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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비경 태항산 대협곡 감동의 고행기
2019년 3월 11일 인천공항을 10시55분에 이륙한 MU5085동방항공이 중국 제남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중국시간으로 10시 55분이었다. 시차 1시간을 공중에서 보낸 격이다. 제남 그린츄인 호텔에서 1박을 하고 조식 후 12일 오전 7시에 태항산 임주시(林州市)로 출발했다. 우리 부부를 포함하여 같이한 여행객은 모두 11명이었다. 10명 이상의 대량 관관 객은 좁은 잔도 길과 수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통제가 불가하다고 한다. 이곳 700만의 제남시와 40만의 임주시의 위도는 한국의 서울과 같기에 계절도 비슷하다. 이곳이 봄이면 그곳도 봄이다.
제남(濟南)-임주(林州)간 고속도로를 25인승 리무진으로 약 5시간 거리를 달리는 동안 차창가에 광활한 평야가 봄기운에 나른하게 펼쳐진다. 5시간 달리는 동안 까마득한 평야는 계속 이어지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시야에 우리나라와 같은 그 흔한 산은 들어오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차량 탑승시간이 4~5시간 정도의 거리는 근방이라 하고 10시간 정도는 가까운 거리이며 20~30시간은 보통이고 60시간 넘어서야 먼 거리란다. 우리나라와는 차원이 다른 거리개념이다. 승용차의 최고속도는 120km, 승합 화물은 90km이다. 그리고 최저속도는 모두 50km이다. 고속도로변 30~40미터구간 접도구역 내에는 미루나무가 식재되어 있고 그 구간은 끝없이 이어졌다. 미루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꽃가루 때문에 일찍이 사라진 수종이나 중국에서는 지천이다. 중국에서 미루나무의 용도는 이쑤시개와 나무젓가락이란다. 우리나라도 나무젓가락은 모두 중국산 미루나무 젓가락이 대세다.
봄기운에 끝없이 펼쳐진 제남-임주간의 도로변에 끝없이 전개되는 밭의 파란 새싹은 밀이란다. 춘삼월 봄 판에 농부들이 이따금씩 땅을 일구고 물을 대는 모습이 차창 가에 비춰진다. 평야 가운데 농가가 있고 묘소가 있고 밭이 있다. 특이한 것은 단 한곳도 논이 없다는 신기함이다. 강우량이 적다는 이야기다. 모든 가옥 대문에 빨강 바탕에 검정 한자와 간자체로 미사여구를 써 놓았다. 그래야 복이 들어온다는 신념의 표시다. 신념을 의지하며 언젠가라는 희망을 꿈꾸며 사는 소박한 중국 농민의 삶이 우리나라와 닮아있다. 우리나라 60년대에 봄보리 타작하고 모내기 준비하던 바쁜 농사철의 모습과 겹쳐지며 어린 시절 고향생각도 떠오른다.
출발한지 3시간 만에 중간 휴게소에 들려 볼일을 보고 몇 분간의 휴식을 마친 후 서둘러 서쪽을 향해 우리 일행을 태운 리무진은 속도를 낸다. 시야에 어렴풋이 산이 보인다면 그게 바로 태항산 줄기란다. 임주시에 도착한 것은 12시 30분경이다. 이곳 태항산 임주시에도 한국인들이 많이 방문하는 장소이기에 한국인에 맞는 식당도 생겨났단다. 임주시 연변 농협식당에서 된장찌개 한식으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바로 태항산 도화곡 협곡에 들어섰다. 태항산 대협곡은 허난성과 산시성에 걸쳐있는 남북 720km 동서 270km의 거대한 산맥으로 북경, 허베이성, 산시성, 허난성 4개성에 걸쳐 있으며 내몽골 초원아래 산시성 북부에서 시작되는 산맥이다. 고사 우공이산(愚公移山)에 등장하는 산이 태항산이다. 태항산 협곡의 높이는 800m에서 1739m높이라 한다.
태항산 대협곡에서 꼭 보고 와야 하는 도화곡을 처음 상면했다. 도화곡을 들어가기 위해 오픈차량으로 이동하는 동안 모두가 추위에 떨었다. 주위 환경은 외부의 봄 날씨와는 전혀 다르게 추운 날씨였고 물위에 얼음이 꽁꽁 얼었으며 조그만 폭포마다 거대한 수십 미터 대형 고드름이 달려 있었다. 이곳은 4월까지도 추운날씨가 계속된다고 한다. 하차 후 도보로 도화협곡을 들어서니 양쪽으로 수천 길 절벽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이 절벽은 수억만년 전 지질 형성 중에 유수의 침식으로 홍석암이 씻겨 나타난 깊은 골짜기가 형성되어서 절벽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엄동설한에도 복숭아꽃이 피는 곳이라 하여 도화곡(桃花谷)이란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또 이곳의 풍경은 폭포와 연못이 조화를 이뤄 거대한 산수화 한 폭을 펼쳐 논 것 같다.
도화곡 풍경구(風景區)는 중국의 그랜드 캐년(Grand Canyon)이다. 수십억년전 지구의 세월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웅장하면서도 비현실적인 광경에 압도당하는 곳이다. 수십억년 동안 쌓인 지층들과 그 흔적을 보고 있노라면 위대한 자연 앞에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허무한 가를 느낄 수 있다. 사진을 찍으려 해도 배경은 온통 절벽이다. 절벽 밑과 절벽 상단을 한 장의 사진에 담기란 불가능하다. 도화곡 골짜기 위를 올라와 태항천로 환산선 29km 일주 길을 급회전 길이 많아 빵빵거려야 한다는 승합용 빵차를 타고 돌며 포토시간을 갖기도 했지만 관광객 누구나 아찔했던 평보청운의 유리 관망대를 관람한 것을 이 여행의 백미(白眉)로 여겼을 것이다. 수 천길 절벽 상단에서 5m 앞으로 강화 투명 유리로 깔아놓은 전망대가 공포감을 유발한다. 강심장이 아니면 아찔한 천길 절벽을 발밑에 두고 바라보면서 이 강화 유리바닥을 걸어갈 수 없다. 우측으로는 강화유리 한 틀이 파손되어 거북이 금이 갔기에 통행을 금지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고 더욱 가슴이 오그라든다. 생과 사의 경계를 걷는 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관광인지 고행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코스가 이어진다. 이곳에서 아래로 돌을 아침에 던지면 떨어지는 소리는 저녁에나 들리지 않을까 싶다.
빵차를 타고 돌다보면 이곳의 생존환경이 눈에 잡힌다. 이곳 원주민들은 평평한 구들장만한 돌들로 지붕을 덮었고 절벽 상단에 손바닥만 한 다랑이 밭들을 일궈 옥수수를 재배한다. 90도 절벽상단 모서리에서 단 20cm 정도의 밭 경계를 두고 2평 남짓한 밭을 바라보노라니 이곳 원주민들의 참혹한 삶의 한계에 가슴이 여리고 마음이 아리다. 절벽에 떨어져 죽나 굶어죽나 피차 매일반이라는 비참한 각오가 눈물겹다. 이들이 이곳에 정착한 이유는 일본군과 팔로군의 태항산 십자령 전투 시 일본군의 학살을 피해 이곳에 정착했다 한다. 지금도 일본 관광객은 이곳을 방문하는 것을 원주민들은 금지 한단다. 비경의 찬탄 뒤에는 애절한 역사가 숨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수 만길 절벽 상단에 설치한 일주 도로를 만들어 빵차가 달린다. 절벽 상단 도로에는 난간도 없다. 아슬아슬한 절벽을 운전솜씨 노련한 이들이 마술을 부린다. 2017년까지 오픈 전동카를 운행했으나 탑승객의 공포감을 감안해서 승합 빵차로 변경 했단다. 그러나 달리는 방차 앞에서도 가슴을 쓸어내려야 한다. 오늘 3월 12일 하루 관광일정을 모두 마치고 석식 후 돈왕 홀리데인 호텔에 투숙했다. 잠들기 전까지는 오늘의 감흥도 잠들지는 않았다. 공사로 인해 왕상암 풍경구는 감상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이튿날 13일에는 하늘과 땅의 경계라는 이름의 해발 1570m의 천계산에 올랐다. 중국 후조 황제가 된 석륵이 천하를 차지하기 위해 세운 하늘 도시란다. 태항산 대협곡의 하남성에 위치한 제일 아름다운 부분이란다. 하남성 휘현시 남 태항 대협곡 천계산 풍경구 입구에서 차를 갈아타고 천계산 절벽 따라 관통하는 터널 도로로서 천길 절벽 중앙에 위치한 괘벽공로(掛壁公路)를 통과하다 보면 괘벽공로 (일명 비나리길) 유공자13인상의 동상을 볼 수 있다. 이중3인이 생존해 있다 한다. 이들이 곡괭이와 정으로 15년에 걸쳐 1250m의 암벽을 뚫은 터널인데 처음엔 당나귀 한 마리 통과할 정도의 터널인데 이것을 중국정부가 인수하여 지금과 같이 확장 했다 한다. 인간의 한계를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이러한 괘벽공로를 통과하여 태항산 십자령에 입구에 도착했다. 태항산 십자령은 일본군과 팔로군의 반소탕전으로 유명한 십자령 전투의 현장 십자령에서 노야정에 이르는 케이블카를 타고 천계산 노야정 풍경구를 관망한다. 회룡 천계산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남성 국보인 노야정(老爺頂)은 도교의 창시자 노자가 42년간 도를 닦아 도덕경을 완성한 곳으로 유명하다. 천봉관에서 2인용 케이블카를 타고 상부역사에서 노야정 정상에 이르는 계단이 888계단이다. 이곳 케이블카 상부역사에서 정상에 오를지 말지를 판단케 한다. 나는 오르고 무릎이 안 좋은 집사람은 1/3지점에서 하강했다. 노야정은 해발 1572m의 정상에 도교사원이 있는 곳이다. 정상에서 현천상제라는 간판의 암자에 들어서면 도교인들의 동상이 즐비하고 이곳에서 복을 비는 중국인들이 소지를 올리고 있다. 그리고 빨간 천에 써놓는 검정 글씨는 대자대비 유구필응(大慈大悲 有求必應)이다. ‘크고 깊은 자비로 구하면 얻으리라.’ 라는 뜻이다. 성경에 ‘구하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라는 구절과 상통한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회룡 광장에 내려와 이곳에서 오픈카를 타고 운봉화랑을 1시간 정도 돌아보았다. 대협곡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300m 유리 잔도를 걷는 것이 이곳의 백미다. 이곳 유리 잔도는 장가계 유리잔도 보다 5배나 길다. 짜릿함과 아찔함이 공포감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기분도 배로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는 무서움에 질려 하늘을 보고 걷거나 앞만 보고 걷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믿을 수 있는 잔도이지만 천길 절벽이기에 발아래를 보면 현기증을 유발하기에 땀을 흘리는 이들도 많다 한다. 대개 오픈카가 이곳에 내려놓고 떠나기 때문에 누구나 반드시 이 유리 잔도를 건너야 하는 숙명의 고역과 고행을 감내 해야 한다. 대협곡의 향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만선산 비나리길은 절벽 위에 위치한 곤산 마을에 갇혀 결혼도 제대로 못하며 외부와는 단절된 상태로 살던 마을 청년들 13명이 외부로 나가기 위해 삽과 곡갱이로 21년 동안 동민들의 도움을 받아 절벽을 뚫어 만든 길이 1250m의 동굴도로이다 이 도로가 나기 전에는 곽량촌에서 외부와 통하는 길은 오직 협곡과 절벽 위를 이어주는 '천제(天梯)'라고 부르는 절벽 길 뿐 이었기에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재산을 팔아 장비를 사고 힘을 모아 기계 없이 이 거대한 절벽에서 2만6000㎥의 돌덩어리를 캐냈고, 정 12톤을 마모 시켰고, 8파운드짜리 쇠 추 4000개를 소모했다고 한다.
태항산에는 모두 9개의 절벽 장랑이 있는데 비나리길은 그중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비나리길이란 이름은 2009년 이 길을 처음 발견하고 관광 상품으로 개발한 우리나라 비나리 여행사의 상호를 그대로 사용하여 특별한 이름이 없이 괘벽공로라 불리던 것을 비나리길 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만선산에서 왕망령으로 이동하였다. 왕망은 유방이 세운 전한을 멸망시키고 新나라 황제가 된다. 신나라는 당대에 망하고 후한이 새로 건국된다. 왕망령은 후한을 세운 유수를 쫓아 오면서 이곳에 주둔 했었다는 전설로 얻은 이름이다. 왕망령 출입문에 ‘왕망령고전장(王莽嶺古戰場)’ 이라 쓰여 있는 것을 보면 이곳이 옛날에 전쟁터이었음을 말해 준다. 왕망령은 해발 800m에서 1665m까지 높고 낮은 50여개의 산봉우리로 구성되어 일출과 운해를 감상할 수 있고 산수화 같은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산위에는 평지로 산책하기 좋은 장소 같다. 우리가 구경할 땐 운해도 안개도 없었다. 왕망령이 하남성과 산서성에 걸쳐 있어 省경계에는 철문이 설치되어있다.
3월 14일에는 팔천협을 관람했다. 팔천협 입구에 들어서니 천공지성이란 엘레베이터가 보인다. 팔천협의 장관은 유람선을 타고 깍아지른 수직 절벽 사이를 운행하면서 자연 태고의 절경을 감상하고 신비로운 협곡과 절벽의 비경을 음미하는 구간으로 이 호수를 고협평호(高峽平湖)라 불리며 최대수심은 60m이다. 협곡을 따라 올라가면 아시아 최장 길이인 2900m인 6인승으로 탑승시간 20분간의 케이블카를 탄다. 탑승한 케이블카에서는 팔천협의 장엄한 자태를 감상할 수 있다. 8천협은 산세가 워낙 험하여서 춘추전국시대에 군사적 요충지로 사용해오던 곳이기도 하며 이곳은 후한을 세운 광무제와 왕망의 대군이 싸움을 벌였던 장소로도 유명하고, 후에 일제강점기 조선의용군의 무정장군이 팔천협을 근거지로 활약을 한 곳이라고 한다. 김무정(1905~1951,6?)은 중국에서 조선 의용군 사령관을 지냈으며 태항산을 근거지로 하여 항일전쟁을 하였고 6.25전쟁 당시에는 북한군 2단장으로 참여하였다.
팔천협 트레킹코스는 가파른 계단길이 아찔하다. 풍광을 감상하며 좁고 위험한 계단을 오르고 내려가고 유리전망대를 체험하고 전망대에서는 괴암 괴석의 신비한 자태를 아찔한 기분으로 바라볼 수 있다. 신기한 북천문을 통과하면 급경사의 내리막길이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내려오다 보면 이곳에서도 토지지신에게 안전기원제를 지낸 흔적이 있다. 신기하게도 土地之神이란 글자는 우리나라 한자와 똑같이 세로로 배열했다. 이곳까지 오는데 몇 사람이 다리가 불편하여 힘들어했다. 천공지성 에레베이터 주변으로 투명유리로 허공에 깔아 천길 아래를 체험하며 걷는 코스를 마련해놨다. 유리잔도와는 전혀 다른 공포다. 몇 사람은 걷기를 포기했다. 엘리베이터는 통유리로 오르내리는 장관과 아찔함을 만끽할 수 있다. 모두가 환희의 태항산 트레킹을 마쳤다. 오늘로서 태항산 4박5일의 대장정은 마무리되었다.
태항산 소고
태항산 대협곡은 인간의 얕은꾀를 꾸짖는 듯하고
천계산 노야봉 최고봉 현천상제는 인간의 욕망과 야망을 잠재우려 하는 도다.
그러나 인간의 야망은 태항산 속살을 뚫어 비나리길을 만들었고
인간의 욕망은 잔도위에 투명유리를 깔아 수만 길 절벽을 수직으로 바라보며 당신의 비밀을 훔쳐보았도다.
새로이 바라보는 당신의 비경 팔천협은 보는 이로 하여금 동공을 놀라게 하고 쪽빛 호수 위를 떠가는 유람선은 천하절경 협곡을 돌아가며 그 비경을 찬탄케 하도다.
험준한 비경 속을 떠가는 최장거리 6인승케이블카에서 바라본 태항산의 풍경은 장대함과 웅장함 그 자체이며 신비함과 오묘함이 진수로다.
아픈 다리 달래며 수백 계단 길 가파른 경사를 내려오는 스릴은 평생에 잊지 못할 슬픈 환희로다.
깊은 숨 내뿜으며 천공 엘레베이터에 도착하니 태항산 전일정이 마무리 되는도다.
아! 맑은 하늘이 제공해주는 상쾌한 일정이 행복했도다.
장엄한 태항산의 비경을 감상한 우리들이 태항산 당신에게 하고픈 말은 당신을 영원히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영원히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태항산 당신을!
제남공항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남의 명승 대명호를 둘러보니 고요한 물속에 물고기 한가롭고 춘삼월 봄바람에 귀여운 연두색 어린이파리들이 햇빛 속에 졸고 있는 사이 하늘엔 연들이 한가하도다.
느리게 흐르는 물줄기 따라 걷는 이의 발걸음이 게을러집니다.
한가한 사람이나 지친사람들의 휴식처 대명호 광장 한복판에 3시에 연출하는 노래하는 분수대의 물줄기를 바라보고 이글을 씁니다.
노래하는 분수대는 30분간이고 그 광경을 바라보는 이내심정의 감동은 영원합니다.
4박5일 같이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다시 만나지 못할지라도 부디 행복하소서.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중국 제남 대명호에서
* (태항산 소고는 3월 15일 제남 대명호에서 잠시 앉아 이글을 쓰고 같이한 여행객들에게 낭독한 글이다.)
율 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