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와 자유
"용서는 정신적인 치유고,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것"
빠삐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영화관에 가서도 보고 TV로도 몇번씩 본 영화 이다)
스티브 매퀸이 연기한 실제 주인 공은 프랑스의 '앙리 샤르에르' 다.
1931년 당시 25살 이었던 앙리는 파리에의 한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바로 그때 그 근처에 살인사건 이 발생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수사를 맡았던 검사가 인근에 있던 앙리를 혐의자로 지목해
재판에 넘겨진다.
검사는 자신의 명성을 의식해 거짓 증인까지 내세워 앙리를 살인자로 유죄판결을 받게 한다.
이후, 투옥된 앙리는 자기 인생을 망친 그 검사에게 복수하고자 무려 아홉번
이나 탈출을 시도 했다가 실패했고,
결국 감옥생활 14년째인 1944년, 그의 나이 38세에 '악마의 섬'으로 불리는 감옥에서 탈출에 성공한다.
"빠삐용 영화는 여기서 끝난다."
□ 다음은 그가 탈출한 이후 실제 있었던 이야기다.
앙리는 탈출한 후 남미로 도망쳐 곳곳을 전전하며
온갖 고생을 다해 돈을 모았다.
프랑스는 형법상 30년이 지나면 범죄시효가 만료 되는데,
그 30년이 되던 1961년 55세가 된 앙리는 드디어 파리로 돌아왔다.
그의 인생을 망가뜨린 검사와 거짓 증인들을
죽이기 위해서다.
파리에서 그는
자기가 젊었을 때 다니던 거리 부모님과 함께 걸었던 골목. 친구들과 놀던 장소. 특별히 그가 살인범으로 누명을 쓰고 체포당한 곳을 거닐면서 조금씩 마음이 바뀌었다.
그는 결국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복수를 포기하고 용서하겠습니다".
"그 대신 저와 같은 비극적 사건이 더는 생기지 않게 해 주십시요."
그리고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이겼다".
"앙리 샤리에르
너는 자유롭고 사랑받는
네 미래의 주인공으로
여기에 있다".
"네 원수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더 이상 알려고 하지마라".
그들은 과거의 한 부분이고 너는 지금 여기에 있다".
"이 비극적 일에 관계된
사람 가운데 네가 가장 행복한 사람인 것을....,"
'앙리 샤리에르'는 오랜 세월 한 맺힌 복수심에서
해방된 것이다.
용서는 정의의 문제가 아니다.
용서는 치유의 문제다.
정의만으로는 절대 내 안의 상처와 울분을 치유할 수가 없다.
(루이스 스미즈/ "용서의 기술" 중)
영화 <빠삐용>의 마지막 장면은 탈출이지만,
앙리 샤르에르의 인생에서 진짜 탈출은 복수를 내려놓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감옥의 문을 부수고 나온 것은 그의 몸이었지만
미움의 사슬을 끊고 나온 것은 그의 영혼 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흔히 용서를
상대에게 베푸는 선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용서는
상대를 놓아주는 일이기 전에 내 마음을 붙잡고 있던 원한과 분노를 놓아주는 일 입니다.
상대를 벌하지는 못해도 용서의 순간 내 마음의 사슬에서 나를 풀어줄 수는 있습니다.
결국 용서는 상대를 향해
내가 “당신을 놓아줍니다”라는 말이 아니라
이제 "나를 놓아 줍니다”라는 고백 인지도 모릅니다.
바람처럼 자유롭게...,
- 작자미상 -