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린중학을 졸업한 후 한성고로 전학온 명근과는 한번도 같은 반 한적이 없다.
고등학교 1학년때 문학의 밤 행사를 위한 연습장소 대강당에서 만난 것이 처음이다.
멋진 클래식 기타를 들고 무대에 서서 영화 금지된 사랑의 주제곡 로망스를 연주하던 그의 모습과
문학소년이었던 김준하가 매치되어 자연스럽게 말동무가 되었다.
문학의 밤!
사춘기 시절, 색다른 낭만과 고독을 펼치는 한밤의 제전이었다.
마땅히 즐길 문화공간이 없던 철부지 청소년들에겐 큰마당 잔치였다.
졸업후 한국일보 강당에서 그가 클래식 기타를 칠때만해도 한국의 촉망받는 기타리스트에 명근이라는 이름이 올라있었다.
MC를 맡아보느라 명륜동의 명근네 집에서 함께 지내면서 가정과 청춘과 인생과 그리고 술을 논하며 듬뿍 정이 들었던 친구다.
특히 <알함브라 궁전의 회상>이라는 곡이 그의 대표적 연주곡이었다.
훗날 그가 가족과 함께 기타 공부를 위해 스페인으로 비행기를 타면서 그는 이제 스페인 사람이 되고 말았다.
스페인은 깊은 역사와 고색창연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나라다. 언젠가 한번은 꼭 가고 싶은 곳이다.
더군다나 헤어져 못본지 30년이 지나도록 만남을 기다리는 땅에서 외딴 섬의 영주(領主)처럼 명근이가 손짓한다.
내가 그리는 것은 스페인의 녹슨 청동빛의 유적을 간직한 박물관과
하늘 높은 성당의 성전에서 들려오는 파이프 올갠의 장엄한 음향이기도 하지만
내 마음 속에 들려오는 소리는 명근이가 문학의 밤 행사에서 들려주던 기타연주곡이다.
철없던 시절, 우리를 감상에 빠지게 했던 기타곡 <로망스>는 스페인 민요였다.
알함브라도 스페인 남부 해안의 궁전 이름이다.
스페인은 단연 클래식 기타의 고향이라 할 만하다.
사진 : 스페인의 그라나다에 건축된 알함브라 궁전의 전경
아침 일찍, 동네 뒷산에 올라 멀리 동쪽으로 몸을 돌리면 나는 미대륙을 횡단해 새처럼 대서양을 건넌다.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스페인의 작은 도시 그라나다로부터 알함브라 궁전의 전설을 듣는다.
한국일보 강당을 거쳐 한성고등학교의 강당 무대 속으로
때마다 가을, 하얀 교복의 사춘기 여고생들이(빅3:중앙여고/금란여교/서울여고)
바글바글 몰려오던 한성 <문학의 밤>이 시작되면
교정엔 가득 '오빠 사랑' 꽃다발 넘쳐
옷깃 스미는 가을 바람 물씬 향취에 젖는데
검정색 추동복 교복입은 까까머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원고를 읽어 내려가고
조명빛에 흘러서 들려오던 클래식 기타소리는
세월의 강물을 넘어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이제는 학교본관 전재근 담임선생님의 9반 교실 한모퉁이에서
영어공부 외치는 '미친개님'의 닦달하는 목청, 어언 아득한데
오늘도 명근이의 손가락을 타고
멀리 스페인으로부터 전해온
알함브라 궁전의 고운 선율이 되어 튕겨져 나오고 있는 것을....
조용히 눈 감은 채
듣.고.있.다.
김준하가 쓰는 조선닷컴 블로그입니다.
금문교 통신
첫댓글 문학의밤 학창시절이 그리워지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