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미화(紫微花) 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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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안은 조선 초기 규장각에 근무한 학자였다. 그는 예술적 감각이 있어 시와 글씨와 그림에도 뛰어났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 원예서인 ‘양화소록(養花小錄)’을 남겼다. 그는 글을 읽고 꽃 키우는 일을 좋아했다. 이 책에는 예로부터 사람들이 완상해온 십여 종에 이르는 나무와 꽃의 품격과 가꾸는 법이 자세하게 실려 있다. 양화소록에 소개된 꽃과 나무 가운데 자미화(紫薇花)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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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색 꽃이 피는 자미화는 일년초 백일홍과 구분해 목백일홍이라고 한다. 초여름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면 무궁화처럼 여름 내내 피고지기를 거듭하여 서리가 내릴 무렵까지 개화기간이 아주 길다. 백 날 동안 피어난다고 백일홍(百日紅)이다. 집안에 심어두면 온 집안이 붉게 물든다고 만당홍(滿堂紅)으로 불리고 매끄러운 나무줄기를 긁으면 잎과 꽃이 흔들리며 떨어 간지름나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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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상 깊게 본 자미화가 몇 군데 된다. 내 고향 의령 구룡산 기슭 임진년 의병장 홍의장군 곽재우를 기리는 사당 충익사가 있다. 충익사 경내에 고목 자미화가 있다. 서애 유성룡을 배향하는 안동 병산서원에 피어난 자미화도 아름다웠다. 조선 개국이 못마땅해 함안으로 은둔한 재령 이씨의 고려동학에도 자미단과 자미당이 있다. 정자 문화의 본향인 담양 명옥헌 자미화도 꽤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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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경남도청 정원에는 청사 이전을 즈음하여 각 시군 마을에서 헌수를 받은 나무들을 심었는데 오래된 자미화도 있더이다. 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동래부사 송상헌을 기리는 충렬사 자미화도 장관이다. 송광사 대웅전 뜰에도 수령이 꽤 오래된 자미화가 그늘을 드리울 정도다. 우리나라 각 고을마다 향교나 서원에는 자미화 한두 그루는 있게 마련이고 여느 절간을 찾아가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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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사는 창원으로 돌아와 보자. 사십여 년 전 기계공업단지로 출발한 계획도시다. 도시 출번 당시 낮은 구릉은 깎아 평평하게 다지고 휘어 흐르던 강은 곧게 폈다. 창원대로를 기준으로 남쪽에는 공장을 세우고 북쪽은 업무지구와 주택지를 만들었다. 모든 구역을 바둑판처럼 구분 짓고 훤히 뚫린 도로변에는 각종 가로수를 심었다. 그 가로수 나이테가 도시가 출범했던 세월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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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의 가로수는 지역별 특색이 있다. 봄이면 창원대로와 교육단지 일대 벚나무는 구름 같은 분홍색 꽃을 피운다. 분분히 흩날리는 벚꽃이 질 무렵이면 느티나무에서 연초록 새순이 돋아난다. 느티나무와 소나무가 군데군데 있기는 하지만 명서동과 봉곡동을 비롯한 주택지 가로수로는 은행나무가 많다. 은행나무는 늦가을 샛노란 단풍이 물들어 겨울 들머리까지 시나브로 나목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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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의 가로수 가운데 인상적인 것을 하나 더 꼽으면 용호동 주택가와 사림동 사격장 가는 길의 메타스퀘어다. 내가 사는 아파트 주변 가로수도 메타스퀘어다. 높이 솟은 메타스퀘어는 늦은 연초록 잎이 돋아난다. 원추형 나무는 한여름 내내 진녹색 잎으로 열병식을 펼친다. 메타스퀘어는 겨울 문턱에 들어서야 갈색으로 단풍이 물들어 바람이 불 때마다 새털 같은 잎들이 자유낙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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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의 가로수에서 계절을 대표하는 가로수를 꼽으면 봄은 벚나무, 가을은 은행나무, 겨울은 메타스퀘어다. 그러면 건너뛴 여름을 대표하는 가로수는 무엇인가? 나는 그 가로수로 머뭇거리지 않고 자미화를 들고 싶다. 여름날 창원역에서 도계동을 거쳐 명곡로터리로 가보라. 명곡로터리에서 도청을 거치거나 시청을 거치는 창이대로나 원이대로를 달려보라. 중앙분리대에 심겨진 자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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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색 자미화 꽃잎은 비바람에도 쉬 떨어지지 않는다. 꽃잎에는 자동차 매연에도 그을음이 달라붙을 줄 모른다. 중앙분리대 자미화는 나뭇가지가 연신 흔들리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자동차로 질주하는 사람은 자미화를 옳게 감상할 수 없다. 자동차가 바람을 일으키며 달리면 꽃을 단 자미화는 나뭇가지가 휘다시피 흔들거린다. 보도를 느긋하게 걷는 사람만이 제대로 완상하렷다. 14.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