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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 하 만력 28년, 선조 33년(1600년)
순찰사는 의기로써 권장하여 곡식을 갹출해서 군량에 보태어 국가 대사를 치루어 나갈 것을 다음과 같이 권고하였다.
현재 완악한 적은 아직 섬멸되지 않았는데 명 나라 군사는 갑자기 돌아가버려 나라에는 막을 울타리가 없고, 가정에는 아침저녁을 헤아릴 수 없는 불안과 공포가 있으며, 신민의 생사와 국가의 존망이 아직 결정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가 혹시 천심(天心)이 뉘우치지 않아서 난리가 다시 일어난다면 장차 늙은이를 부축하고 어린이의 손을 끌고 왜적의 흉악한 창끝에 머리를 맞대고 모두 죽어야 한단 말인가? 그렇지 않으면, 견고한 성에 의지하고 요새를 지켜서 자강(自强)의 형세를 도모할 것인가? 왜적의 변란이 일어난 뒤로 말ㆍ소를 가진 사람은 혹은 싣고 혹은 타고 멀리 달아나 피난을 하되 오히려 마치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빠른 배를 가진 사람은 살림을 거두어 싣고 외딴 섬으로 들어가 안락한 땅으로 삼고 있으며, 다시는 군사를 모아 대오를 지어서 흉악한 도적을 대항하는 것을 좋은 계책으로 여기는 사람이 없으니, 아! 한심스러운 일이다. 한번 정유년의 일을 들어 말한다면, 뭍에서는 왜적이 깊은 산 외딴 골짜기까지 샅샅이 뒤져서 남김 없이 죽였고, 바다에서는 풍랑속에 적이 또 달려드니 길바닥에 쓰러져 어육(魚肉)이 된 사람이 몇만 명이나 되는지 모른다. 이것으로 보건대, 차라리 북산(北山) 위에 웅거하여 양식과 무기를 저장하고 무사할 때에는 무예를 연마하여 병력을 기르며 변란이 있을 때에는 여유있는 자세로 피로한 적을 기다리면서 한 모퉁이에 보장(保障)을 만들어 나라의 근본을 삼는 것도 또한 순리적인 일이요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재주 없는 몸으로 임금의 명을 받고 본도에 와보니 물자와 인력은 남김없이 피폐했고 민생의 어려움은 전날보다 곱절이나 더하다. 그러나 적임자가 아님을 헤아리지 않고 외람되이 국가에 보은할 뜻을 가다듬고, 예사로운 대화에도 강개히 분발할 생각이 내보이지만 가르칠 병정이 없고 먹일 양식이 없으니 뜻은 크고 재주는 성글어서 어디다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
돌아보건대, 오직 입암산성(笠喦山城 전라도 장성에 있음)이 형세가 제일이어서 백이산하(百二山河)보다 낫다. 전날 임진란 때에 성을 수리하고 곡식을 저축해 두고 장차 굳게 지키려 하였으나 막상 난리를 당하고 보니 허둥지둥하고 또한 주관하는 이가 없어서 그대로 흩어져 달아나버렸다. 지금도 선비들이 그 말이 나오면 혀를 차고 있으니, 그 옛성을 수선하고 거기에서 군사를 조련하면 한편으로는 유사시에 의지할 땅이 되고 한편으로는 좌우로 책응(策應)하는 편리함이 됨이 거의 적당하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중의 무리 약간을 모집하여 방들을 꾸미고 허물어진 데를 수리하기 시작하여 이미 한 달이 넘었으니 대략 완성되기를 기다려 나는 본영이라 일컫고 아랫사람들을 거느리고 들어가 항상 거처하면서 계획을 짜겠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창고를 열고 다 같이 먹은 탓으로 관청의 곳간은 비었고 벼이삭을 비비어 군에 공급한 나머지라 민간의 저축도 다 없어져 버렸으며, 일정한 조세 수입으로는 나라의 비용에도 모자라고 모은 군사는 모두 수군으로 돌렸으니, 비록 성은 있으나 군사가 없으면 성이라 할 수 없으며, 비록 군사는 있으나 식량이 없으면 군사라 할 수 없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깊은 우물 속에 떨어진 느낌이다. 임진년 이래로 본도의 선비로서 나라 일에 애쓰고 힘쓴 사람들은 부지런히 일하였으며 또 고생도 하였다. 어떤 이는 의병을 규합해서 한창 세력을 떨치고 있는 적을 막았으며, 어떤 이는 재물과 비단을 모아 행궁(行宮)의 수용에 공급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남자는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로 이어서 마초(馬草)와 군량을 빨리 나르는 모습이 길가에 잇대어 군용이 결핍될 근심이 없게 한 것은 시종 그 선비들의 공이었으니, 어떻다 하겠는가?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온 도가 적으나마 믿을 만한 것은 오직 이 성인데 성을 지키는 근본은 먹을 것이 넉넉한 데 있는 것이니, 이제껏 부지런히 일하고 고생하였지만 결국 이 거사에도 힘쓸 사람은 우리네 선비가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세상 사람들이 쌓아두기만 하고 쓸 줄을 모르면서도 혹시 한 용렬한 중이 자비를 들먹이는 것을 보면 곳간을 털어주는 것도 오히려 사양하지 않는데, 내가 구걸하는 것은 용렬한 중과 다르고 군량으로 쓰이는 것은 또한 자비를 들먹이는 허황으로 돌아가는 것과는 다르므로 비록 곡식을 가지고 있고 사리에 깜깜한 자라도 기꺼이 따를 것인데 하물며 도리를 아는 선비에게는 더 말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만 전쟁의 상처를 입은데다가 이어서 번거로운 부역을 치러서 1년의 농사에 반년 먹을 저축도 없으며, 열 식구의 집에 수개월 먹을 양식이 없으니 울부짖는 어린아이는 마치 수화(水火) 속에 있는 듯한 형편이므로 정해진 세금 외에 더 거두어들여 마음 아프게 하는 것은 차마 못할 일이었다.
다행히 여러 고을의 어진 사또들이 경내의 전 관원이나 생원ㆍ진사ㆍ유생으로 생각이 있는 이들과 더불어 곡식을 얻어내는 편리한 방책을 마련하되 대략 의곡(義穀)의 예에 의하여 많이 내는 사람은 섬으로, 적게 내는 이는 말로 하며 비록 한 되나 한 홉까지라도 그 빈부에 따라 능력대로 모아 만분의 일이라도 성을 지키는 사람들의 양식에 보탠다면, 흙덩이도 족히 태산을 이룰 수 있으며, 작은 시냇물도 바다를 이루게 되는 것과 같을 것이다. 훗날 호남의 근본 계책이 오늘날 선비들의 힘으로부터 비롯될 것이니, 어찌 훌륭한 일이 아니겠는가. 자경(子敬)이 곳간을 가리킨 일을 오로지 옛날에만 있었던 아름다운 일이 되게 하지 말며, 우리가 수레로 곡식을 나르는 일도 장래에 함께 칭송하게 하라. 우리 동지들이여! 각각 힘쓸지어다.
9월 경리(經理) 만세덕(萬世德)과 감군(監軍) 두잠(杜潛)이 대군을 거느리고 모두 명나라로 돌아갔다.
○ 명 나라 군사가 철수해 돌아간 뒤에 명 나라 군사 가운데 도망하여 우리 나라에 와 머물러 있는 자가 매우 많았는데, 명 나라 조정에서 보낸 관원이 뒤를 이어 와서 모두 데려가니 도망병들은 도당들을 불러모아 위관(委官) 이 승총(李承寵)ㆍ섭 정국(葉靖國) 등을 잡아묶어 때리고 칼로 상처를 입혔다. 그리고 옥문을 부수고 옥에 갇힌 도망병 15명을 빼앗아 흥화문(興化門) 밖으로 뛰어나가 한데 뭉쳐 진을 쳤으므로 우리 나라에서 군사를 동원하여 그들을 붙잡았다. 경리 및 요동 등 아문에 자문을 보내어 이 사실을 보고하였더니, 호군 박정량(朴廷亮)을 보내어 그들을 압송해 갔다. 그후에도 뒤에 떨어져 있는 자가 전후 수백 명이었는데 차례차례 잡아서 요동 및 진강(鎭江) 아문으로 호송하였다.
○ 윤계선(尹繼先)의 《달천몽유록(㺚川夢游錄)》에 다음과 같이 이르다.
만력 경자년(1600, 선조 33) 중춘에 파담자(坡潭子)는 당직으로서 서청(西淸)에 며칠 동안을 묶여 있었다. 새벽에 승정원에서 임금의 명령을 받아 시종신 다섯 사람을 불러들여 봉서를 내려주며 제도(諸道)를 암행하라 하였는데, 파담자도 그 중에 끼어 있으므로 한강가에 모여 자면서 봉서를 떼어보니 받은 도는 호서였다. 여러 고을을 차례로 암행하여 충주(忠州)에 이르렀다. 나그네로 떠돌다보니 어느덧 3월이라, 동풍은 따뜻하게 불어오고, 달천의 물은 맑게 출렁이며 수많은 백골(白骨)은 널리고 꽃다운 풀은 더욱 푸르렀다. 9년 동안에 싸움터는 이미 묵어서 들쥐와 산성성이는 해를 보고 숨고, 주린 까마귀와 성난 솔개는 사람을 향하여 시끄럽게 우짖는다. 지친 말을 천천히 몰면서 당시를 묵묵히 회상한다. 양가에서 뽑힌 자제와 훈련받은 정병이 혹은 전공을 세우기 위해 자원해서 오고, 혹은 가흑한 관리의 징발을 당해, 허리에 활을 차고 등에 화살을 지고 싸움터에 나가서 갑옷을 깔고 북을 두드렸다. 좋은 무기를 간직하고서도 싸우지 못하니, 장군의 계책 없음이 분하다. 손을 묶고 할 일 없이 적을 맞이하여 목을 내밀고 적의 칼을 받았으니 마음을 싸매고 원한을 머금었다. 헛되이 죽은 혼이 사충(沙蟲)이 되고, 원숭이와 학이 된 자가 그 몇천만 명이나 되는지 모른다. 분한 기운이 위로 맺혀 뭉친 구름이 어두컴컴하고, 원한의 소리가 아래로 흘러 강물도 흐느낀다. 이다지도 마음을 상하고 눈을 쓰리게 하는가. 인하여 슬피 읊조리고 강개하여 시 세 편을 지었다. 그 절구에,
싸움터의 꽃다운 풀은 몇 번이나 새로웠나 / 戰場芳草幾回新
한도 없는 향규의 꿈속의 몸이로다 / 無限香閨夢裏身
비바람 불어 오는 한식절에 / 風雨過來寒食節
이끼 낀 해골들은 또 저문 봄을 맞는구나 / 髑髏苔碧又殘春
하였다. 그 율시에는,
까마귀ㆍ소리개 다 날아가고 물새도 보금자리에 드니 / 鳥鳶飛盡渚禽棲
해 떨어진 모래밭에는 길조차 희미하네 / 落日沙場路欲迷
당시를 돌이켜 생각하니 그저 아득하기만 한데 / 憶得當時空脈脈
차마 보니 꽃다운 풀은 또 푸르르도다 / 忍看芳草又萋萋
갑옷이 물을 메워 금탄강은 오열하고 / 鐵衣塡水琴灘咽
삭은 뼈는 들에 우뚝 쌓여 월악산이 낮도다 / 杇骨撑郊月岳低
뉘라서 장군으로 하여금 명예가 이르게 했던고 / 誰使將軍名譽早
거마로 하여금 헛되이 서쪽을 정벌케 하였음은 뉘우치노라 / 悔敎車馬浪征西
하였다. 또 세 번째 시에 이르기를,
동쪽은 죽령, 남쪽은 새재 / 東竹嶺南島嶺
충주가 우리나라의 뛰어난 경치를 독차지하였네 / 中原獨據靑丘勝
누가 평평한 들판에 진을 치게 하였던고 / 誰敎雲鳥陣平郊
들으니 장군이 밤중에 영을 내렸다고 / 聞道將軍夜有令
배수진도 보람 없이 병사들의 손만 묶이니 / 背水無功束萬手
회음후가 천년 뒷사람을 그르쳤네 / 淮陰誤人千載後
임금의 수레 파촉으로 간 줄을 모르고 / 不知鑾輿幸巴蜀
말없는 시냇가 백골은 하마 삭았네 / 無語溪邊已杇
뼈가 삭은 것은 아깝지 않으나 / 骨已杇不足惜
다만 그대 우리 임금의 의식을 허비한게 한이로다 / 但恨吾君費衣食
맨몸으로 강을 건너려는 필부의 용기를 / 憑河未售匹夫勇
사람들이 만인적이라 칭찬함은 우스운 일이로다 / 堪笑人稱萬人敵
하였다. 복명한 지 몇 달이 못 되어 화산(花山)의 수령으로 나갔다. 벼슬이 한가롭고 공문서도 드물었으므로 유고(遺稿)를 펼쳐보노라니, 변성(邊城)에 달이 돋아오르고, 단청한 누각에는 풍경 소리도 잠잠하다. 맑은 밤은 으슥한 베개에 의지하여 생각에 잠기니, 정신이 몽롱한 사이에 호접몽(蝴蝶夢)이 무르익어 나를 인도하여 산과 내를 뛰어넘고 문득 한 곳에 이르러 구름 안개가 슬픔을 띠고 돌시내가 원한을 쏟으며 날짐승과 들짐승은 보금자리에 들고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혼자서 배회하면서 나무에 기대어 읊조리노라니, 난데없이 질풍이 성내어 부르짖더니 살기가 온 들에 가득하고 천지는 칠흑같아 지척을 분간할 수가 없으며, 오직 보이는 것은 횃불을 든 한 패가 먼 데서부터 오는데 많은 장정들이 떠들썩하였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데 파담자는 꼼짝도 못하고 섰었는데 머리털이 오싹했다. 급히 숲속으로 피하여 그들의 하는 짓을 엿보니, 서로 뒤섞여 울부짖는데 겨우 그 형체를 분간할 수 있었다. 혹은 머리가 없는 자, 혹은 오른팔이 잘렸거나 왼팔이 잘린 자, 혹은 왼발을 잘린 자, 오른발을 잘린 자 혹은 허리는 있으면서 다리가 없는 자, 혹은 다리는 있으면서 허리가 없는자, 혹은 배가 팽팽하여 비틀거리는 자는 아마 물에 빠진 것이리라. 모두 머리카락을 온통 얼굴에 풀어헤치고, 비린내 나는 피가 사지(四肢)에 쏟아져 참혹해서 차마 볼 수가 없었다. 하늘을 향하여 한 마디 부르짖고 가슴을 두드리며 통곡하니 산이 흔들리고 흐르는 물도 멎는 듯했다. 이윽고 구름이 흩어지고 달은 높은데, 온 세상이 쥐죽은 듯이 고요하다. 흰 이슬은 서리가 되어 갈대는 우거지고 찬 별은 쓸쓸하고 넓은 들은 빨아서 널어놓은 명주와도 같다. 여러 귀신들이 눈물을 닦고 말하기를,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이 원한은 그지없구나. 달은 밝고 바람은 맑으니 이런 좋은 밤을 어이할꼬. 한바탕 이야기나하여 이 밤을 지새우자.” 하며, 목소리를 모아 노래하기를, “살아서도 쓰이지 못했는데 죽어서 또한 무엇을 하리. 나를 낳은 것은 부모인데 나를 죽인 자는 누구인고? 우리를 길러주신 임금의 은혜가 깊으니, 나라의 일이 위급할 때에 대장부 한번 죽음은 아까울 것 없으나, 장군이 말을 너무도 쉽게 해서 이다지도 극도에 이르렀네.” 하였다. 노래가 끝나자 여러 귀신들이 무릎을 맞대고 앉아서 서로 말하기를, “늙은 부모님께 맛있는 음식은 누가 드리며, 안방의 아리따운 아내는 원망의 눈물이 속절없이 많으리. 나의 죽음을 반신반의하다가 안마(鞍馬)만 돌아오는 것을 보고서 함께 살 인연이 끊어졌다 하여 그저 지전을 뿌리며 초혼하는 것을 번거로이 할 뿐이리라. 생각이 이에 미치니 어찌 답답하지 않으랴.” 하였다. 그중의 한 귀신이 빙그레 웃으며, “무엇을 그리 지껄이느냐? 이 사이에 혹시 세상 손님이 몰래 엿듣고 있지나 않느냐?” 하였다. 파담자는 그들이 벌써 알아차렸음을 알고 달려가서 뵈니 일제히 일어나 넌지시 읍하고 말하기를, “그대는 전날 여기를 지나간 이가 아니오? 그때에 보내준 시를 우리들은 잘 받았소. 그 시와 율은 풍자가 잘 되었으며, 절구는 처절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읽을 수 없게 하니 참으로 이른바 귀신도 울리는 문장이었소.
오늘 저녁이 어떤 저녁이기에 다행히도 군자를 만나 보니, 구름 같은 지난 일을 낱낱이 이야기할 수는 없소만 그 중의 한두 가지 말해야 할 것이 있으니, 그대는 듣고서 세상에 전해주면 매우 다행이겠소이다.” 하고는 곧 털어놓기를, “장수는 삼군의 생명을 맡은 이요, 병사는 한 사람이 지휘하여 쓰는 것이니 만일에 장수가 어질지 아니하면 반드시 일을 망치는 법이오. 중원(中原) 충주(忠州) 은 지세가 뛰어나서 실로 남기(南紀)요, 초점(草岾)은 천험(天險)의 으뜸이요, 죽령은 지리로 따져 믿을 만한 곳이므로 한 사람이 관문을 지키면 만 사람도 열지 못함은 촉도(蜀道)보다 어렵고, 백 사람이 요새를 지키면 천 사람으로도 뚫고 지나가지 못함은 위험하기 정형(井陘 하북성 정형산 위에 있는 요새)같으니, 나무를 깎아서 목책(木柵)을 만들고 돌을 쪼개어 병거(兵車)로 삼으면 북쪽 군사가 어찌 날아선들 건너오리오. 남풍이 죽어가는 소리를 싣고 오지 않을 것이니, 푹 쉰 아군으로 피로한 적을 기다리면 장사는 베개를 높이 하고, 주인이 되어 객을 제압하면 승패는 바둑판같이 훤하거늘, 아깝도다! 신 공의 계략이 이러하지 못하고 그 위엄을 가지고 자기 주장만 내세웠다. 김 종사(金從事)의 청이 어찌 근거가 없으리오. 이순변(李巡邊)의 말이 참으로 일리가 있었건만, 듣지는 않고 감히 억측으로 결정하였던 것이오. 신 공의 말이, ‘배에서 내린 적은 거위나 오리처럼 걷기가 어렵고, 길을 두 배로 빨리 달려온 적은 개ㆍ돼지와 같이 계략이 없는 법이니, 평평한 큰 들판에서 단판 싸움에 때려부술 수 있을 것이다. 높은 산 험한 고개에 두 길로 갈라서 지킬 필요가 어디 있겠나?’ 하고, 드디어 탄금대(彈琴臺)로 퇴진하여 용추(龍湫) 물가에 탐정을 보내어 정탐하게 하고, ‘세 번 호령하면 북을 치며 오위(五衛)의 군사에게 재갈을 물려 까닭없이 군사를 놀라게 하는 자를 베는 것은 손자(孫子)의 병법이요, 사지(死地)에 놓여야만 마침내 산다 함은 한신(韓信)의 기이한 계략이다.’ 하였소. 이는 거문고의 기둥을 아교로 고착시켜 놓고 거문고를 뜯는 것이나, 나무 그루만 바라보며 토기 오기를 기다리는 식이라. 효원(孝元)을 죽이고, 안민(安敏)을 목벤 일도 본래 이런 데서 말미암은 것이며, 건아(健兒)는 핏덩이가 되고 장사(壯士)는 고깃밥이 되었으니 또한 참혹한 일이 아니겠소. 더욱 우스운 것은 서릿발 같은 큰 칼과 해에 번쩍이는 긴 창을 번득이면서 날뛰고 고함지르며 한참 싸우는 판에 별안간 진지를 바꾸어 징을 치고 깃발을 눕히니 그 당당하고 정연하던 대형세가 구름같이 흔들리고 새처럼 흩어져 용감하고 씩씩하던 군사가 뒤만 돌아보고 두 손을 모아서 드디어 관문을 뛰어넘고 배를 끼고 강을 건너뛰던 용기와 박차고 일어나 싸우려던 힘으로 하여금 마침내 피투성이로 쓰러지게 했으니, 당시의 일을 어찌 차마 말할 수 있겠는가. 잘 싸우는 장수는 있어도 잘 싸우는 병졸은 없었으니, 어찌 우리들만 목이 베어졌겠소. 불세출의 재주를 가지고 전무후무한 공을 세우려 하니, 우리가 이러한 죽음에 어찌하겠소?” 하였다.
말을 마치자 근심스러운 낯빛으로 눈물이 비오듯 하였다. 이윽고 피로한 기색을 띤 장부가 부끄러워운 빛이 얼굴에 가득하여 고개를 떨어뜨리고, 어정거리며 그 발은 머뭇머뭇, 그 입은 말을 못하고 여닫기만 하다가 읍하고 고하기를, “고아가 된 아들, 과부가 된 아내들의 원한이 내 일신에 모였으니, 내 비록 죄진 몸이나 오늘 그대들의 말에 있어 어찌 변명하지 않겠소. 나는 본래 장군 가문의 후손으로, 계보는 귀인의 집에서 나왔으므로 기운은 소도 삼킬 만하고 성품은 말달리기를 좋아하였소. 삼세의 경계에는 어두웠으나 만인을 대적할 수 있는 병법을 배웠으며, 무과에 급제하여 호방(虎榜)에 장원급제는 못했지만 백보 밖의 버드나무 잎을 뚫을 정도로 활쏘는 재주를 참으로 배웠더니, 밝은 임금에게 그릇 알려져서 외람되이 임금의 은혜를 받아 변방을 지키는 장수가 되었소. 북쪽의 오랑캐가 준동하였을 때에는 서관(西關)에 장성(長城) 구실을 하며 번개처럼 한 칼로 소탕하여 적을 없애버렸고 우레같이 삼군을 움직여 그 소굴을 무찌르니, 마치 강동(江東)이 장요(張遼)의 이름에 우는 아이들도 울음을 그치며,새북(塞北)이 이목(李牧)의 위엄에 눌려 말[馬]도 두려워하여 감히 나아가지 못하였던 것같았지요. 공은 적었으나 보답은 무겁고, 지위가 높으니 뜻도 높았소. 한강과 금강의 사이를 달리니, 금띠를 허리에 차고 승명려(承明廬 한 나라 때 신하들의 숙직소)에 드나들 때 임금께서는 칭찬하는 말씀을 하셨소. 변방의 풍진이 한번 일어나자 봉화의 신호가 석 달을 계속하니, 장수로 제수한다는 명령을 받자 곧 전장에서 죽을 각오를 하고 어전에서 간절히 아뢰는 말씀에 임금께서 감동하시어 일선 장수를 통솔할 권한을 전적으로 나에게 맡겼소. 적을 훤히 꿰뚫어보고, 군사는 손바닥 위에서 운용하게 되었으니, 처음에는 옷소매를 걷어올리고 강한 놈을 종아리만 때리기로 작정하고 문을 열어 도적을 끌어들일 것을 깨닫지 못했소. 자기 의견만 고집하면 작아진다는 옛 사람의 가르침을 잊어버렸고 적을 업신여기면 반드시 패하는 법이라, 마복군(馬服君)의 아들 조괄(趙括)의 일과 같았으나, 어찌 사람의 잘못만이겠소. 역시 하늘이 도와주지 아니하였소. 어려(魚麗)의 진을 치지도 못한 채 왜적이 선수를 치니 형세는 북산(北山)을 차지한 자가 이긴다 하듯이 지리적 조건도 비록 편했지만 사람들이 다투어 동해(東海)에 뛰어들어 죽었으니, 대사는 이미 끝났소.
아! 어디로 돌아갈꼬. 나 홀로 무엇을 할 것인가. 드디어 여덟 자의 몸을 만길 물속에 던졌던 것이오. 놀란 물결이 넘쳐도 이 부끄러움은 씻기 어려우므로 맑고 빠른 여울은 슬피 흐느끼면서 다투어 나의 회포를 호소하지요. 가끔 구름이 골짜기 어귀에 잠기고, 달이 못 가운데 비치는데 넋은 외로워 의지할 곳이 없고, 그림자는 홀로 서러워하네. 세월이 덧없이 가고 억울한 심사는 미처 펴지 못했는데 다행히도 그대를 만나 마음속을 털어놓게 되었소. 아! 항우(項羽)가 산을 뽑는 힘과 세상을 뒤덮을 기개를 가지고 백 번 싸워 백 번 이겼지마는 마침내 오강(鳥江)에서 패하였으며, 제갈량(諸葛亮)이 와룡(臥龍)의 재주로 한(漢) 나라를 붙들려는 충성을 품고 기산(祁山)에 다섯 번을 나가 싸우고 다섯 번을 돌아왔으나 보람이 없었으니, 이것은 하늘이 한 일이라 사람이 어찌 하리오. 그러니,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랴. 아! 저 아득한 하늘이여!” 하고는 슬피 노래부르며 눈물 흘려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였다. 이윽고, 곁에 있던 한 사람이 눈썹을 치켜올리고 눈을 부릅뜨고 신 공을 돌아보며 하는 말이, “시루는 이미 깨어졌고, 일은 이미 지나가 버렸으며, 성패는 운수가 있고, 시비는 이미 결정되었는데 다시 무슨 여러 말을 할 필요가 있겠소. 오늘밤에 여러분이 더 찾아올 것같소. 마침 방외인이 찾아와서 근처에 있으니 윗자리에 맞이하여 우리들의 즐거움을 보이는 것이 좋겠소.” 하였다. 미처 앉기도 전에 거마의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사면에서 구름처럼 모여든다. 혹은 깃발을 휘날리고 창검이 삼엄하며 혹은 부인(符印)을 차고 초라한 의관들이 벽제(辟除)하면서 길을 인도하여 문득 대하(臺下)에 이르러 백면서생(白面書生)과 홍안무부(紅顔武夫)들이 머뭇거리며 겸손하게 읍하고 자리에 오르내리는데 갑자기 많은 배들이 모여들어 강길에 노젓는 소리가 요란하고 바람을 실은 배들이 천리를 잇대어 마침내 노주(蘆洲)에 닻줄을 매었다.
대장군이 누른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내려오니, 여러 손님들이 일제히 일어나 맞이한다. 장군이 첫째 자리를 차지하니 곧 오른쪽이다. 왼쪽 자리의 첫째는 고 첨지(高僉知) 경명(敬命) 이다. 다음은 최 병사(崔兵使), 그 다음은 김 원주(金原州), 다음은 임 남원(任南原), 다음은 송 동래(宋東萊), 다음은 김 회양(金淮陽), 다음은 김 종사(金從事), 다음은 김 창의(金倡義), 다음은 조 제독(趙提督)이었다. 오른쪽 자리의 다음은 황 병사요, 다음은 이 병사, 다음은 김 진주(金晉州), 다음은 유수사(劉水使), 다음은 신판윤(申判尹), 다음은 이 수사, 다음은 이첨사(李僉使), 다음은 정 만호(鄭萬戶)였다. 남쪽줄 자리에는 심 감사(沈監司)ㆍ정 동지(鄭同知)ㆍ신 병사(申兵使)ㆍ윤 판사(尹判事)ㆍ박 교리(朴校理)ㆍ이 좌랑(李佐郞)ㆍ고 임피(高臨陂)ㆍ고 정자(高正字)이고, 아랫자리는 승장(僧將)이었다. 김 종사(金從事)가 여러 좌우들에게 말하기를, “속세의 선비가 여기에 있으니 맞아들이는 것이 어떻겠소?” 하니, 첨지가 좋다고 하였다. 그래서 파담자도 말석을 차지하였다. 자리가 이미 정해지니 금소반에 아름다운 떡이 좌우에 가지런히 놓이고, 관현악의 비장한 가락이 뒤섞여 어울린다. 풍악이 끝나기도 전에 장군이 정 만호를 불러, “네가 소와 말을 잡아놓고 탁주를 강물에 흘려 부하들에게 마시게 하여 군사와 함께 즐기고 풍악을 즐기게 하라.” 하고, 이에 북채를 잡고 북을 울리니 그 소리가 천지를 흔든다. 여러 귀신들이 좋아라고 날뛰며 고함을 지르고 기세를 부렸다. 첫째 자리의 고 첨지가 나아가 말하기를, “오늘의 즐거움은 즐겁기는 즐겁소. 귀한 손님이 자리에 있고, 이렇게 성대한 잔치가 다시 있기 어려우니 어찌 여러 군사를 물리치고 각각 그 뜻을 이야기하게 하지 않겠소.” 하자, 장군이 곧 징을 치게 하여 지휘하니, 삼성(參星)은 아직 기울지 않았는데 옥토끼가 하늘에 뜨니 모든 동물은 소리를 거두고, 나무 그림자는 서로 얽혀 비친다. 호위병으로 하여금 연잎 금잔에 술을 붓게 하니, 두서너 순배에 취기가 살가죽에 떠올라서 화기가 무르익는다. 왼쪽에서는 붓을 들어 시를 읊고, 오른쪽에서는 거문고를 뜯으며 노래부르니 불평의 노래가 아래로부터 올라온다. 고 정자가 나아가 말하기를, “어버이의 슬하를 떠나지 않고 진중에 외람되어 모셔 매양 맛있는 음식을 받들고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리던 차에 전세가 불리하여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죽었소. 비영(丕寧)의 종이 한 팔이 잘렸으나 구제하기 어려웠으며, 변호(卞壺)의 아내가 아비와 아들을 곡한 것이 무엇이 부끄러우리오. 해골이 서로 버티고 혼백이 함께 노니오.” 하고, 이에 읊기를,
지하에도 삼강이 중하고 / 地下三綱重
인간 사에는 만사가 헛되구나 / 人間萬事虛
항상 아버님의 뒤를 따르거니 / 尙堪隨杖屨
행색이 어떠한가 묻노라 / 行色問何如
하였다. 고 임피가 또한 나아가 말하기를, “군영의 고아로서 세상에 다시 없는 지극한 슬픔을 안고, 호부(虎父)에 견자(犬子)가 될까 두려워, 새매의 날개에 종달새가 찢길 것도 잊어버리고, 피눈물 흘리며 창을 베개 하고, 뼈에 사무친 원한을 갚기 어려워 목숨을 버리고 의를 취한 무리가 싸락눈처럼 모여들어 관흥(關興)ㆍ장포(張苞)의 승전을 날짜를 정해 놓고 기다릴 만하였는데, 결국 고기를 굶주린 범의 아가리에 던져준 결과가 되었으니, 죽어서도 소원을 풀지 못하게 되었소.” 하고, 이에 읊기를,
비바람 해마다 지나가니 / 風雨年年過
모래밭에 묻힌 뼈에도 이끼가 끼었네 / 沙場骨亦苔
평생에 원수를 갚으려던 뜻은 / 平生報仇志
조금도 삭아지지 않았노라 / 一寸未成灰
하였다. 이 좌랑(李佐郞)이 또한 나아가, “부형(父兄)의 하던 일을 이어받아 입으로 성현의 남기신 글을 외웠지마는 경륜의 재주가 부족하여 조정에서 일하기 어려웠으며, 전쟁하는 용기 또한 용렬해서 왜적의 포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한 장의 편지를 아내에게 부쳤으니 장부로서 가소로운 일이며, 두 개의 귤을 형에게 던졌으니 원귀(寃鬼)가 가련하다. 비참한 정상이 어찌 이다지도 극도에 달했는고.” 하고, 이에 읊기를,
몸은 청유막을 돕는데 / 身佐靑油幕
왜놈이 세류영을 엿보았네 / 胡窺細柳營
구름을 탄 용이 홀연히 거꾸러지니 / 雲龍忽顚倒
왜적이 벌써 날뛰는구나 / 豺虎已縱橫
칼은 장홍의 피가 새파랗고 / 劍碧萇弘血
꽃은 두견새 울음소리에 붉도다 / 花紅杜宇聲
백골을 거두어줄 사람 없는데 / 無人收白骨
방초는 온 들에 푸르도다 / 芳草遍郊生
하였다. 박 교리가 또한 나아가서 말하기를, “나이 겨우 열 여덟에 이름이 전국에 으뜸가고, 금마옥당(金馬玉堂)을 단번에 뛰어올랐으며, 어로(御爐)의 푸른 연기 속에 하루에 임금을 세 번 알현했으니, 은총이 이미 넘쳐 재앙이 또 닥쳐왔네. 뉘 알리오. 대궐의 뜰에서 하직을 올리자마자 문득 왜적의 소굴에서 참몰당할 줄을. 말을 달리는 재주는 썩은 선비에게 본래 해당되지 않지만 사람의 목숨을 하늘에 어찌 의지하랴. 고향은 아득하고
나의 몰골은 처량하기만 하구나.” 하면서 읊기를,
희고 고운 얼굴은 사람들 가운데 적은데 / 白面人中少
붉은 연꽃은 막사 안에 피었구나 / 紅蓮幕裏開
명성이 비록 자자하였으나 / 聲華雖籍甚
천명은 이미 쇠하였도다 / 天命已衰哉
갈길이 머니 이 넋을 어디에 의탁하리오 / 路遠魂何托
세월이 오래 되니 뼈도 또한 부서지누나 / 年深骨亦摧
달은 대궐문에 밝으니 / 月明靑鎖闥
밤마다 내 넋은 홀로 돌아가노라 / 夜夜獨歸來
하였다. 윤 판사가 또 나아가서, “양반집 자손이요 대부의 신하로서 때가 맞지 않아 운명이 다하고 하늘이 순탄하지 않아 일이 잘못되니, 많은 선비 중에서 혼자 뽑힌 몸이 마침내 난리통에 쓰러졌소. 집에 계신 부모님은 늙고 쇠한데 소식이 끊겼으며, 호교(湖橋)에 산은 높고 물은 아득하여 길조차 먼데, 밝은 달을 따라 집에 돌아가고, 슬픈 바람에 부쳐 나무에 외치노라.” 하면서 읊기를,
젊은 시절 활쏘기는 익히지 않았으니 / 桑弧少不習
늘그막에 말도 타기 어렵도다 / 陣馬老難騎
남은 운명 어찌하여 이다지도 기구한가 / 殘命何多舛
뜬 이름은 일찍부터 속임을 입었다오 / 浮名早被欺
구름을 바라보는 그쪽에는 하늘이 아득하고 / 天昏望雲處
해가 저무니 부모가 문을 기대고 자식 기다릴 때로세 / 日暮倚閭時
쓸쓸하다 외로운 넋이 남아 있으니 / 寂寞孤魂在
빈 산에는 소쩍새가 슬피 우네 / 空山哭子規
하였다. 신 병사가 또한 나아가 말하기를, “일찍 무과에 급제하여 병서를 대략 익힌 탓으로 벼슬을 건너뛰어 병조에 적을 두고 북문을 맡았더니, 시운이 막히어 임금의 파천을 슬퍼하게 되었소. 군사를 거느리고 저 철령(鐵嶺)을 넘어 원수(元帥)를 만나 임진(臨津)에 진을 쳤소. 나라의 치욕을 씻고, 아울러 형의 원수를 갚고자 군사를 재촉하여 물을 건넜으나,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고 맨몸으로 강을 건너려는 격이라. 군사와 말이 모두 희생되었으니 비록 후회한들 이제 무엇하리오.” 하고, 이에 노래하기를, “강물은 유유히 흐르는데, 넋은 한번 가고 다시 돌아오지 않네. 바람은 소소히 언덕에 불고, 음산한 구름은 하늘을 덮어 날은 차갑네. 누군들 형제가 없으리오마는 어찌 우리 집안에만 이다지도 가혹한고. 물고기 배에 나의 뼈를 묻게 되었으니 해가 갈수록 잊혀지지 않네.” 하였다. 정 동지가 또 나아가서, “일찍 시서(詩書)를 익히고 병법은 배우지 못하였네. 다행히 과거에 급제하여 오래 벼슬에 매여 있다가 전쟁에서 손님접대하는 구실을 맡았고 높은 벼슬에 올랐소. 복이 과하면 재앙이 생기니, 은혜는 깊고 죽음은 가벼워라. 넋은 전장터에 떨어지고, 뼈는 모래밭에서 썩으니, 언제나 슬픔을 품고 있는데 세월은 덧없이 빠르기만 하오.” 하고는 읊기를,
사나운 왜적과 부딪쳐 성호를 박차니 / 驕鋒一犯蹴城濠
오작교 언저리에 살기가 드높다 / 鳥鵲橋邊殺氣高
서생이 싸움에 나갈 것을 진작 알았더라면 / 早識書生事征戌
말을 달리고 활과 칼을 익혀볼 것을 / 且將馳馬慣弓刀
하였다. 심 감사가 또 나아가, “적의 포위 속에서 어명을 받고, 나라가 절단난 나머지에 임소로 오니, 종묘사직은 폐허가 되어 서울을 바라보며 속을 썩히고, 병력은 모자라 기내에서 군사를 모아들이니, 옷의 띠를 풀 겨를도 없이 오직 나라에 은혜를 갚는데 에만 충실하였소. 삭녕(朔寧)에서 군사를 잃은 것은 그 실패의 원인이 비록 지략이 없는 탓이었다고 하지만 종로 네거리에서의 효수는 다행히 가져갈 아들이 있었으니, 팔자대로 죽었는데 내가 다시 무슨 말을 더하리오.” 하며, 읊기를,
푸른 산 깊은 곳에 관청문은 닫혔는데 / 碧山深處掩官扉
척후마는 밤중에 나가 돌아오지 않네 / 候馬中宵去不歸
넋은 창칼에 흩어지니 아관 진형도 다 흩어지고 / 魂散劍鋒鵝鸛盡
적막한 새벽 하늘에 지는 달빛만 비치도다 / 曉天寥落月斜輝
하였다. 정 만호가 이에 큰 칼을 들고 일어나서 춤을 추며 〈돛을 내리는 노래〉를 부르며 말하기를, “나라의 위급함을 염려하며, 고을에 사내다운 사내 없음을 나무랐네. 살아서는 장군과 함께 일을 같이하고, 죽어서는 장군과 처소를 같이하니, 하늘을 우러러 무엇이 부끄러우며, 땅을 굽어 무안할 것이 무엇이랴.” 하였다. 그 지기(志氣)가 활달하고 격조가 비장한데 그 노래에 이르기를,
돛대는 높아 백 자나 되고, 큰 돛은 구름같구나 / 檣高百尺兮大帆如雲
푸른 바다 넓고 넓은데 물결은 잔잔하기도 하다 / 碧海茫茫兮波不生紋
왼쪽은 부산이요, 오른쪽은 대마도라 / 左釜山兮右馬島
취한 눈을 부릅뜨니 기운이 훈훈하네 / 瞋醉眼兮微醺醺
몸이 먼저 죽어 뜻을 이루지 못하니 / 身先死兮志未遂
장한 기운 내뿜어 구름 끝을 범하네 / 噓壯氣兮干雲端
대장부가 구질구질해서 되겠는가 / 大丈夫不可瑣瑣兮
한 알의 탄알을 슬퍼해서 무엇하리 / 何用悲乎一彈丸兮
하였다. 이 첨사가 또한 나아가서, “비록 백 사람의 으뜸은 못 되지마는 한낱 외로운 충성을 자처하오. 소륵(疏勒)에서 성를 지킬 적에 경공(耿恭)을 도위(都尉)로써, 적벽(赤壁)에서 배를 불사를 적에 정보(程普)를 우독(右督)으로써 면려하였는데, 창같은 자줏빛 수염이 오래 강 모퉁이에 머물러 있고, 수풀같이 늘어선 배들이 모두 손 아래 달려있었소. 대마도를 깎아서 바다를 메워버리렸더니, 어찌 붕새의 날개가 꺾일 것을 생각하였으리오. 넋은 날아가고, 용기는 다하니 원한이 푸른 바다에 막혔도다.” 하고, 이에 읊기를,
큰 바다는 저렇게 깊은데 / 大海深如許
외로운 몸은 원한이 가득하도다 / 孤身怨有餘
장한 뜻은 아직 펴지도 못하였는데 / 壯心售未了
거센 물결은 허공에 부딪쳐 푸르도다 / 鯨浪碧磨虛
하였다. 이 수사가 이에 일어나 청하기를, “한 마음으로 나라를 위하다가 죽었으면 그만이지 이미 지나간 일을 이제 와서 말해 무엇하리오. 청컨대, 여러 대인을 위하여 농이나 하나 하겠소.” 하며, 긴 허리를 굽히고 늙은 주먹에 침을 뱉아 노를 저으며 즐기는 시늉을 하고, 취하여 노래 부르기를, “두병(斗柄 북두칠성의 국자 자루에 해당하는 세 별)은 길게 기울고, 밀물은 오르려 하고. 뱃사공들아! 배를 띄워 가잤구나. 왕사(王事)를 튼튼히 하라는 장군의 명령이 지엄하니, 부상(扶桑)이 지척이라 또 긴 돛이 걸렸구나.” 하였다. 신 판윤이 또 나아가서, “미천한 나의 회포는 이미 대강 말하였소.” 하고, 읊기를,
국내에서 명성도 일찍 났는데 / 國中名譽早
죽은 뒤에는 시비도 많도다 / 身後是非多
한 번 패하고 본진으로 돌아와서 / 一敗還關後
처량하게 큰 칼 어루만지며 노래부르네 / 悽然撫劍歌
하였다. 유 수사가 또한 나아가서, “영웅은 죽음을 아까워하는 것이 아니라, 헛된 죽음을 아까워 하는 것이오. 좋은 장수는 빠른 것을 귀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신령스러운 것을 귀히 여기는 것이오. 생각건대, 그날 어떤 사람이 늙은 나더러 겁이 많다고 꾸짖고 양처럼 구박하며, 이제 윗도리를 벗고 범을 잡으라 하니, 나라의 은혜를 받은 것이 두세 번이라 죽어 마땅하지만, 싸우다가 죽은 자가 천백을 헤아리니 그 참혹함을 어찌 차마 말하리오. 활이 꺾이자 주먹을 휘두르고, 칼에 맞아 머리가 깨어져 해골은 황량한 들판에 드러나고 슬픔을 큰 강물에 쏟는구려.” 하고 읊기를,
배수에 꽉 찬 군사 늙은 이리를 치는데 / 背水嬴兵搏老狼
한 사람 방책 없어 만 사람이 죽었네 / 一人無策萬人亡
산하의 잔풀이 해마다 푸르르니 / 山河細草年年緣
지나는 길손이 싸움터를 가리키네 / 惟有行人指戰場
하였다. 김 진주가 또한 나아가서, “다행히 하늘에 빛나는 신령의 도움으로 성을 보전한 공적이 조금 있었던 바 포상의 영광이 분에 넘쳐 감격하여 몸을 바쳤소. 강성한 오랑캐 군사가 잠깐 우이(盱眙)에서 꺾이더니, 자기(子琦)의 군세(軍勢)가 수양(睢陽)에 다시 모이자, 그물로 참새를 잡아먹고 땅을 파서 쥐를 잡아먹다가 계책이 다하여 말을 잡아먹고 뼈를 깎아 불을 때고, 아들을 바꾸어 먹으면서도 양을 끌고 항복할 생각은 없었소. 뜻을 더욱 삼판(三版 세 길 되는 성)에만 쏠렸으나, 몸이 돌연히 한 알의 탄알에 쓰러졌소. 임금의 특별한 은총에 보답하지 못하니, 장한 회포 풀기 어렵구려.” 하며, 노래하기를, “누각 밑 바위는 깎아지른 듯한데, 그 밑에 긴 강 있어 푸른 물결 쓸쓸하도다. 장사가 오래 포위되어 변방의 티끌이 까맣고, 총소리 하늘을 흔들어 대 쪼개는 소리같구나. 은혜는 태산같고 몸은 홍모(鴻毛)같으니, 피는 흘러 갑옷을 물들인다. 땅은 넓고 하늘은 높은데, 미친 바람이때로 일어 노기를 떨치누나.” 하였다. 이 병사가 또한 나아가서, “적군이 운봉(雲峯)을 넘어오니 저 명나라 장수가 혼자서 대방(帶方 남원)을 지키면서 남원을 함락한 왜적이 구례(求禮)로부터 온 것을 운봉에서 왔다고 한 것은 잘못 전해들은 것이다 우리 나라 군사를 지휘하니, 여러 군진에서는 그것을 앉아서 보고만 있었소. 나는 나라의 수치라고 민망히 여겨 한 기마로 달려갔으나 관하에는 겨우 30여 명이 있을 뿐이었는데 성 밖 적군의 그 수효가 백만이었소. 아홉 번 공격하여도 떨어뜨리기 힘든 성이 단번에 무너졌으니 어찌 참혹한 일이 아니겠소. 의로운 충성을 한번 펴보지도 못하고 쌓인 시체들과 함께 썩었소.” 하고, 읊기를,
교룡성(남원산성) 낡았는데 남은 구름 사라지고 / 蛟龍城古殘雲斷
오작교 쓸쓸한 데 지는 해만 차갑구나 / 鳥鵲橋荒落照寒
백골의 떨기 속에 많은 세월 흘렀으니 / 白骨叢中多歲月
장부의 백발이 꿈속에 솟아 관을 찌르네 / 壯夫華髮夢衝冠
하였다. 황 병사가 또한 나아가서, “하찮은 몸이 쓸 데는 없으나 외로운 성을 의지하여 총지휘자가 되었소. 바람은 일만 깃발에 위엄을 날리고, 비는 한쪽 모퉁이에서 화를 빚어, 탄알이 어느새 이마에 맞자 적들은 다투어 성에 기어올랐소. 이는 하늘이 망하게 한 것이지 잘못 싸운 죄가 아니니, 이 일을 난들 어찌하리오. 새끼줄이 끊어지면 자국이 있는 법이니, 누가 나를 허물하겠소. 성을 오르면서 흘린 피를 마시며 싸운 상처를 싸매었소.” 하고, 〈성을 쌓는 노래[築城之歌]〉를 지어 이르기를,
궂은 비 열흘이나 잇달아 내리니 벼이삭에 귀가 돋히고 / 遙雨連旬兮禾頭生耳
우뚝한 옛성은 사뭇 높아 무너졌네 / 古城崔嵬兮崇極而圮
달구질 소리, 에헤야! 성쌓기에 힘쓰자 장사들이여 / 萬杵馮馮兮勖哉與士
적이 올라오면 우리들이 다 죽는다 / 賊若攀登兮吾屬且死
하였다. 김 회양이 또한 나아가서, “오른쪽 자리에 앉은 이는 모두 장사들이니, 시시한 선비가 뒤를 이어볼까요. 회양이 험한 지형으로 본래 3면이 그물같다고 이름이 났는데, 늙은 저는 당황하여 한 명의 병사도 단속하지 못하고, 오직 맡은 땅을 지키고 도망하지 않을 줄만 알고서 책상에 의지하여 스스로 자멸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소. 손에는 인수(印綬)를 쥐고 피는 조복(朝服)을 적셨소.” 하고, 읊기를,
회산은 우뚝하고 / 淮山嵥嵥
회수는 도도한데 / 淮水滔滔
외로운 넋이 머뭇거려 / 孤魂躑躅
일과 마음이 서로 어긋나네 / 事與心違
먼 옛날 기나긴 밤에 / 萬古長夜
나를 알아줄 사람 누구인고 / 知我者誰
온서가 넋이 있다면 / 溫序有魂
나는 가서 따르리라 / 我往從之
하였다. 조 제독이 또한 나아가서, “내딴에는 식견이 조금은 있다고 여겼는데, 여러 사람들은 나를 광인이요 천치라 비웃었소. 흉칙한 왜적이 우리 나라에 정성드리는 꾀를 알아차리고서 대의를 들어 물리쳐버리라는 소를 올렸소. 순모(郇模)가 광주리를 가진 것은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이요, 서복(徐福)의 섶을 옮겨 쌓으라는 것이 어찌 우연이었겠소. 국경을 침범했는데도 왜 사신의 머리를 자를 것을 결단하지 못하므로, 쟁기를 놓은 것은 오로지 근왕(勤王)을 위한 것이오. 적의 예봉을 꺾고 강한 적병을 무너뜨려, 상당(上堂 청주)의 호통소리가 하늘을 흔들었소. 승세를 타서 싸우다 패하니 금산(錦山) 백성들의 간뇌(肝腦)가 땅을 발랐소. 남아는 불의에 굽히지 않고 의로운 죽음을 편안하게 여겼소.” 하고 읊기를,
공자는 몸을 죽여 인을 이루라 하였고 / 孔曰成仁
맹자는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라 하였네 / 孟曰取義
성현의 글을 읽었으니 배운 일이 무엇이뇨 / 讀聖賢書 所學何事
바람이 빨라도 풀은 굳세고 / 風疾草勁
임금이 모욕당하면 신하는 죽는 법 / 主辱臣死
운뢰같이 격문을 띄우고 / 傳檄雲雷
하늘과 땅에 굳게 마음을 맹서했지 / 誓心天地
돌아다니면서 3천 명의 군사를 모집하니 / 歷募三千
용감한 군사였지요 / 赳赳多士
서원(청주)에서 크게 이기고 / 西原大捷
위세가 여러 진영에 떨쳤는데 / 威震列壘
금산에서 적을 업신여겨 / 輕敵錦山
마침내 뜻을 못 이루었소 / 竟致齎志
날이 가고 달이 가는데 / 日居月諸
썩은 뼈무더기 속에서 / 杇骨叢裏
넋은 오히려 창피하오 / 魂尙忸怩
나라의 수치가 되다니 / 爲國之恥
하였다. 김창의(金倡義)가 또한 나아가서, “우연히도 왜적의 침략을 입어 우리의 견고한 성곽이 유린되었으므로, 왜적의 힘을 요량하지 않고 의병을 규합하였소. 초야에 한가로이 살지만 감히 임금이 주여숙(柱厲叔)을 알아보지 못함을 말했겠소. 강도(江都 강화)의 뛰어난 지형은 경선(景仙)이 먼저 점거한 것을 배우게 하였소. 오랫동안 한양에 있는 왜적의 소굴을 엿보면서 비록 소탕하지는 못하였으나, 진산(晉山 진주)성을 가서 지킨 것은 실로 깊은 생각이 있었던 것이오. 그런데 하늘이 순리를 따르는 자를 돕지 않아 일이 마침내 구제하기 어렵게 되었으니 속절없이 낙락한 회포만 남아서 처량히 우는 귀신을 따르게 되었소.” 하고, 읊기를,
저녁 까마귀 울며 흩어지고 달은 성에 뜨는데 / 昏鴉啼散月臨城
누각 허물어진 터에는 해묵은 풀만 펀펀하도다 / 樓觀荒墟宿草平
오직 대수풀 있어 꺾어도 다하지 않고 / 唯有竹林摧不盡
해마다 비바람에 죽순이 가지런히 돋아나네 / 每年風雨笋齊生
하였다. 김 종사가 또한 나아가서, “문장은 천하의 명성을 차지하고, 힘은 6균(鈞)의 활을 당겼소. 호방한 한 평생이 작은 예절에는 구애되지 않았소. 용만(龍灣)에서 범한 일은 실로 국법에 저촉되는 일이라 옥에 갇힌 죄수가 앉아서 기이한 계책을 감추고 있다가, 삼가 석방의 은명을 받고서 국난에 나가기를 꺼리지 않았소. 날뛰는 추한 무리 왜적을 흘겨보며 섬멸하기를 굳게 기약하였으나, 도원수의 패배를 구원하지 못하였으니 그 죄는 마찬가지요.” 하고, 읊기를,
탄금대 아득하고 얕은 여울이 조잘거리니 / 彈琴臺逈淺灘鳴
외로운 신하를 위해 불평을 울리누나 / 時爲孤臣作不平
생각하니 개부막(장군의 막사)에 잘못 편입되어 / 憶得誤編開府幕
몇 번이나 좌거의 병법을 헛되이 말했는고 / 幾回虛說左車兵
시냇가에 뼈는 썩었으나 붉은 마음은 살아 있고 / 溪邊骨杇丹心在
지하의 넋은 외로울 망정 햇빛은 밝도다 / 地下魂單白日明
감옥에서 거울 보고 울던 몸이 무엇하리오 / 肯向圜扉頻泣鏡
모래밭에 뼈를 드러낸 것도 또한 임금의 은혜라오 / 沙場暴露亦恩榮
하였다. 송 동래가 또한 나아가서, “몸이 해진(海鎭)에 매여 있고 경계는 잠잠하여 봉화가 쉬고 있는데, 변란은 태평한 후에 일어나 사람들은 창졸간에 당황하니, 그 누구와 함께 지키리요. 연수(連帥)는 이미 도망하고 날더러는, ‘어디를 가느냐? 성문을 닫아야 한다.’고 했소. 태산과 새알의 형세이니 패전할 것은 뻔한 일이나 군신의 의는 무겁고, 부자의 은은 가볍다는 글을 써서 집에 부쳤지요. 저 오랑캐를 꾸짖는 데는 어찌 안고경(顔杲卿)의 말이 모자라리오만 무지한 섬 오랑캐도 왕촉(王蠋)의 무덤을 봉할 줄 알았소. 나라에 충성하고자 할진대 어찌 제 몸을 아끼겠소.” 하고, 읊기를,
지방을 지키면서 동쪽 오랑캐의 침입을 막지 못했고 / 分符猶未絶東漁
신하가 임지에 죽었어도 죄만 남았소 / 臣死封疆罪有餘
신세는 이미 삼척검에 맡기고 / 身世己憑三尺劍
부모님께 다만 두어 줄의 글월을 부쳤소 / 庭闈只寄數行書
유유한 세월에 황운은 늙었고 / 悠悠歲月黃雲老
쓸쓸히 가슴속에 한 바다가 되었네 / 落落襟期碧海虛
천리에 외로운 넋이 돌아오지 못하여 / 千里孤魂歸不得
비바람 치는 옛 성에 홀로 머뭇거리노라 / 古城風雨獨躊躇
하였다. 임 남원이 또한 나아가서, “위태로운 시국을 당하여 외람되이 발탁을 입었는데, 임지인 남원의 지형은 실로 우리 나라의 요충이오. 명 나라 군사와 함께 힘을 다히니, 강회(江淮)의 보장(保障)에 비겼었소. 적이 쳐들어와서 높은 사닥다리는 어지러이 춤추고, 달무리는 점점 짙어지니, 군사는 외롭고 세력은 약함을 탄식하고, 원군이 끊어져서 북소리가 가라앉음을 슬퍼하였소. 맡은 지역을 지키지 못하고 스스로 칼날을 밟게 되었으니, 땅을 지키는 신하로서 죽어 마땅한 일이어니와 양원(楊元)이 힘껏 싸웠으나 그 머리를 보전하기 어려웠으니 국법에는 유감이 있소.” 하고 읊기를,
비휴같은 1대가 천관에서 내려와 / 豼貅一隊下天關
용성(남원의 옛 이름)을 가로막으니 그 의기가 한가하도다 / 橫截龍城意氣閑
맹렬한 형세로 곧장 비장을 찌르고 가니 / 猛勢直衝飛將去
외로운 신하는 한 조각 넋만이 돌아왔네 / 孤臣只有片魂還
하였다. 김 원주가 또한 나아가서, “백리밖에 되지 않은 피폐한 고을로써 수만의 강적을 당하니 이미 임기응변으로 변을 제압할 재주도 없고, 또 차마 재나 닦고 경문이나 외고 있을 수도 없어 물러나 치악산(雉岳山)을 확보하고 오히려 어리진을 펴고 있었소. 산이 험하여 공격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토담 무너지듯 하여 쉽게 패하고 말았으니, 외로운 성이 어육이 되고, 온 집안이 모두 칼과 창에 넘어졌소. 나는 은혜를 입었으니 만번 죽어도 달게 여기지마는 처자는 왜 한꺼번에 죽어야 하오.” 하면서 읊기를,
치악산 높은 삼리성에 / 雉岳山高百里城
늙은 몸이 붉은 인끈을 차고 남은 군사를 보전하렸더니 / 白頭朱綬保殘兵
무고하게도 무단히 요사한 창끝의 피로 화하고 / 無端一化妖鋒血
쓸쓸한 시냇물만이 밤낮으로 울고 있네 / 惟有寒溪日夜鳴
하였다. 최 병사가 또한 나아가서, “몸은 안영(晏嬰)처럼 칠척이 되지 못하나, 마음은 적선(謫仙)의 만부(萬夫)보다 웅장하였소. 도적을 토벌하려고 떨치고 일어나 호남ㆍ영남에서 의병을 규합하였더니 임금이 가상히 여겨 벼슬을 내렸소. 그래서 변방의 요새를 지키라는 글월을 받고, 성벽을 지키며 적개심을 가지니 마치 버마재비의 팔로 수레를 항거하는 격이었소. 성은 섬 오랑캐에 무너지고 몸은 높은 다락에서 떨어졌소.” 하고, 부(賦)를 지었는데, “섬오랑캐 미친 듯이 날뛰어 함부로 우리 강토를 침범했네. 북소리 떨치니 무안(武安)의 기왓장이요, 피흘려 내려가 준의(俊儀)의 도랑이로다. 백기(白起)가 언(鄢)과 영(郢)을 10일에 함락시키듯, 우리의 서울을 당 명황(唐明皇)이 파촉(巴蜀)으로 파천하듯이 우리 임금이 파천하시니, 구묘(九廟)는 먼지 속에 들어 혈식(血食)을 못하고 만백성은 울부짖으며 어육이 되었네. 한낱 신하로서 딴 마음 없이 대의를 믿고 나갔도다. 삼척검(三尺劍)을 들고 일어나니 선비는 다투어 격서 받고 나가네. 군사의 위세는 천지를 흔들고, 씩씩한 기운은 북두를 찌른다. 자니(紫泥) 찍은 조서가 내려 부절을 나에게 쪼개어 주시므로 하늘과 땅에 맹세하고 팔을 걷고 추악한 무리 왜적을 쓸어버리기를 기약했노라. 진양(晉陽 진주)의 외로운 성을 지키고 있는데 적이 쳐들어온다고 차마 버리고 가리. 저 장순(張巡)과 허원(許遠)같은 처지에는 형이라 부르고, 사졸을 어루만져 부스럼도 빨았지요. 적은 강한데 우리 힘이 외로움을 슬퍼했고, 뜻은 크나 재주 없음을 탄식했네. 하늘이 도와주지 않음을 어찌하랴. 우리 훌륭한 인물이 쓰러지니 사기는 떨어졌네. 서쪽을 바라보고 통곡하며, 헛되이 손가락 잘라 옷자락에 혈서 썼네. 다락은 높아 백 척인데, 넋은 외로워 갈 곳이 없네. 봄바람은 불어 풀은 푸르고, 가을달은 밝아 하늘은 훤하구나. 원한은 해가 가도 사라지지 않고, 아롱진 무지개 되어 길이 기운 뿜네.” 하였다. 고 첨지가 또한 나아가서, “차라리 죽고 말지 많은 어려움을 견딜 수 없었소. 공을 도모한 낭심(狼瞫)은 이미 쫓겨났지만 격문을 띄워 문산(文山)의 의를 부르짖었소. 현륙음주(顯戮陰誅)의 글귀는 황소(黃巢)를 울리지는 못했으나 닭 울음소리를 듣는다거나 노를 두드린다는 말들은 모두가 충성심을 내보냈지요. 군사를 개와 양과 같은 적들의 소굴로 몰아넣어 한번 가고 돌아오지 못한 것이 슬펐지만 삶을 버리고 의(義)를 택한 것은 비록 백 번을 죽은들 무엇을 후회하리오. 하물며 두 아들이 있어 충효를 둘 다 저버리지 않았소.” 하고, 한편의 율시를 읊기를,
태평 성대라 난리를 잊어버리고 / 聖代忘金革
변방의 신하는 옥문을 닫았구려 / 邊臣閉玉門
별자리는 바로 북신을 옹위하고 있는데 / 星躔端北控
고래 수염은 놀랍게도 동쪽으로 치닫누나 / 鯨鬣駭東奔
여러 고을에는 왜적의 티끌이 자욱하고 / 列郡腥塵漲
높은 하늘은 혈우로 어둑하도다 / 長空血雨昏
이릉은 백기의 불이 일어나고 / 夷陵白起火
촉도에는 천자의 깃발이 펄럭이도다 / 蜀棧翠華飜
세 조정을 내리 섬긴 흰머리 늙은이가 / 皓首三朝老
한 치의 단심은 아직도 남았어라 / 丹衷一寸存
격문을 전하니 해와 달이 밝아지고 / 檄傳明日月
맹세를 정하니 천지를 흔들도다 / 盟定動乾坤
바람에 끌려 깃발은 멀리 나부끼고 / 風掣旌旗逈
하늘은 맑은데 북나팔 소리 요란하구나 / 天晴鼓角喧
꾀가 없으니 경솔히 적을 범했고 / 無謀輕犯敵
칼을 지녔으니 은혜 갚음이 중하도다 / 有劍重酬恩
쓸쓸하도다 천년의 원한이여 / 寂寞千年怨
처량하도다 두 아들의 넋이여 / 凄凉二子魂
옛 싸움터에 봄이 지나니 / 古場春盡後
이끼가 푸르러 자국이 절로 생겼네 / 苔碧自生痕
하였다. 장군이 이에 정색하며 눈쌀을 찌푸리고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 것, 하늘은 믿을 것이 못 된다. 그대들의 말을 다 들었으니 나의 슬픈 회포도 좀 말하리라. 태평 시대에 낳고 자라서 조그만 공로도 못 나타냈는데, 죽부(竹符)를 풀고 장수에 임명되니, 너무도 임금의 알아주심을 받게 되었소. 오랑캐가 바다를 건너오게 되자 스스로 한번 죽음을 각오하고 수군을 모아 왜적을 가로막아 뱃길을 안전하게 하여 놓았소. 적의 배 3백여 척을 불사르니 그 세력은 당할 자 없었고, 한산도(閑山島)를 지키는 5ㆍ6년 동안에는 적이 감히 엿보지 못하였소. 그런데 갑자기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꾸었으니 산을 만들다가 중단해 버린 격이 되고 말았소. 남은 병력과 두어 척의 배를 패전한 뒤에 다시 받아 가지고, 노를 잇고 돛을 내려 급한 여울 위에서 일곱 번을 이겼소. 도망하는 적을 예교(曳橋)에서 막다가 장성(將星)이 노량(露梁)에서 떨어졌지요. 북을 올리고 깃발을 흔들라는 명령을 아들에게 분부하니, ‘바다에 서약하고, 산에 맹세한다’의 구절은 어룡(魚龍)을 감동시켰소.” 하고는, 읊기를,
1만 배 서성대는 속에 한 곳은 편안한데 / 萬舳迷津一枕安
6년 동안의 큰 난리는 파란이 치솟았네 / 六年桑海動波瀾
먹구름 감도는 대마도는 탄알만한데 / 雲暗馬島彈丸小
된서리 내린 원문에는 칼빛이 차갑도다 / 霜肅轅門尺劍寒
산하를 두고 맹세하여 마음은 이미 굳었지만 / 誓指山河心已許
천지같은 은혜라 갚기도 어렵구나 / 恩同天地報還難
군사는 싸움을 끝맺지 못하고 몸이 먼저 죽으니 / 出師未捷身先死
영웅들의 눈물이 응당 마르지 않으리 / 留與英雄淚不乾
하였다. 읊고 나자, 한 승장(僧將)이 엎드려 나아가서, “나는 본래 승려 출신이지마는 다행히도 충성스럽고 용맹한 성품을 타고났으므로, 중의 옷을 벗고 갑옷으로 갈아입고, 육계(六戒)를 싹 잊어버리고 법고(法鼓)를 들고 나와 전고(戰鼓)로 삼마 제갈량이 맹획(孟獲)을 일곱 번 사로잡은 것을 본받기로 하고, 흉악한 적과 여기저기서 싸워 도적의 소굴에 깊숙이 들어갔지요. 마침내 죽음의 영광을 얻게 되어 다행히 중들은 임금도 없다는 꾸지람을 면하게 되었소.” 하고 읊기를,
쓸쓸히 외로운 넋 가고 오지 않는데 / 孑孑孤魂去不來
첩첩한 푸른 산은 높다랗게 솟았네 / 亂山靑走鬱崔嵬
인간들아 윤회설을 말하지 마소 / 人間莫道輪回說
저승에 마냥 갇혀 원한을 못 풀었네 / 一鎖泉臺怨未開
하였다. 장군이 칭찬하면서, “이 중이야말로 우리들을 격려할 수 있다.” 하고, 파담자에게 이어 화답하라는 명을 내리므로 파담자는 즉석에서 붓을 휘둘러 쓰기를,
이 밤이 어떤 밤이오 세월은 가는데 / 今夕何夕歲云徂
옛 누대의 하얀 달이 무성한 벌판에 댔구나 / 古臺霜月連平蕪
충성으로 국가에 보답한 대장군이 / 精忠報國大將軍
이 밤에 손님들을 누대의 한 모퉁이에 모았네 / 夜會賓客臺之隅
의기는 하늘을 찌르고 창검은 차가운데 / 義氣撑空劍戟寒
원문의 이 즐거움은 인간에 없으리로다 / 轅門此樂人間無
일휴당(최경회의 호)은 마음이 좋은 남자에다 / 日休堂中好男子
제봉(고경명의 호)의 가슴속은 얼음이 옥호에 비치네 / 霽峯襟期氷暎壺
간성 치악의 늙은 태수요 / 干城雉岳老太守
대방의 임 군(임현)은 큰 꾀를 품었도다 / 帶方任君懷壯圖
동래의 송백은 나중에 시드는 바탕이요 / 東萊松柏後凋姿
종사(從事)들도 웅장하고 기이하여 용봉의 새끼로다 / 從事雄奇龍鳳雛
당당한 대의를 누가 먼저 외쳤느냐 / 堂堂大義孰先倡
이름이 호남의 으뜸이라 성가가 특별하구나 / 名冠湖南聲價殊
제독관은 본디 강개한 사람이라 일컬었고 / 提督元稱慷慨人
회양은 본래 한 서생일세 / 淮陽自是書生迂
3대가 장수된 이씨의 아들에다 / 三世登壇李氏子
다시 황공같은 참다운 장부가 있도다 / 復有黃公眞丈夫
김후의 끓는 피 나라 지킨 몸이요 / 金侯血渾保障身
유 장군은 나라 걱정으로 턱수염이 희었네 / 劉帥霜驚憂國鬚
사공의 은총은 천지를 적시고 / 司空恩寵涵天地
수사의 위명은 축로를 뒤흔들었네 / 水伯威名動舳艫
영웅을 말하면 누가 이 첨사 같을꼬 / 英雄誰似李僉使
만호의 담력은 비상히 크도다 / 萬戶膽力非常麤
용모가 단중한 심 방백이요 / 容儀端重沈方伯
기상이 훤칠한 정 중추네 / 氣岸軒昻鄭中樞
남문의 쇄약은 소원수에 / 南門鎖鑰小元帥
판사의 풍류는 군자 선비라 / 判事風流君子儒
선적은 일찍이 옥서에 이름 끼었고 / 仙籍曾編玉署名
성관은 일찍 금화(궁중의 판서)의 정책을 도왔도다 / 星官夙佐金華謨
고씨 집안의 두 구슬은 난새와 짝지어 날고 / 高家雙璧伴鸞翔
범궁의 영규 스님은 학의 울음을 남겼네 / 梵宮靈師餘鶴廖
천년에 이런 모임 다시 있기 어려우니 / 千年此會知難再
만고에 꽃다운 이름 외롭지 않네 / 萬古芳名自不孤
파담자에게 어찌 다행하지 않으리 / 坡潭之子何幸耳
금항아리의 푸른 술로 함께 즐겼네 / 綠酒金樽同一娛
붓을 들고 읊조리며 이 성대한 일을 기록하니 / 把筆吟哦記盛事
시가 이뤄지자 밝은 구슬 종이에 가득하도다 / 詩成滿紙揮明珠
하였다. 써서 올리니 좌우가 무릎을 치고 탄식하기를, “문장이 맑고 굳세며 의기가 격동하고 처절하니, 그대의 재주를 높이 평가하노라. 부(賦)를 지어 비록 적을 물리친다지만 시를 읊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니, 그대의 재주로써 무예를 아울러 익혀 활을 잡고 말을 달리면 못할 것이 무었이랴. 문장은 나라를 빛내고, 무예는 외적의 수모를 막을 것이오. 우리들은 할 수 없지만 그대는 힘쓰라.” 하였다. 파담자가 일어나 감사하기를, “가르침대로 하겠습니다.” 하고, 하직하고 내려가니 긴 시냇가에서 여러 귀신들이 손뼉을 치며 웃으므로 그 까닭을 물으니 통제사 원균(元均)을 기롱하고 있는 것이었다. 배는 불룩하고, 입은 삐뚤어지고, 얼굴빛은 흙빛이 되어 기어왔으나 퇴짜를 맞고 참여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언덕에 의지하여 두 발을 죽 뻗고 주저앉아 주먹을 불끈 쥐고 길게 탄식할 뿐이다. 파담자 역시 크게 웃고 조롱하다가 기지개를 켜고 깨어나니, 그것은 한바탕 꿈이었다. 베개를 어루만지면서 돌이켜 생각해 보니 역력히 기억이 난다. 그 벼슬로 그 성명을 상고해 보니, 장군은 곧 이순신(李舜臣)이었다. 고 첨지는 경명(敬命)이요, 최 병사는 경회(慶會), 김 원주는 제갑(悌甲), 임 남원은 현(鉉)), 송 동래는 상현(象賢), 김 종사는 여물(汝岉), 김 창의는 천일(千鎰), 조 제독은 헌(憲), 김 회양은 연광(鍊光), 황 병사는 진(進), 이 병사는 복남(福南), 김 진주는 시민(時敏), 유(劉) 수사는 극량(克良), 신 판윤은 입(砬), 이 수사는 억기(億祺), 이 첨사는 영남(英男), 정(鄭) 만호는 운(運), 심 감사는 대(垈), 정(鄭) 동지는 기원(期遠), 신 병사는 할(硈), 윤 판사는 섬(暹), 박 교리는 지(篪), 이 좌랑은 경류(慶流), 고 임피는 종후(從厚), 고정자는 인후(因厚), 승장은 영규(靈圭)이다. 파담자는 뜻이 있는 자라 어떤 사람이 나라 일에 죽었다면 일찍이 흐느껴 울지 않은 적이 없었다. 혹은 그 의(義)를 사모하고, 혹은 그 절개를 기리며, 혹은 그 사적을 탄식하고, 혹은 그 목숨을 애도하였다. 꿈속에서 만난 이가 모두 내가 평소에 우러러보고 공경하던 분이었다. 이런 마음이 있었으므로 이런 꿈을 꾼 것이리라. 이에 제문을 지어 변변치 않은 제물을 마련해 가지고 화악(華岳) 위에 올라 남쪽 구름을 바라보며 곡하고, 서해를 굽어보며 그들의 넋을 불러 제사하였다. 그 사연을 다음과 같이 쓰노라.
파담자는 수양산(首陽山)의 고비나물을 캐고 응벽지(凝碧池)의 물로 잔을 올려 감히 27분의 영전에 아뢰오니, 영령들은 아실런지요. 나는 본래 서생으로서 반평생을 문닫고 역사를 읽으며 옛 사람을 사모하여 그 정충(精忠) 고절(苦節)에 대하여는 책을 덮고 탄식합니다. 만고와 우주를 더듬어보아도 겨우 한두 남아를 발견할 뿐이니, 저 성대한 중국으로서도 이같이 적거늘 우리 삼한으로 말하면, 비록 예의의 나라라 일컬으나 옛날의 동이(東夷)인데 위기에 임하여 오랑캐를 물리친 훌륭한 선비가 27분이나 됩니다. 아! 거룩한 임금이 왕위를 이어 장구한 터전을 만들었고, 2백 년 동안 백성을 기르고 교화시켜 이처럼 많은 선비를 냈던 것입니다. 수군통제사는 진실로 하늘이 낸 거룩한 분으로, 일선 장수에 임명되자, 변경에 크게 자리잡고 한산섬에서 적의 바닷길을 끊으면서 여섯 돌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장수를 바꾼 일은 본래 적의 꾀에서 나온 것이요, 장군이 군사를 내는 시기를 그르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원균(元均)이 싸움에 패한 뒤에 아홉 척의 배와 남은 군졸로써 여러번 벽파진(碧波津)에서 싸워 이겼으니 그 공은 종에 새겨 길이 남길 만한 일이요, 노량(露梁) 싸움에서 공이 임종할 때에 죽음을 숨기고 깃발을 흔들고 북을 쳐 싸움을 계속할 것을 분부하자 아들이 그 명령대로 하여 산 중달(仲達)을 달아나게 한 것처럼 하였으니, 그 꾀가 더욱 기이하다 하겠습니다. 고 제봉[高霽]은 문장이라 일컫기에는 부족하지마는 강개하여 군사를 일으켜 있는 힘을 다하여 나라의 위기를 건졌습니다. 몸을 적의 소굴에 맡겨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여 확고한 태도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의 의병을 모집하는 격문을 보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최 병사는 사람됨이 활발하고 매인 데가 없으며, 처음에 모집한 의병은 범이 아니면 바로 곰이라, 서관(西關)에 보낸 편지로 좋은 벼슬에 올랐더니 마침내 진양(晉陽)에서 전패하여 장한 뜻을 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치악산성(雉岳山城)은 높고 험준하여 하늘을 찌를 듯이 그윽하고 깊숙하므로 김 사군(使君)이 지형을 살펴보고 이 험하고 가파른 곳을 차지하였는데, 왜적이 한번 침범하자 형세는 외롭고 군사는 피로하여 온 집안이 칼날 아래 쓰러지니 비린내 나는 피가 낭자하였습니다. 남원은 곧 호남의 관문인데 임 공이 지켜 웅대한 울타리가 되었습니다. 양원(楊元)의 2천여 기가 군대의 위세를 크게 빛냈으나, 미친 왜적이 너무도 창궐하여 힘을 모아 독을 퍼뜨리면서, 새같이 소리개같이 날뛰었습니다. 그런데 밖으로는 소수의 응원도 끊어졌으니 공인들 혼자서 이를 어찌하리오. 삼리성(三里城)이 하루아침에 상처 투성이가 되어버렸습니다. 동래(東萊) 송 선비는 속세를 벗어난 듯 멀쑥하고 시원스러운 풍채로 강해(江海)의 일휘((一麾)에 변란이 불의에 돌발했으므로 그 형세가 한 오라기의 실로 1,000균(鈞)의 무게를 끄는 형세였습니다. 철문을 굳게 잠그고 신명에게 맹세하고 죽음에 임하여 16 글자를 남겨, 보는 이는 목메어 흐느끼니, 슬프도다, 그 장함이여! 김 종사는 장원 급제하였고 힘은 40근짜리 철퇴를 잡아 흔듭니다. 활달했던 그 평생은 자신의 견줌이 너무 과했으나 잡혀 죄에 묶인 것은 자기 죄가 아니니 칼에 그 턱을 기댔던 것입니다.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 천승(千乘 도순변사 신립을 가리킴)의 막료가 되었으나 시운이 불리하여 사람이 죽어 원한을 남기었습니다. 창의(倡義)의 선비는 먼저 서남쪽 요해를 점거하여 강유(綱維)를 떨쳤으며, 다시 군사를 거느리고 막아서 힘껏 싸웠으나 지쳐서 몸은 죽고 이름을 길이 남겼습니다. 제독의 식견이 처음에는 시귀(蓍龜)와 같다 하였소. 현소(玄蘇)와 수호하던 날을 당하자 혹시 화근을 끼칠까 두려워 거적을 궐문 앞에 깔고 엎드려 5일 동안 극간하였소. 가책(賈策)과 순광(郇筐)을 여러 사람이 모두 천치라고 하였는데, 그대가 참으로 천치였던가? 변을 듣고 곧 일어나 의를 부르짖고 부지런히 힘썼으며, 서원(西原 청주)의 승첩에 우서(羽書)와 격문(檄文)이 사방으로 달렸는데, 깊숙히 금산(錦山)으로 들어가 적의 속임수에 빠져 몸은 죽고 일은 그릇되어 큰 공적이 단번에 무너져버렸습니다.
김 선생은 좋은 분이외다. 조복(朝服)을 갖추고 인수(印綬)를 차고 맡은 곳을 지키며 떠나지 않았습니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선비라, 비록 적을 무찌르지는 못하였으나 그 몸을 더럽히지 않아 회수(淮水)는 맑고 맑습니다. 황 공(黃公)은 온 성안이 의지하고 존중히 여기는 중망을 지니고, 방패를 잡고 성벽에 올라 활시위를 당겨 적을 쏘았습니다. 부장에 섞여 의로운 몸이 한번 거꾸러지니 북소리가 문득 힘이 없어졌습니다. 이 공은 고립된 성이 이미 흔들려 형세가 위태로울 때에 몇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척에게로 나아가 위태함을 꺼리지 않고 천금(千金)의 귀한 몸을 가벼이 한 것은 패배자가 되기를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당당하다, 김 공이여! 힘써 진산(晉山)을 보존한 자는 누구이뇨. 공훈이 높으니 보답도 훌륭하도다. 옥음(玉音)에 아름답다 했는데 무너져서 장순(張巡)ㆍ허원(許遠)의 빛나고 빛난 업적을 보지 못한 것이 한입니다. 유 공(劉公)은 노련한 장수로서, 말가죽으로 자신의 시신을 쌀 결심으로 싸움에 임하여 패하고 화살이 다하자 그 자리에서 곧 죽었으니 진실로 천시(千蓍)에 부합합니다. 신공의 배수의 진이야말로 임금의 은혜는 넓은데 그 보답은 작으니 그 죽음은 진실로 마땅하다 하겠지마는 8천의 건아들이야 또 왜 죽습니까? 수사는 참으로 백 사람의 으뜸이요, 첨사는 8척의 훤칠한 키요, 정운(鄭運) 또한 장사라 어찌 지기(志氣)가 낮겠는가? 기백(畿伯)과 동추(同樞)는 모두 맑은 조정의 이름난 벼슬아치로 대궐뜰에 드나들다가 위급할 때에 왕명을 받고 몸을 바치고도 뉘우치지 않았으니, 그들은 모두 한가지입니다. 병사(兵使)는 형의 원수를 갚기에 어찌 그리 급급하여 일각을 늦다 하였던고. 윤 정당(政堂)에게는 양친이 있었으며, 기성(騎省 병조)의 낭관(郞官)과 옥서(玉署)의 논사(論思)가 비명에 함께 죽었으니 이것은 한번 탄식할 것도 못 됩니다. 고씨 집안의 뛰어난 두 형제가 그의 부형을 욕되게 하지 않았으니, 실로 하늘이 주신 떳떳한 도리를 지켰습니다. 영규(靈圭)는 승려 출신으로서 쓰러져 넘어가는 왕가(王家)를 힘껏 붙들어 세우려고 하였습니다.
아! 저 하늘의 뜻은 넘겨보기 어렵구려. 어찌하여 이들을 세상에 내보냈다가 또 어찌하여 그리도 빨리 이들을 앗아갔습니까? 원통한 기운이 천지 사이에 막혀 답답함을 펼 길이 없습니다. 천둥이 치고 구름이 모이고 바람이 참담하게 불어대어도 이 노여움을 풀기에 부족하며, 이 슬픔을 달래기에 부족합니다. 아깝도다, 공들의 재주로써 태평성대의 시대에 처하여 불의의 사태에 대응하여 익숙하지 못한 군사로써 비록 채찍을 꺾지는 못했으나, 나라를 위하고 자신을 잊어서 그 절개와 의리는 조금도 이지러지지 않았으니, 그 자질은 저 풍이(馮異)ㆍ등우(鄧禹)ㆍ이광필(李光弼)ㆍ곽자의(郭子儀)와 똑같다고 보겠습니다. 만약 공등 한두 사람에게 하늘이 두어 해를 더 빌려주어 혹시 오늘에 이르렀다면 오(吳) 나라와 월(越) 나라가 와신상담하고, 월 나라가 10년 동안 백성들을 늘리고 10년 동안 백성들을 가르쳐서 오 나라에 복수한 것처럼 하여 5ㆍ6사(師)를 풀어서 일본 마도(馬島)의 악독한 종류로 하여금 무서워서 움츠리고 다시는 날뛰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아!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못하는데 지난 일을 돌이킨들 무엇하리오. 땅에서는 높은 산 큰 바다가 되고, 하늘에서는 북두(北斗)와 남기(南箕)가 되어 우러러보면 더욱 높고, 건너자면 끝이 없습니다. 화산(花山)의 절벽과 사해(四海)의 물가에 넋이여! 돌아와서 나의 말에 감응하기 바라나이다.
○ 전라도 겸방어사를 폐지하였다.
○ 전세(田稅)를 비로소 해창(海倉)에 납부하였다. 난리가 일어난 뒤로부터 군량을 혹 본창(本倉)에 납부하였으므로 여기에 말하는 것이다.
[주-D001] 백이산하(百二山河) :
진(秦)의 요새 함곡관은 매우 험하여 두 사람이 지키면 백 사람을 당할 수 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주-D002] 의곡(義穀) :
공공사업을 위하여 재물을 헐어 기부하는 곡식.
[주-D003] 자경(子敬)이 …… 일 :
자경은 오(吳) 나라 사람 노숙(魯肅)의 자인데, 노숙은 손권(孫權)을 도와 조조의 군사를 적벽(赤壁)에서 크게 깨뜨린 문무를 겸비하고 도량이 큰 영웅이다. 집이 부자로서 남에게 희사하기를 좋아하였다. 노숙이 곳간을 가리켜 주유(周瑜)에게 쌀을 주었다는 옛일에서 나온 말로, 물자로써 서로 도울 때에 쓰는 말이다.
[주-D004] 사충(沙蟲)이 …… 된 자 :
주(周) 나라의 목왕(穆王)이 남정을 했을 때에 전군의 군자는 원숭이와 학이 되고, 소인은 사충(沙蟲)으로 화하였다고 한다.
[주-D005] 만인적(萬人敵) :
혼자서 만인을 상대한다는 뜻으로 병법을 말한 것임. 항우(項羽)가, “글은 성명을 적을 수 있으면 족한 것, 만인을 대적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겠다.” 한 말에서 기인되었음.
[주-D006] 남기(南紀) :
남국(南國)의 강기(綱紀)라는 뜻으로 그 지방의 형승을 말한 것임. 《시경》에, “넘실넘실한 강한은 남국의 벼리다[滔滔江漢南國之紀]”에서 나온 말임.
[주-D007] 남풍이 …… 것이니 :
《좌전》에, “남풍이 굳세지 않아 사성(死聲)이 많으니 초(楚) 나라는 반드시 공이 없을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음.
[주-D008] 안민(安敏)을 목벤 일 :
충주 싸움에서 척후장 안민이, “적병이 벌써 쳐들어왔다.”고 망령된 말을 하여 군중을 놀라게 하였다고 신립 장군이 그의 목을 베었다.
[주-D009] 삼세의 경계 :
장수는 삼대를 해서는 안 된다는 데서 나온 말임. 진(秦) 나라 왕전(王剪)ㆍ왕분(王賁)ㆍ왕리(王離)가 삼대를 내리 장수가 되었는데 그뒤가 좋지 않았으므로 여기에서 기인된 것임.
[주-D010] 장요(張遼)의 …… 그치며 :
장요는 조조(曹操)의 장수로서 결사대 8백 명으로 손권(孫權)의 10만 대군을 격파하여 그 이름을 강동에 떨쳤다. 그의 성품이 용맹무쌍하여 그가 왔다고 하면 어린아이가 울음을 그쳤다고 한다.
[주-D011] 이목(李牧)의 …… 같았지요 :
이목은 전국시대 조(趙) 나라의 북쪽 변방을 지킨 명장으로서 그가 흉노(匈奴)와 진(秦) 나라를 칠 때에 그의 위엄에 눌려 적의 군마가 전진하지를 못하였다 한다.
[주-D012] 마복군(馬服君)의 …… 같았으나 :
조(趙) 나라 명장 마복군 조사(趙奢)의 아들 조괄(趙括)을 말한 것임. 조사는 평소에 그 아들 조괄을 두고 말하기를, “전쟁이란 사지(死地)인데 조괄이 쉽게 말하니, 조나라에서 만약 조괄을 장수로 삼는다면 반드시 조나라 군사를 없앨 것이다.” 하였는데, 과연 장수가 되어 진(秦) 나라 장수 무안군(武安君) 백기(白起)에게 참패를 당해 죽었음.
[주-D013] 변호(卞壺)의 …… 곡한 것 :
진(晉) 나라의 상서령 변호 부자가 임금을 위하여 함께 죽었다.
[주-D014] 관흥(關興) :
관우(關羽)의 아들로 제갈량에게 중용된 장수.
[주-D015] 장포(張苞) :
장비(張飛)의 아들.
[주-D016] 세류영(細柳營) :
한(漢) 나라 주아부(周亞夫)가 장군이 되어 세류(細柳)에 진을 쳤을 때 그 규율이 다른 어느 장군의 진보다 엄정하였다. 문제(文帝)가 순시하고 크게 감동하여 마침내 세류영의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주-D017] 장홍(萇弘) :
《장자》외물편에, “장홍이 촉에서 원통히 죽어서 피를 저장해 두었는데 3년이 지나자 그 피가 새파랗게 되었다.” 하였음. 장홍은 본래 주(周) 나라 대부였음.
[주-D018] 금마옥당(金馬玉堂) :
금마문(金馬門)과 옥당서(玉堂署)로 한(漢) 나라 때에 학사들을 초대하였던 곳이었는데, 뒤에는 인하여 한림원이나 한림학사를 지칭하는 데 쓰인다.
[주-D019] 소륵(疏勒)에서 …… 도위(都尉)로써 :
소륵은 신강성(新疆省)에 있는 한(漢) 나라 때 36국(國)의 하나요, 경공은 후한(後漢) 때 장수로 흉노(匈奴)를 공격하고 돌아와 기도위(騎都尉)가 되었다.
[주-D020] 적벽(赤壁)에서 …… 면려하였는데 :
적벽대전 때에 오(吳) 나라 장수 정보가 유비의 군사와 합세하여 조조의 병선을 불로 공격하여 대파하였다.
[주-D021] 우이(盱眙) :
안휘성(安徽省)에 있는 초(楚) 나라 의제(義帝)가 도읍했던 곳.
[주-D022] 자기(子琦)의 …… 모이자 :
안녹산(安祿山)의 난리 때 장순(張巡)이 수양 태수(睢陽太守) 허원(許遠)과 함께 성을 지켜 적장 윤자기(尹子琦)와 싸웠으나 결국 성은 함락되어 모두 피살되었다.
[주-D023] 온서(溫序) :
한 나라 교위였는데 외효(猥囂)의 장수에게 잡혀서 목이 잘리게 될 적에 온서는 수염을 입에 물고 하는 말이, “이미 적에게 잡힌 몸이 되었으니, 수염이나 더럽히지 말아야 되겠다.” 하였음.
[주-D024] 주여숙(柱厲叔) :
춘추전국시대에 주여숙이 여(莒) 나라 오 공(敖公)을 섬겼으나 오 공이 알아주지 않아 고생을 했는데, 오 공에게 난이 생기자 가서 목숨을 바치려 하였다.
[주-D025] 좌거(左車) :
이좌거(李左車). 조(趙) 나라 장수인데 한(漢) 나라의 한신(韓信)과 장이(張耳)가 조 나라를 치자 막을 계책을 진여(陳餘)에게 말했으나 용납되지 않고 진여는 전사하였다. 한신이 좌거를 얻어 스승으로 모시고 그의 계책을 써서 연(燕)ㆍ제(齊)의 여러 성을 항복받았다.
[주-D026] 안고경(顔杲卿) :
안고경은 당(唐) 나라 사람인데, 상산 태수(常山太守)로 있으면서 안녹산(安祿山)과 혈전을 벌였다. 성이 함락되자 녹산을 꾸짖기를, “조갈구(臊羯狗)야 어찌 나를 빨리 죽이지 않느냐.” 하며, 끝내 굴복하지 아니하고 죽었다.
[주-D027] 왕촉(王蠋)의 …… 알았소 :
연(燕) 나라가 제(齊) 나라를 쳤을 때, 연 나라의 악의(樂毅)가 제 나라의 왕촉이 어질다는 소리를 듣고 그를 불렀으나 왕촉은 응하지 않고,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지아비에게 시집가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고 자결하였다. 악의는 감동하여 그의 무덤에 흙을 덮고주고 표창하였다. 여기에서는 동래 부사 송상현(宋象賢)을 왜군이 후히 장사지내 준 것을 말한다.
[주-D028] 강회(江淮)의 보장(保障) :
수양성(睢陽城)에 절사(節死)한 당(唐) 나라 사람 장순(張巡)을 두고 이른 말임.
[주-D029] 비휴(豼貅) :
맹수의 이름인데 범과 같다고도 하고 곰같다고도 하며, 옛날에 이것을 길들여 전쟁에 썼다고 한다.
[주-D030] 안영(晏嬰) :
안자(晏子). 춘추시대 제(齊) 나라의 어진 재상으로 검소한 생활의 본보기로, 한 벌의 갖옷을 30년 동안 입었다. 어떠한 권력에도 굴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주-D031] 칠척이 …… 웅장하였소 :
이태백(李太白)의 〈한 형주에게 주는 글〉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구절에, “비록 키는 일곱 자에 차지 못하나 마음은 만부를 이긴다.”는 말이 있다.
[주-D032] 무안(武安) :
무안군은 백기(白起)의 봉호이다. 진(秦) 나라 장수 백기는 병법에 뛰어나 남쪽으로는 언(鄢)ㆍ영(郢)ㆍ한중(漢中)을 평정하고, 북쪽으로는 조괄(趙括)을 쳐서 그의 군사 40만을 구덩이에 묻어 죽였다.
[주-D033] 낭심(狼瞫) :
전국시대 진(晉) 나라 장수인데 진(秦) 나라 군사와 싸울 때 몸을 바쳐 달려가 분전하고 죽으니, 진(晉) 나라 군사가 뒤따라가 싸워 크게 이겼다.
[주-D034] 현륙음주(顯戮陰誅) :
신라(新羅) 최치원(崔致遠)이 당(唐) 나라 고병(高騈)의 종사관이 되어, 황소(黃巢)를 성토하는 격서를 지었는데, “천하 사람이 모두 현륙(顯戮)할 것을 생각하는 것만 아니라, 역시 땅 속의 귀신도 마땅히 음주(陰誅)를 의논할 것이다.” 하였음.
[주-D035] 닭 울음소리를 듣는다거나 :
《진서(晉書)》조적전(祖逖傳)에, “사공 유곤(劉琨)과 함께 이불을 덮고 자다가 한밤중에 황계(黃鷄) 우는 소리를 듣고 발로 유곤을 차서 깨우며 하는 말이, ‘이는 절대 나쁜 소리가 아니다.’ 하고, 바로 일어나 춤을 추었다.” 하였음. 그래서 지사(志士)가 뜻을 두고 분발하는 데 쓰임.
[주-D036] 노를 두드린다는 :
진(晉) 나라 조적(祖逖)이 북벌할 때에 양자강을 건너며 노를 두드리면서 맹세하기를, “중원을 평정하지 못하고 다시 건넌다면 이 강과 같으리라.” 하였다. 그는 드디어 석륵(石勒)을 무찌르고 황하 이남의 땅을 회복하였다. 인하여 이 말은 천하를 평정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주-D037] 죽부(竹符) :
죽부는 군수의 신표로서 대로 만들어 둘로 쪼개어 오른쪽을 서울에 두고, 왼쪽을 군수에게 주는 것이니, 여기서는 군수를 그만둔다는 뜻.
[주-D038] 응벽지(凝碧池) :
섬서성(陝西省) 장안(長安)의 당 나라 금원(禁苑) 안에 있는 못.
[주-D039] 산 중달(仲達)을 …… 하였으니 :
제갈량(諸葛亮)이 오장원(五丈原)에서 위(魏) 나라의 사마의(司馬懿 호는 중달)와 대전하다가 병사하였는데, 죽음을 감추고 싸웠더니 사마의가 겁에 질려 도망쳐버렸다. 그래서 “죽은 제갈량이 산 중달을 달아나게 한다.”는 말이 생겼다.
[주-D040] 16 글자 :
송상현(宋象賢)이 그 아버지에게 보내는 글에, “외로운 성에는 달무리가 졌는데 여러 진영에서는 베개를 높이하고 도우려 하지 않습니다. 임금과 신하의 의리는 중하고, 부자의 은의(恩義)는 가볍습니다[孤城月暈 列陣高枕 君臣義重 父子恩輕].” 한 16자를 가리킨다.
[주-D041] 강유(綱維) :
삼강(三綱)과 사유(四維). 삼강은 군신ㆍ부자ㆍ부부, 사유는 예(禮)ㆍ의(義)ㆍ염(廉)ㆍ치(耻)
[주-D042] 가책(賈策)과 순광(郇筐) :
한 문제(漢文帝) 때에 가의(賈誼)가 〈치안책(治安策)〉이라는 시국 구제책을 올렸으며, 당(唐) 나라 때에 순모(郇謨)가 정권을 농단하는 원재(元載)를 상복을 입고 탄핵하였더니, 임금이 그를 불러 어의(御衣)를 하사하였다.
[주-D043] 천시(千蓍) :
한 그루에서 수십 줄기가 나는 풀로 점칠 때에 산가지로 썼다.
ⓒ 한국고전번역원 | 김종오 권덕주 (공역) |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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