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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민생활체육익산시탁구연합회 원문보기 글쓴이: 김달호
‘프로 탁구’의 당위성
한국 탁구계에 담론으로만 존재했던 프로화의 가능성이 조금씩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난 9월, 두 번째 슈퍼리그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한국실업탁구연맹(회장 신학용)은 그 자신감을 토대로 이미 수차례 프로화를 공언했고, 각종 언론에서는 그 같은 내용을 받아 이르면 내년 초부터 프로탁구가 출범할 것이라는 보도를 연이어 내보내고 있는 중이다.
‘탁구 프로화’의 당위성은 사실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 이미 프로화 과정을 거친 타 종목의 인기 활성화가 배가될수록 현재와 같은 아마추어 체제로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끌지 못한 채 고사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해가 갈수록 높아져 왔다.
기업이 운영하는 스포츠단의 목적이 홍보기능에 대부분 맞춰져 있는 현실 속에서 언론의 지속적인 관심을 끌지 못하는 체제로는 새로운 창단을 이끌어내는 데에 무리가 따르고, 갈수록 좁아지는 진로는 자라나는 학생 선수들의 의욕도 감소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실업탁구연맹이 새로운 팀 창단을 위해 접촉한 기업들 다수가 “프로라면 창단을 생각해보겠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밝힌 것은 인기와 비인기, 프로와 아마의 기로에 서있는 탁구종목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다.
외부 환경도 환경이지만 경기력 요소를 감안한 내부적 필요조건도 한계에 가까워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최근 대표급을 중심으로 많은 선수들이 해외 진출을 시도하는 것은 국내에서 완전히 충족되지 못하는 자본적 속성 때문, 하지만 임대 팀 일정이 국내에서의 집중훈련에 방해요소로 작용하면서 갈등의 소지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의 강화훈련에서도 심각한 개선사항으로 지적되기도 했었던 이 문제는 국내 프로리그 출범으로 해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
같은 문제로 한 때 최강의 위상을 유럽에 내줄 뻔 했던 중국이 2000년 슈퍼리그를 출범시키고 자국 선수들의 해외진출을 진정시킨 후 현재와 같은 무소불위의 위세를 유지하기 시작한 것은 그 좋은 본보기가 된다.
연맹은 프로가 되면 선수들이 굳이 해외로 나가지 않아도 되고, 생존본능에 가까운 동기유발 효과도 있어 궁극적으로 한국 탁구의 경기수준을 올리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며, 학생 선수들의 진로 또한 넓어져 탁구 자체의 환경이 매우 윤택해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세미프로리그 경험은 좋은 약
그러나 이처럼 내외적으로 충만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탁구는 프로화의 기치를 쉽게 내걸지 못해 왔다. 무엇보다도 재정적 여건이 서로 다른 각 팀들 간의 이해관계로 인해 합일점을 찾아내지 못한 원인이 컸고, 프로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팬들의 성원도 확고한 믿음을 심어주지 못했다.
최근의 슈퍼리그 이전인 2002년에 실업연맹이 출범시켰었던 세미프로리그는 그 좋은 예다. 당시에도 ‘프로화’라는 야심찬 목표 아래 그 전 단계로 출범했던 세미프로리그는 남자 여섯 팀, 여자 다섯 팀이 참가해 열전을 벌였지만 언론으로부터도 팬들로부터도 그다지 많은 관심을 끌지 못했다. 기대만큼 효과가 미치지 못하자 타이틀 스폰서가 나서지 않았고, 다음 대회는 아예 열지도 못했다. 각 실업팀의 십시일반 가능성은 열려있었으나 적극적으로 나선 구심점이 없었고, 결국 세미프로리그는 단 1회로 종료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프로화의 물결이 일고 있는 요즘 그와 같던 부정적 환경은 달라졌나. 대부분 실업 감독들은 이에 대해 긍정의 답변을 내고 있다. 당장 프로리그를 진행할 수 있는 여건의 남자 다섯 팀, 여자 네 팀이 출전했던 슈퍼리그가 상향조정된 경기력 면에서 작지 않은 성공을 거뒀다는 점에서, 각 감독들은 적극적인 보완이 더해지면 팬들의 관심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다.
프로화에 누구보다도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 김택수 대우증권 총감독은 “예전 세미프로리그의 쓴 경험을 잘 알고 있는 각 팀 감독들은 모두 프로화에 적극 동참키로 했으며 각 구단들도 모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밝힌다.
남자팀만으로 범위를 좁힌다면 이미 감독들 간의 합의가 끝났으며, 각 팀 프론트 간의 의견 조율을 마치면 이 달 중으로 프로화를 공식 선언하는 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바야흐로 ‘프로탁구 태동’의 움직임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일까.
산적해있는 선결과제들
물론 단순히 ‘프로’를 선언한다고 해서 곧바로 ‘프로탁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프로가 된다고 해도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산적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신인 드래프트 제도나 자유계약선수(FA)제도, 샐러리캡(연봉 총액상한제)과 용병 도입 등등 프로로서 갖춰야 하는 세부적인 문제들에 대한 조율도 선행돼야 하며, 마사회의 후원 속에 두 번의 슈퍼리그를 치렀지만 프로가 되면 독자적인 수익모델도 창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 슈퍼리그 서울경기에서도 드러났듯 유료로도 폭넓은 관중을 유치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여전히 작지 않은 부담이다.
게다가 야구와 축구만 프로리그가 있었던 8, 90년대와 달리 볼거리가 풍부해진 시대적 상황도 넘어야 하는 벽이다. TV중계 채널 확보에서부터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의 타 종목은 물론 요즘 각광 받는 e-스포츠 등과도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국내외에서 수많은 대회가 열리는 종목 특성상 대한탁구협회와 현재의 실업연맹, 더 나아가 국제연맹이 주최하는 각종 대회들을 염두에 둔 일정수립도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다.
이에 대해 실업연맹 측은 이미 프로를 출범시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외국의 사례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여 단계적으로 해결해간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세계적으로 탁구는 독일, 프랑스, 스웨덴,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벨기에, 덴마크, 스페인, 크로아티아, 러시아, 중국 등이 프로리그를 운영하고 있는데, 올해로 열 번째 시즌을 치른 중국의 슈퍼리그를 우선의 롤 모델로 삼겠다는 복안. 실업연맹측은 “국내 프로리그가 정착되면 한·중·일 3국이 참여하는 아시아리그를 출범시킬 계획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가 있다고 피하거나 주저하기만 해서는 애초부터 판 자체가 구성되지 않는다. 벌이지 않는다면 문제를 만날 이유가 없지만 앞으로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결국은 누차의 우려대로 잊혀져가는 일만 남는 셈이다. 그것은 곧 수많은 선결과제를 앞에 두고도 실업연맹의 프로화 선언 움직임이 반갑고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관건은 결국 팬들과의 호흡
사실 탁구는 프로로서 많은 매력을 지닌 종목이다. 세계 최상위권의 국제경쟁력은 비교적 수월하게 언론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 탁구만의 강점이다. 국제적인 국내스타들과 용병제도를 적절히 활용할 경우 지속적인 보도도 이끌어낼 수 있다. 5~6명의 선수로도 당장 운영이 가능해 타 종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경비를 필요로 하는 장점도 있다. 저비용 고효율의 홍보기능이 필요한 기업으로서는 ‘해볼 만한 장사’다.
게다가 탁구는 생활체육 활성화가 이뤄지면서 국민생활체육전국탁구연합회 추산 70만이 넘는 동호인을 가지고 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이후 각 실업팀 서포터스가 창단러시를 이루면서 만만치 않은 팬층을 형성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프로연맹이 어떤 방식으로 동호인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느냐에 따라 탁구 프로리그는 기존의 ‘보는 스포츠들’과는 다른 획기적인 리그 운영의 가능성도 열려있는 것이다.
그 같은 관점에서 보면 결국 관건은 다시 팬들과의 호흡이다. 올해 슈퍼리그도 방송 중계 시간 때문에 관중이 찾기 어려운 평일 낮 시간대에 많은 경기를 치렀고, 서울에서는 특히 썰렁한 관중석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됐다. 경기장을 찾은 팬들도 선수들의 플레이를 관전하는 것 외에는 재미를 공유할 수 있는 장치들이 턱없이 부족해 지루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탁구가 종목 스스로 갖고 있는 강점을 활용하기 위해 더 많은 연구를 선행해야 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 슈퍼리그를 총괄 진행한 최영일 실업탁구연맹 전무이사(삼성생명 여자팀 감독)는 “적은 예산과 한정된 인원이었지만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번 대회를 통해 발견된 여러 가지 개선점들을 하나하나 차분히 해결해 나갈 때 프로화의 진정한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중요한 것은 논의를 넘어서는 실천
최 감독의 말대로 슈퍼리그가 그 성패를 떠나 탁구 프로화의 중요한 디딤돌 역할을 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신학용 한국실업탁구연맹 회장이 내년 프로리그 출범을 공언할 수 있었던 것도 그와 같은 자신감의 발로였을 것이다.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탁구 프로화 논의가 많은 임원들의 의욕과 구체적인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일종의 ‘설’로 나돌고 있을 뿐 직접적인 ‘실체’로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는 것. 개인 대 개인의 입장에서 프로화의 당위성에 관한 역설로만 그쳐서는 애써 조성한 ‘프로화의 장’이 또 다시 무위로 그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탁구 프로화는 자칫 매년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들 수도 있다.
물론 서둘러서 좋은 것은 없다. 먼저 해결할 것은 해결하고 행동에 나서는 것이 정답이다. 하지만 논의가 지나치게 길어지는 것도 좋지 않다. 지금쯤이면 팬들에게 탁구가 프로를 준비하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줄 필요는 있지 않을까.
프로화 선언이 반드시 프로리그 운영의 시작과 그 시기를 같이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칭 ‘프로탁구 출범 준비위원회’와 같은 사전 준비단체의 활동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논의’가 아닌 ‘실천’인 것이다.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은 2009 탁구 슈퍼리그가 막을 내린지도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나버렸다. 과연 탁구계는 올 연말, 혹은 내년의 두근거리는 시작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오는 ‘프로화’의 화두 속에서 보낼 수 있을까. 2009년 가을, 각 실업팀들의 움직임에 자꾸 시선이 간다.
글_한인수 | 사진_안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