 인사를 건네기에 인증사진도 찍는다
09:47
특이한 구조의 Church of St. Clement of Ohrid
실내는 역시나 화려하다
이제 테레사 수녀 기념관에 거의 도착한다
4.
테레사 수녀에 대한 공부.
테레사 수녀
Mother Teresa of Calcutta
알바니아계 인도 국적의 로마가톨릭교회 수녀. 1928년 수녀가 된 뒤 1948년 인도에서 '사랑의 선교 수녀회'를 창설하여 평생을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하였으며, 197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본명은 아녜즈 곤제 보야지우 (Anjezë Gonxhe Bojaxhiu)이며, 보통 마더 테레사(Mother Teresa)라 부른다. 1910년 오스만제국의 위스퀴브(Uskub;지금의 마케도니아공화국 스코페)에서 로마가톨릭교회 신도인 알바니아계 집안의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신앙심이 돈독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사업가이자 정치가로 활동하던 아버지 니콜 보야지우(Nikollë Bojaxhiu)는 1919년 정치운동에 휘말려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 다. 1928년 아일랜드의 라스판햄 (Rathfarnham)으로 가서 로레토수녀회 (Sisters of Loreto)로 알려진 동정성 모회(Institute of the Blessed Virgin Mary)에 입회하여 테레사(Teresa)라는 이름을 받았고, 기초교육과 영어를 익힌 뒤 1929 년 1월 선교를 위하여 인도 서벵골주의 캘커타(Calcutta;지금의 콜카타)에 도착 하였다.
다르질링(Darjeeling)에서 수련기를 거쳐 1931년 5월 첫 서원(誓願)을 한 뒤 로레토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캘커타의 세인트메리학교(St. Mary’s School)에 부임하여 여학생들에게 지리와 교리를 가르쳤다. 1937년 종신서원(終身誓願)을 하였고, 1944년 세인트메리학교 교장이 되었다. 1946년 캘커타에서 다르즐링으로 피정(避靜)을 가던 도중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하라는 소명(召命)을 받고 2년간의 청원 끝에 가톨릭 교단으로부터 수녀회 외부 거주를 허락받았다. 1948년 8월 수녀회를 떠나 기초 간호학을 속성으로 수료한 뒤 '사랑의 선교 수녀회 (Missionaries of Charity)'를 창설하고 캘커타의 빈민가에서 고통받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기 시작하였다.
사랑의 선교 수녀회는 1950년 교황청의 정식 인가를 받은 뒤 1965년에는 교황청 직속 수녀회로 격상되었다.
1951년 12월 현지인들과 동화하기 위하여 인도로 귀화하였고. 1952년 캘커타의 힌두교 사원에 '임종자의 집(Home for Sick and Dying Destitutes)'이라는 첫 공동체 공간을 마련하였다. 1953년 2월에는 사랑의 선교 수녀회 본원을 세우고 종신서원을 하였으며, 1963년 3월 '사랑의 선교 수사회(Missionaries of
Charity Brothers)'라는 남성 수도회를 창설하였다. 1965년 교황청에서 사랑의 선교 수녀회의 활동을 높이 평가하고 전 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허락함에 따라 같은 해 7월 베네수엘라에 첫 분원을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아프리카와 유럽, 미국 등지에 분원을 설립하였으며, 각지에 나병과 결핵, 에이즈 환자를 위한 요양원과 거처, 무료 급식소, 고아원, 학교 등을 세워 봉사활동을 확대하였다.
만년에 심장 질환을 앓다가 1997년 9월 5일 캘커타의 본원에서 선종(善終) 하였 으며, 장례식은 인도의 국장(國葬)으로 거행되었다.
검은 수녀복 대신 인도에서 가장 가난하고 미천한 여성들이 입는 흰색 사리를 입고 평생을 가난 속에서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사람들, 버려진 아이들, 노인들을 위하여 헌신하여 '빈자(貧者)의 성녀(聖女)'로 추앙받았다. 이러한 공로로 197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으며,
그밖에 1962년 인도의 파드마 슈리 (Padma Shri) 상과 필리핀의 국제적 인권상인 막사이사이상, 1971년 교황 요한 23세 평화상과 존 F. 케네디상, 1972년 자와할랄 네루상, 1973년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탬플턴상, 1980년 인도 최고의 시민 훈장인 바라트 라트나 (Bharat Ratna), 1987년 소비에트 평화위원회 최고 훈장, 1997년 미국 의회 최고 훈장 등을 수상하였다.
사후 2003년 10월 교황청으로부터 성인(聖人) 바로 아래 단계인 복자(福者)로 서품되었고, 선종한 날인 9월 5일이 축일로 제정되었다.
2016년 3월 교황청 시성위원회는 심사를 거쳐 테레사 수녀를 성인으로 추대하였으며, 같은 해 9월 4일 시성식을 통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인 추대 사유로 두 가지 기적을 내세웠는데, 하나는 2002년 테레사 수녀 타계 1주년 기도회 때 참석한 30대 인도 여성이 종양이 모두 사라져 암을 극복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2008년 다발성 뇌종양으로 시한부를 선고받은 한 브라질 남성이 테레사 수녀에게 기도를 올린 후 이틀 만에 완치된 것이다.
성인 테레사 수녀 동상
테레사 수녀 기념관
Mother Theresa Memorial House
2층으로
3층 예배실에선 예배가 한창이다
2층에 내려와 전시물을 본다.
김수환추기경과 함께 한 사진도 보였다
방송국에서 나왔는지 인터뷰중이다
그새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기념사진을 찍고 마케도니아 광장으로
광장으로 가는 길의 풍경
5.
다음은 마케도니아 광장 한가운데에 우똑 솟아 있는 알렉산더 대왕의 기마상을 볼 차례다. 알렉산더 대왕. 마케도니아의 왕이었을 뿐 아니라 그리스에서도 영웅으로 추앙 받는 인물이다. 그런이유로 알렉산더 대왕이 마케도니아 국왕이었음을 이유로 마케도니아 국명 사용을 허용하지 못하게 하는 그리스와 대립중에 있기 도 한다.
먼저 알렉산더 대왕에 관한 지식백과 해설문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Alexandros the Great
마케도니아의 왕(재위 BC 336∼BC 323). 그리스·페르시아·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여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시킨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하 였다.
필리포스 2세와 올림피아스의 아들로서 알렉산더 대왕, 알렉산드로스 3세라고도 한다. 그리스·페르시아·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대왕으로, 탄생에 관해 서는 그리스의 작가 플루타르코스(영웅전 작가)가 “올림피아스가 벼락이 배에 떨어 지는 꿈을 꾸고 임신하였다” 또는 “필리포스가 아내의 곁에 있는 뱀을 보았다” 등의 전설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당시의 대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마케도니아 수도인 펠라의 궁정에 초빙되어 3년 동안 그에게 윤리학·철학·문학· 정치학·자연과학·의학 등을 가르쳤다.
그는 호메로스의 시를 애독하여 원정(遠征) 때도 그 책을 지니고 다녔으며, 학자를 대동하여 각지의 탐험(探險)·측량 등을 시킨 일, 또는 변함없이 그리스 문화를 숭앙한 일 등은 스승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또한 부왕으로부터는 전술·행정 등의 실제적인 일을 배웠고, BC 338년의 카이로네이아전투에 직접 참가하였다. 부왕이 암살되자 군대의 추대를 받아 20세의 젊은 나이로 왕이 되니, 그리스 도시의 대표자 회의를 열고 아버지와 같이 헬라스 연맹의 맹주로 뽑혔다. 때마침 마케도니아의 북방에 만족(蠻族)이 침입하고 서방에서도 반란이 일어나 친정(親征)하였는데, 이 싸움에서 그가 전사하였다는 소문이 퍼지자 온 그리 스가 동요하고 테베가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즉시 테베를 토벌하고 테베시(市)의 전시민을 노예로 팔아버렸다.
BC 334년에 그는 마케도니아군(軍)과 헬라스 연맹군을 거느리고, 페르시아 원정을 위해 소(小)아시아로 건너갔다. 먼저 그라니코스 강변에서 페르시아군과 싸워 승리하고,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그리스의 여러 도시를 해방하였으며, 사르 디스 그 밖의 땅을 점령한 뒤 북(北)시리 아를 공략하였다. BC 333년 킬리키아 의 이수스전투에서 다리우스 3세의 군대를 대파하였으며, 이어 페르시아 함대의 근거 지인 티루스(티로스)·가자 등을 점령하 였다. 그리고 시리아·페니키아를 정복한 다음 이집트를 공략하였다. 이집트에서는 나일강 하구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 리아시(市)를 건설하고 1,000 km가 넘는 사막을 거쳐 아몬 신전에 참배하였다.
여기서 ‘신(神)의 아들’이라는 신탁(神託)을 받았는데, 이후로 그는 만인동포관(萬人同胞觀)을 지니게 되었다. BC 330년 다시 군대를 돌려서 메소포타미아로 가서, 가우가멜라에서 세 번이나 페르시아군 (軍)과 싸워 대승하였다. 이때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는 도주하였으나 신하인 베소 스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알렉산드로스는 계속하여 바빌론·수사·페르세폴리스 ·엑바타나 등의 여러 도시를 장악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는 여기서 마케도니아군 (軍)과 그리스군(軍) 중의 지원자만을 거느리고 다시 동쪽으로 원정하여 이란 고원을 정복한 뒤 인도의 인더스강(江)에 이르렀다.
그러나 군사 중에 열병이 퍼지고 장마가 계속되었으므로, 군대를 돌려 BC 324년에 페르세폴리스에 되돌아왔다.
BC 323년 바빌론에 돌아와 아라비아 원정을 준비하던 중, 33세의 젊은 나이로 갑자기 죽었다. 그는 자기가 정복한 땅에 알렉산드리아라고 이름지은 도시를 70개나 건설하였다고 한다. 이 도시들은 그리스 문화 동점(東漸)의 거점이 되었고, 헬레니즘 문화의 형성에 큰 구실을 하였다. 그의 문화사적 업적은 유럽·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여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시킨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한 데 있다. 그가 죽은 뒤 대제국 영토는 마케도니아·시리아· 이집트의 세 나라로 갈라졌다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길
마케도니아 광장
Macedonia Square
알렉산더 대왕 기마상
Alexander the Great Macedonian Monument
개선문
마케도니아 광장과 연결되어 있는 개선문
Triumph Arch Macedonia
개선문으로 이어지는 곳에 테레사 수녀 조형물도 보인다
개선문 앞 공원의 각종 기념동상 등이 있는
Woman - Warrior Park
전몰용사들 탑
Monument Fallen Heroes for Macedonia
다시 마케도니아 광장으로 돌아와 인증샷
Stone Bridge 를 너머 구도심지역으로
박물관
Archaeological Museum of Macedonia
The Bridge of Art Skopje
마케도니아 필립2세
Monument „Philip II of Macedonia“
6.
마케도니아의 상징인 테레사 수녀, 알렉산 더 대왕의 기마상과 주변의 수 많은 조형물, 건물들을 보고는 스코페의 구도심으로 들어갔다. 초입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 크림을 먹으며 한참을 쉬다 구도심 구경을 했다. 대부분 기념품 판매 매장들이 많이 보였다.
Old Bazaar 가는길
입구 카페에서 아이스크림 먹기
구도심너머 스코페케슬이 보인다
그리고
Skopje Fortress를 한바퀴 돌아본다
스코페케슬에서 내려와 강변길을 걸어 숙소로 돌아와 오늘 일정을 마감한다.
농산물 판매장에서 장을 봐 숙소로 귀환
<여행 80 일 차 일정 끝.>
첫댓글 여행 80일차
성인 테레사 수녀 동상등
잘 보았습니다
스톤브릿지가 멋지네요
튼튼해 보이고
알렉산더 대왕은 그젊은 나이에 여러곳 정복한 그야 말로 대왕인데 일찍 병사 해서 시에도 학문에도 탁월하다하는데
오래 살았으면 그시대 지도가 어떻게 변했을까요
알렉산더대왕의 나라 마더데레사의 나라 좋은나라 여행 값진 여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