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멀다 하고 신제품 결국 소비자만 피해”
주름진 작은 손이 분주하다. 드라이버를 이용해 스마트폰을 분해하고, 파손된 액정을 본체에서 떼어낸다. 마지막으로 새 액정을 갈아 끼운다. 10여분이 지나자 스마트폰이 신제품처럼 다시 태어났다. 만족한 듯 웃음을 지으며 떠나는 고객의 발걸음이 가볍다. “손님들의 반 이상이 단골이죠. 좋으니까 다시 찾아오는 것 아니겠어요?” 13㎡(4평) 남짓한 작은 매장 ‘개조닷컴’ 조점용(61) 사장이 커다란 안경 너머로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지난해 12월 중순 스마트폰 전문 수리점 ‘개조닷컴’을 찾았다. 서울 신용산역 5번 출구와 연결된 오피스텔 지하 1층으로 들어가니 오른쪽 구석에 ‘개조닷컴’이 보였다. 매장 안에는 각종 휴대폰 부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작은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한창 수리에 열중하고 있던 조점용 사장이 인사를 건넸다. 그는 9년간 이곳 용산에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월 매출이 약 200만원인 작은 점포지만, 스마트폰을 포함한 조점용 사장의 수리 경력은 무려 43년에 달한다. 경력 때문인지 주변 상인들도 조점용 사장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개조닷컴’이라는 이름 안에도 그의 삶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1973년 학교를 중퇴한 18세 조점용 사장에게는 리어카 한 대가 전부였다. 대구 팔달시장에서 리어카로 카세트테이프를 운반하며 살았다. 하지만 몇몇 친구들이 용접 기술을 가지고 중동으로 파견을 가는 모습을 보며 미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침 팔달시장에서 전축 수리를 하고 있던 다른 친구를 만나 전자제품 수리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는 우리나라의 미래가 전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고 본격적으로 수리업에 뛰어들었다. 관련 지식이 없었기에 6개월 동안 대구 ‘영남전자학원’에서 자비를 들여 전자 기초를 공부했고, 다시 6개월 동안 친구에게 수리 기술을 익혔다.
1년 후 그는 대구 침산동에 작은 ‘침산소리사’를 차렸다. “당시 소리사라고 모든 전자제품을 수리하는 곳이 있었어요. 시작할 때에는 돈이 없어서 밥 먹다가도 나가서 형광등 갈아주고 그랬죠.” 그는 밥솥, 냉장고, 세탁기 등을 포함해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지 수리했다. 1970년대에 삼성과 금성에서 출시된 흑백TV들도 하나둘 손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컬러TV가 대중화된 1980년대 대구에서 TV 수리로 이름만 대면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고 말했다. “대구에서는 개척자라고 보면 되죠. 당시 진공관부터 전자 지식을 가진 수리기사들이 적었으니까요. 돈도 많이 벌었죠.”
소리사를 운영하며 자금을 모은 조점용 사장은 대구에 삼성전자 판매점을 열었다. 그가 판매점을 운영한 지 10년, 실적 악화로 판매점 부도가 나게 된다. 빈털터리로 찾아간 재활용센터에서 그는 3대의 TV 부품을 모아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어 팔았지만 1997년 IMF에 의해 다시 일자리를 잃었다.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조점용 사장은 강남과 과천 등지에서 삼성전자 에어컨과 세탁기 등을 수리하는 ‘중수리’를 했다. 4년 동안 삼성 수리기사로 일한 후에는 용산 전자타운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 태블릿PC 등을 수리했다. “2002년에 삼성에서 넥시오(NEXIO)라는 PDA를 출시했어요. 용산 전자타운 4층에 자리를 얻고 넥시오를 개조하기 시작했죠.” 그는 넥시오에 SD카드를 내장하고 USB슬롯을 확장하는 등 제품을 개조했다. 도중에 USB 기역자 젠더를 개발해 특허를 내기도 했다.
조점용 사장은 2007년 스마트폰 시장의 새로운 지평을 연 아이폰3GS 출시와 더불어 그의 삶이 담겨 있는 ‘개조닷컴’을 열었다. 스마트폰이 전자제품 소비시장을 이끌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현재 ‘개조닷컴’에서는 총 21종류의 스마트폰을 취급하고 있다. 고객들은 주로 파손된 액정을 들고 매장을 찾는다. “젊은 사람들 손기술이 더 좋을 수도 있지만, 저는 진공관 때부터 수리를 시작한 경력을 가지고 있죠.” 실제로 그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월드PC정비 전문학원’에서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후배 양성을 위한 강단에 가끔씩 서고 있다.
44년 수리기사가 말하는 한국 스마트폰
그는 2012년 삼성전자 자체 OS인 ‘바다’ 개발자로 초청된 적이 있다. 그가 맡았던 역할은 ‘바다’의 장단점을 구별하고 조언해주는 것이었다. “OS도 그렇고, 하드웨어 기술 개발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어요. 한 가지 예로, 예전에는 일자 기판을 일일이 확인해야 했지만 최근 트랜지스터는 작은 칩들 안에 기술이 응축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죠.”
한국미디어패널의 2014년 기준 휴대폰 평균 사용기간은 1년7개월로 나타났으며, 응답자 3명 중 1명은 1년째 보유한 휴대폰을 사용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조점용 사장은 최근 한 고객의 아이폰3GS를 수리했다. “내년이면 아이폰3GS 출시 10년이거든요. 그분은 10년 동안 스마트폰을 문제없이 쓰시고 배터리를 교체하러 오셨어요.” 스마트폰 배터리는 수명이 있어 주기적으로 교체해줘야 하고, 시스템 초기화를 시켜주면 10년도 쓸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스마트폰은 매년 새로운 디자인, 최신 CPU 장착 등 성능을 올려 출시된다. 조점용 사장은 유행 때문에 휴대폰 교체주기가 짧다고 말하면서도 우리나라 전자제품 회사들의 빠른 전자제품 출시를 지적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기업은 제품을 만들어놓고 고장 날 상황을 미리 예상해요. 제품에 하자가 있으면 다시 개발하는 것이 원칙일 텐데, 시간이 없으니 일단 출시하죠. 애플만 봐도 1년에 한 개 혹은 두 개 제품씩 내놓잖아요. 다양한 제품을 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겠지만, 결국 수리기사를 혹사시키고, 초기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구조인 거죠.”
이어서 그는 통신사와 제조사의 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통신사는 말 그대로 유심을 팔고 통신요금만 받아야 하지만 갑의 위치에 서 있죠. 비슷하거나 똑같은 모델인데 통신사가 특정 모델을 독점하면 저렴한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선택지는 좁아지거든요. 2년, 3년 약정을 걸고 제품 교체를 조장하는 통신사들의 행태도 문제라고 봅니다.”
조점용 사장은 새로운 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수리와 개조에 도전해왔다. 매장 홈페이지도 지인을 통해 50대 나이에 직접 만들었다. 그는 청계천 상인들을 보며 도전의식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청계천은 옛날 아날로그식 부품 수리에 멈춰 있다 보니 새 기술을 받아들이지 못해요. 용산도 마찬가지로 컴퓨터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전자상가 상권이 죽어버렸죠. 저는 앞으로도 기술 발달의 흐름에 맞춰 수리와 개조에 열중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